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0.01초 소드마스터 137화
“······누가 어떻게 됐다고?”
카르만은 아침 댓바람부터 들려오는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라일라칸 님이 현재 일라이 왕국에 구금되어 계십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하의 라일라칸이 구금될 수가 있긴 하단 말인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소상히 말해 보거라.”
“예. 보고된 바로는, 라일라칸 님께서 아슬란과 맞대결을 펼치셨고, 거기서 치명상을 입으신 뒤, 엘프의 여왕, 엘티히의 마법 감옥에 갇히셨다고 합니다.”
라일라칸 이놈이 또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일라이 왕국에 달려갔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라일라칸이 협공을 받아 치명상을 입었던 것이냐?”
그 물음에 보고를 하던 기사가 고개를 저었다.
“보고에 의하면 라일라칸 님과 아슬란, 단둘이 대결을 펼쳤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는 건 아슬란이 라일라칸에게 치명상을 입혔다는 뜻이다.
“아슬란은 어떤 부상을 입었더냐? 라일라칸과의 대결이었다면 그놈도 무사하진 못했을 터.”
그러자 기사가 우물쭈물거리며 쉽사리 답을 하지 못했다.
“얼른 답하거라.”
“그, 그것이······. 아슬란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고······.”
“뭐라?”
그 라일라칸을 상대로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는 것인가?
카르만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 보고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인가?”
“그, 그렇습니다.”
아슬란.
네놈은 정녕······.
“왕이시여!”
잠시 무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얼마나 소식이 빠른 것인지, 왕궁으로 신하들이 몰려왔다.
“소식은 들으셨습니까? 라일라칸 님께서 일라이 왕국의 간악한 계략에 빠지셨다고 합니다!”
“당장 그분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그 간악한 무리들을 처단하시지요!”
저들은 라일라칸을 카르만 자신보다 더 따르는 인물들이었다.
“불허한다.”
“왕이시여!”
“라일라칸 님을 이대로 버리시는 겁니까? 그분은 우리 왕국의 희망이며, 이 대륙에 반드시 있어야 할······.”
콰앙-!
카르만은 강하게 왕좌를 내리쳤다.
“희망? 영웅? 라일라칸 그놈은 정신 나간 학살자에 불과하다.”
“······!”
“너희도 그놈이 저지른 패악질을 직접 보지 않았느냐? 그것을 보고도 놈이 정녕 왕국의 희망이라 할 수 있겠는가! 엄벌을 내려도 모자랄 판에, 감히 그를 칭송하다니.”
눈에 분노가 가득한 카르만이 신하들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오늘부로 라일라칸을 변호하거나, 지지하는 놈이 있다면 내가 친히 그 목을 베어 효수할 것이다.”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한꺼번에 터트리는 카르만을 보며 신하들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알아들었으면 모두 썩 꺼져라. 꼴도 보기 싫으니.”
그들은 도망치듯 전각 밖을 나갔다.
활활 타오르는 카르만의 분노를 감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쯧. 어리석은 놈들.”
카르만은 저런 것들이 이 나라를 지탱하는 신하들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이었다.
이번 기회에 전부 물갈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이 됐다.
“그래도 중요한 보직을 맡아 왕국을 관리하는 자들입니다.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제렌의 말에 카르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피바람을 불러일으킬 생각은 없다.”
“예. 헌데······. 보고가 정말 사실일까요?”
“무슨 뜻이지?”
“라일라칸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왕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아슬란이 상처 하나 없이 그를 제압하고 치명상까지 입혔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카르만은 라일라칸이 샤나 왕국의 대마법사들을 홀로 상대하며 그들을 무참히 짓밟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그 압도적인 힘은 이 대륙에서 누구 하나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수준이라 여겨질 정도였다.
그런 라일라칸을 아슬란이 꺾은 것이다.
이로써 대륙 최강자가 누구인지 증명이 되었다.
한때 대륙 최강자로 불렸던 카르만에게는 쓰디쓴 일이었으나, 오히려 아슬란과 동급으로 취급받던 때를 감사해야 할 지경이었다.
“한번 확인을 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확인?”
“예. 라일라칸이 정말로 일라이 왕국에 잘 구금이 되어 있는지,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우리 쪽에서도 대처가 가능할 테고요.”
