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0.01초 소드마스터 144화
“오늘도 교황께서 기도를 올리고 계시는 건가?”
“그렇습니다.”
교황이 기도를 올리고 있을 때면 신전의 밤은 낮처럼 환해진다.
그녀가 가진 신성력이 신전에 있는 신성력과 감응하면서 강력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레이어스 교단 제사장들은 불편한 침음을 흘렸다.
“가히 깊은 신앙심이로다.”
“크흠. 대체 언제까지 여기 계시려는 건지 원.”
아슬란을 빛의 기사로 추대한 이후부터 교황은 늘 신전에 나와 기도를 올렸다.
항상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둔하며 조용히 살고 있던 그녀가 음지를 벗어나 양지로 나오니, 누구도 감히 그녀의 존재에 의문을 표하거나 도전을 할 수가 없었다.
교단을 흔들던 세력들도 교황 때문에 어깨조차 제대로 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일단 우리도 들어갑시다.”
“교황께서 저리 열심히 기도하시는데, 제사장인 우리가 구경만 한다면 여러 말이 나오게 될 겁니다.”
“그래. 그래야겠지.”
제사장들은 교황이 기도를 드리고 있는 성전 안으로 들어갔다.
바깥을 환하게 비추던 교황의 신성력은 가까이에서 보니 더욱 거대했다.
제사장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
그렇게 그들도 눈치를 보며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리는 척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이건.”
갑자기 교황 레헤나가 눈을 뜨며 미간을 좁혔다.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자 이스마엘 제사장이 물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교황님?”
교황은 안색을 굳히며 말했다.
“방금······. 강력한 마기를 느꼈습니다.”
“마기요?”
“예. 이 정도의 마기라면······. 대악마, 아니. 바빌론 중 하나가 나타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바, 바빌론이요!?”
대악마 중에서도 가장 강력하다는 존재, 바빌론.
그들의 숫자는 적으나, 적은 숫자만큼 그 어떤 악마들보다 강하다.
“바빌론이라니! 이거 큰일이 아닙니까!”
“대체 어디서 바빌론이······!”
“정말 바빌론인 겁니까, 교황님?”
교황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직접 바빌론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대악마에게서도 느껴보지 못 한 마기입니다. 그렇다는 건 대악마의 다음 급이라 할 수 있는 바빌론이지 않겠습니까?”
“이런······.”
“결국 대륙을 향한 악마들의 침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인가?”
“이, 이럴 때가 아닙니다. 바빌론이 나타났다면 대체 어디서 나타난 것인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걸 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입니까?”
그 말에 레헤나가 말했다.
“아슬란.”
“네?”
“일라이 왕국의 왕, 아슬란 님을 찾아 보십시오. 그분이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말입니다.”
“아, 아슬란은 왜······.”
“항상 악마가 나타나는 곳에는 아슬란 님께서 계셨지요. 그분은 누구보다도 악마 처단에 앞장 서시는 분이니까요. 그분의 소재를 파악한다면 그곳에 반드시 악마가 있을 겁니다.”
아슬란을 향한 교황의 무한한 신뢰가 이들의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틀린 말을 하는 건 아니었다.
자잘한 악마부터 대악마까지.
지금껏 그들을 처단한 것은 아슬란이지 않던가.
“바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겠습니다.”
“예. 서둘러 주세요. 바빌론급 악마라면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는 이상, 상대하기 힘들 테니까요.”
“네, 교황님.”
교황은 잠시 멈췄던 기도를 다시 시작했다.
찬란한 대륙의 빛이 어둠에 먹히지 않도록.
* * *
쐐애애애액-!!
라일라칸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르자 천공이 두 쪽으로 나뉘는 듯한 굉음이 들렸다. 이윽고 그가 새까맣게 모여 있는 악마들을 향해 떨어지니,
콰아아앙-!!
그곳에서 일어나는 어마어마한 폭발이 순식간에 악마들을 쓸어 버렸다.
“키에에엑!”
그러나 악마들의 숫자도 적은 건 아니었다.
하나가 죽으면 둘이 만들어지는 히드라의 머리처럼 악마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포탈을 타고 끊임없이 튀어나와 성 주변을 에워쌌다.
하지만,
‘내가 보낸 건 라일라칸이다.’
이 대륙의 최강자이자, 악마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내가 가진 최고의 무기.
과연 그 명성에 걸맞게 라일라칸은 마르지 않는 마력으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공격이 얼마나 거센지, 떼거지로 몰려든 악마들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하늘에서는 뇌전으로 이루어진 기둥이 떨어지고, 땅에서는 라일라칸이 뿌린 마력들이 솟아올라 악마들의 몸을 꿰뚫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옆으로는,
“크롸라라라-!!”
살벌한 브레스를 쏟아부으며 울부짖고 있는 레드 드래곤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개발된 마탑 역시 방어 체계를 발동하여 마법 공격을 퍼붓는 중이었다.
‘이 정도면······.’
