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162화 (162/200)

162화

0.01초 소드마스터 162화

혼돈의 드래곤, 레락시온.

파멸을 일으키고 다니는 이 세상 가장 위험한 드래곤이 우리 황궁 바로 위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것이 노려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였다.

[라할! 이번에야 말로 기필코 네놈을 씹어 먹어 주겠다!]

광기에 젖은 눈동자로 혼돈의 드래곤은 나를 향해 날아왔다.

‘미친. 왜 나한테 그래!?’

대체 뭘 보고 저놈은 나를 라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으나, 저놈이 나를 잘근잘근 씹어 먹으려고 다가온다는 건 확실했다.

콰아앙-!!

하지만 쩍 벌린 아가리가 내게 닿기 전에 먼저 그것과 충돌한 것이 있었다.

[레락시온. 기어코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구나.]

골드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

그 둘이 혼돈의 드래곤을 막기 위해 나섰다.

‘그래. 드래곤들끼리 치고받고 싸워라.’

문제는 이것들이 황궁 안에서 이 지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건방진 놈들. 감히 누구 앞을 막는 것이냐? 너희의 뿌리가 곧 고대 드래곤인 나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냐?]

[웃기지 마라. 우리가 우리의 뿌리조차 모를 것 같으냐?]

[행패 부리지 말고 썩 꺼져.]

레락시온은 그 둘의 으르렁거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런 저항이 귀엽다는 듯 대꾸했다.

[가소롭구나.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말이다.]

그러고는 강한 마기를 발산해 둘을 위협했다.

[윽-!]

혼돈의 드래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는 황궁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그 마기에 노출된 자들은 몸을 비틀거리며 쓰러지기 일쑤였고, 골드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 역시 그것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콰아아아-!!

마기가 더욱 깊이 잠식하기 전에 골드 드래곤은 브레스를 내뿜었다.

그에 이어 레드 드래곤도 힘을 합쳐 함께 브레스를 쏘아 보냈다.

[흐흐. 귀여운 놈들.]

무려 드래곤 두 마리가 쏘아 보내는 브레스였으나, 혼돈의 드래곤은 그것을 정면으로 맞고도 멀쩡했다.

[브레스라는 건 그렇게 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가 쏘아 보낸 검은 브레스가 골드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을 강타했다.

[크악!]

[크읍-!]

두 드래곤이 검은 브레스를 맞고 그 큰 몸통을 주체하지 못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설마 이 정도로 차이가 심한 건가?’

저 둘도 하늘의 제왕이라 불리는 드래곤이다.

심지어 골드 드래곤은 다른 드래곤들의 리더 역할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혼돈의 드래곤 앞에서는 브레스 하나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나약한 존재라는 것인가.

대체 개발자 놈들은 왜 저런 밸런스 파괴범을 만들어 가지고.

[다른 드래곤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네 두 놈의 머리를 뜯어 버려야겠다. 그래야 다른 놈들도 알게 되겠지. 이 땅과 하늘을 지배하는 것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혼돈의 드래곤은 그렇게 천천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두 드래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바로 그때.

콰콰콰콱-!!

[음?]

콰콰쾅-!!

레락시온의 발밑에서부터 솟구쳐 올라오는 검격이 저 머리끝까지 닿아 한꺼번에 폭발했다.

눈으로 차마 쫓기도 힘든 그 빠른 검술에 레락시온은 미간을 좁혔다.

[넌 또 무엇이냐?]

감히 혼돈의 드래곤 몸에 손을 댄 자는 바로 라일라칸이었다.

“난······.”

그는 나를 힐끔 쳐다본 뒤 말했다.

“대륙의 최강자, 라일라칸이다.”

저번에 나한테 와서 당신은 라할이니, 이제 대륙의 최강자는 자신이 아니냐는 말을 했던 라일라칸.

어지간히 대륙 최강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싶었던 모양이다.

쐐애애액-!!

콰아아앙-!!

그리고 그 옆에서는 난데없이 마법구가 날아와 레락시온의 얼굴을 때렸다.

