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0.01초 소드마스터 143화
“라일라칸이 누구 밑으로 들어갔다고?”
“아슬란입니다. 군주이시여.”
대악마이자 바빌론 중 하나인 레키어스의 음성에 짜증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라일라칸이 원혼 기사단을 만들려고 할 때 방해하지 않았던 건 네 조언 때문이었다.그놈이 그 기사단으로 알아서 대륙을 파괴해 줄 거라 하지 않았느냐?”
“송구스럽습니다. 만약 아슬란이 끼어 들지만 않았다면 라일라칸이 능히 대륙 전체를 뒤집어 놓았을 겁니다.”
콰앙-!
레키어스는 자신이 앉은 왕좌를 강하게 내려치며 소리쳤다.
“내가 영원의 불을 취하지 않았던 건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슬란의 핑계를 대는 것이냐?”
“아슬란이 설마 원혼 기사단을 한번에 없애 버릴 줄은 몰랐습니다. 그를 과소평가한 저의 실수입니다.”
테르카나에게 한번 더 화를 낼까 하다가도 레키어스 역시 설마 원혼 기사단을 아슬란이 단번에 지워 버릴 줄은 몰랐던 터라 꾹 참았다.
그 역시도 어떻게 아슬란이 그런 기행을 벌였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영원의 불은 사라지지 않고 아직 남아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가져 온다면 레키어스 님께서 원하시는 불멸의 군대를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영원의 불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예. 폭주한 영원의 불을 아슬란이 얼려 버린 다음 취했다고 합니다.”
“······폭주한 영원의 불을 얼려? 그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레키어스 님. 상대는 아슬란입니다. 그를 조금이라도 과소평가 했다가는 어떤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르지요. 바로 이번처럼 말입니다. 그는 항상 예상을 뛰어넘는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럼 정말로 아슬란이 폭주하는 영원의 불을 막았다는 것인가?”
“예.”
레키어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거 아주 재밌는 놈이로군.”
지옥에서도 아슬란의 이름이 자주 들릴 정도로 그는 유명인이었다.
그렇기에 바깥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레키어스 역시 아슬란이란 인간이 한번 보고 싶었다.
“뜻을 정했다.”
“······예?”
“내가 직접 나가봐야겠구나.”
“레키어스 님께서 직접 말이십니까?”
“그래. 지금까지 대륙을 침략하여 성과를 거둔 악마가 있더냐? 하나 같이 부끄러운 수준이었지. 이제 우리 테키나 족속의 무서움을 가르쳐 줄 때가 되었다.”
그러면서 레키어스는 테르카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포탈을 열어라, 테르카나. 내가 친히 아슬란을 만나볼 것이다.”
그의 손바닥 위에서 떠다디는 검은 마력 구슬이 음침한 울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 * *
“아슬란 님~!”
“우리의 영웅이 오셨다!!”
“아슬란 님 만세!!”
샤나 왕국의 백성들은 내가 성에 당도하기 무섭게 꽃가루를 뿌리며 나를 맞이했다.
이제 나의 통치 영역에 들어온 그들은 이제 나의 백성이었다.
원래 타 왕국을 침범해 그곳을 점령하게 되면 백성들의 반발이 무척 심하다.
그래서 난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자주 반란이 발생하고, 민심 관리가 상당히 까다롭다. 그러나 아직까지 내가 점령한 곳 중에서 반란이 일어난 곳은 없었다.
오히려 민심이 최고조에 달해 내가 발이 닿는 곳마다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왕에 대한 백성들의 충심이 가득합니다. 왕께서 보내 주신 식량과 자원들로 피폐해져 가던 백성들의 삶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카르티엘의 말대로 이들은 나를 향한 충성심이 무척 높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라일라칸의 침략으로 다 무너져 가던 곳을 되살려 놓았으니, 이들에게는 내가 구원자처럼 보일 것이다.
“근데 저 사람은······.”
“헉! 라, 라일라칸!”
하지만 그들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던 라일라칸을 보며 비명을 질렀다.
“지, 진짜 라일라칸이잖아?”
“저놈이 왜 이곳에······!”
저들의 패닉도 이해가 됐다.
샤나 왕국을 박살내고, 나타샤와 두 대마법사까지 죽인 라일라칸을 어찌 곱게 볼 수 있겠는가.
