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0.01초 소드마스터 139화
“뭐라고? 아슬란이 왜 갑자기 라일라칸의 감옥을?”
부하들에게 보고를 받은 엘티히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라이 성에 잘 놓여 있어야 할 그 감옥을 왜 옮긴단 말인가?
“일라이 왕국에 항복한 샤나 왕국에 새로운 마탑을 지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곳에다 안전하게 옮기려는 것이 아닐까요?”
그 말에 엘티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자는 무척이나 오만하고 그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자다. 하지만 그 거대한 오만심과 자존심만큼이나 굉장히 강한 힘을 가졌지. 나조차도 상대하기 어려우기 힘을 지닌 자다.”
아슬란은 엘티히가 인정하는 유일한 인간이다.
그자의 강함은 감히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다.
엘티히의 최대 마력이 섞인 마법조차도 아무렇지 않게 막아냈으며, 저 드래곤마저도 자신의 발로 짓밟아 버렸다.
그 외에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업적들만을 남겼다.
“아슬란이라도 라일라칸이 두려울 순 있지 않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자는 굉장히 오만하며, 강하다. 라일라칸도 일격에 죽여 버릴 수 있는, 상상을 초월하는 힘을 지녔다. 이 대륙에서 과연 누가 그를 상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 그런 그가 라일라칸을 두려워 할 것 같으냐?”
“······.”
엘티히는 확신할 수 있었다.
아슬란은 라일라칸이 두려워서 감옥을 옮기는 것이 아니다.
“필시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슬란이 있는 곳으로 가봐야겠다. 직접 만나봐서 물어봐야겠어. 그자의 위치를 찾아라. 바로 그곳으로 이동할 것이다.”
“예, 여왕님.”
엘티히의 몸 주변으로 흐르는 마력이 불안함에 비틀리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을 꾸미려는 것이냐, 아슬란.”
* * *
철컹-!
너덜해진 갑주로 기어가듯 평야를 지나고 있던 남자.
그는 검은 피를 토해내도 끝까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크으읍-.”
고통이 극에 달해도 끝끝내 참아냈다.
“바, 반드시 와, 왕께 이 사실을······.”
필사적으로 목숨줄을 붙잡고 있던 그는 자신의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에 고개를 올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미뉴엘.”
그의 이름을 부르는 카르만이 위엄 넘치게 말 위에 있었다.
“와, 왕이시여.”
카르만은 평야에 가득한 카르만 왕국의 시체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소, 송구하옵니다. 제가 부족하여 감히······ 칼라 왕국의 명예를 더럽혔······ 크읍!”
카르만은 미뉴엘이 간신히 숨만 붙어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 정도인가? 그 라일라칸의 원혼 기사단이 우리 칼라 왕국을 집어 삼킬만큼 막강한 것이냐?”
미뉴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아무리 창과 칼을 찌르고 마법을 써도 죽지 않는······ 불사의 몸을 가졌습니다.”
“불사?”
“예.”
“머리가 약점이긴 하나, 그것을 베어도······ 곧 다시 살아납니다. 노, 놈들은 절대 죽일 수 없는······ 크헉!”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짜내며 미뉴엘은 카르만을 붙잡았다.
“왕이시여······. 그, 그들과 싸우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그들과 싸우시면······.”
결국 숨이 다 한 미뉴엘은 끝끝내 말을 맺지 못했다.
축 늘어진 그의 고개와 팔에 카르만은 잠시 몸을 잘게 떨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그는 옆에 있던 대마법사 크라울리를 불렀다.
“크라울리.”
“예, 왕이시여.”
“이 원혼 기사단이 어디로 갔는지 마법으로 바로 알 수 있느냐?”
“예. 추적 마법을 쓴다면 금방 찾아낼 겁니다.”
“그럼 그들이 있는 곳으로 곧장 포탈을 열어 갈 수 있느냐?”
“예? 포, 포탈 말씀이십니까?”
크라울리는 당황하며 대답했다.
“왕이시여. 포탈을 여는 것은 엄청난 마력을 소모합니다. 특별한 능력을 지니지 않은 이상, 오롯이 마력으로 그것을 열려면 모든 마법사가 달려 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 말에 카르만이 크라울리를 돌아보았다.
“상관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열어라. 우리 국고에 있는 모든 마력석을 전부 쏟아 붓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열여야 한다.”
“이 정도 대군을 이동시킬 포탈이라면 쉽지 않을 겁······ 으헉!”
