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159화 (159/200)

159화

0.01초 소드마스터 159화

라할이 만든 6명의 신.

그들은 각각 자신의 이름과 힘을 걸고 펜던트를 만들었고, 주인공은 그 펜던트들을 모아 악의 힘에 대항하는 것이 기본 스토리 라인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제까지 그 어떤 플레이어도 펜던트를 만든 신을 대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저들은 개발사가 귀찮아서 신들을 미구현 해 놓은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았다.

나 역시 그리 생각했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이 변태 같은 개발자 놈들이 실제로 신들을 만들어냈고 어딘가에 숨겨 놓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테르셰가 여길 나타날 리 없잖아?’

나는 테르셰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 보았다.

노란 머리에 말괄량이처럼 생겨서, 세상 누구도 저 여자를 테르셰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게는 상대방의 정보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지 않던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무슨 속셈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궁금했다.

‘한 가지 의심되는 것이 있다면-.’

내가 라할이라 불리니, 라할이 창조한 신 중 하나인 테르셰가 정말 내가 라할인지 아닌지를 판별하고자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도?

‘그럼 나 큰일난 거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라할이 창조한 6명의 신 중 하나다.

그렇다면 금방 내가 라할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일 터.

‘대체 레베카는 왜 저런 놈을 같이 데려온 거야?’

라할을 모욕하고 능멸했다는 이유로 테르셰가 어떤 분노를 이곳에서 보여줄지 모르기에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주 뻣뻣하게 고개를 세우며 레베카와 테르셰를 바라보고 있었다.

“레베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것이냐? 네가 짐의 과거 약혼녀였다는 것까지 앞세워서 말이다.”

“아, 네. 그러니까 그게 말이죠. 잠깐. 내가 근데 왜 여기에 온 거지?”

레베카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다.

거기서 난 눈치를 챘다.

테르셰가 레베카를 이용해 내게 접근했다는 것을 말이다.

하긴.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무작정 황궁 병사들을 때려눕히며 오는 건 부담감이 있었겠지.

“할 말이 없으면 나가라, 레베카.”

“아······.”

레베카는 벙찐 얼굴로 가만히 서 있다 몸을 돌렸다.

그러자 그녀의 부하들도 함께 멍한 얼굴로 뒤를 따랐다.

하지만 테르셰는 날카로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뒤늦게 그녀도 몸을 돌렸다.

여기서 난 도박을 해야만 했다.

이대로 테르셰를 보낼 것인가, 아니면······.

“테르셰.”

결국 나는 저질러 버렸다.

그 목소리에 테르셰가 놀란 얼굴로 내 쪽을 돌아보았다.

“테르셰?”

“그게 누구지?”

나는 그런 테르셰에게 말했다.

“넌 남거라.”

그러자 레베카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테르셰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 아이의 이름은 테르셰가 아니라······.”

“레베카. 넌 나가거라.”

내가 강압적인 목소리로 말하자 레베카는 곧 뒤로 물러났다.

“아······ 네.”

그렇게 집무실에는 나와 테르셰.

단둘만 남게 되었다.

“······어떻게 알았지?”

테르셰의 목소리에 적의가 가득했다.

“이 세상 사람들 눈은 다 속일 수 있어도 짐의 눈은 피할 수 없다, 테르셰.”

“무슨 술수를 부린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왜 여기에 왔는지는 너도 알고 있겠지?”

말광량이 같이 보였던 그녀의 눈동자가 점점 표독스럽게 변해 갔다.

“감히 라할의 이름을 헛되이 이용하여 사람들을 속이다니.”

“짐은 그들을 속인 적이 없다.”

“닥쳐. 넌 라할이 아니잖아. 그분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을 리 없다. 그리고 정말 오셨다면 우리들을 먼저 찾으셨겠지.”

“왜 그리 자신하는 거지? 너희의 행동거지가 똑바로 섰었다면 라할이 너희를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뭐, 뭐야!? 그분이 사라진 게 우리 탓이라는 것이냐?”

방금 테르셰가 공식적으로 확인을 시켜 주었다.

라할은 사라졌다.

그리고 내 허세는 테르셰의 언성이 높아질 때마다 더욱 끓어 올랐다.