내가 원하는 우주 방어진이 어느 정도는 갖춰진 거라고 볼 수 있는 건가.
그런 생각도 잠시.
쿠웅-!!
라일라칸 주변으로 검은 기둥들이 떨어지며 그 안에서 악마들이 깨어났다.
그들은 다름 아닌 대악마들이었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다섯의 대악마였다.
“이게 누구야? 우리 라일라칸 님이 아니신가?”
“흐흐. 아슬란이란 놈을 잡으러 왔는데, 다른 손님이 계셨군.”
라일라칸은 대악마들을 스윽 쳐다본 뒤,
“아슬란을 잡기 전에 일단 네놈부터······.”
콰콰콱-!!
순식간에 그들의 몸을 베어 버렸다.
몇 번의 검이 휘둘러졌는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 라일라칸도 모르지 않을까.
적어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나 그어진 검격이 대악마들의 몸을 산산조각 내버렸다. 거기다 검에 실린 뇌전의 힘이 그들의 몸을 녹여 버리기까지 했다.
플레이어가 피똥을 싸며 간신히 잡아야 되는 대악마를 라일라칸은 저리도 쉽게 없애 버리는 것이었다.
“와아아-!!”
“돌진!!”
라일라칸이 저런 활약을 보여주니, 당연히 기사단의 사기도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 기사단은 라일라칸과 플레임의 활약을 등에 업고 악마들을 말발굽으로 짓밟으며 그들을 소탕해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승리했다!!”
“일라이 왕국 만세!!”
“아슬란 님 만세!!”
라일라칸, 플레임, 기사단, 그리고 성수를 하늘 높은 곳에서 터트려 뿌리는 투석기와 마탑까지.
분명 엄청난 숫자의 악마들이었으나, 내가 가진 전력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 이 정도면 할 만하다.’
나는 거기서 자신감이 생겼다.
이 정도 스펙업이라면 충분히 테키나 족속과 전면전을 해도 싸워 볼 만하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거늘. 역시 인간들은 설레발이 심하구나.”
“······?”
목소리조차도 마기가 잔뜩 실려 있어 몸이 떨려올 정도다.
상대는 검은 안개처럼 우리에게 나타났다.
‘저놈은······.’
몸에서부터 나오는 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손바닥 위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검은 구슬은 저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레키어스]
바빌론 중 하나이자, 어둠의 권속이라 불리는 레키어스였다.
‘이런 미친!’
여기서 바빌론이라니!
심지어 레키어스라면······!
‘방금 전 승리는 아무짝 쓸모도 없는 거잖아.’
왜냐하면 레키어스의 능력은,
“자. 어둠의 권속들이여. 일어나라. 너희는 내 허락 없이 절대 죽을 수 없다.”
바로 네크로멘서이기 때문이다.
콰아아-
검은 연기가 뿌옇게 퍼져 나가며 우리 손에 쓰러져 나간 악마들 속에 들어갔다.
그러자 악마들이 다시 삐걱거리며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가라.”
그의 손짓에 따라 부활한 악마들이 다시 우리에게 공격을 퍼부어댔다.
“마, 막아라!”
당황한 기사단은 우악스럽게 소리를 치며 방어 태세를 갖췄다.
그리고 라일라칸은,
“크크. 라일라칸. 네가 우리를 죽였지만, 레키어스 님께서 권속의 힘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셨······.”
콰콰콰콱-!!
방금 부활한 대악마들을 다시 베어 버리고 휘몰아치는 뇌전 폭풍으로 악마들을 쓸어 버리는 데에 앞장섰다.
그러나 문제는 라일라칸과 플레임이 아무리 날뛰어도 결과는 같다는 것이었다.
권속의 힘으로 인해 죽은 악마들은 계속해서 살아나고 있었다.
베어도 베어도 끝이 없는 굴레에 갇혔다는 것이다.
촤아악-!
그래서일까.
라일라칸은 이 거대한 네크로멘시를 일으키고 있는 레키어스에게 날아 올라갔다.
놈을 죽여야만 이 굴레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과연 라일라칸. 굉장한 힘이로구나.”
자신이 펼친 방어막을 모조리 뚫어내는 라일라칸을 보고 레키어스는 감탄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라일라칸에게 걸려 있는 마법 역시 알아보았다.
“이토록 강한 네가 누군가에게 마력을 종속당했구나.”
라일라칸은 내 쪽을 슬쩍 바라보며 대꾸했다.
“그저 나보다 강한 자를 따를 뿐이다.”
“크크. 그 강한 자라는 건 아슬란인가? 저 지옥 끝에도 들려오는 놈의 명성이 궁금하여 이곳까지 왔거늘. 기대가 되는구나.”
“어차피 넌 저분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다. 이곳에서 내가 널 죽일 거니까.”
옳지. 잘한다, 라일라칸.
그대로 죽여버려!
그런데,
콰아아아-!!