듣고 보니 나쁜 의견이 아니었다.
“그럼 일단 일라이 왕국에······.”
바로 그때였다.
“왕이시여!”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들어와 카르만 앞에 예를 갖췄다.
“보고 드립니다. 원혼의 기사단이 현재 무단으로 왕국을 나가 출진했습니다!”
“그놈들이 명령도 없이?”
원혼의 기사단은 라일라칸이 부활시킨 정예의 기사단이다.
그들은 오직 라일라칸의 명령만을 따른다.
그런 그들이 갑자기 움직였다는 것은-
“설마 일라이 왕국으로 향하는 것인가?”
바로 주인 라일라칸을 구하기 위해 말이다.
* * *
나는 차갑지만 기분 좋은 바람을 맞으며 찻잔을 들었다.
뜨끈한 차를 마시면 몸도 마음도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눈을 들어 저 너머를 바라보게 되면-
‘아······.’
절로 탄식이 나왔다.
‘저 감옥을 어떻게 해야 할 텐데.’
엘티히가 나한테 짬을 때리고 간 마법 감옥.
두꺼운 철 같은 것이 둥그런 감옥을 꽁꽁 싸매고 있어 라일라칸이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는 볼 수 없었다.
이따금 감옥에서 진동이 이는 것을 보면 라일라칸이 빠져나가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혹 감옥이 신경 쓰이십니까?”
호레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딱히.”
말은 그리했으나, 사실 몸서리 쳐질 정도로 신경이 쓰이긴 했다.
그때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기사들과 신하들이 저 감옥을 두려워하고 있더냐?”
만약 그들이 저 감옥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무서워한다면 이것을 빌미로 다시 엘티히에게 넘겨 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왕께서 이곳에 계시는데, 누가 무서움에 떨겠습니까. 오히려 아주 상징적인 의미가 된다며 모두 기뻐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의미?”
“라일라칸은 300년 전 대륙 최강자로 이름을 떨치지 않았습니까? 그런 자를 왕께서 단번에 제압하시고 감옥에 넣으셨으니, 우리 왕국 사람들에게는 매우 뜻깊은 일이지요. 왕께서는 진정으로 대륙 최강자라는 것을 만천하에 보이셨으니까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아무튼, 저 둥그런 감옥을 여기 계속 놔둬야 한다는 얘기였다.
‘도움이 안 돼요, 영감탱이.’
좀 엄살을 부렸으면 냅다 엘티히한테 감옥을 던져 버릴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럼 이제 저걸 어쩐다.
엘티히는 나한테 맡기는 게 제일 안전하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며 여기에 버리고 갔는데······.
진짜 라일라칸이 저 감옥을 뚫고 나오는 날에는 이 왕국은 물론, 나도 죽은 목숨 아닌가?
‘어떻게든 치워야 돼.’
하지만 어디다 치울지도 잘 생각을 해봐야 한다.
그냥 길거리에 버려둘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어디 적당히 버릴 만한 곳이······.’
그리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왕이시여. 샤나 왕국의 사신단이 방금 도착을 했습니다. 현재 전각에서 왕이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라일라칸에게 나타샤를 잃은 샤나 왕국.
그곳에서 갑자기 우리에게 사신단을 보냈다.
그렇지 않아도 사신단이 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궁금하긴 했었다.
나는 호레스와 같이 전각으로 이동해 그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사신단을 만날 수 있었다.
“위대하신 왕에게 축복이 함께하기를.”
상대는 다름 아닌, 샤나 왕국의 대마법사, 카르티엘이었다.
샤나 왕국에는 3명의 대마법사가 있는데, 그중 한 명이다.
“여기까지는 어인 일로 왔느냐?”
나는 항상 그랬듯, 거만한 자세로 왕좌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사신단은 전부 바닥에 엎드린 채로 말했다.
“왕이시여. 저희 샤나 왕국을 부디 받아 주십시오.”
“······?”
이건 또 뭔 소리여.
“우리 왕국을 지켜주던 2명의 대마법사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또한 마법 부대 역시 절반 이상의 손실을 보았으며, 이는 더 이상 외부의 침입에 대응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이번 전투로 샤나 왕국은 3명의 대마법사 중 2명을 잃었다.