그것을 쏘아 보낸 건 다름 아닌 엘티히였다.

“이곳은 드래곤이 마음대로 활개를 쳐도 될 만한 곳이 아니다. 거기다 오늘이 얼마나 중요한 날인지는 알고 있느냐, 드래곤.”

왜인지 잔뜩 화가 나 보이는 엘티히였다.

그리고 레락시온도 적잖게 화가 나 보였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벌레보다 못한 것들이 내 앞을 가로막으려 하는구나.]

라일라칸과 엘티히가 조금이나마 시간을 벌어 준 덕분에 이미 성안에 있던 병사들도 죄다 모여 전투태세를 갖췄다.

또한 마탑에서도 마법진을 펼쳐 혼돈의 드래곤을 공격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잠시 쓰러져 있었던 골드 드래곤과 레드 드래곤까지 자리를 털어 일어나면서 이제 혼돈의 드래곤이 우리에게 포위당한 꼴이 되었다.

[레락시온. 이 대륙은 더 이상 너 같은 드래곤이 그 옛날처럼 마음대로 날뛸 수 없다.]

골드 드래곤의 말에 레락시온은 거만한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늘 그런 말을 듣고 살았지. 하지만 결과는 항상 똑같았다. 너희는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나는 영원하리라.]

그 말을 끝으로 혼돈의 드래곤이 브레스를 모으자, 사방에서 그를 향한 공격이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 * *

“우린 그냥 이대로 구경만 하면 되는 건가, 모데루스?”

바빌론들은 멀찍이 떨어져 황궁 위에서 벌어지는 불쇼를 구경하고 있었다.

드래곤들이 내뿜는 브레스, 마법사들이 펼친 마법, 기사들의 맹공까지.

누가 봐도 혼돈의 드래곤이 궁지에 몰린 듯보였다.

“베라크 제국의 기사단은 그 질이 다르다. 마법사들 역시 마찬가지지. 거기다 저놈들은 드래곤이 두 마리나 있고, 엘프들의 여왕도 저곳에 있다. 이러다가 설마 혼돈의 드래곤이 죽기라도 한다면-”

그러자 모데루스는 고개를 저었다.

“혼돈의 드래곤을 너무 우습게 보는군.”

“······?”

“그 옛날 라할도 혼돈의 드래곤이 가진 힘을 두려워하여 천상의 드래곤을 만들어내 간신히 놈을 몰아냈다. 그리고 너희도 보지 않았나? 혼돈의 드래곤이 한입에 우리 바빌론 중 하나를 먹어 치운 것을.”

그건 아직도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아무리 혼돈의 드래곤이 강하다고 한들 바빌론이 힘을 합치면 못 이길 게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혼돈의 드래곤은 힘이 없는 와중에도 바빌론을 단번에 죽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졌다.

“레메게톤 님께서 만든 최고의 창조물이다. 고작 저 정도로 죽을 일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어도 되는 건가?”

“놈이 혼자 알아서 하겠다고 했으니, 두고 보는 수밖에. 괜히 우리가 나섰다가 혼돈의 드래곤이 내뿜는 마기에 휩쓸릴 수도 있다. 그리고······.”

모데루스는 진정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따로 있었다.

“정말 아슬란이라는 자가 라할이 맞는지, 그것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 말하며 모데루스는 조용히 상황을 관전했다.

다른 바빌론들 역시 모데루스와 마찬가지로 일단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혼돈의 드래곤은 차츰 승기를 잡아 무자비하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 * *

콰아아아아-!!

“으, 으아악!”

“피, 피해!”

압도적이다.

설마 이 정도로 압도적일 줄은 몰랐다.

제아무리 혼돈의 드래곤이라고 할지언정 머릿수에는 장사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심지어 지금 내게는 대륙 최강자인 라일라칸과 마법사 중 최강인 엘티히가 있고, 두 마리의 드래곤과 수많은 기사단, 그리고 마법 병단이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크하하하! 이 가소로운 인간 놈들. 예나 지금이나 나약하기 그지없는 건 똑같구나!]

