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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33화 (133/200)

133화

0.01초 소드마스터 133화

왕국 안에 눈송이가 휘날리고 있었다.

당연히 여기도 사계절이 존재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이렇게 눈이 온다.

나는 따뜻한 차······가 아닌, 얼음이 잔뜩 들어 있는 차를 마시는 중이었다.

이놈의 허세는 추운 날에 감히 뜨거운 걸 마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뜨거운 차를 타면 모를까, 시종에게 음료를 가져오라 시킬 땐 허세가 자연스레 발동하여 무조건 얼음이 가득 든 차를 가져오게 한다.

근데 이게 소문이 퍼지면서 왕국 내에 이상한 유행이 돌기 시작했다.

“얼어 죽어도 얼음!!”

“얼죽얼!!”

기사들은 술을 마실 때도 얼음을 넣고 마시며, 몸을 녹여야 할 때도 얼음물에 얼음을 넣어 먹는 기행을 부리기 시작했다.

“왕께서는 추운 날에도 늘 얼음을 가까이 하신다! 그것이 강자가 될 수 있는 덕목! 감히 뜨거운 차를 마시는 나약한 놈이 있다면 지금 당장 기사단을 나가라!!”

“······.”

아주 당연하게도 그 선동의 중심에는 아론이 있었다.

심지어 저놈은 성수를 얼려서 만든 조각 얼음을 늘 물이나 음료에 넣어 마셔댔다. 그것이 또 뭐가 좋다고 기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그 행동을 따라했다.

문제는 일반 백성들도 얼죽얼을 외치며 얼음물만 마시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이렇게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얼음이 늘 동이 난다고 한다.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나.’

얼음 판매를 금지할 수도 없고.

아론을 붙잡아서 선동죄로 경을 칠 수도 없는 노릇.

왜냐하면 아론이 외치는 건 언제나 내 이름이기 때문이다.

놈은 나를 거의 숭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걸로 벌을 주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얼죽얼!!”

“얼음이 부족하면 언제든 보급소로 찾아오너라!”

“예!!”

“······.”

나는 광기에 사로잡힌 기사단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내 허세를 고치는 수밖에.’

하지만 아슬란은 허세를 빼면 시체이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에혀. 어쩌겠냐. 이대로 살아야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왕국 내에서도 퍼질 대로 퍼진 아슬란교는 뿌리를 뽑을 수 없는 수준까지 커버렸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나쁜 일도 아니었다.

그 사이비 종교 덕분에 민심은 늘 최고조에 달했고, 기사들의 충성심 역시 무척 높기 때문이다.

‘설마 아론을 저렇게 쓸 줄은 몰랐네.’

처음 아론을 등용했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내 호위기사로 쓰려고만 했는데, 어느새 저놈은 일라이 왕국의 대기사단장이 되었고 어마어마한 회원수를 거느리고 있는 사이비 교주가 되었다.

“다행히 기사들이나 신하들의 동요가 없는 것 같군요.”

그때 내 앞에서 같이 차를 마시고 있던 호레스가 말했다.

저 영감도 뜨거운 차가 아닌, 얼음을 가득 넣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내가 그의 손에 들린 잔을 빤히 바라보자 호레스는 멋쩍게 웃음을 터트렸다.

“소신도 원래 뜨거운 걸 즐겼습니다만, 이 얼음을 넣은 음료를 몇 번 마시다 보니, 이제 뜨거운 거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더군요.”

그게 아이스 음료의 무서운 점이기도 하지.

한번 빠지면 시베리아에 던져 놔도 아이스 음료를 마시게 되는 병에 걸리니까.

“적당히 마시거라.”

“예. 그리 하겠습니다.”

호레스의 말대로 다행히 내부에서 크게 동요가 일어나진 않았다.

갑자기 천계의 천사들이 나타나고, 그들은 우리를 죽이려 했다.

하지만 내가 어둠의 힘으로 그들을 몰아냈고, 전각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사실 그때 난 어둠의 힘을 사용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제왕의 군림보를 써서 미카엘이 땅에 박아 놓은 칼을 뽑으면서 동시에 그들을 제압하려 했던 것뿐.

상대가 성속성의 힘을 사용해서 그런지, 암속성 힘이 자동으로 뻗어 나가 버렸다.

‘충분히 오해를 받을 만한 힘이긴 하지.’

그래도 그때 임기응변을 잘해서 상황이 잘 넘어간 것 같았다.

그리고 미카엘과 천사들을 통해 한 가지 더 알아낸 것이 있다.

공간 이동이란 스킬은 꼭 나한테 쓰지 않아도 발동이 된다는 것이다.

즉, 내가 빛의 기둥을 떨어뜨려 상대방을 강제로 다른 장소까지 이동시킬 수가 있다는 것!

이것 역시 임기응변이었는데, 굉장히 잘 먹혀 들었다.

그놈들은 내 빛의 기둥을 타고 천계에 잘 돌아갔을 것이다.

‘그 정도 했으면 또 덤비진 않겠지.’