“그렇다면 라할이 왜 너희를 버리고 떠났겠느냐. 잘 생각해 보거라. 너희의 잘못이 무엇인지. 너희를 왜 버리고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미친놈. 역시 네놈은 사기꾼이로구나. 감히 라할의 이름을 모욕한 죄, 내가 이곳에서 물어 주겠다!”

테르셰의 손에서 독가스 같은 초록색 연기들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앞으로 손을 뻗자, 그것들이 소용돌이처럼 내게 몰아쳤다.

‘조, 좆 됐······!’

콰아아아-!!

하지만 그것이 내게 닿는 일은 없었다.

내가 방어막을 펼친 것이 아니다.

신성한 보호가 나를 지켜 준 것도 아니었다.

그 외 다른 것이 테르셰의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켜주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그럼 이것도 막아 보거라!”

테르셰는 한번 더 힘을 끌어 모아 내게 초록색 연기를 쏟아 보냈다.

그러나 그것들도 내 털끝 하나 건들지 못 하고 무언가에 막혀 사라지고 말았다.

“뭐야. 대체 어떻게 막아내고 있는 거야?”

나도 모른다.

무엇이 테르셰의 공격을 막아 주고 있는지 말이다.

더군다나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왜냐하면,

“감히-.”

황제의 위엄과 짬뽕이 된 이놈의 허세가 날뛰기 시작했던 까닭이다.

“그따위 힘으로 짐을 능멸했던 것이더냐?”

테르셰는 몹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 따위가 내 힘을 막아낼 수 없다.”

“그럼 어디 한번 짐을 죽여 보거라. 네가 가진 온힘을 다해 쓰러뜨려 보란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놈의 존재를 이곳에서 소멸시켜 주마.”

“!?”

그녀는 진심으로 온힘을 끌어 모아 내게 쏟아 붓는 것만 같았다.

그 힘이 워낙 거대하여 집무실 전체가 무너져 내릴 정도였으며, 바깥에 있던 기사들은 감히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콰아아아-!!

하지만 이 난리를 쳐놓고도 테르셰는-.

“이, 이럴 수가.”

여전히 날 건드릴 수 없었다.

그 막강해 보이는 힘도 내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대, 대체 어떻게······.”

그때 내 손에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테르셰의 펜던트가 빠져 나와 내 손바닥 위를 헤엄쳤다.

지금까지 날 지켜 준 건 바로 테르셰의 펜던트였던 것이다.

그녀의 펜던트가 내게 있는 한, 테르셰는 결코 나를 해칠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의 펜던트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건!?”

“기억하는군. 네가 만든 펜던트다.”

“그, 그걸 어떻게 네가 가지고 있는 거지?”

“글쎄. 왜일 거 같으냐?”

나는 다른 펜던트들도 모두 꺼내 그녀에게 모두 보여 주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이 펜던트들은 우리가 라할께 드린 충성의 증표였다. 근데 네가 이걸 어떻게······.”

“······.”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펜던트는 사실 내가 얻고 싶어서 얻은 것들이 아니다.

상점이 열렸고, 그곳에 펜던트가 있기에 하는 수 없이 가져온 것일 뿐.

그런데 나도 테르셰처럼 의문이 남았다.

신들이 라할에게 충성의 증표로 남겼던 펜던트가 왜 상점에 나타났던 것일까.

“저, 정말로 당신······.”

쿠웅-!!

그때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 위를 뒤덮었다.

“크롸라라라-!!”

거센 드래곤의 포효가 사방을 흔들었고, 날카롭게 이빨을 드러낸 골드 드래곤이 우리 두 사람을 내려다 보았다.

“겁대가리도 없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감히-.”

그리 으르렁 거리며 말을 잇던 골드 드래곤은 테르셰를 보고 멈칫 거렸다.

“어디서 많이 느껴본 기운이라 생각은 했는데······ 그쪽은 설마 라할이 창조해낸 신인가?”

“골드 드래곤······. 소문대로 정말 여기 있었군.”

“그래. 너는 네 주인을 찾아 온 것인가?”

“주인?”

“라할 말이다. 그를 찾아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더냐?”

