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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46화 (146/200)
  • 146화

    0.01초 소드마스터 146화

    특별한 신성력을 타고 나는 사람은 훗날 교황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것을 구별하는 방법은 바로 높은 신성력과 역대 교황들에게 남겨진 성물들을 사용할 수 있느냐였다.

    제아무리 신성력이 높은 제사장이라고 해도 선택을 받지 못한다면 성물을 사용할 수가 없다.

    하지만 교황은 성물에 다가가기만 해도 반응을 일으킨다.

    그것이 교황과 제사장을 나누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교황은 성물을 통해 여러 가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그중에는 신성한 부름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투웅-!!

    이렇게 수많은 군대를 원하는 지역으로 단번에 이동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교황은 직접 성기사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이곳에서 퍼져 나간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윽-”

    교황은 마기가 휘몰아치는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강한 통증을 호소했다.

    자신의 신성력을 잡아먹으려 하는 마기의 지독함 때문이리라.

    그녀는 눈을 들어 평야에 가득한 악마들과 살아난 영혼들을 바라보았다.

    “저들은 모두 악마다!”

    더러운 마기로 태어난 존재들.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 다시 살아난, 이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들.

    교황은 그들을 악마로 규정해 처단 명령을 내렸다.

    “악마를 정화해 라할의 빛이 영원히 꺼지지 않도록 하라!”

    “예!!”

    교단 최고의 위치에 서 있는 교황의 명령이다.

    더군다나 이는 악마를 처단하는 일.

    성기사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사기가 올랐다.

    그들은 창칼을 뽑아 들고 악마들을 향해 진격하려 했다.

    하지만-

    “멈춰라.”

    잔잔하게 울리는 음성에 그들의 움직임이 모두 멈추고 말았다.

    “윽!”

    “크읍!”

    말 그대로 몸 자체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이들은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이상하게 말을 듣지 않았다.

    ‘대, 대체 왜 안 움직이는 거지?’

    그건 단순히 기사단에게만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었다.

    교황 역시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마치 다른 이에게 몸의 통제권을 빼앗겨 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 근엄한 목소리가 나온 곳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

    하늘을 뒤엎고도 남을 지독한 마기를 뿌리며 붉은 망토를 펄럭이고 있는 한 남자, 아슬란이 있었다.

    ‘이, 이 마기는 대체 뭐지?’

    레메게톤이라 여겼던 그 마기가 사실은 아슬란에게서 나왔던 것인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히고, 교황 몸 안에 가득한 신성력이 비명을 지르며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살갗이 타들어 가는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마기였다.

    이상한 점은 대체 왜 아슬란에게서 저런 마기가 나오느냐는 것이었다.

    “이, 이들은 악마입니다. 당연히 처단을 해야지요.”

    교황의 말에 아슬란이 무심한 눈길로 대꾸했다.

    “그대의 눈에는 이들이 정녕 악마로 보이는가?”

    “······예?”

    “그저 본좌의 명령을 따르는 영혼들일 뿐.”

    그때 아슬란 앞에 천천히 내려오는 검은 머리의 여인이 있었다.

    그 검게 물든 머리가 점점 붉은색으로 변해 가더니, 교황은 금방 그녀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나타샤?”

    나타샤는 그런 교황을 향해 빙긋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구나, 레헤나.”

    레헤나 역시 교황이 되기 전, 아카데미 교수였던 나타샤에게 마법을 배웠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

    “죽었다고 들었는데.”

    “네 말이 옳다. 난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지. 아슬란 덕분에 말이다. 그러나······ 염려하지 말거라. 잠시 동안만 살아났을 뿐이니.”

    나타샤는 아슬란에게 다가가 그의 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아슬란. 내 영혼은 이제 그만 이 땅을 떠나야 한다. 하지만 언젠가 네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날이 온다는 것을 알기에, 난 이곳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 그러니 내 힘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부르거라. 난 항상 이곳에 있을 테니까.”

    “그러지.”

    아슬란의 대답에 나타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별의 키스도 안 해주는 것이냐?”

    “너무 많은 걸 바라는군.”

    “칫. 여전히 넌 냉정하구나. 그래. 어쩌면 그게 좋았던 것일지도.”

    이윽고 나타샤가 뒤로 물러나자 아슬란이 손을 들었다.

    그가 손을 튕기는 순간.

    파앗-!!