카르만은 크라울리의 멱살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명령이다, 크라울리. 반드시 열어라. 알겠느냐?”
카르만의 진노 섞인 눈동자와 그 목소리에 섞인 위압에 크라울리는 마른침을 삼켰다.
“바, 반드시 열겠습니다.”
카르만은 검집을 꼭 붙잡았다.
머리 끝까지 차오른 진노가 이 사늘한 공기를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 * *
원혼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는 드보르작의 눈동자는 차갑기 그지 없었다.
그리고 놈의 눈빛이 향하는 곳은 바로 저 뒤에 있는 라일라칸의 감옥.
놈들은 저걸 노리고 있는 것이다.
라일라칸을 저곳에서 꺼내려고.
그렇게 되면,
‘다 죽는 거다.’
최강의 전투력을 가진 원혼 기사단과 라일라칸.
이 둘의 조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아론.”
“예, 왕이시여.”
“네게 기회를 주겠다. 저들을 모조리 쓸어 버려라. 그리고······ 놈들의 머리를 노려라. 몸을 찔러도 죽지 않는 자들이다.”
“예, 그리 하겠습니다.”
“일라이 왕국의 이름을, 그리고 본좌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거라.”
“예!!”
아론은 기사들 앞에 서서 칼을 뽑아 들었다.
“자랑스러운 일라이 왕국의 기사들이여!! 우리의 왕, 아슬란 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라!!”
“우와아아아-!!”
“자! 성수를 들어라! 그분의 은총이 너희와 함께 할 것이다!!”
내가 아론을 늘 선봉에 내세우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아론은 선봉에 섰을 때 가장 특성이 빛을 발하며, 또한 이 많은 광신도들을 날뛰게 할 수 있는 교주이기도 했다.
물론, 병에 담긴 성수를 기사들이 머리 위로 퍼붓고 마시는 걸 볼 때면 가끔은 좀 무섭기도 했다.
“돌격!!”
“아슬란 님을 위하여!!”
1만의 기사단.
2천의 마법 병단.
그리고 상대는 3천.
하지만 일반적인 3천의 기사단이 아니다.
무려 칼라 왕국 1만을 박살내 버린 놈들이지 않던가.
그러니 신중하게 공격을 퍼붓는다면, 어쩌면 상대할 수도 있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군사력이 있으니까.
콰쾅-! 콰콰쾅-!!
과연 선봉에 선 기사들이 칼루탄을 퍼부으며 그들을 공격했다.
퍼퍼펑-!!
그 폭발력에 원혼 기사들은 말 위에서 떨어졌지만, 그들은 결코 죽지 않았다.
“머리를 노려라!! 놈들의 몸은 찔러도 죽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기사단이 방심하는 일은 없었다.
정확하게 그들의 머리를 향해 창과 칼을 날리고 화살비를 내렸다.
또한 마법 병단 역시 방어막을 펼쳐 철저하게 방어하고, 기사들을 도왔다.
그렇게 우리 기사단이 최강의 전력으로 그들을 물리치고 있었다.
“쓸어 버려라!!”
“기세를 몰아라!!”
우리 기사단은 기세를 잡으면 잡을수록 더욱 무서워진다.
마치 폭풍처럼 휘몰아쳐 적을 휩쓸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추풍낙엽처럼 원혼 기사단이 쓸려 나갔다.
‘뭐야. 생각보다 약하잖아?’
아니. 내가 너무 쫄았나?
하도 아슬란 이 허세 충만인 새끼랑 있다 보니 내가 매번 가슴을 졸여서 너무 쫄보가 됐나?
아닌데.
아무리 일라이 왕국 기사단이 막강해졌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텐데.
‘칼라 왕국 군대가 전멸을 당했다고 했잖아.’
그거에 비해 원혼 기사단은 3천명이란 숫자가 거의 똑같아 보인다.
아무리 칼라 왕국이 저 기사단을 막지 못했어도 300명 정도는 줄였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 일련의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왕이시여. 저걸 보십시오!”
옆에 있던 호레스가 다급하게 나를 부르며 전장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곳에는 머리가 베이고 터져 죽은 원혼 기사단이 쪼개진 육신을 모래 바람처럼 모으며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 돼. 머리가 없으면 놈들은 살아나지 못 하잖아?’
그런데 놈들은 죽지 않고 살아났다.
마치 죽음을 거부하듯.
애초에 죽음이란 그들에게 허락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라일라칸 님을 구한다.”
“우린 라일라칸 님을 구한다.”
