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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53화 (153/200)

153화

0.01초 소드마스터 153화

‘······일단 데려오긴 했다만.’

대체 저놈을 언제 내보내야 하지?

아니, 내보낼 순 있는 건가.

본인이 싫다고 안 나가면 꼼짝 없이 여기서 눌러 살게 해야 되는 거잖아?

‘플레임은 어찌저찌 통제가 된다고 쳐도.’

골드 드래곤이 과연 순순히 내 말을 들으려고 할까?

복잡해지는 머릿속.

그러나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플레임은 계속 골드 드래곤 옆에 서서 조잘조잘 떠들어대고 있었다.

“여기 일라이 왕국······. 아니지. 이제는 제국이구나. 베라크 제국에서 제일 잘하는 음식이 바로······.”

시종일관 먹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웃긴 점은 골드 드래곤이 꽤나 진지하게 경청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떄때로는 군침을 삼키는 게 보일 정도였다.

이놈들이 인간 모습을 하고 있는 건 사실 음식을 먹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리탈리온.”

그때 내가 이름을 부르자 골드 드래곤이 몸을 움찔거리며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이름을 인간인 당신이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이오?”

아참. 골드 드래곤의 이름을 난 원래 몰라야 하는 게 정상이구나.

하지만 나는 뻔뻔하게 나갔다.

“이 대륙에서 짐이 알지 못하는 건 없다.”

“그럼 그쪽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잘 알겠구려.”

나 때문에 벌어진 일?

무슨 뜻이지?

때마침 플레임이 옆에서 골드 드래곤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요?”

“······너도 겪었던 일이다. 저자가 강력한 마기를 대륙 전체에 퍼뜨리는 바람에 300년 동안 잠을 자고 있던 나를 깨웠다.”

“강력한 마기라고 하면······.”

난 골드 드래곤이 무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강력한 마기.

그날 내가 타락한 원혼의 불로 네크로맨시를 했을 때, 타락한 저주로 인해 어둠 속성의 힘이 600%나 증폭하는 바람에 플레임까지 미쳐 날뛰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그걸 말하는 것 같은데······.

‘그게 대륙 전체에 퍼질 정도로 강했던 거였나?’

그것 때문에 골드 드래곤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된 것이고?

“그리고 깨우지 말아야 할 것도 같이 깨우고 말았지.”

“깨우지 말아야 할 거라는 건······.”

“혼돈의 드래곤, 레락시온. 내가 깨어날 정도의 힘이었으니, 그것도 분명 눈을 떴겠지.”

“레, 레락시온이요?!”

플레임이 저렇게 놀랄 만도 하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혼돈의 드래곤, 레락시온이 깨어나는 건 내 시나리오에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아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레락시온은 의도적으로 플레이어가 무덤을 찾아가 깨우지 않는 한, 절대 깨어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레락시온은 말 그대로 이 대륙에 혼돈을 가져오는 드래곤이다.

골드 드래곤 이전에 있던 고대 드래곤으로, 놈은 공포로 모든 종족을 다스렸으며, 신으로 추앙받기까지 했다.

그래. 고대 드래곤.

이 대륙 어딘가에 잠들어 있는 놈들이다.

문제는 이 중 하나만 깨어나도 굉장히 골치가 아파진다는 것.

물론, 고대 드래곤 같은 경우에는 플레이어가 작정하고 깨우지 않는 이상,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을 깨우는 것도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의식에 필요한 재료들을 모아야 하고, 그 의식에 쓰이는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도 필요하기 때문.

즉, 놈들을 깨우겠다는 건 게임을 클리어할 생각이 없고, 그냥 호기심에 깨우는 것밖에는 이유가 없다.

‘근데 고작 그 짓거리 한번 했다고 혼돈의 드래곤이 깨어나? 아닐 거 같은데.’

나는 골드 드래곤이 뭔가를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히 그래야만 한다.

“정말 그놈이 깨어났을까요? 단 한 번도 그런 낌새가 없었잖아요.”

플레임의 물음에 골드 드래곤은 고개를 저었다.

“난 놈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놈이 다시 태동하기 시작했다는 걸 지금도 느끼고 있다. 놈은 깨어났어. 아직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골드 드래곤은 그것의 존재를 이미 느끼고 있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정말 혼돈의 드래곤이 깨어났다는 건가?