라일라칸이 살기로 가득한 검을 뽑아 들며 상대에게 나아갔지만, 그가 관통한 것은 레키어스의 심장이 아닌, 포탈이었다.
“!?”
라일라칸은 서둘러 몸을 돌려 빠져나오려고 했으나 포탈은 그대로 닫히고 말았다.
“잘했다, 테르카나.”
“방해꾼이 사라져야 레키어스 님께서 원하시는 상대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테르카나 저놈이 끝까지 방해를 하는구나.
저 포탈 스킬은 진짜 아무리 봐도 너무 사기였다.
이렇게나 많은 군대를 한번에 이동시킬 수도 있고, 라일라칸 같은 비대칭 전력을 한번에 치워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엘티히 조차도 포탈을 열어 공간 이동을 할 땐 엄청난 마력을 소모한다고 했는데, 저놈은 그런 것도 없었다.
“아슬란. 더는 뒤에 숨지 말고 나오너라.”
이제 어쩌지.
플레임이라도 불러야 하나.
하지만 플레임은 뒤편에서 혼자 고군분투 하느라 바빴다.
악마들이 온통 플레임에게만 달려들어 정신을 못 차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저 대악마도 아니고 무려 바빌론 급에 달하는 악마를 누구더러 상대하게 해야······.
라일라칸 이 멍청한 놈!
그걸 그렇게 당하냐!
“겁쟁이처럼 숨어만 있을 생각이더냐?”
바로 그때였다.
“실망이구나. 대륙 최강이라 불린다는 작자가 고작 성에만 숨어 있다니.”
레키어스가 잠자코 있던 내 허세의 코털을 건드리고 말았다.
“더럽고 역겨운 하찮은 악마 따위가 잘도 지껄이는구나.”
나는 천천히 성 밖으로 나와 허공 위를 걸었다.
그 아래로 기사들과 악마들이 나를 전부 올려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나왔구나, 대륙의 최강자여. 어서 그 칼을 뽑아 보거라. 네가 과연 어디까지 춤을 추는지 내 보고 싶구나.”
나는 레키어스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어리석구나. 본좌가 오늘 너희의 힘이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보여주마.”
그리고 손을 들어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파아아앗-!!
강한 신성력을 띤 정화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악마들에게 걸려 있는 권속의 힘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그로 인해 악마들은 가루가 되어 떨어지고, 성벽에 처져 있던 방어막과 마탑에 펼쳐져 있던 모든 마법 역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레키어스는,
“저, 저건 대체!?”
모든 것을 정화하고 있는 강렬한 빛의 파동을 보고는 제자리에서 얼른 사라졌다.
뒤늦게 다시 나타난 놈은 목소리를 떨었다.
“대체 네놈이 어떻게 그 정도의 신성력을······!”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가 가진 힘은 그저 보잘것없다고.”
“······.”
그러나 레키어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흐흐. 네 힘이 대단하다는 건 인정해 주겠다. 허나-”
놈이 정화되지 않는 한, 놈이 가진 권속의 힘이 파괴되지 않는 한, 아무리 정화를 시킨다고 한들 악마들은 끝 없이 부활했다.
“나의 종들은 내 허락 없이 절대 죽을 수가 없다.”
레키어스의 손에 의해 죽은 악마들이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또 반복인 것인가.
방금 전이 마지막 기회였던 거 같은데.
놈이 방심하고 있을 때 차라리 정화 스킬을 썼다면 어땠을까.
이놈의 허세가 떠벌리는 바람에 아까운 기습 기회를 날렸다.
‘그럼 이제 어쩌지.’
찰나의 괴력을 쓸 수 있는 건 이제 한번 뿐.
그리고 내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다.’
나는 내 몸에 흡수되어 있는 불씨를 꺼내 들었다.
[타락한 원혼의 불]
‘만약 이게 효과가 있다면······!’
어차피 이판사판이지 않은가.
나는 타락한 원혼의 불에 있는 힘을 찰나의 괴력과 합하여 사용했다.
콰아아아아-!!
그러자 이번에는 빛의 힘이 아닌, 어둠의 힘이 내 안에서 힘차게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꺄아아악-!”
찬란한 빛의 신성력으로 기도를 올리고 있던 교황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교, 교황님!!”
화들짝 놀란 제사장들이 그녀를 부축했다.
“대, 대체 왜 그러십니까!”
그녀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레, 레메게톤.”
“예? 레메게톤이라면······. 지옥의 왕이지 않습니까?”
교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레, 레메게톤이 나타난 것 같아요.”
“!?”
제사장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며 입을 쩍 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300년 전에도 부활을 간신히 막았던 레메게톤이 살아났다고?
“이, 이 정도의 마기는 이제껏 느껴본 적이 없어요. 바빌론보다 훨씬 더 거대한 마기였단 말입니다. 바빌론 이상의 마기라면······. 레메게톤 밖에 없지 않나요?”
제사장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바들바들 전해지고 있는 이 떨림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교황의 것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