“라일라칸 님이 허락하시지 않는 한, 우린 죽을 수 없다.”
거침 없이 적들을 몰아치던 우리 기사단 역시 당황했다.
“이, 이놈들이 살아납니다!”
“뭐라?”
“놈들이 살아난다!!”
“다시 죽여라!”
스걱-!!
그리고 놈들이 살아나자마자 전황이 뒤바뀌었다.
놈들의 창칼이 우리 기사단을 찌르기 시작한 것이다.
“크아악!”
“가, 갑옷이!”
“방패도 먹히지 않아!”
원혼 기사단의 또 하나 무서운 점이 바로 저것이다.
저들이 들고 있는 칼과 창은 갑옷과 방패로 막을 수 없다.
저들의 검이 속절 없이 통과되기 때문이다.
그 칼에 맞으면 상처가 불에 타 버리고, 갑옷과 방패는 아무짝 쓸모가 없어 진다.
‘저래서 칼라 왕국의 1만 기사단이 전멸 당했던 거였구나.’
나는 거기서 왜 칼라 왕국이 패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놈들은 내가 알던 원혼 기사단이 아니다.
원래 원혼 기사단은 머리가 파괴되면 죽어야 한다.
하지만 놈들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아니. 난이도 때문인가? 난이도 때문에 원혼 기사단이 저렇게 된 거라고? 그럼 만약 내가 라일라칸과 잘 협력해 저놈들을 잘만 썼다면······.’
그 어떤 악마도 무섭지 않는 최강 군단을 얻는 거였잖아!
“놈들을 막아라!!”
“라일라칸에게 다가가게 해서는 안 된다!!”
아론의 외침에 나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정신을 차렸다.
콰콰콰콰-!!
그나마 다행인 건, 놈들이 저 파괴적인 전투력으로 우리 군을 학살하지 않고 집요하게 라일라칸의 감옥을 노린다는 것이었다.
쾅-! 콰쾅-!!
라일라칸 주변에 쳐진 방어막이 그들의 길을 막았지만, 원혼 기사단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방어막에 의해 몸이 잘려 나가는 것 역시 두려워 하지 않았다.
놈들은 끝까지 몸을 밀어 넣었고, 끝끝내 잘려난 몸으로 라일라칸의 감옥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그 감옥 뒤에는······.
“저놈이 라일라칸 님을 가둔 놈이다.”
“저놈을 죽여야 한다.”
바로 내가 있었다.
“라일라칸 님을 감히 가두다니.”
“죽어라. 필멸자.”
원혼 기사단이 말도 안 되는 회복력으로 잘려 나간 몸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천천히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왕을 수호하라!”
나의 기사단이 칼을 뽑아 들고 그들이 다가오지 못 하게 경계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고작 30명.
그에 반해 저들의 숫자는 수백.
똑같이 30명이 있어도 상대가 불가능한데, 수백이라.
심지어,
“라일라칸 님의 감옥을 풀어라.”
라일라칸의 오른팔인 드보르작이 내게 협박을 하고 있었다.
“네놈에게 열쇠가 있을 터. 라일라칸 님을 순순히 꺼낸다면 고통스럽게 죽이진 않겠다.”
나는 저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슬란 님!!”
“왕이시여!!”
아론과 알렉산더가 내 이름을 외치며 군사를 돌려 내 쪽으로 다가오려 했으나, 원혼 기사단의 철통 방어로 전혀 다가오지를 못 하는 중이었다.
즉,
‘나 혼자 상대해야 하는 건가?’
대체 저놈들을 어떻게 혼자?
“겁을 먹은 것이냐? 얼른 열쇠를 내놓으라니깐!”
바로 그때였다.
“짐승처럼 시끄럽게 떽떽 거리지 말거라.”
드보르작의 도발에 허세가 끓어 오르면서 타올랐다.
“본좌가 잠시 네놈들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고민 중이었다.”
“우린 죽지 않는 불사의 기사단이다. 어떻게 죽일지 고민해 봐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오해를 한 것 같구나.”
나는 거만하게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쿠우웅-!!
“!?”
“······!”
놈들의 몸이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지며 그 흉측한 얼굴들이 바닥에 처박혔다.
“너희를 가루로 만들지, 아니면 이대로 영원히 바닥에 처박아 놓을지, 그것도 아니면 너희 주인처럼 감옥에 가둬 버릴지.”
난 그들을 향해 입꼬리를 씰룩이며 말했다.
“그걸 고민 중이었다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