‘좆됐네.’

나는 혼돈의 드래곤을 딱 한 번 깨워본 적이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이제 게임도 할 만큼 했고, 깰 업적도 다 깨봤으니, 고인물들처럼 놈을 한번 깨어본 것인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난 내가 컨트롤만 잘하면 혼돈의 드래곤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깨우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레메게톤처럼, 혼돈의 드래곤 역시 절대 깰 수 없는 몬스터로 만들어 놓은 것인지, 놈은 순식간에 내 캐릭터를 녹여 버렸고, 나는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혼돈의 드래곤은 바로 그런 존재였다.

이 세상에 혼돈을 가져오고, 파멸시켜 버리는, 최악의 드래곤이었다.

“혼돈의 드래곤이 깨어났다는 건, 다른 고대 드래곤 역시 깨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오.”

내가 아는 고대 드래곤은 두 마리밖에 없다.

혼돈의 드래곤, 그리고 천상의 드래곤.

그나마 천상의 드래곤은 천계의 편이라 대륙을 파괴할 일이 없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점이었다.

“내가 당신의 강렬한 기운을 느꼈듯, 혼돈의 드래곤 역시 느꼈을 것이오. 그럼 그놈이 무엇부터 하려고 하겠소? 그 기운을 쫓아 당신을 찾으려 할 것이오.”

마른침이 절로 삼켜지는 말이었다.

다른 놈도 아니고 혼돈의 드래곤이 날 찾는다는 것만큼 등골 서늘한 말이 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이 놈의 마지막이 될 것이다.”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더욱더 건방짐이 높아지고, 그 허세의 깊이가 남달라진 내 주둥이가 그런 말을 듣고 가만있을 리 없었다.

“짐은 여태껏 수많은 강자와 싸워왔다. 그때마다 항상 사람들은 짐에게 말했지. 승산이 없을 거라고. 그러나 보거라. 결국 짐이 그들을 쓰러뜨렸으며, 여전히 이 자리에 있다.”

“상대는 혼돈의 드래곤이오. 그대가 여지껏 누구와 싸웠는지는 모르나, 혼돈의 드래곤은 결을 달리하는 존재란 말이오.”

“그건 짐도 마찬가지다.”

“······!”

나는 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황제의 허세 가득한 위엄을 느끼며 말했다.

“드래곤이여. 너는 짐을 상대해 봐서 알겠지. 짐의 힘은 하늘을 가르며 땅을 흔든다. 이 지상에 있는 그 어떤 것도 짐의 힘 아래에 있다. 혼돈의 드래곤이라고 하여 다를 것 같으냐?”

“······.”

“정 믿지 못하겠다면 이곳에 남아 지켜보거라. 너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혼돈의 드래곤이 어떤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지, 직접 보여주겠다.”

그렇게 나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잠깐.

설마 진짜 여기 남으려는 건 아니겠지?

* * *

망토를 화려하게 펄럭이며 나가는 아슬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리탈리온은 옆에 있던 플레임에게 물었다.

“원래 저런 식인가?”

“네?”

“저 아슬란이라는 인간 말이다. 원래 저렇게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것이냐?”

“아까 내가 말했잖아요. 원래 저렇다고. 그리고 충분히 저런 자신감을 가질 만한 힘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아까 그렇게 당했으면서 모르겠어요?”

“크흠. 그, 그건 내가 잠시 방심했을 뿐이다. 지금 만약 다시 붙는다면 그리 허망하게는······.”

“그럼 한 판 더 붙어 보든가요.”

“······.”

리탈리온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괜히 플레임의 뒤통수를 때렸다.

“악! 왜 때려요!”

“근데 넌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드래곤이면 드래곤답게 레어나 만들어 놓고 있을 것이지. 왜 인간 아이 모습으로 이곳에 있는 것이야?”

“아니. 그거야······. 저 아슬란이 제 레어를 박살 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어요.”

“레어를 박살 내?”

“네. 다짜고짜 새로 잘 지어 놓은 레어를 아슬란이 박살 내버리는 바람에 그걸 따지려고 처음 여기 왔다가 눌러살게 된 거예요.”

그 말에 리탈리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에 오기 전에 들었다. 인간이 드래곤 한 마리를 붙잡아 부린다고 말이다. 그게 설마 너였다니.”

