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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51화 (151/200)

151화

0.01초 소드마스터 151화

“흑흑. 내가 살아 생전에 황제 폐하가 되시는 걸 보게 될 줄이야.”

황제로 등극한 뒤 처음으로 주요 인사들을 모아 회의를 시작하는데, 호레스는 아까부터 눈물을 그치지 못하고 있었다.

“호레스 공. 이제 그만 눈물을 거두십시오.”

“예. 이 기쁜 날에 왜 자꾸 눈물만 보이십니까?”

“미안하네. 내가 너무 기뻐서 그만······.”

오늘 회의에는 각 왕국을 대표하는 왕들도 함께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호레스는 목을 가다듬으며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고는 내 쪽을 바라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폐하.”

폐하라는 호칭이 무척 낯설었지만, 이미 허세와 심취에 취해 버린 나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첫 번째 안건으로는 베라크 제국의 이름 아래 모인 왕국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향에 대한 것입니다.”

“어떤 방법들이 있지?”

“예. 첫째로는 왕이란 신분을 철폐하고, 각 왕국의 이름을 거두어 모두 베라크 제국의 성으로 남겨 두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둘째로 왕권을 보존시키고, 각 왕국의 이름을 그대로 두며 베라크 제국을 섬기게 두는 것입니다.”

나는 양옆에 앉아 있는 왕들을 스윽 살펴보았다.

왕권이 보존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보통은 왕국을 싸그리 없애 버리는 선택을 하겠지만-

“왕권은 그대로 보존을 해주겠다.”

“······정말이십니까?”

“폐하. 소신은 폐하의 곁에 머무르고 싶습니다.”

왕권을 보존 해주겠다고 하니, 상반된 반응이 나왔다.

땅이 꺼져도, 하늘이 무너져도 내게만 충성을 다 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 엘버스테인은 울상을 짓고 있었고, 다른 왕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왕국들을 없애 버리지 않는 건, 여러 경험을 통해서였다.

게임 세계가 아닌, 현실 세계에서도 제국을 건설하고 왕을 곳곳에 놔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괜히 없앴다가 제국에 혼란만 주고, 해당 영토를 관리할 사람을 두어야 하는데, 직위가 그리 높지 않다 보니 여러모로 갈등이 생기기 마련.

또한 그 넓은 땅을 관리하다 보면 이곳을 정말 내 영토로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나오기 일쑤였다.

그럴 바엔 차라리 왕국을 유지시켜 주면서 왕권을 가만히 놔두는 것이 훨씬 더 안정적이라는 것.

내가 귀찮게 일일이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었다.

“왕권을 유지시켜 준다는 건 그만큼 책임감이 따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짐이 불필요하게 신경을 쓰는 일이 없도록 하라.”

“예, 폐하.”

‘짐’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었다.

그래도 본좌라고 지껄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게 나은 것 같았다.

“그리고 칼라 왕국에도 포탈을 만들어 두거라.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이곳에서 지원군을 보낼 수 있게 말이다.”

그러자 갑자기 좌우가 고요해졌다.

내 명령이 꽤나 의외로 들렸던 모양이다.

“폐하. 칼라 왕국에 정말 포탈을 설치해 놓을 생각이십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호레스는 힐끔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것이······. 만일 포탈을 설치하게 되면 저쪽에서도 언제든 일라이 왕국으로 넘어올 수 있게 됩니다.”

즉, 이들은 칼라 왕국의 반란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잠자코 있는 카르만을 향해 물었다.

“카르만. 포탈을 열어 준다면 그걸 반란 목적으로 쓰겠느냐?”

“······아닙니다.”

대답이 늦다.

이거 좀 불안한데.

진짜 호레스 말대로 철회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지만 철회를 하려던 찰나에 허세가 들끓기 시작했다.

“네가 어떻게 쓰든 짐은 상관하지 않는다. 반란을 일으켜 이 자리에 앉고 싶다면 언제든 그리하거라.”

“폐, 폐하!”