문제는 천계와 관계가 틀어져 버려 그들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악마들과 싸울 때 그들의 힘이 절실하게 필요할 텐데.

‘하여튼 이놈의 허세 때문에.’

마계도 모자라 이제는 천계까지 적으로 돌리는 거냐?

“헌데······. 정말로 왕께서는 빛과 어둠을 동시에 다스리시는 겁니까?”

호레스의 물음에 나는 턱을 괴며 대답했다.

“예전에 레바노스와 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때, 잠깐 어둠의 힘을 쓴 적이 있다. 그때도 말했지만, 이것들은 그저 본좌의 힘에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고작 이런 걸로 동요할 필요 없다.”

“하하. 동요하지 않습니다. 그때 전각에서 그 천사들을 무릎 꿇리며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빛과 어둠으로 선과 악을 나눠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그게 제 가슴에 정말 와닿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빛과 어둠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요.”

그땐 그냥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던 것뿐인데······.

“그래서 소신은 그동안 왕께서 하신 말씀과 그 가르침을 모아 편찬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

뭐야.

그 말은 지금 내 어록을 책으로 만들어 보겠다는 건가?

맙소사.

아론에 이어 이제는 호레스까지 호들갑이었다.

이 영감이 드디어 노망이 났나 싶었지만, 내가 뭐라고 할 새도 없었다.

포탈 하나가 왕궁 안에 열리면서 까랑까랑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아슬란.”

저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엘티히였다.

‘왕궁 경비가 왜 이러냐.’

마법 방어는 일절 안 하고 있는 건가.

저렇게 막 포탈을 열고 찾아올 수 있는 거야?

“아슬란. 나와 가야 할 곳이 있다.”

“······내가 저번에도 말했을 텐데. 불쑥 찾아오지 말라고.”

내가 인상을 써봤으나, 엘티히는 마치 마녀처럼 더 험악하게 얼굴을 찡그렸다.

살벌한 투기까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아, 보통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만큼 급한 일이었다. 아무래도······내가 너무 큰 실수를 저지른 것 같구나.”

“실수?”

“라일라칸. 그놈을 부활시키는 것이 아니었어.”

갑자기 이 아줌마가 무슨 소리지?

라일라칸을 부활시킨 걸 후회하다니.

원래 게임 스토리에서 엘티히는 악마들이 라일라칸 손에 쓸려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깨우기 잘했다며 자화자찬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나와 같이 가자, 아슬란. 거절은 거절하겠다.”

안 가면 정말 힘이라도 써서 강제로 데려갈 기세였다.

그럼 잠깐 기다려 봐.

내 호위기사 노릇을 할 네임드들도 같이 데려가야 되는······.

촤아아아-!

하지만 내가 누구를 부리기도 전에 엘티히의 마법이 벌써 나를 다른 공간으로 데려가고 말았다.

‘······미친.’

그래도 말은 하고 데려가야 할 거 아니야.

나는 하루에 한번 밖에 쓰지 못 하는 공간 이동을 엘티히는 이렇게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사기캐였다.

그녀는 나를 어느 언덕 위로 데려왔다.

“여긴······.”

하늘이 붉다.

그건 저 아래에서 치솟는 불길 때문일 것이다.

“죽여라!!”

“오오오-!!”

아래를 내려다보니,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다.

그것도 악마와 말이다.

하지만 전세는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여져 있었다.

왜냐하면 한쪽 편에 라일라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하늘에서 푸른 뇌격을 불러일으켜 사방을 초토화시키고 있었다.

“저긴 샤나 왕국 영토에 소속되어 있는 마을이다. 거기서 악마가 출몰했고, 라일라칸이 군대를 이끌고 왔지.”

그럼 라일라칸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문제는 라일라칸이 악마를 비롯해 그 사이에 있는 인간들까지 전부 다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을 먼저 대피시킬 생각도 하지 않고 무작정 살육을 벌이고 있어. 여기뿐만이 아니다. 이미 가자르 왕국도 라일라칸에 의해 영토 절반 이상이 황폐화가 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라일라칸은 영웅병에 걸린 놈이라, 백성들을 함부로 해치지 않는다.

그런데 저 아래에 있는 라일라칸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민간인이 있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무작정 스킬을 남발했다.

설마······. 악마한테 씌기라도 했나?

아무리 난이도가 높다고 해도 라일라칸한테 악마가 씔 순 없을 텐데.

놈은 정신 계열 마법 면역이 있지 않던가.

“라일라칸이 왜 저러는지는 나도 알 수가 없다. 300년 전에는 저러지 않았거든. 하지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건······.”

엘티히는 내 쪽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바로 아슬란, 네 존재 때문이 아닐까 싶구나.”

내 존재 때문이라고?

“라일라칸은 300년 전 대륙 최강이었다. 누구도 그를 대적할 수가 없었지. 그렇기에 그는 늘 최강자의 자존심으로 살아왔다. 누구에게도 꺾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시대에서 다시 눈을 뜨고, 너를 만나면서 그는 처음으로 꺾였다.”

