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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49화 (149/200)

149화

0.01 소드마스터 149화

“방금 뭐라고······.”

“분명히 듣지 않았느냐. 난 오늘 널 죽이러 왔다, 카르만.”

초연한 라일라칸의 눈동자.

그 안에는 짙은 살기가 감돌고 있었다.

“자기 씨앗을 자기가 거두겠다라. 심오하군.”

“나는 그저 대의적인 결정을 할 뿐이다. 무엇이 이 대륙에, 그리고 이 왕국에 이로운가를 생각하면서 말이지.”

“그런 대의적인 결정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왕국을 짓밟으며 다녔나? 악마를 몰아내겠다는 핑계로?”

“지금도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땐 그것이 맞다고 믿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너를 죽이는 것이 옳다고 여길 뿐이다.”

그러면서 라일라칸은 카르만을 설득하듯 말했다.

“하지만 예외는 있는 법. 만일 네가 일라이 왕국에 항복을 한다면 나는 널 죽이지 않을 것이다.”

“······!”

“그러니 선택해라. 이곳에서 내 손에 죽을지, 아니면 아슬란에게 항복할지.”

카르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슬란에게 마력을 빼앗겼다더니. 정말로 놈의 개가 된 것이냐?”

“그거와는 상관없다. 나는 그저 이 왕국의 미래를 걱정해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왕국의 미래?”

“카르만. 네가 만약 자존심을 앞세워 아슬란을 대적하고자 한다면 그 생각을 접어라. 너와 칼라 왕국은 결코 그를 쓰러뜨릴 수 없다.”

“싸움은 끝까지 해봐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말에 라일라칸은 짧게 숨을 내쉬었다.

“정녕 너는 칼라 왕국의 사람들을 전부 다 죽일 셈이냐? 그래 놓고 나를 폄하할 자격이 너한테 있는 것인가?”

“우리 칼라 왕국은 강하다!”

“그건 아슬란이 나타나기 전이겠지.”

“······!”

라일라칸의 언성이 점점 커져갔다.

“아슬란은 인간이 아니다, 카르만.”

“뭐?”

“그는 신의 화신이다. 그가 가진 힘은 결코 인간의 것이 아니야. 그 어떤 종족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힘이다.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그는 인간의 탈을 쓴 다른 존재라는 것이지. 그것도 우리의 상식을 초월하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일라칸의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내 비록 한때 대륙의 최강자로 군림했지만, 저 하늘을 두고 비교하면 나는 그저 하찮은 인간일 뿐이다. 그리고 아슬란이 바로 그 하늘이다. 말 한마디로 모두를 굴복시키고, 이 세상마저 두 쪽 낼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아슬란이라는 것이다.”

“완전히 그의 노예가 되었구나. 그리 찬양하는 것을 보아하니.”

“그저 있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한때 나는 저 하늘마저 넘을 수 있는 강자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를 만나고 나서 하늘의 벽이 얼마나 높은 것인지 통감했지. 네가, 그리고 이 왕국의 백성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자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 자존심 높고 제 멋대로인 라일라칸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니.

대체 아슬란이 저자를 어떻게 했기에······!

“그러니 결정해라, 카르만. 정녕 뜻대로 아슬란과 싸우겠다면 먼저 나를 꺾어야 할 것이다.”

“······.”

라일라칸의 살기에 카르만은 왕좌 옆에 있던 칼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스르릉-

“정녕 피를 봐야겠다면 어쩔 수 없지.”

* * *

일라이 왕국은 현재 대관식으로 한창 바빴다.

이날 왕국 백성들도 대관식에 참여를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라가 미쳐 돌아가는구나.’

나는 그리 바쁘게 움직이는 신하들을 보며 끌끌거렸다.

‘어쩔 수 없이 허락은 했다만-’

황제가 될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하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런데 이것들이 단체로 내 처소 앞까지 몰려와 식음을 전폐하고 제발 황제가 되어 달라며 울부짖었다.

