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0.01초 소드마스터 150화
언령.
내가 내뱉는 말로 상대를 조종할 수 있지만, 그 유지 시간은 고작 30초.
하지만 지금 보는 것과 같이, 그 힘은 가히 막강했다.
카르만은 내 언령에 감히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바닥을 적시는 걸 봤을 땐 식겁했다.
당장 앙심을 품고 내게 달려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좌 앞에서 칼을 뽑아 들고도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을 감사하거라.”
이 허세는 그런 것 따위 요만큼도 관심이 없다는 듯 카르만을 꾸짖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며 내 쪽을 향해 고개를 올렸다.
찢어진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턱 아래까지 내려와 바닥에 흘렀다.
카르만은 모멸감과 분노로 얼굴이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당장이라도 내게 칼날을 휘둘러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으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는 내게 사과하며 한발 물러섰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가?
하지만 할 말은 했다.
“라일라칸과 저는 약속을 했습니다. 제가 일라이 왕국에 항복하는 대가로 그의 목숨을 취하기로 말입니다. 그는 너무 많은 죄를 지었고,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라일라칸을 죽여?
이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얘기였다.
왜냐하면 그에게 세상의 끝을 닫을 수 있는 열쇠가 있고, 라일라칸은 현재 내가 가진 최강의 전력이기 때문이다.
물론, 놈이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긴 하지만, 그런 걸 충분히 감수하고도 품고 있어야 하는 놈이었다.
이제 곧 바빌론급에 달하는 악마들이 쏟아져서 쳐들어올 텐데, 그걸 라일라칸 없이 어떻게 막으라는 건가.
“불허한다.”
“이건 라일라칸과 맺은 약속입니다.”
“난 라일라칸에게 그따위 약속을 맺으라고 허락한 적이 없다. 난 그의 주인이다. 그런데 주인의 허락도 없이 감히 목숨을 버리려 했느냐?”
내가 힐끔 노려보자 라일라칸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네놈은 감히 내 부하를 죽이려 들었고?”
“그, 그건······.”
“건방지구나. 둘 중 누구 하나 본좌의 뜻을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일을 저지르다니. 그러고도 네가 살기를 바라느냐?”
그 말에 카르만 뒤에 있던 부하들이 나섰다.
“우, 우리 왕을 죽이려는 것입니까!?”
“그건 가만두고 볼 수 없습니다!”
난 그들을 노려보며 말했다.
“건방지게 감히 누가 입을 열라고 했지?”
그리고 내 입에서 언령의 힘이 퍼져 나갔다.
“너희의 칼을 뽑아서 카르만의 목에 겨누어라.”
그러자 그들은 일제히 칼을 뽑아 카르만에게 겨누었다.
“와, 왕이시여. 이, 이건······.”
“저희의 의지가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의 팔을 내리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그들의 예리한 칼날이 카르만의 목에 닿아 피를 볼 뿐이었다.
“이 능력은 설마······.”
카르만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본좌는 말 한마디로 너의 목숨을 거둘 수가 있으며, 너의 왕국 또한 흔적도 없이 파괴할 수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내 허세는 기름을 끼얹은 불처럼 맹렬하게 타올랐다.
“너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했느냐? 선택은 오직 내가 하는 것이다. 네 왕국이 나의 제국에 들어올 수 있는지, 아니면 그대로 파괴되어 사라지는지. 모든 것은 본좌가 결정한다는 것이다.”
“······!”
“그러니 감히 네가 대가를 받아서, 네 의지로 항복을 했다는 말은 하지 말거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카르만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러니 네게 하루를 주겠다. 만약 네가 오늘 칼라 왕국으로 돌아간다면, 그땐 나와 끝까지 싸우겠다는 뜻으로 알고 기사단을 준비시킬 것이다. 아니, 본좌가 친히 칼라 왕국에 강림할 터. 그 뒤의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
“허나, 오늘 이곳을 나가지 않고 대관식에 참여한다면 칼라 왕국은 본좌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알고 받아들이겠다. 내가 지켜야 할 백성으로 말이다.”
그 말을 남기고 나서 나는 몸을 돌렸다.
‘아이씨. 너무 막 나갔나.’
속은 쫄렸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펄럭~!
오히려 과하게 망토를 휘날리며 퇴장할 뿐이다.
* * *
아슬란이 나가고 나서야 기사들은 간신히 팔을 내릴 수 있었다.
“와, 왕이시여. 저희가 감히 무례를······.”
“죽여 주십시오.”
이마에, 그리고 이번에는 목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그는 그저 웃음을 터트렸다.
설마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토록 허무하게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금 전 그 힘은······.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저분은 인간이 아니다. 그저 인간의 탈을 쓴 신일 뿐이지.”
“······.”
카르만은 정녕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귀를 파고 드는 저 음성에 저절로 무릎이 꿇렸으며, 이마에 피가 터질 정도로 강하게 머리를 바닥에 박아야만 했다.
마치 자신의 창조주를 앞에 마주하듯, 그는 그 절대적인 힘에 복종해야만 했다.
고작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굴복시키다니.
그것도 카르만 자신과 같은 강자를 말이다.
당장 자신도 저 목소리에 버틸 재간이 없는데,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만일 저자가 정말라 칼라 왕국 위로 강림해 저 목소리를 퍼뜨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구나.’
칼라 왕국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선택을 해라, 카르만.”
카르만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네가 내 목숨을 거두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다.”
덤덤한 라일라칸의 말에 카르만은 미간을 좁혔다.
“아까 같이 듣지 않았소. 그대 목숨은 그대의 것이 아니라고.”
“······.”
카르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이제 하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이미 옛날부터 정해진 일이지 않았을까?