“흐흐. 다들 널 엄청 싫어 하는데?”
나와 라일라칸 군대 사이에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합류를 했으나, 이미 상황이 끝나 버려 어영부영 샤나 왕국까지 따라 들어오게 된 플레임.
그는 라일라칸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틈만 나면 시비를 걸었다.
“난 그저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했을 뿐이다.”
“허허. 이놈 뻔뻔한 거 보소. 그게 옳다고 생각한 일이었다고?”
“아무 이유 없이 도시를 파괴하고 백성들을 브레스로 태워 버리는 드래곤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크, 크흠. 그, 그건······.”
“그리고 함부로 말걸지 마라, 드래곤.”
“뭐야? 내 브레스에 뼛조각도 안 남을 놈이.”
“원한다면 시험해 볼까? 누구 뼛조각이 안 남는지.”
“오냐. 한번 해보자.”
잘 가고 있는데, 라일라칸과 플레임 둘이서 날을 세우며 마력을 끓어 올리기 시작했다. 이러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기 전에 내가 나섰다.
“그만.”
그 말 한 마디에 라일라칸은 끓어 오르던 마력이 단번에 가라 앉았다.
플레임은 킬킬 웃으며 라일라칸을 조롱했다.
“캬캬캬! 마력도 우리 아슬란 허락 없이는 마음대로 꺼내 쓸 수가 없는 놈이!”
“······.”
라일라칸은 분하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플레임의 말대로 라일라칸은 내 허락 없이는 마력을 쓸 수가 없었다.
그가 비록 내게 항복을 하긴 했지만, 절대 안심할 수 없다는 엘티히가 마력 존속 마법을 쓴 것이었다.
라일라칸은 내게 항복을 한다는 증거로 마력 존속 마법을 허락했고, 그 결과 내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는 영영 마력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엘티히. 역시 네가 최고다.’
라일라칸이 비록 내게 항복을 하긴 했으나, 언제 또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그걸 엘티히가 아주 잘 해소를 시켜 준 것이리라.
물론, 라일라칸이 그 마력 존속을 깨뜨릴 수도 있기에 최대한 화내지 않게 만들려 했다.
하지만-.
“라일라칸. 그리고 플레임.”
이놈의 허세가 그걸 가만 두고 볼 리 없었다.
“하찮은 살기를 드러내지 말거라.”
“······?”
“내가 실수로 너희를 죽여 버릴 수도 있지 않느냐?”
그 말에 라일라칸과 플레임은 마른침을 삼켰다.
둘은 그 이후로 조용해졌다.
그 살벌한 분위기 속에 조심스레 카르티엘이 말문을 열었다.
“아······ 그 저희에게 건설 명령을 내리셨던 마탑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원래 결과물이 조금 부족해 보이면 그건 돈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잘 생각해 보라는 명언이 있다.
과연 돈을 쳐바른 대로 결과가 나왔다.
호화스럽기 짝이 없는 이 마탑은 온갖 최신 시설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마법 연구, 방어, 그리고 감옥 역할까지 막힘 없이 수행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어떤 왕국도 이런 마탑을 세우지 못할 겁니다. 이곳에서 마법을 연구하고 마법사를 수련시킨다면 대마법사급을 배출하는 것도 시간 문제겠지요.”
왕국 1년치 예산이 들어간 마탑이니, 이 정도는 당연히 해줘야지.
물론, 원래는 라일라칸을 가두려고 만든 것이긴 하다만.
“그런데 이 마탑을 샤나 왕국에만 세운 것이 너무 안타까워요. 이런 최고 시설을 일라이 왕국에서는 누리지 못할 거잖아요?”
이번 마탑 건설에 공을 들인 라파엘은 아쉽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이걸 일라이 왕국에 하나 더 짓자는 건 아니지?
안 그래도 여기 들어간 돈이 얼만데.
“그래서 말인데요. 샤나 왕국과 일라이 왕국을 이어주는 포탈을 만드는 게 어떨까요? 그럼 상시로 이동하면서 일라이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도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왕국과 왕국을 잇는 포탈을 만든다라.
하지만 그 포탈을 만드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막상 만들었다고 해도 마력석을 끊임 없이 지원해 줘야 하기 때문이 유지 비용도 장난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리 하거라.”
멀리 본다면 충분히 할 만한 투자였다.