혼돈의 드래곤을 감히 쓰러뜨리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의 힘에 하나둘 쓰러지는 자들이 많아 지고 있었으며, 황궁은 이미 개박살이 난 지 오래였다.

‘이거 진짜 다 뒤지겠는데.’

내가 쌓아 놓은 제국이 설마 드래곤 하나 때문에 멸망을 당하게 생겼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혼돈의 드래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힘이 있다는 것이다.

설마 개발자 놈들은 혼돈의 드래곤을 청소기 역할로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닐까.

게임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혼돈의 드래곤으로 깔끔하게 청소하도록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정도로 힘의 차이가 날 수 있지?

‘일단 튀자.’

살고는 봐야 하지 않겠나.

지금 우리 힘으로는 혼돈의 드래곤을 어찌하지 못한다.

놈이 날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다 죽느니, 차라리 그전에 도망을 치는 것이 나았다.

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스리슬쩍 일어났다.

이대로 공간 이동을 사용해 여기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칠 작정이었다.

하지만-

[드디어 네가 나서는 것이냐, 라할.]

뒤에서 살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한창 우리 애들이랑 싸우면서 나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 줄 알았는데, 사실 놈은 줄곧 나만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흐흐. 이런 하찮은 것들은 이제 그만 치우거라. 너와 나, 둘이서 해결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서일까.

파상공세를 펼치던 나의 부하들이 갑자기 공격을 멈추고는 나와 혼돈의 드래곤을 번갈아 쳐다보기만 했다.

‘아니. 얼른 공격을 해줘야 시선이 분산돼서 내가 도망칠 거 아니야.’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이윽고,

“폐하께서 나서신다!!”

“우와아아아-!!”

“황제 폐하께서 혼돈의 드래곤을 처단하시리라!!”

갑자기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내가 정말 혼돈의 드래곤을 쓰러뜨려 줄 거라고 믿는 건가?

[인간들에 너에게 거는 기대가 크구나, 라할. 하지만 저들의 희망을 보란 듯이 짓밟아 버릴 것이다.]

혼돈의 드래곤은 육중한 몸으로 이끌며 내게 다가왔다.

[왜 아무런 말이 없지? 설마 기회를 틈타 도망이라도 칠 생각이더냐?]

그 말을 듣고 뜨끔했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도망?”

그래도 상대가 누군지 알고 알아서 잠잠해 있던 허세가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짐에게 도망이라고 했느냐?”

[호오. 그럼 이제야 싸워 볼 마음이 생겼느냐?]

“짐이 그저 침묵하고 지켜본 것은, 너 따위는 짐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몸뚱이만 큰 하등 쓸모없는 미물 따위에 짐이 왜 힘을 낭비하겠는가?”

들끓어 오르기 시작한 허세는 늘 그랬듯, 개소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하지만 고작 저런 짐승 하나 잡지 못하는 짐의 부하들이라니. 이 또한 한심하구나.”

내 쓴소리에 모두 고개를 숙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대체 누가 혼돈의 드래곤을 잡을 수 있단 말인가.

[긴 말 할 것 없다. 우리 둘의 대결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라할. 네놈을 이 대륙과 함께 먼지로 만들어 주마.]

그러나 저 검은 몸통의 드래곤이 입을 열면 열수록 내 허세는 장작을 넣은 화마처럼 강하게 타올랐다.

“건방 떨지 말 거라.”

[뭐?]

“너 따위 미물이 감히 짐과 대결을 펼치겠다는 것이냐?”

나는 천천히 한 걸음씩 혼돈의 드래곤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아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네놈이 계속 나를 내려다보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놈의 발이 닿는 곳까지 다다른 순간.

[꿇어라.]

나의 언령이 강한 마기를 타고 입 밖으로 빠져나갔다.

콰아앙-!!

“!?”

그러자 혼돈의 드래곤은 그 거대한 몸이 꺾여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버리고 말았다.

나는 집채만한 놈의 머리를 발로 짓누르며 경악과 충격에 빠져 있는 놈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야 알겠느냐? 이것에 네놈과 짐의 격차라는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