“어찌 그런 말씀을······!”

나는 다른 왕들에게도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너희들도 마찬가지다. 언제든 짐에게 도전하고 싶다면, 그 포탈을 타고 군사를 보내 보거라.”

“······!?”

“그래야 조금은 지루한 일상에 활력이 돌지 않겠느냐?”

나는 그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놈의 허세가 또 사고를 치는구나- 라는 것을 직감했지만, 이미 돌이키기에는 늦은 것 같았다.

* * *

“······후아!”

아슬란이 나가고 나서야 왕들은 편하게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황제가 된 이후, 가뜩이나 바라만 봐도 무서웠던 아슬란이 훨씬 더 두렵게 보였다.

저것이 대륙 최초의 황제가 갖는 위엄이라는 것이겠지.

호레스는 그런 왕들을 가만히 살펴보았다.

“군사님. 폐하께서 너무 왕들을 자극한 것이 아닐지······.”

그때 뒤에서 조용히 묻는 아론의 말에 호레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소, 아론 대기사단장. 저들의 얼굴을 보시오. 완전히 겁에 질리지 않았소? 차라리 폐하께서 저리 엄포를 놓으신 게 다행이오. 방금 저 말 한마디로 이들이 은연중에 갖고 있던 불손한 생각을 전부 사라지게 만들었으니.”

언제든 올 테면 와 봐라.

그땐 왕권을 유지시켜줬던 왕국을 전부 잿더미로 만들겠다.

이것이 아슬란이 왕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아슬란의 힘을 잘 알고 있지 않던가.

포탈을 타고 일라이 왕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건 반대로 아슬란 역시 상대 왕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만일 그의 심기를 건든다면 언제라도 그가 강림할 수 있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왕들의 헛된 마음을 다잡아 줄 터.

“과연 폐하이십니다. 어찌 이리도 왕들의 마음을 벌써부터 좌지우지하시는지.”

“이 대륙 최초의 황제가 아니신가. 이 정도는 저분께 아무것도 아니지.”

호레스는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황금빛이 감도는 황좌를 바라보았다.

아슬란이 있는 한, 이 베라크 제국은 역사상 최고로 빛나는 나라가 될 것이다.

“헌데······. 가장 중요한 안건을 듣지 않고 그냥 나가셨군요.”

한 신하의 말에 다른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러고 보니 그렇구려.”

“이런, 제일 중요한 안건이었는데.”

신하들이 탄식을 내질렀다.

그러자 엘버스테인이 궁금증에 그들에게 물었다.

“대체 무슨 안건이었기에 그러시는 거요?”

“아. 엘버스테인 왕께서는 모르시겠군요.”

그들은 빙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대륙 최강의 제국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셨지요. 온 나라가 태평성대입니다. 하지만 정작 폐하의 옆자리는 차갑기 그지없습니다.”

그러자 조용히 찻잔을 들고 있던 하리엘이 풉! 기침을 터트렸다.

신하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이내 말을 이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평생 백성들을 위해 사셨지만, 그분 곁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

그들은 저마다 탄식을 터트렸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빨리 황후마마를 들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옳은 말이오! 이제 후사도 생각을 하셔야지.”

주제가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왕들을 비롯해 기사들과 신하들 모두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탰다.

하리엘은 그런 그들의 토론을 착잡한 심정으로 경청할 뿐이었다.

* * *

“황제 폐하의 초상화 팔아요~!”

“오늘만 특가!! 황제 폐하의 위엄 넘치는 모습이 담긴 수정구 팝니다!”

“황제 폐하가 친히 보수를 해주셨던 식당입니다! 폐하께서 즐겨 드셨던 특식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황제 즉위식이 끝난 뒤에도 성안은 계속 축제 분위기였다.

온통 아슬란에 관련한 상품밖에 없었으며, 미술인들은 아슬란의 얼굴, 그 위엄 넘치는 자태를 그리고 조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온 세상이 아슬란이로구나.”

