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0.01초 소드마스터 140화
처음 보는 강력한 방어막을 억지로 뚫고 나온 드보르작과 그의 기사단.
300년 전 때도 이들의 힘은 막강했지만, 영원의 불로 인해 새로운 불사의 몸을 얻은 그들은 가히 천하무적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쉽게 적을 섬멸해 라일라칸을 구출하고 아슬란을 죽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선봉을 맡은 드보르작 역시 그리 믿으며 나아갔던 것인데,
콰앙-!!
아슬란에가 가까이 다가가 보기도 전에 드보르작은 얼굴을 바닥에 처박아야만 했다.
“이, 이게 무슨······!”
마치 거인이 발로 자신을 짓밟아 그대로 꾹 힘을 주어 누르는 것만 같았다.
만약 이것이 불멸의 몸이 아닌, 인간의 육신이었다면 그대로 터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달그락- 달그락-
그를 비롯해 기사들은 쓰러진 바닥에서 일어나고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이 반쯤 몸을 일으켰을 때, 아슬란이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감히 허락도 없이 움직이라 했느냐?”
쿠웅-!!
한번 더 압도적인 힘이 그들을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
“!?”
이런 힘은 처음이었다.
라일라칸에게도 이 정도의 힘은 느껴보지 못했다.
대체 인간이 어떻게 이런 힘을 지닐 수가.
‘바로 저것이······.’
주인 라일라칸을 일격에 제압시켰다는 그 아슬란인가?
“······?”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원혼 기사단을 짓누르던 힘이 사라졌다.
마치 거짓말처럼, 한순간에 말이다.
드보르작은 이것이 기회라 여겼다.
“놈을 죽여라. 얼른!”
원혼 기사단은 바닥에서 벌떡 일어나 아슬란을 달려갔다.
그들의 맹렬한 돌격에 당황할 법도 하건만, 아슬란은-.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적을 향해 달려 나아가던 원혼 기사단은 제자리에 멈췄다가 그들의 몸이 갑자기 위로 뜨기 시작했다.
“이, 이건 또 무슨!?”
“으어어-!”
하늘 높이 띄어 올라간 그들은 아등바등 거리며 밑으로 내려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들이 곧 마주하게 된 것은,
피이이잉-!!
“······!”
입을 쩍 벌린 채 강력한 브레스를 모으고 있는 레드 드래곤이었다.
콰아아아-!!
레드 드래곤의 브레스가 그들을 관통하고 불태웠다.
이윽고 그들의 몸은 다시 강한 힘에 의해 지상으로 이끌려 떨어졌다.
쿠웅-! 콰쾅-!!
떨어지는 순간 작용되는 정체불명의 힘에 의해 그들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터져 버렸다.
그렇게 무려 천 명에 달하는 원혼 기사단이 한꺼번에 전멸하고 만 것이었다.
“우와아아아-!!”
“여, 역시 아슬란 님이시다!!”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던 일라이 왕국 기사단이 크게 함성을 내질렀다.
그 방어막 밖에서 싸우고 있던 기사들 역시 사기를 드높이면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직 끝이 아니다.”
아슬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불꽃처럼 사라진 줄 알았던 원혼의 기사단이 서서히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이럴 수가!”
“저런 공격을 맞고도 살아 난다고?!”
“대체 저걸 어떻게 죽이라는 것인가!”
제일 먼저 부활한 드보르작의 끓는 듯한 웃음 소리가 사방에 울려 퍼졌다.
“우리 기사단은 불멸이다. 절대 죽지 않는다. 그분의 허락 없이는.”
다시 살아난 원혼 기사단은 그 원혼의 불길이 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이제 우리의 힘을 보여 주겠노라.”
원혼 기사단이 천천히 한 발자국씩 가까이 다가오자 기사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을 쳤다.
도저히 공략 방법이 보이지 않는 그들의 존재감에 그 누구도 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배운 것이 없는 것인가?”
기사들이 뒤로 주춤 거리며 물러나도 아슬란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뭐라?”
“본좌가 말하지 않았느냐. 너희를 어떻게 죽이면 조금이나마 흥이 돋을지 고민 중이었다고.”
“아직도 허세를 부리는구나.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우린 죽지 않는다.”