테르셰는 나와 골드 드래곤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처음에 나를 보았을 땐 내가 절대 라할일 리 없다고 확신하는 눈동자였으나, 지금은 그 신념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대치 상황도 잠시.

“리탈리온.”

“왜 그러지?”

“감히 짐을 내려다 보고 있다니. 건방지구나.”

이놈의 허세는 한 시도 가만 있지를 못했다.

“내려와라.”

“헛-!”

쿠웅-!!

언령이 퍼져 나가자 골드 드래곤은 저항조차 해보지 못 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그는 금방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도, 도와 주려 했던 건데······.”

“짐이 네 도움이 필요해 보이더냐?”

“······너무해.”

나는 천천히 테르셰에게 다가갔다.

펜던트가 있는 한, 그녀는 절대 날 죽일 수 없다는 걸 알았던 탓일까.

그 발걸음에 거침이 없었다.

“이제 어찌 하겠느냐, 테르셰.”

“이, 이럴 리 없어. 그분께서는 결코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지 않는다.”

“자만하기 짝이 없는 생각이로구나. 왜 네가 그걸 판단하는 거지? 이러니 너희를 떠나간 것이다.”

“!?”

테르셰는 뒷걸음치며 내게서 멀찍이 물러났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말했다.

“다른 신들에게도 전하거라. 허튼 짓 하지 말고 때가 다다를 때까지 자중하라고 말이다.”

“······!”

“볼 일 없으면 그만 돌아가거라. 오늘 저지른 무례는 짐이 특별히 용서해 줄 터이니.”

나는 모든 할 말을 마치고 그녀에게서 돌아섰다.

그러자 테르셰가 내 등뒤에 대고 물었다.

“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정말로 라할이십니까?”

난 살짝 고개만 돌려 그녀에게 대답했다.

“난 라할이 아니다. 너희의 신도 아니며, 창조주도 아니다. 그저-.”

“······?”

“인간 아슬란일 뿐이다.”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

내가 아끼던 집무실을 또 새로 지어야 할 것 같았다.

* * *

“······.”

테르셰는 충격 속에 할 말을 잃었다.

멀어져 가는 아슬란 붙잡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건 분명 언령이었다.’

그것도 무려 골드 드래곤이나 되는 존재를 복종시키는 엄청난 언령이었다.

언령이란 건 종종 몇몇 특별한 존재들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드래곤이나 되는 존재를 무력화 시키는 언령은 거의 없었다.

딱 한번 테르셰는 저 정도의 언령을 쓰는 존재를 본적이 있었다.

그건 바로,

‘라할.’

자신의 창조주이자 모든 것이었던 라할.

오직 그만이 저런 언령을 쓸 수 있었다.

더군다나 아슬란은 6명의 신이 정성스레 만들어 바쳤던 펜던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어떤 공격으로도 그를 해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펜던트는 나와 라할이 아니라면 절대 사용할 수가 없을 텐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펜던트에는 강력한 주문이 걸려 있어 그것을 만든 장본인과 라할이 아니라면 결코 쓸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런데 펜던트는 아슬란을 주인으로 인정하여 그 힘을 온전히 발휘하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라할. 정말 당신입니까?’

그렇다면 대체 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겁니까?

그리고 대체 왜 저를 예전처럼 부드럽게 받아 주지 못 하시는 겁니까?

그때 문득 뇌리에 스치는 것들이 있었다.

아슬란은 이렇게 말했었다.

너희를 버리고 떠난 이유를 잘 생각해 보라고 말이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지?’

달려가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만약 여기서 쫓아간다면 영영 자신을 보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는 건······.’

6명의 신 중에서 악마와 결탁하고 있는 자가 있다?

라할이 갑작스레 사라진 이후 오래 전부터 조금씩 의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인간 아슬란이라고 하셨지.’

지금은 라할이 아닌, 그저 인간으로 있고 싶으신 건가.

당최 무슨 생각을 갖고 계신지는 모르겠으나, 테르셰는 더는 의문을 갖지 않기로 했다.

라할의 뜻은 언제나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필시 무슨 큰 뜻이 있을 거라 여기며 그녀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