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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63화 (163/200)

163화

0.01초 소드마스터 163화

‘이, 이게 대체 어떻게 된······!’

혼돈의 드래곤은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자신은 하늘을 비행하며 이 대륙의 최강 드래곤임을 과시했다.

그런데 고작 저 인간의 말 한마디에 그 위엄을 잃고 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인간의 발아래 짓눌린 채로 쓰러져 있게 되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강의 종족으로서, 최강의 드래곤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몸을 비틀며 어떻게든 일어나려 했으나, 도저히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란 말인가.

아무리 라할이라도 자신을 목소리만으로 굴복시킬 순 없다.

만일 그랬다면 천상의 드래곤 같은 것을 만들어 자신과 대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잠깐.’

그때 혼돈의 드래곤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라할이 아니라면?’

라할은 빛의 신이다.

그러므로 혼돈의 드래곤에게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반대로 어둠의 신인 레메게톤은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설마······!’

그제서야 혼돈의 드래곤은 그동안 감고 있던 눈을 뜨는 것만 같았다.

이 인간을 보라.

고작 인간의 몸으로 두려워 마땅할 드래곤을 집에서 기르는 애완 동물마냥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자신이 철저히 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며 거만한 눈빛을 띠고 있지 않은가.

네놈 따위는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저 눈동자는 그분과 닮았다.

자신을 창조하고 유일하게 다룰 수 있는 분.

바로 레메게톤 말이다.

하지만 그분이 인간의 몸으로 있을 리 없을 터.

거기다 만약 정말 그분이었다면 자신과 이리 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어란 말인가.

“······?”

그리 생각을 하던 중.

리렉시온은 자신을 속박하던 힘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그러나 고민이 되었다.

이걸 냅다 몸을 일으켜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다고 이걸 가만히 계속 있는 것도 그래서 리렉시온은 스리슬쩍 몸을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누가 감히 움직이라고 했지?”

칼날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며 리렉시온의 몸을 움찔거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상대가 누구인지 정말 확실하게 하려면 이렇게 가만 있어서는 안 된다.

마음 한켠 두려움이 일었으나, 혼돈의 드래곤은 몸을 억지로 일으켜 포효했다.

그런 뒤 아슬란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묻겠다. 네놈은 정말 라할인가?]

하지만 그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대신 아슬란의 진노 섞인 핀잔을 들을 뿐이었다.

“건방지구나. 또 다시 나를 내려다보다니.”

리렉시온은 강하게 콧김을 내뿜으며 말했다.

[대답해 줄 생각이 없는 건가? 그렇다면 강제로라도 들어야겠다.]

그는 강한 마기를 사방에 퍼뜨리며 드래곤의 고유 스킬인 피어를 발동했다.

“으악!”

“크헉!”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제아무리 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고 할지언정 드래곤의 피어 앞에서는 움찔거리기 마련.

그러나 지금 피어를 발동하고 있는 건 바로 드래곤 중의 최강이라는 리렉시온이다.

라일라칸과 엘티히도 숨이 턱 막히며 몸을 비틀거렸다.

[굴복하라. 내 위대한 힘 앞에.]

리렉시온은 아슬란을 향해 힘을 집중시켰다.

어떻게든 그를 무릎 꿇리기 위해 말이다.

하지만-

“참으로 가소로운 힘이로군.”

이 어마무시한 피어를 가하는데도 불구하고 아슬란은 꺾이지 않았다.

아니.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다른 인간들은 숨조차 쉬지 못하고 혼절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오히려,

“잘 보거라, 미물이여. 진정한 힘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샤아아아악-!!

혼돈의 드래곤보다 더욱 사악하고, 더욱 거대한 어둠의 힘이 저 몸으로부터 솟구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

불꽃처럼 솟아오르는 마기.

그 가운데에 그어지는 사악한 두 눈동자가 리렉시온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그 마기에 잠시 리렉시온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지금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건 라할이 아니라, 어둠의 주인이자 자신을 창조한 레메게톤이라는 것을!

쿠웅-!!

혼돈의 드래곤이 가진 피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을만한 힘.

그로 인해 리렉시온은 다시 한번 몸이 바닥으로 처박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어떠한 수치심도, 분노도, 당혹감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물이 글썽일 만큼의 기쁨이 차올랐다.

오래전 저 지하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자신의 주인이 돌아왔다는 그 기쁨 말이다.

“······.”

온 하늘을 뒤엎을 만큼 거대한 레메게톤의 힘은 아주 잠깐 번쩍이다 사라졌다.

리렉시온은 자신을 짓누르던 힘이 사라지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오직 레메게톤만이 들을 수 있는 전음을 보냈다.

[주인이시여. 저는 당신의 종입니다. 진작에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저지른 무례를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

아슬란은 아무런 대답 없이 자신을 바라보기만 했다.

침묵은 곧 긍정을 뜻하는 것이지 않은가.

만일 정말로 화가 났다면 이대로 쉽게 힘을 풀지 않고 계속해서 리렉시온을 밑바닥에 처박아 저 지하 아래까지 쑤셔 넣었을 것이다.

레메게톤에게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힘이 있다.

[헌데 어찌하여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겁니까? 예전의 모습이시라면 벌써 이 대륙을 산산조각내고 저 천계와 라할을 찢어 죽이실 수 있을 겁니다!]

“······.”

이번에도 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바라만 볼 뿐.

[역시······. 당신에게는 제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계획이 있으시겠지요. 전 항상 그랬듯, 당신을 믿습니다. 주인이시여.]

리렉시온은 아슬란의 날카로운 안광에서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한 무한한 신뢰를 말이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지 않던가.