“이 세상에 죽지 않는 것은 없다. 그건 너희도 마찬가지이니라. 본좌가 손가락을 한번만 튕겨도 너희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다. 원한다면 보여 주마. 어디 가까이 다가와 보거라.”
“······!?”
드보르작은 멈칫 거렸다.
다른 놈이 저런 소리를 지껄였다면 주제 파악을 하지 못 한다며 단번에 몰아쳤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는 아슬란이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상대이니, 정말 저 말대로 손가락 한번 튕겨 모두를 없앨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럴 리 없다.’
라일라칸이 그리 말했다.
자신조차도 영원의 불에 의해 살아난 원혼 기사단을 죽일 수 없을 거라고.
아니. 이 세상 누구도 말이다.
그건 아슬란도 마찬가지일 터.
‘그러니 이곳에서 놈을 죽인다!’
그리 결심하며 한 발자국을 디디려는 순간.
콰앙-!! 콰아앙-!!
하늘에서 떨어지는 구체가 빠른 속도로 낙하해 드보르작을 강타했다.
그 밖에도 여러 마법 구체가 소낙비처럼 쏟아지면서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그들의 머리와 몸이 터져 가루가 되어 버릴 정도로 굉장히 강한 위력이었다.
“더러운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놈들이구나.”
그 구체를 날린 존재는 다름 아닌 엘티히였다.
그녀는 엘프들과 함께 천천히 하늘에서 내려와 광역 마법을 펼쳤다.
“이대로 소멸시켜 주마!”
콰아아앙-!!
엘티히의 마법은 과연 가공할 만한 위력이었다.
왼쪽에서는 불바다가, 오른쪽에서는 폭풍우가, 앞쪽에서는 물보라가, 뒤로는 지진이 일어났다.
어느 것 하나 위력이 약하지 않은 마법으로 그녀는 원혼 기사단을 모조리 쓸어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그 모든 것을 비웃듯, 원혼 기사단은 그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육신을 재생시켰다.
“이 정도로는 소용 없다. 아무리 엘프의 마법이 강하다고 한들, 우릴 죽일 순 없다.”
“그럼 백번이고 천번이고 죽여 주마.”
엘티히는 아랑곳 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마법 폭격을 가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촤아아-!!
이 혼란스러운 전쟁터에 포탈이 열리면서 그 밖으로 칼라 왕국의 기사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카르만은 분노로 가득한 얼굴로 기사단에게 소리쳤다.
“놈들을 모조리 없애라!!”
칼라 왕국의 기사단까지 가세하면서 엘프, 칼라, 그리고 일라이 연합군이 원혼 기사단을 무참히 짓밟고 있었다.
“놈들이 다시 살아나도 빠져 나오지 못하게 봉인하라!”
거기다 엘티히는 엘프들을 시켜 살아 나고 있는 기사들을 봉인해 가둬 버리기까지 했다.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로 위험해 보였다.
아무리 불사의 군대라고 해도 이런 압박 공격을 받으면서 하나씩 마법 봉인을 당한다면 아무리 불사라고 할지라도 영원한 감옥에 갇혀야 한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라일라칸 님을 구해라!”
그들의 주군인 라일라칸을 구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그가 저 감옥을 뚫고 나온다면 능히 이들을 쓸어 버리고도 남으리라.
“모두 몸을 던져라!”
드보르작은 기사들과 함께 우회하여 라일라칸이 있는 감옥으로 뛰어갔다.
“어딜 감히!”
그러자 하늘에서는 엘티히의 마법이 떨어지고 사방으로는 기사들의 공격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불사의 몸이라는 장점을 앞세워 끝까지 나아갔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왜 저놈은 가만히 있는 거지?’
아슬란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까 보여줬던 힘이라면 이들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제압하여 전부 봉인해 버릴 수도 있었을 텐데, 아슬란은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아니. 깊게 생각할 필요 없다.
지금은 라일라칸의 감옥을 부수는 것이 먼저였다.
“멈추지 말고 나아가라!!”
* * *
‘이, 이러다가 정말 라일라칸이 풀려 날 수도 있겠는데?’
아직 찰나의 괴력 쿨타임이 돌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원혼 기사단은 라일라칸을 해방시키기 위해 감옥으로 뛰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엘티히와 칼라 왕국이 동참하여 이들을 막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속력을 조금 늦출 뿐. 이러다가는 정말 라일라칸이 풀려난다.’