바로 나타샤와 자하트.
이 둘이 죽고, 마법 부대도 라일라칸 손에 도륙당했으니 샤나 왕국의 국력은 처참한 수준까지 내려갔다고 할 수 있었다.
“저희 샤나 왕국은 일라이 왕국의 왕이신 아슬란 님에게 충성을 맹세하고자 합니다. 부디 저희를 받아 주십시오.”
즉, 이들은 더 이상 왕국을 운영하기 힘이 드니, 내게 항복하려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나더러 책임을 지라는 건가?’
우리 일라이 왕국은 굉장히 부유한 나라다.
그걸 알고 샤나 왕국도 우리에게 항복하는 것일 터.
‘내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였다면 쌍수 들고 환영했겠지만-’
난 정복을 하고자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생존을 하기 위해 여기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샤나 왕국의 항복은 썩 달갑지 않았다.
‘다 망가진 놈들을 고쳐 쓰려면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
가성비가 별로 좋지 않다.
저기에 쏟아부을 돈이라면 차라리 다른 곳에 쓰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헛소리할 거면 나가라고 한마디를 던지려는 찰나.
“오오. 왕이시여.”
“감축드립니다.”
“이로써 3개의 왕국을 발아래 두셨군요.”
내가 샤나 왕국의 항복을 받겠다고 대답한 적이 없는데, 신하들은 벌써부터 망상을 하는 중이었다.
“하하. 이렇게 왕국이 하나씩 왕 앞에 무릎을 꿇는다면 온 대륙을 통치하는 일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샤나 왕국은 마법으로 발전한 나라가 아닙니까? 그곳의 마법과 우리 일라이 왕국의 기술이 합쳐진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겁니다.”
난 받을 생각도 없는데, 이놈들은 북 치고 장구 치고 아주 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 한 가지 솔깃한 얘기가 있었다.
‘샤나 왕국은 마법의 나라잖아?’
만 왕국이 마법을 배척한다면, 샤나 왕국은 검을 배척하는 곳.
이들의 마법 실력과 이뤄낸 업적은 타 왕국과 비교를 불허한다.
그렇다면-
‘라일라칸의 감옥을 지키는 것도 수월할지도?’
엘티히가 만들고 간 라일라칸의 감옥 역시 마법이다.
그 지독한 놈이 감옥에서 탈출을 하려고 시도한다면 샤나 왕국에 있는 마법사들이 마력을 주입해 그를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다 마탑을 세우고 24시간 계속해서 라일라칸의 감옥을 감시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일이 없겠지.’
순간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난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본좌 역시 샤나 왕국의 아픔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너희의 슬픔을 위로해 주고자 라일라칸을 저 끔찍한 감옥 안에 가둬 놓았지.”
“저희를 불쌍히 여겨 주시는 겁니까?”
“그래. 특히 나타샤는 본좌의 스승이었다. 스승은 곧 부모처럼 여겨야 한다고 했거늘. 검을 든 기사된 자가 어찌 그 가르침을 잊겠는가?”
“아아-”
“또한 너희가 그리 갸륵한 뜻으로 본좌를 받들고자 했으니, 본좌 역시 오늘부터 샤나 왕국의 백성을 내 왕국의 백성으로 생각하여 어떤 도움도 아끼지 않겠다.”
“왕이시여. 참으로 그 은총이 저 바다보다 깊고 하늘보다 높사옵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던 카르티엘에게 말했다.
“더는 눈물을 보일 필요 없다. 본좌의 통치 아래 이제 너희는 그 어느 때보다 평안한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니.”
“예!!”
“참으로 감읍하옵니다, 왕이시여!”
샤나 왕국 사신단은 몸 둘 바를 모르며 내게 감사를 표했다.
아니. 사실 감사할 건 나지.
앞으로 너희가 저 지긋지긋한 애물단지를 대신 관리해 줄 거니까.
‘후후후후후.’
음흉한 웃음이 속에서 잔뜩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메인 퀘스트 ‘황제의 길’의 진행도가 업데이트 되었습니다.]
“······?”
[현재까지 정복한 왕국]
-할라즈, 에인소프, 샤나.
-모든 왕국을 정복하고 황제가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