일라이 왕국과 샤나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을 동시에 육성하고, 만약 누군가가 침략을 한다면 포탈을 이용해 방어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군이 지나다닐 수 있을 정도의 포탈을 만들어 두도록.”
“그렇게 하면 비용이 꽤 많이 들 겁니다.”
“비용은 상관하지 말고 만들어라.”
“예!”
마법사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돈 생각하지 말고 원하는 대로 마음껏 만들라는 말만큼 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나는 잠시 제자리에 서서 마탑 안을 구경했다.
둥그런 모양에 가운데 공간은 뻥 뚫려 있으며, 그 밑과 위로 쭉 뻗어 있었다.
“차근차근 진행이 되고 있군.”
그때 라일라칸이 뒤에서 내게 말했다.
“이제 남은 건 칼라 왕국 하나인가? 거기만 정복하면 너는 대륙의 황제가 되는 것이다. 대륙 역사상 모든 왕국을 하나로 통일해 황제가 된 자는 한 명도 없지.”
나는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 대꾸했다.
“말이 짧구나. 죽고 싶으냐?”
“······죄송합니다.”
라일라칸은 금방 꼬리를 내렸다.
마력 존속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다.
“그럼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라일라칸은 제대로 격식을 차리며 내게 물었다.
“칼라 왕국은 언제 정복할 생각이십니까?”
“왜? 내가 너를 선봉에 세워 너희 후손들을 무참히 도륙할까 겁이 나느냐?”
“······아니라고는 대답하지 못하겠군요.”
“그 손으로 카르만의 몸을 반쪽 내려 했던 놈이 이제 와서 후손들을 걱정한다라-.”
“카르만을 죽일 생각은 없었습니다. 정말 죽이려고 했다면, 카르만은 진작 죽었을 겁니다.”
듣고 보니 라일라칸의 말이 틀린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가공할 만한 힘으로 능히 카르만을 죽이고도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카르만과 부딪혔을 때, 그를 멀리 밀쳐내기만 했을 뿐, 죽이지는 않았다.
“그럼 칼라 왕국의 1만 군대를 죽이지 말았어야지.”
“그건 제 부하였던 원혼 기사단이 저지른 일입니다. 제가 그곳에 있었다면 결코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막았을 겁니다.”
그래도 자기 왕국 사람들을 챙기긴 한다는 건가.
나는 마탑에 있는 창문으로 샤나 왕국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다.
“라일라칸. 네가 한 가지 착각하는 것이 있다.”
“그게 무엇입니까?”
“본좌는 왕국을 정복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
“그럼······.”
“너도, 이 대륙에 있는 사람들도 본좌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또 무엇을 위해 살아 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 한다.”
이건 허세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난 왕국을 정복하는 데에 일절 관심이 없다.
그저 저들이 내게 먼저 다가와 왕국을 바쳤을 뿐이다.
내 관심사는 오로지,
‘생존!’
가능하다면 이런 마탑을 우후죽순 세워 우주 방어진을 만들어 놓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 하면 악마가 쳐들어와도 막을 수 있고 이곳에서 무사히 살아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 할 수 있는 재력이 되는데도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이놈의 극악 난이도가 날 절대 가만 놔둘 리 없잖아.’
내가 우주 방어진을 쌓아 놓고 있어도 이 게임 시스템은 반드시 그것을 뚫고 내게 다가올 것이다.
놈들은 항상 그래 왔으니까.
바로,
“왕이시여! 저, 저걸 보십시오!”
지금처럼 말이다.
콰아아아-!!
‘에휴. 아주 쉴 시간을 안 주는구나. 정비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니야.’
이놈의 게임은 날 한시도 가만 놔두지 않는다.
내가 죽느냐, 혹은 게임이 먼저 끝나느냐.
그 둘 중 하나가 결정되기 전까지 쉬지 않고 몰아 붙인다.
“포탈이 열렸다!!”
“악마들이다!!”
그래. 나도 그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지.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라일라칸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그에게 말했다.
“라일라칸. 너의 주군으로써 명하겠다.”
라일라칸은 무릎을 꿇으며 대답했다.
“당신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 그의 머리 위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가서 저 더러운 악모 놈들을 모조리 죽이고 오너라.”
어디 끝까지 억까해 봐라.
라일라칸이라는 핵폭탄을 보내 남김 없이 쓸어 버려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