못 본 척하면 알아서 물러가겠거니 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이것들은 자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급기야 호레스가 실신을 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도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이 대륙 최초의 황제가 되는 것이었다.

“온 대륙의 영광이며, 모든 족속의 축복입니다. 왕께서 황제가 되신다면 그 명성이 날로 퍼져 하늘에도 닿으리라 믿습니다.”

알렉산더는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말했다.

원래 스토리대로 간다면 알렉산더가 이 자리에 앉았어야 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내 기사로 머물렀고, 황제 자리와 전혀 인연이 없는 이 아슬란이 황제가 되었다.

“왕이시여. 대관식이 거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하하! 드디어 새로운 태양이 이 대륙에 뜨는군요.”

“왕이시여. 저희가 뒤를 따르겠나이다!”

준비가 끝났다는 말에 신하들은 나와 함께 대관식이 열리는 광장으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보고드립니다! 현재 칼라 왕국의 왕, 카르만이 군사를 이끌고 이곳으로 다가오는 중입니다!”

“뭐, 뭣이? 카르만이!?”

“이 즐거운 날에 재를 뿌리려 하는 건가?”

“이런 괘씸한!”

대관식에 카르만이 온다라.

결국 전쟁인가.

가장 피하고 싶었던 시나리오로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물론, 칼라 왕국에 패배할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내게는 20만에 달하는 병력이 있고, 지금 당장 콜을 한다면 포탈을 타고 곧바로 일라이 왕국에 집결하게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칼라 왕국의 전력이 너무나 아깝다는 거지.’

심지어 그곳에는 한 명 더 신경 쓰이는 놈이 있었다.

‘라일라칸은 결국 저쪽에 붙어먹은 건가?’

뜬금없이 나를 찾아와서 카르만과 담판을 짓겠다며 마력 봉인을 잠시 해제해 달라고 했던 놈이다.

그런데 이렇게 내 통수를 친다 이거지?

“왕이시여. 지금 당장 전 병력을 모아 칼라 왕국을 응징해야 합니다!”

“왕의 은총과 은혜도 알지 못하는 칼라 왕국을 벌하십시오!”

그렇게 신하들이 길길이 날뛰며 소리를 칠 때였다.

기사 하나가 또 들어와서 내게 보고를 올렸다.

“왕께 아룁니다! 현재 칼라 왕국 기사단의 숫자는 총 1천! 칼라 왕국의 깃발 대신 백기를 들고 이곳으로 다가오는 중입니다!”

그 말에 신하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참말이냐?”

“아니. 백기라고?”

“그렇다는 건······. 칼라 왕국이 왕께 항복하러 오는 것이군요.”

그 카르만이 내게 항복을?

그럼 라일라칸이 정말로 카르만을 설득했다는 건가?

‘아니. 긴장을 풀면 안 된다.’

그놈들이 무슨 꿍꿍이를 품고 있을지 누가 안단 말인가.

“아론, 레바노스.”

“예!”

“너희 둘이게 1만의 기사단을 주겠다. 가서 카르만의 군을 호위해라.”

“명을 받듭니다!”

만약 이들이 순수하게 항복을 하러 온 것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정말 음흉한 계획을 품고 온 것이라면······. 그땐 어떡하지?

* * *

“멈추시오!”

칼라 왕국의 기사단과 카르만은 저 멀리서부터 다가오고 있던 아론과 레바노스를 만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나 일라이 왕국의 대기사단장, 아론이 호위하겠소.”

카르만은 별 저항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라일라칸이 나란히 있었다.

그는 그런 라일라칸을 향해 말했다.

“우리의 약속은 잊지 않았겠지.”

“그래. 잊지 않았다.”

“마지막에 가서 결정을 바꾸지 마시오.”

“그럴 일 없다.”

그렇게 아론의 호위를 받으며 카르만은 일라이 왕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눈에 먼저 띈 것은 다름 아닌 성 전체를 보호하고 있는 방어막이었다.

“······이렇게 거대한 방어막은 처음 보는데? 성 전체를 방어하는 방어 마법이라니.”