원혼 기사단은 엘티히가 내리는 마법을 꾸역꾸역 맞으면서 마침내 감옥에 도달했다.
“감옥을 부숴라!”
놈들은 감옥을 향해 창칼을 날렸다.
문제는 이들의 창칼은 무언가를 부수지 못 하고 그대로 통과한다는 것이었다.
“몸을 던져라. 어차피 너희는 불사다. 너희의 몸을 이 감옥에 불살라 여는 것이다!”
그래서 놈들은 방법을 바꿨다.
바로 무식하게 감옥 안에다 몸을 던져 원혼의 불을 스며 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화르르륵-!!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닌 수백 명이 달라드니, 놈들의 몸이 마치 침식 되듯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활활 타오르는 원혼의 불길이 서서히 감옥을 녹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저렇게 한다고 한들, 과연 엘티히의 마법이 무너질까?
“저놈들을 막아라! 이대로 가면 감옥이 무너진다!”
마치 내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 엘티히가 소리쳤다.
저리 다급한 것을 보면 정말 감옥이 무너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안 되는데.’
여기서 만약 라일라칸이 감옥 밖으로 나오게 된다면 애써 끌어다 온 전황이 단번에 뒤집힐 수도 있다.
저번처럼 운 좋게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야······.’
그때 문득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필하모트 팬던트]
-악의 힘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고대의 유물.
-여섯 개로 나뉜 팬던트들을 하나로 모으면 전설적인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정화의 신, 모비로스의 가호가 함께 하는 팬던트입니다.
-랜덤으로 옵션 하나가 부여 됩니다.
상점에서 팔고 있는 펜던트.
이게 혹시 도움이 될까 싶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
나는 얼른 펜던트를 구매했다.
그러자 랜덤으로 추가 옵션이 부여되었다.
[새로운 옵션이 부여 되었습니다.]
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부여된 옵션을 살펴보았다.
제발 좋은 게 떠라!
[정화]
-사방으로 정화의 파동을 날립니다.
-정화의 위력은 시전자의 힘과 비례합니다.
“······?”
이게 뭐야?
* * *
‘거의 다 됐다.’
드보르작은 느낄 수 있었다.
감옥은 녹아 내리고 있다.
이제 곧 저 안에 갇혀 있는 라일라칸이 해방되어 밖으로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놈들은 모조리 쓸어 버릴 수 있다.
“놈들이 방해하지 못 하게 막아라!”
드보르작과 기사들은 몰려드는 군사들을 밀어내고 위에서 마법을 펼쳐내고 있던 엘프들을 향해 검기와 검강을 날렸다.
콰직-! 콰콱-!
그리고 점점 감옥은 균열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충분하다.
이제 라일라칸이 해방되리라.
그런데,
‘아슬란이······.’
줄곧 움직임 없이 그저 태만하게 이 상황을 관전만 하고 있던 아슬란.
그가 천천히 팔을 올리기 시작했다.
‘뭘 하려는 거지?’
아슬란의 작은 행동도 드보르작에게는 무척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사실상 이곳에서 가장 큰 위협이며 전력이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그가 팔을 올리고 손을 들었다.
그리고 아슬란은 드보르작과 눈을 마주친 뒤, 짧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터엉-!!
아슬란으로부터 시작된 파동이 사방으로 넓게 퍼져 드보르작과 기사단의 몸을 통과했다.
“······?”
갑작스럽게 몸을 통과하고 나간 파동 때문에 당황하며 제 몸을 살펴보았다.
뭘 한 거지?
별 거 아닌 건가?
그리 생각하던 때였다.
“다, 단장님!”
원혼의 기사들이 괴로운 신음을 토해내며 드보르작을 불렀다.
고개를 돌리자,
“소, 속이 안 좋습니다······.”
그들의 몸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원혼 기사단 전체가 그들을 지탱해 주고 있던 원혼의 불씨를 잃으며 사라져 갔다.
“아······.”
드보르작은 멍하니 아슬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아까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본좌가 손가락을 한번만 튕겨도 너희를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릴 수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말을 지켰다.
정말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이들 모두의 존재를 지워 버리는 것이었다.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힘이었다.
대체 그는 무엇이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드보르작은 서서히 사라지는 자신의 몸을 붙잡으며 아슬란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이 영원히 그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