“······.”

“네 탓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잘못을 가리자면 내 잘못이겠지. 그를 봉인에서 꺼낸 건 나이니까.”

엘티히는 힘없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언덕은 사라지고 왠 용암지대가 나타났다.

흡사 리베리엄 화산 내부를 보는 듯했다.

“여기가 원래 어디였는지 아느냐. 바로 가자르 왕국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라일라칸이 이곳에다 영원의 불을 풀어 부하들을 살려냈지. 그로 인해 영원의 불이 폭주하여 이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거기서 나는 한번 더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영원의 불을 함부로 쓰게 되면 그것이 폭주하여 엄청난 피해를 끼치게 된다는 것을 라일라칸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원래 스토리에서는 라일라칸이 엘티히와 여러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조심스럽게 영원의 불을 사용해 부하들을 깨우게 된다.

그가 네크로맨시를 했다는 것 때문에 신전과 마찰이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거기서 발생을 하게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라일라칸이 어떠한 안전장치도 없이 그냥 무지성으로 부하들을 살려냈다.

단 한 번도 이런 스토리는 본적이 없었다.

“마법으로 잘 제어를 하고 부하들을 살려냈다면 통제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풀려 버리는 바람에 영원의 불은 제어할 수 없는 수준의 폭주를 일으키고 있다.”

이건 정말 큰 일인 거 같은데.

영원의 불은 절대 꺼지지 않는 불.

난 영원의 불이 폭주하는 것을 몇 번 본적이 있었다.

리베리엄 화산에 있던 영원의 불을 실수로 건들거나, 혹은 전쟁을 하다 휩쓸려 가끔 폭주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불길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어 대륙 절반이 불바다가 되었다.

“엘티히. 이 불을 막을 방법이 정녕 없는 건가?”

“이미 내가 엘프들을 데리고 와서 몇 번이나 불길을 통제하려 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폭주를 가속화시킬 뿐이었지. 심지어 저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거라.”

엘티히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는 영원의 불로 보이는 것이 그 힘을 방출하고 있었는데, 그 사이로 마기가 흐르고 있었다.

“저 검은 기운은 마기다. 죽은 자들을 되살리는 데에 썼으니, 저런 마기가 흐르는 것이겠지. 그래서 더더욱 폭주를 막아내기가 어렵다.”

“······이대로 놔두면 어떻게 되는 거지?”

“대륙 전체가 불에 휩싸이겠지. 머지않아 우리 엘프들의 숲도 불에 타 없어질 테고.”

그 말은 이제껏 내가 봤던 불바다는 애들 장난 수준이라는 것이다.

‘설마 이런 식으로 게임이 끝나는 건가.’

대륙 전체가 불에 휩싸인다면 바다로 나가 어디 섬에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닐까?

이대로 가다가는 일라이 왕국이 잿더미가 되는 건 시간문제일 듯싶었다.

아니. 대체 라일라칸 저 새끼는 왜 이런 사고를 치는 거야!

“널 여기로 데려온 건 대비를 하라고 경고하기 위함이었다.”

“대비?”

“미안하지만, 이 폭주는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것이 너라도 말이다, 아슬란.”

바로 그때였다.

살이 타들어 갈 것만 같은 영원의 불이 가진 뜨거움마저도 집어삼킬 만한 허세가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엘티히.”

“······뭐?”

나는 마기를 뿜어내며 한껏 폭주를 하고 있는 영원의 불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갔다.

“이 세상에서 본좌가 막지 못할 것은 없다.”

“자, 잠깐!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

나도 안다.

살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고통이 느껴지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난 발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감히 이따위 불덩이가, 이 하찮은 불씨가 본좌를 집어삼킬 수 있을 거라 보느냐?”

나는 영원의 불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저 가소롭구나.”

그리고 내 손에 영원의 불에 닿는 순간.

쩌어어엉-!!

모든 것을 태워 버릴 것만 같았던 영원의 불이 꺼지고 사방이 순식간에 혹한으로 얼어붙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불씨 하나 남지 않고 얼어 버린 공간을 바라보며 엘티히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얼어 버린 영원의 불을 한 손으로 붙잡아 떼어 버렸다.

동그란 얼음 구체가 된 영원의 불은 여전히 마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꽉 쥐며 그 안에 담긴 마기를 빨아들였다.

콰직-! 콰콱-!!

그러자 얼음이 부서지고 그 안에 얼어 있던 영원의 불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슬란!”

엘티히가 깜짝 놀라 다급히 내 이름을 불렀지만-

콰아아아아-!!

그녀는 내게 다가오던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이윽고 마기 포식에 의해 영원의 불이 내 안에 흡수되면서 뜨거운 불씨들이 바닥에 떨어져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마, 말도 안 돼. 영원의 불을······. 파괴했어?”

엘티히는 경악 어린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슬란. 대, 대체 너는 정체가 무엇이냐?”

난 잘게 목소리를 떨고 있던 엘티히에게 말했다.

“최강. 그저 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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