지금이 바로 그것이었다.

[주인께서 다시 저를 부르시는 그날을 기다리겠습니다.]

리렉시온은 날개를 양옆으로 힘껏 펼친 다음 크게 포효를 터트렸다.

어둠의 주인이 돌아왔다는 그 기쁨을 한껏 표현하는 기쁨의 포효였다.

그런 뒤 그는 하늘 높이 날아올라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렇게 주인과 다시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그가 계획하고 있는 그날을 위하여 이 아쉬움을 뒤로 남겼다.

* * *

······뭐지?

갑자기 왜 가 버린 거지?

설마 저러다 다시 유턴해서 돌아오는 건 아니겠지?

나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멀뚱멀뚱 쳐다보길래 같이 쳐다봤더니만 그냥 혼자 가 버리네?’

이미 스킬은 다 써버렸고, 남은 것이라고는 이 병신 같은 허세밖에 없어서 리렉시온과 눈싸움을 하던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놈은 날 한동안 빤히 쳐다보다 어디론가 슝 날아가 버렸다.

저 육중하고 거대한 몸통은 순식간에 사라져 더 이상 시야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상한 일이네.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간 건 아닐 테고.’

진짜 급똥인가?

“혼돈의 드래곤이 폐하에게 겁을 먹고 도망쳤구나!”

바로 그때였다.

아론이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자 다른 기사들도 하나둘 입을 모아 외쳤다.

“폐하께서 혼돈의 드래곤을 쫓아내셨다!!”

“폐하께서 혼돈의 드래곤을 이기셨다!”

“우와아아아!!”

이들 눈에는 내가 혼돈의 드래곤을 물리친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이렇게 감동과 환희에 가득 찬 목소리로 함성을 내지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럼 이왕 이렇게 된 거 충분히 즐기면서 웃기만 하면 되는데-.

“한심한 놈들.”

이놈의 허세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짐의 군사라는 것들이, 그것도 제국 최강의 군단이라는 것들이 고작 저거 하나 막지 못해서 짐을 번거롭게 만드는 것이냐?”

“······.”

나는 좌우를 천천히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짐은 너희를 최강으로 키웠다. 하지만 짐의 기대에 한참을 못 미치는구나. 그리도 나약한 힘으로 어찌 이 대륙과 백성을 지키겠다는 것이냐?”

“폐하. 하지만 상대는 드래곤 중의 최강이라는 혼돈의 드래곤인······.”

“닥쳐라! 그 악명만 높을 뿐, 그저 허울뿐인 드래곤이다.”

“······.”

그들은 할 말을 잃은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엘티히와 라일라칸, 그리고 내가 가진 모든 공격 자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는데도 혼돈의 드래곤을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런 놈을 쓰러뜨리라는 것 자체가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것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내 허세는 더욱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짐이 키운 너희는 이 대륙에서 상대하지 못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너희가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음 한구석 남아있는 두려움 때문이다. 아직도 그 두려움을 버리지 못하였다니. 참으로 부끄럽구나.”

“소, 송구하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폐하!”

그들은 일제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렸다.

“아론.”

“예, 폐하!”

“군사 훈련을 더욱 강화하라. 책임지고 이들의 전력을 높여 놓거라. 그렇지 못한다면 짐의 진노가 너희에게 이를 것이다.”

“예! 기필코 그리하겠나이다!”

아론은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호레스.”

“예!”

호레스 역시 그 늙은 목청을 애써 높이며 대답했다.

“군비를 지금에 2배로 늘리거라. 우리가 모든 왕국을 통일해 제국이 되었다고 해서 군비를 낮춰선 안 된다. 아직도 사방에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 않느냐? 언제까지 짐이 번거롭게 황좌에서 내려와 너희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것이냐?”

“소, 송구합니다.”

“책임지고 국력 강화에 힘을 쓰거라.”

“예!!”

이 정도 했으면 됐겠지?

안 그래도 황후 후보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혼돈의 드래곤 덕분에 그 위기에서 탈출할 수가 있었다.

“쯧쯧. 한심한 것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그들에게서 몸을 돌렸다.

펄럭~!

오늘따라 망토가 더욱 과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 * *

“리렉시온. 대체 이게 어찌 된 것이냐? 왜 그냥 나오는 거지?”

바빌론들은 베라크 제국이 혼돈의 드래곤에 의해 쑥대밭이 되어 버릴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작도 좋았다.

수많은 공격이 이어졌지만, 혼돈의 드래곤은 전혀 물러섬이 없었고, 오히려 저들을 압도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는 아슬란과 마주하고 나서 두 번 고꾸라지더니, 아예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

리렉시온은 바빌론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이들은 아슬란이 라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그분께서 이들에게 따로 말씀하지 않았다는 뜻.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리렉시온은 말을 아꼈다.

[너희도 곧 알게 될 것이다.]

“무얼 말이냐?”

[그분의 위대하신 뜻을 말이다. 네놈들은 참으로 눈뜬장님이 따로 없구나.]

바빌론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왜 저기서 그냥 나온 거야? 설마 아슬란에게 겁이라도 먹은 건가?”

[당연하지. 이 대륙에서 저분에게 겁을 먹지 않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뭐?”

그렇게 수수께끼 같은 말만 남기고 혼돈의 드래곤은 다시 날개를 펼쳤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나머지는 너희가 알아서 생각해 보거라. 그리고 그분의 때가 도래할 때까지 기다리도록.]

혼돈의 드래곤은 순식간에 날아올라 사라져 버렸다.

“대체 무슨······.”

그 뒤에 남은 바빌론들은 머릿속이 물음표로 가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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