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0.01초 소드마스터 141화
넓게 퍼져 가는 정화의 파동.
찰나의 괴력 쿨타임이 돌고 나서 반신반의하며 써본 스킬인데, 이런 힘을 가지고 있었다니.
영원히 죽지 않을 것만 같았던 원혼의 기사단이 정화의 파동을 맞고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정화라는 게 이런 효과였구나.’
말 그대로 정화.
악의 힘이 깃든 것들을 모두 정화해 주는 신비스러운 힘을 가진 듯했다.
‘그럼 악마의 힘 같은 것에만 효과가 있는 건가?’
그렇다면 악마들을 상대할 때 매우 유용한 기능이 될 듯싶었다.
“왕께서 적들을 모두 소멸시키셨다!!”
“우와아아아-!!”
“아슬란 님의 승리다!!”
병사들은 크게 함성을 지르며 승리를 만끽했다.
뒤늦게 합류했던 카르만과 엘티히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아슬란. 대체 그건 무슨 마법이더냐? 영원의 불로 살아난 원혼 기사단을 한번에 없애 버리다니. 그런 마법은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마법의 정점이라 불리는 엘티히조차도 방금 전 상황을 이해하지 못 하는 듯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마법이라고 부르기에도 하찮은 잔재주일 뿐이다.”
병신 같은 허세를 부렸다.
“그 많은 원혼 기사단을 손가락 하나 튕기는 것으로 없애 버렸는데, 그게 잔재주다?”
“역시 아슬란, 너란 인간은 보면 볼수록 그 힘을 가늠할 수가 없구나.”
나도 설마 그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펜던트를 안 사고 만약 내가 다른 아이템을 샀다면······.
‘진짜 좆 될 뻔했네.’
하지만 안도의 한숨도 잠시.
“와, 왕이시여! 저, 저걸 보십시오!”
“여왕님. 가, 감옥이!”
기사들과 엘프들의 다급한 외침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라일라칸을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들고 있던 감옥이 서서히 해체되고 있었다.
난 엘티히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듯 내게 말했다.
“내가 풀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감옥이 스스로 열리고 있는 것이야.”
그러면서 그녀는 문득 뭔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설마······ 아슬란. 네가 연 것이냐?”
내가? 미쳤다고?
“원혼 기사단을 없앤 그 파동. 설마 그 파동이 감옥에도 영향을 미친 건가? 아슬란. 대체 왜 라일라칸을 풀어 주려는 것이냐!”
설마 그 정화라는 게 악의 힘만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게 저주든, 버프든, 마법과 관련된 모든 걸 풀어 주는 것이었나?
촤아아-!
결국 감옥이 열리고 말았다.
이런 미친!
쿠웅-!
감옥문이 떨어져 나가고 뿌연 연기가 걷히면서 드러난 건 바로,
“······!”
온몸이 삐쩍 마르고 피폐해져 버린 라일라칸이었다.
“라, 라일라칸?”
“저, 저게 라일라칸이라고?”
“하지만 저 모습은······.”
그 잘생기고 자신감 넘쳐 보이던 라일라칸의 얼굴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러나 엘티히는 끝까지 경계를 눚추지 않았다.
“방심하지 말거라. 상대는 라일라칸이다. 지금은 마력이 없어 저렇게 보일진 몰라도, 그는 금방 마력을 회복할 터.”
과연 그녀의 말대로 라일라칸 주변으로 마력이 모여 들기 시작했다.
쪼그라 들었던 그의 살에 다시 근육이 생겼고, 몸에도 살집이 붙었다.
팍삭 늙어 버린 것만 같았던 얼굴 역시 예전 젊은 모습을 찾아갔다.
그의 금빛 머리칼도 다시 생기를 찾으며 찰랑 거렸다.
“감히!”
엘티히는 그가 완전히 힘을 되찾기 전에 마법을 쏟아 부었다.
콰콰콰쾅-!!
그 강력한 마법에 사람들은 당연히 라일라칸의 몸이 터져 나갔을 거라 생각했지만-.
“여전히 매서운 마법이구나, 엘티히.”
라일라칸은 멀쩡한 모습으로 한 걸음씩 앞으로 나왔다.