왼쪽도 아슬란, 오른쪽도 아슬란.

앞과 뒤도 전부 아슬란.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하지만 분명 그자였다.”

남성은 즉위식에서 봤던 아슬란의 인상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은은하게 퍼뜨리던 기운을 느꼈다.

오랜 잠에 빠져 있던 자신을 깨운 바로 그 힘이었다.

그렇기에 이곳까지 온 것이 아니겠는가.

“통행증이 없으면 이곳에 들어갈 수 없소.”

하여 그는 아슬란을 만나보기 위해 왕궁 안으로 들어가려 했으나, 경계병들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여기 황제를 만나야 한다.”

“뭐라?”

“여기 황제인 아슬란을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이놈! 감히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다니!”

“수상한 자로구나. 네놈을 잡아서 무슨 목적으로 폐하를 뵈려는 것인지 알아내야겠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쩔 수 없나.”

그리 중얼거리며 천천히 황금빛 마력을 발산하려 할 때였다.

“아~ 배부르다. 오늘도 진짜 배 터지게 먹었네.”

배가 땅땅하게 나온 아이 하나가 막대 사탕을 먹으며 입구 쪽으로 다가왔다.

“음? 다들 무슨 일이야?”

“아, 오셨습니까.”

기사들은 정중하게 예를 차렸다.

“이 수상한 자가 황제 폐하를 뵙겠다며 난동을 피우는 통에······. 저희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뭐? 아슬란을 보겠다고?”

아이의 몸을 하고 있던 플레임은 상대의 위아래를 쭈욱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헉!”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크게 기겁했다.

남성은 한심하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플레임. 아직도 인간 아이의 몸으로 변해서 음식을 훔쳐 먹는 버릇을 못 고친 게냐?”

“후, 훔쳐 먹다니요! 이건 엄연히······. 아니지. 대, 대체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당신? 말이 짧구나.”

남성의 눈동자가 점점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래. 300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그동안 누구한테 맞지도 않고 건방을 떨며 살았겠구나.”

“자, 잠깐만요. 그, 그런 뜻이 아니라······.”

쿠구구구-!!

남성의 몸이 부풀어 오르며 그 감춰뒀던 형상이 거대하게 드러났다.

“네놈의 그 건방진 성격을 오늘 내가 다시 고쳐 주마.”

* * *

평화로운 하루구나.

내 침실은 왕궁 가장 높은 곳에 있었다.

그래서 테라스로 나가면 왕궁의 모습이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이제 마탑도 어느 정도 건설이 다 되어 가고 있고······.”

저 멀리 보이는 마탑은 높이 솟아올라 있었으며, 이미 마법사들이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성벽 주변에 설치되어 있는 방어막도 보수가 계속 이뤄지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어디서 공격을 해오든 꽤 오랫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거지.”

저것을 유지시키는 데에 돈이 무진장 깨진다는 게 문제였으나, 그것을 충분히 감안하고도 할 만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악마들의 침공을 견뎌낼 수 없을 테니까.

“그럼 당분간은 나도 좀 쉴까?”

이상하게 악마들이 공격을 해오지 않는다.

그놈들도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것이겠지.

그럼 그동안 나도 방어 시설에만 힘쓰며 조금은 나태하게 지내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콰아앙-!!

무언가가 크게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들어 보니, 뿌연 연기가 왕궁 입구 쪽에서부터 올라왔다.

“에혀. 그래. 너희가 날 가만 놔둘 리 없지.”

마치 잔잔한 물가에 돌을 던지는 것처럼, 이놈의 게임 시스템은 내가 가만 있는 꼴을 보지 못한다.

그런데 이번에 게임 시스템이 내게 던진 돌은 그냥 작은 조약돌 수준이 아니었다.

“뭐, 뭐야 저건.”

황금빛 비늘에 거대한 몸통과 두 날개.

“크롸라라라라-!!”

골드 드래곤이 왕궁 앞에서 웅장하게 날개를 펼친 채 크게 포효를 터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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