그러자 라일라칸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아론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웃는 거지?”

째려보는 카르만에게 아론이 설명했다.

“이건 방어 마법이 아니오. 아슬란 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은총이지.”

“······?”

더더욱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아론은 앞장서서 그들을 안내했다.

카르만은 성 내부를 확인하면서 점점 더 눈이 커져만 갔다.

칼라 왕국도 굉장히 많은 발전을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보였다.

백성들의 삶은 윤택해 보였고, 거리 곳곳이 아름다웠으며, 특히 중앙에 높이 솟아 있는 마탑은 그 위엄이 엄청났다.

아슬란 백성들을 위해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로 돈을 쏟아 부어 백성들의 삶에 영향을 끼칠 줄은 몰랐다.

그런 시선을 눈치챈 아론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왕께서는 항상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더 잘 살게 하고, 지켜 줄 수 있는지 고민하시는 분이오. 정작 본인이 살고 계신 처소에는 돈 한푼 들이고 있지 않으시오. 이 시대에 보기 힘든 명군이시지.”

“······.”

카르만은 왠지 부끄러움이 들었다.

왕이란 결국 백성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것을 진짜 실현하는 사람이 아슬란이라니.

이윽고 그들은 아슬란이 있는 전각 입구에 도착했다.

“왕이시여! 칼라 왕국의 왕, 카르만과 라일라칸이 알현을 청하옵니다!”

그러자 저 문 안에서 묵직한 음성이 들려왔다.

“들이거라.”

“예!”

끼이익-

문이 열리면서 카르만과 라일라칸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왕좌에서 거만하게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슬란을 마주하게 되었다.

“어서 와라.”

예나 지금이나 그의 눈동자는 모든 것을 아래로 보는 듯했다.

“그래. 무슨 일로 왔지?”

아슬란의 물음에 카르만이 답했다.

“칼라 왕국은 일라이 왕국에 항복하기 위해 왔소.”

그러자 아슬란이 턱을 괸 채 말했다.

“항복하는 사람치고 자세가 꼿꼿하구나. 카르만.”

그 말에 카르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고 그가 천천히 제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자 그의 뒤에 있던 기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같이 무릎을 꿇었다.

“우리 칼라 왕국은 일라이 왕국에 항복하겠습니다. 단!”

그때 카르만이 뒤에 힘을 주며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여기 라일라칸과 약속을 한 것이 있습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우리 칼라 왕국이 일라이 왕국에 항복하면 그의 목숨을 취하기로 말입니다.”

그러고는 카르만이 허리춤에 있던 보검을 천천히 빼어 들었다.

“그런고로 이곳에서 라일라칸의 목을 베겠습니다. 그의 피가 우리 칼라 왕국이 항복한다는 증거가 될 겁니다.”

라일라칸은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듯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카르만은 그대로 그의 목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 예리한 칼날이 라일라칸의 목에 닿으려는 바로 그 순간.

“멈춰라.”

전각에 울려 퍼지는 위압적인 목소리에 카르만의 움직임이 멈췄다.

“······!?”

카르만은 칼을 든 오른팔이 움직이지 않는 것을 느끼고는 억지로라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끝끝내 몸이 움직이지 않고 석화가 된 듯 굳어 버렸다.

‘이, 이게 대체 무슨!’

혓바닥조차 움직일 수가 없어 말도 꺼내지 못했다.

“건방지구나. 누가 감히 본좌의 앞에서 칼을 뽑으라고 했느냐?”

설마. 내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슬란인가?

그가 직접적으로 힘을 가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만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치 그의 말에 강제로 복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카르만. 네게 명한다.”

위압적인 음성이 한 번 더 카르만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너의 황제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라.”

쿠웅-!!

카르만은 저절로 무릎이 땅에 닿았다.

이를 악물고 땀을 흘릴 정도로 힘을 주어 봤지만, 그는 끝끝내 바닥에 처박히는 자신의 머리를 멈출 수가 없었다.

“크윽-!”

그의 이마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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