“부리다니요. 말이 심하시네.”

“그럼?”

“음······. 그냥 상부상조하는 관계?”

리탈리온은 한 번 더 플레임의 뒤통수를 세게 때렸다.

“악!”

“그게 부리는 거지. 어딜 봐서 상부상조라는 게냐. 대륙 최강의 종족이라는 드래곤이 인간에게 붙어먹어?”

“아니. 그렇다고 여기서 갑자기 다 때려치고 그냥 돌아가겠다고 하면 아슬란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쫓아오면요? 대신 싸워 주실 거예요?”

“인간과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것이냐?”

“상대가 이제껏 본 적 없는 괴물이잖아요. 당장 골드 드래곤을 말 한마디로 조져 버리는데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거야.”

“이놈이 끝까지······!”

그렇게 둘이 옥신각신하며 말다툼을 할 때였다.

“흠흠.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호레스가 조심스레 다가와 말했다.

“골드 드래곤이시라면 여러 종족에 신성시 여겨지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베라크 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신성시라······. 그건 아마 내가 아니라 천상의 드래곤이라 불리는 아르피오스겠지.”

“허허. 그렇습니까? 그래도 저희 제국을 방문해 주신 귀한 손님이시니, 섭섭지 않게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이곳에서 편하게 지내십시오. 단, 황제 폐하의 허락 없이 드래곤의 모습을 하시게 될 경우······. 무서운 처벌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무서운 처벌?”

“폐하께서는 법규와 규율을 무척이나 중요시 여기는 분입니다. 제국을 다스림에 있어서 법규를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고 말씀하셨지요. 하여 법규를 지키지 않고 제국을 어지럽히는 이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으십니다.”

인간이 다른 것도 아닌, 무려 드래곤에게 무서운 처벌을 내리다니.

그거야말로 웃긴 이야기였다.

“인간이 드래곤에게 처벌을 내릴 수 있을 거라 보는가?”

그러자 옆에서 플레임이 말했다.

“그 아이스 드래곤 기억나시죠?”

“······그놈은 왜?”

“그놈이 아슬란한테 개기다가 단칼에 목이 베여서 죽었어요.”

그 말에 리탈리온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인간이 드래곤을 죽였단 말이냐?”

“여기까지 오시면서 드래곤 슬레이어가 있다는 건 못 들으셨나 보네.”

“말도 안 된다. 드래곤은 그리 쉽게 죽지 않아. 드래곤이 드래곤을 죽이는 것도 무척 어려운 일이거늘. 어찌 인간이 단칼에 드래곤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단 말이냐?”

“그건 저도 모르죠. 제가 괜히 아슬란을 무서워하겠습니까? 평소에는 장난을 쳐도 잘 받아 주는데 한번 화나면 엄청 무섭다고요, 저거.”

드래곤 슬레이어라.

그러고 보니 지나가듯 들은 적이 있다.

드래곤을 죽인 인간이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저 인간들이 서로 떠들어 대며 거짓으로 만든 이야기라 여겼거늘.

그게 정말 사실이었다니.

“그렇다면 혼돈의 드래곤을 잡겠다는 것도······.”

정말 그럴 만한 힘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인가?

아슬란이 앉아 있었던 황좌를 바라보며 리탈리온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 * *

“설마 남는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플레임은 그럭저럭 통제가 되는 녀석이라 괜찮지만, 골드 드래곤은 다르다.

내가 놈을 한번 굴복시켰다고 해도 언제든 다시 내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 놈이지 않은가.

그런 위험 분자를 이제 막 건설된 우리 제국에 놔두고 싶지 않았다.

거기다,

“혼돈의 드래곤까지 나올 수 있단 말이지.”

이게 제일 문제였다.

골드 드래곤에 이어 혼돈의 드래곤까지······!

“차라리 골드 드래곤은 우리 제국에 남겨둬야 하나.”

그래야 혼돈의 드래곤이 나오면 서로 싸우게 놔 둘 것 아닌가.

그리 고민하고 있던 찰나.

[새로운 히든 퀘스트를 얻으셨습니다.]

이건 또 뭐야?

[드래곤들의 왕]

-혼돈의 드래곤과 천상의 드래곤 처치 후, 드래곤들의 왕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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