    강렬한 빛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순식간에 악마들과 영혼들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거기서 교황은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이 신성력은 또 뭐야?’

    악마들을 단번에 먼지로 만들어 버리는, 이 세상 모든 악한 마법을 단번에 무력화시키는, 가히 가공할 만한 신성력이었다.

    설마 세상에 이런 신성력이 존재할 줄이야.

    이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하나.

    ‘라할.’

    바로 빛의 창조자, 라할밖에 없었다.

    하지만 분명 방금 전까지 아슬란은 레메게톤이라고 착각할 만큼 무시무시한 마기를 뿜어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는 라할의 화신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강력한 신성력을 퍼뜨렸다. 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교황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괜한 걸음을 했구나, 레헤나.”

    “아슬란 님. 방금 그건······.”

    교황은 묻고 싶었다.

    그가 뿜어내던 마기는 무엇인지, 또 그와 동시에 어떻게 그리 강력한 신성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는지.

    하지만 아슬란은 그녀가 묻기도 전에 답을 했다.

    “네가 직접 본 것을 믿거라.”

    “예?”

    “네가 지금까지 나를 봐오지 않았더냐? 본좌는 말로 떠들어대지 않는다. 그저 행동으로만 보일 뿐. 그것을 보고 판단하는 건 너의 몫이다.”

    아슬란은 그 대답만을 남기며 기사들에게 말했다.

    “모두 돌아간다.”

    “예!!”

    기사들은 그의 뒤를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레헤나는 한동안 멍하니 아슬란의 뒷모습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아니. 쟤는 왜 갑자기 튀어나와서 사람을 놀래켜.

    교황이 나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악마 처단을 외치기 전에 후다닥 성안으로 들어왔다.

    ‘갔겠지?’

    슬쩍 보니 교황은 이미 기사단과 함께 멀리 떠난 지 오래였다.

    난 거기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큰일 날 뻔했네.’

    마기 포식으로 바빌론급에 달하는 악마를 삼키는 것은 처음이라 어떤 반응이 일어날지 몰랐다.

    과연 레키어스를 먹어 치우니, 그 무시무시한 마기가 한동안 주변을 맴돌며 들끓어 올랐다.

    거기다 타락한 원혼의 불로 살아난 나타샤와 수많은 영혼과 악마들.

    교황이 충분히 오해하고도 남을 증거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나를 이단으로 규정하지 않은 건······.

    ‘정화 스킬 덕분이겠지.’

    정화 스킬에 성속성을 부여하면 마치 강력한 신성력이 퍼져 나가 온갖 흑마법을 정화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그걸 보고 교황이 일단은 한발 물러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가급적이면 네크로멘시 같은 건 쓰지 말아야겠네.’

    이번에는 어쩔 수 없이 썼다지만, 이걸 계속 남발하다가는 악마로 몰려 공격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레키어스를 마기 포식으로 흡수하면서 새롭게 얻은 능력이 있었다.

    [언령]

    -언령으로 상대방을 조종할 수 있습니다.

    -언령의 범위와 힘은 사용자의 힘과 비례합니다.

    언령.

    내 목소리만으로 상대를 조종할 수 있는 힘.

    바로 레키어스가 악마들을 부릴 때 사용하는 힘이었던 것이다.

    언령이란 스킬은 굉장히 사기적인 능력이라 몇몇 드래곤과 소수의 캐릭터에게만 허락되는 능력이었다.

    바로 그 힘이 내게 들어온 것이었다.

    ‘이걸로 교황과 성기사단을 제압했었지.’

    움직이지 말라는 말 한마디에 교황을 비롯한 성기사단 전체가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물론, 찰나의 괴력과 섞어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굉장히 쓸 만한 능력인 건 분명했다.

    쿠웅-!!

    성안으로 들어와 정비를 하려는데, 플레임이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내 앞에 착지했다.

    “아슬란-”

    그 분노가 음성에서 느껴질 정도였다.

    진노의 화염을 담은 드래곤의 입가에서는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아까 그건 무엇이냐? 네 능력으로 인해 내 정신마저 빼앗기고 폭주했었다.”

    타락한 원혼의 불로 영혼들을 일으켰을 때 퍼져 나간 마기가 플레임에게 큰 영향을 끼친 모양이다.

    나는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몸이 떨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꾸했다.

    “본좌는 네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네 정신력이 나약하여 휘말린 것일 뿐.”