그의 등 뒤로는 푸른 날개가 전류를 위협적으로 흘리는 중이었다.
“이 감옥도 그러하다. 설마 이런 깜찍한 선물을 준비했을 줄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런 감옥이 또 준비가 되어 있나?”
“······라일라칸.”
엘티히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당연히 없겠지. 마법의 구조로 보아 하건데,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감옥이 아니었다. 너를 비롯해 수많은 엘프들이 이 감옥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을지 짐작이 된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결국 그 감옥을 뚫고 내가 나왔구나.”
라일라칸은 소름 돋는 웃음 소리를 냈다.
“그래도 덕분에 끔찍한 시간을 저 안에서 보냈다. 그에 대한 보답을 해줘야겠지?”
파직-! 파지직-!!
그의 손짓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뇌격이 엘티히를 덮쳤다.
콰아아앙-!!
엘티히도 그렇지만, 라일라칸 역시 가진 마법의 위력이 엄청 났다.
하늘에서 내려치는 뇌격은 땅을 가르며 저 밑바닥까지 파고 들었다.
라일라칸은 주변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기사단이 느껴지지 않는군. 너희가 없앤 건가? 놈들은 절대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가졌는데,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그러다 곧 그는 밑에 있던 카르만과 눈을 마주쳤다.
“카르만. 대답해 보거라. 저들이 어떻게 그들을 없앤 거지?”
“······.”
“그리고 하는 꼴을 보아 하니, 넌 나를 도우러 온 것이 아니구나?”
카르만은 잠시 대답이 없다 이내 입술을 깨물며 번쩍 날아올랐다.
“라일라칸!!”
허리춤에서 칼을 뽑은 카르만이 그대로 쭉 날아가 라일라칸을 찌르려 했다.
‘갑자기 저것들은 또 왜 저래?’
라일라칸과 카르만 사이에서도 어지간히 갈등이 있었던 모양이다.
카르만이 제 조상에게 칼을 휘두르는 것을 보면.
‘하긴. 저 싸가지를 카르만이 버틸 리 없지.’
라일라칸은 가볍게 카르만의 검을 막았다.
“내 씨앗아. 건방지구나. 너의 조상에게 뭐하는 짓이더냐?”
“닥쳐라! 너는 우리 왕실의 명예를 더럽혔다!”
“쯧쯧. 그래도 내 씨앗에서 나온 놈이라 조금은 날 닮을 줄 알았더니. 전혀 쓸모가 없구나.”
콰아아앙-!!
하지만 제 아무리 카르만이라고 해도 라일라칸에게는 상대가 되지 못 한다.
과연 그 힘의 차이를 보여 주듯, 라일라칸은 가볍게 카르만을 저 밑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카르만은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를 갈았다.
“너는 미치광이다. 너 같은 놈이 우리 대륙의 영웅이라고? 난 인정할 수 없다.”
“인정할 수 없다고 해도 네가 내 핏줄을 이었다는 건 부정 못할 사실. 그 증거를 보여 줄까?”
라일라칸이 카르만에게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는 피를 토하는 듯한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에서는 전류가 통하면서 라일라칸과 이어졌다.
“보이느냐? 지금 내가 네 힘을 가져가고 있느니라.”
“!?”
“나와 핏줄이 같으니, 네 힘이 곧 나의 힘인 것이지.”
카르만은 힘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라일라칸의 마법에 빠져 나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카르만이 허망하게 모든 힘을 빼앗기고 있을 때였다.
콰앙-!!
어디선가 날아온 마법탄이 라일라칸을 강타하면서 카르만은 간신히 풀려날 수 있었다.
“끝까지 더러운 짓을 하는구나, 라일라칸.”
라일라칸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엘티히. 난 너에게 감사한다. 네가 날 저 감옥에 넣어 준 덕분에 난 그 안에서 나름 수련을 했지. 그동안 깨닫지 못 했던 것을 깨달으며, 새로운 힘을 탐구했다. 그리고 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수가 있었으니라.”
안 그래도 강한 놈이 저기서 또 강해질 수가 있단 말인가.
“그 힘을 오늘 너에게 보여 주겠다.”
라일라칸이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사방으로 푸른 기둥이 생겨났다.