* * *
일라이 왕국의 도시는 소문대로 빛의 축복을 받기라도 하는 것일까.
이곳은 늘 화창하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은 늘 얼굴이 밝다.
미래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어린 아이들이 여럿 뛰어 다녔고, 부랑자들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곳은 정말 모든 것이 완벽한, 인간들이 꿈꿀 수 있는 최상의 도시임에는 분명했다.
“도시가 많이 시끄러워 보이는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한 남자의 물음에 식당 주인장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음? 아니. 대체 어디서 오셨기에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건지도 모른단 말이오?”
“그저 이곳저곳을 여행하느라 소식이 늦소.”
“허허. 그렇다고 해도 이걸 모르다니. 우리 대륙의 최강자이시자, 만백성의 어버이 되시는 아슬란 님께서 드디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날이오!”
식당 주인과 더불어 모여 있는 손님들이 잔을 높이 들었다.
“으하하! 황제 폐하 만세!”
“아슬란 님이 드디어 황제 자리에 오르시다니!”
“크흑- 이리도 영광스러운 날이 있을 수가.”
남성은 이들의 반응을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지금껏 봤던 인간들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황제라- 그렇다는 건 제국을 세운다는 것인데, 다른 왕국들이 반발하지 않겠소? 아니. 이미 무력으로 점령을 한 건가?”
“쓰읍. 참 이상한 분이시네. 그것도 모른단 말이오? 우리 아슬란 님께서는 힘으로 누군가를 굴복시킬 분이 아니시오. 하여 그분의 따뜻한 성정에 이끌려 모든 왕국이 그분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 아니겠소?”
“맞아. 그 자존심 높은 칼라 왕국도 오늘 백기를 들고 왕궁에 들어갔다면서?”
“으하하! 제아무리 칼라 왕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있겠소? 아슬란 님의 은총에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지!”
보통 왕국의 백성들은 자신의 왕이 무얼 하는지 딱히 관심이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거나, 아니면 시원하게 욕을 갈기거나.
늘 둘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이 일라이 왕국은 보면 볼수록 이상하다.
왕을 찬양하고, 또 그를 조금이라도 이상하게 말한다면-.
“그런데 형씨. 설마 우리 아슬란 님을 욕하는 건 아니겠지?”
“그분을 욕하는 건 바로 우리 모두를 욕하는 거야!”
이렇게 백성들이 먼저 길길이 날뛰며 열을 냈다.
남성은 조용히 잔을 들며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저 신기했을 뿐이오.”
“허허. 나참. 아슬란 님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라니. 아직도 대륙에 이런 사람이 남아 있었다고?”
“정말 어디 사람 발이 닿지 않는 곳을 여행하다 온 모험가인 모양이구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가 식당 안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아니. 다들 여기서 뭐하고 있어? 곧 있으면 대관식이 시작한다고!”
“응? 이런, 벌써 시간이!”
“얼른 일어납시다! 이 영광스러운 날을 못 보고 지나칠 순 없지!”
그러자 손님들은 물론 식당 주인까지 부리나케 뛰어가 버렸다.
“······.”
졸지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된 남성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그도 호기심에 백성들의 뒤를 슬쩍 따라가 보았다.
* * *
제국을 선포하고, 내가 황제에 오르는 대관식.
나는 과연 카르만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걱정되었다.
그놈이 진짜 이 악물고 싸우려고 든다면 생각보다 골치 아파질 텐데.
“왕이시여. 이제 들어가시면 됩니다.”
나는 시종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열린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뚜벅- 뚜벅-
광장에 모인 수많은 백성.
하지만 들리는 것이라고는 오직 내 발소리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침묵하며 내게 엎드린 채였다.
난 그들의 숭배를 받으면서 격조 있는 발걸음으로 저 앞에 있는 황좌를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내가 그 황좌에 앉으니, 아론이 소리쳤다.
“모두 경배하거라! 황제 폐하이시다!!”
“우와아아아-!!”
“황제 폐하 만세!!”
백성들은 뜨겁게 환호성을 외치며 만세를 외쳐댔다.
나는 빠르게 눈알을 굴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 그중에는-
‘결국 왔구나.’
카르만도 있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는 항복을 택한 것이었다.
‘그럼 이제 정말로-’
제국을 건설할 때가 왔다.
“모두 듣거라.”
시끄러웠던 군중이 금방 조용해졌다.
“오늘로써 대륙에 있는 8개의 왕국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모두의 뜻에 따라 제국을 건설하고자 한다.”
나는 미리 정해 놓았던 제국 이름을 선포했다.
“앞으로 모든 왕국과 백성은 베라크 제국의 이름 아래 통치를 받을 것이며, 그 보호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베라크 제국.
아슬란 가문의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베라크 제국을 공격하는 자, 그 백성을 수탈하는 자. 모두 내가 친히 벌할 것이며, 역사상 최강의 제국을 건설하여 영원히 빛나게 할 것이다!”
“베라크 제국 만세!!”
“만세!!”
그 이후로 백성들의 환호성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각 왕국의 왕들과 교단의 제사장들, 그리고 교황까지 다 함께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대관식이 끝나는 그 순간.
[메인 퀘스트 ‘황제의 길’의 업적을 이룩하셨습니다.]
-호칭이 ‘본좌’에서 ‘짐’으로 바뀌게 됩니다.
-보상으로 30골드를 얻습니다.
-최고의 매력과 최고의 위엄을 얻습니다. 앞으로 모든 행동에 황제의 위엄이 깃듭니다.
-악마를 모두 소탕하면 황제의 길 퀘스트를 완료하게 됩니다.
드디어 게임을 끝낼 기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