    “뭐야!? 감히 드래곤의 정신력을 인간 따위가 논해!?”

    “건방지구나. 누구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냐?”

    나는 플레임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죽고 싶은가? 플레임.”

    “!?”

    플레임은 움찔거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 그러니까 내 말은······. 사전에 협의도 없이 갑자기 그런 걸 쓰니까 내가 기분이 나빴다는 거지!”

    “드래곤의 정신이 그토록 약하다는 걸 알았다면 미리 고지를 해줄 걸 그랬군.”

    “야, 약하다니!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럼 시험해 보겠느냐?”

    마침 잘 됐다.

    나는 언령으로 플레임에게 말했다.

    “플레임. 너에게 명한다.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밥이나 먹거라.”

    “······.”

    느낌이 묘했다.

    마치 거센 바람 같은 것이 도넛 모양처럼 내 입안에서 통~ 하고 튀어 나가는 기분이랄까.

    이윽고,

    슈우웅~

    플레임은 정말 인간 모습으로 돌아와 말했다.

    “아. 배고프다. 그래. 밥. 밥을 먹어야지!”

    눈이 살짝 풀린 상태로 플레임은 어디론가 뛰어가 버렸다.

    그 모습을 기사들이 넋 나간 얼굴로 쳐다보았다.

    ‘드래곤에게도 통할 정도라면-’

    이 세상 누구에게도 통할 수 있다는 뜻이리라.

    그런데,

    콰직-! 콰콰콱-!

    아이고. 이번에는 또 뭐여.

    갑자기 저 위에 허공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면서 그 사이로 무언가가 비집고 나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라일라칸이었다.

    놈은 푸른 날개를 웅장하게 펼친 채 바닥으로 내려왔다.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 라일라칸에게 겨누었다.

    “······악마들은?”

    그의 물음에 아론이 대답했다.

    “이미 왕께서 처단하셨소. 칼을 거두시오.”

    “왕께서?”

    라일라칸은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보내는 눈길이 의미심장했다.

    뭐야. 설마 벌써 배신을 때리는 건가?

    “라일라칸. 지금은 전시 상황이 아니오. 이미 전투는 끝이 났고, 그대의 마력 역시 다시 봉인되어야 하오.”

    “봉인?”

    아론의 말에 라일라칸은 손에서 전류를 일으켰다.

    바라만 봐도 소름이 끼치는 기세등등한 그의 마력에 아론과 기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

    “마력을 거두시오, 라일라칸!”

    아론이 위협적으로 소리를 쳐봐도 놈은 요지부동이었다.

    ‘젠장. 이래서 봉인 해제를 안 하려고 했던 건데.’

    마력 존속이라는 건 굉장히 편한 시스템이긴 하나, 한번 봉인을 해제시켜 주면 상대방이 동의해야만 다시 한번 마력을 봉인시킬 수가 있었다.

    물론, 허락을 받지 않아도 어느 정도의 마력은 봉인할 수가 있었으나, 상대는 라일라칸이지 않던가.

    절반 정도의 힘을 봉인해 놓는다고 해도 이곳에서 그를 상대할 수 있는 건 플레임 밖에 없을 것이다.

    “라일라칸.”

    나는 아직도 마력을 풀지 않은 그를 불렀다.

    “다시 한번 그 알량한 힘으로 내게 대적하고 싶은가?”

    “······!”

    라일라칸은 머뭇거리며 나와 눈을 마주쳤다.

    “원한다면 해 보거라. 하지만 본좌의 말 한마디에 담긴 힘조차 버티지 못하는 놈이 어찌 본좌를 쓰러뜨릴 수 있을까.”

    “그게 무슨······.”

    “라일라칸. 너에게 명한다. 마력을 봉인하고 내게 복종해라.”

    찰나의 괴력이 섞인 언령이 내 입 밖으로 퍼져 나가기 무섭게,

    쿠웅-!

    라일라칸은 스스로 무릎을 꿇고 그의 몸에 가득하던 마력을 봉인했다.

    그는 필사적으로 저항하려고 한 것 같았으나, 몸의 떨림만 가득할 뿐, 그 어떤 것도 막지 못했다.

    나는 그가 건넨 봉인구를 잡으며 말했다.

    “이제야 제대로 된 주종 관계가 되었구나.”

    나를 올려다보는 라일라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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