그 겉에는 강한 전류가 흐르고 있었고, 닿기만 해도 몸이 바싹 타버릴 것만 같이 위협적이었다.
‘저게 여기에 떨어지면······.’
나를 비롯해 여기 있는 모두가 꼼짝 없이 전기 구이가 돼서 죽을 수도 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래. 어디 한번 끝까지 가보자꾸나, 라일라칸.”
엘티히 역시 흥분하여 힘을 끌어 모았다.
거대한 토네이도처럼 모여드는 그 마력의 힘에 우리만 새우등 터지게 생겼다.
‘여기서 하지 말고 다른 곳 가서 싸워, 이 새끼들아!!’
그렇게 소리치고 싶었지만, 이놈의 허세는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부질 없는 싸움을 하는구나.”
나 여기 있소 하고 광고라도 하듯, 허세를 부려댔다.
그리그 그것은 여지 없이 라일라칸의 신경을 건드렸다.
“지금 뭐라고 했느냐, 아슬란.”
“너와 엘티히, 둘 다 모두 고만고만한 실력에 재롱을 피우는 모습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엘티히도 내 쪽을 노려보았다.
당장 도망가도 모자를 판에 오히려 적을 더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금 내가 장난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느냐, 아슬란?”
엘티히가 맹수처럼 으르렁 거렸다.
그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능히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본좌가 방금 말하지 않았나. 둘 다 재롱을 피우는 모습이 한심하다고 말이다.”
“아슬란!!”
엘티히는 버럭 화를 내며 내게 소리쳐댔다.
“감옥은 대체 왜 여기까지 가져온 것이냐! 그냥 그곳에 잘만 두었어도 라일라칸이 빠져 나올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재롱을 피운다고? 지금 날 무시하는 것이냐!?”
고막이 터질 뻔했으나, 나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말해 줄 뿐이다. 그리고 본좌가 생각 없이 라일라칸의 감옥을 여기까지 가져온 것처럼 보이느냐?”
“······.”
여기까지 했으면 좋으려만.
아직 내 허세는 끝나지 않았다.
“라일라칸. 네가 가진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 몸에 닿지 못 하겠지만.”
라일라칸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내가 저 감옥 안에서 수련을 멈추지 않은 건 아슬란, 네놈을 죽이기 위함이었으니까!”
라일라칸의 기세가 더욱 맹렬해졌다.
하늘을 뚫을 것만 같은 그 기세에 이어 전류가 사방으로 퍼지며 그의 검이 부풀어 올랐다.
“반드시 이 일격으로 죽여 주마, 아슬란.”
파직-! 파지직-!!
얼마나 막강한 힘이 저 안에 들어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얼른 말머리를 돌려 도망쳐야겠지만, 내 몸도 그렇고 이 말도 제자리에서 꿈쩍 하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라일라칸은 정말 자신의 모든 마력을 쏟아 부어 만든 검강을 높이 들었다.
대체 뭘 어떻게 날 찢어 죽일 심산인지, 그 검강의 높이가 하늘에 닿을 정도였다.
“죽어라!”
하늘에서 떨어지는 라일라칸의 검강.
만약 저게 땅에 닿는다면 능히 이 땅을 두 개로 나눠 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모든 힘이 들어간 것이니까.
하지만-.
“가소롭구나.”
나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피하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모아 가볍게 튕길 뿐.
촤아아아아-!!
내 손가락에 따라 퍼져 나간 정화의 파동이 허공을 찢으며 내려오던 라일라칸의 검강을, 그의 몸에 달린 두 날개와 사방에 펼쳐진 기둥을 통과했다.
“······!?”
그러자 그것들은 모조리 유에서 무로 돌아가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
그뿐만이 아니라 라일라칸을 막고자 마력을 모으고 있던 엘티히의 마력 폭풍 역시 온데 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 뭐······?”
라일라칸은 허망한 목소리로 멍하니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건 엘티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윽고 날개를 잃어 버린 라일라칸은 땅 밑으로 떨어졌고, 마력으로 하늘을 비행하고 있던 엘티히 역시 낙하했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라일라칸은 몸을 부르르 떨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엘티히도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본좌가 말하지 않았느냐?”
난 그 둘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의 마법은 본좌에게 그저 재롱으로 보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