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화
0.01초 소드마스터 130화
콰아아아아-!!
“캬오오오!!”
정중아에서 일어난 어마어마한 폭발.
사방으로 퍼지는 강력한 파공과 검날 같은 것들이 사정없이 악마들을 쳐버렸다.
“······.”
라일라칸은 지면을 휩쓸어 버린 아슬란의 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능력을 발휘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까지 이 숲 전체를 둘러 싸고 있던 악마 군단이 괴멸을 당했다.
놈들은 무엇에 당했는지도 모르고 죽었을 터.
사실 라일라칸도 무엇이 저들을 휩쓸어 버린 것인지 아직도 헤아리지 못했다.
그저 아슬란의 손끝에 의해 폭발이 일어나 사방에 몰려든 악마들이 전부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과연······ 경이로운 힘이로군.’
적들을 한꺼번에 쓸어 버리는 광역 스킬은 라일라칸도 지겹게 봐왔고, 또 지겹게 써봤다. 하지만 아슬란의 힘은 다르다.
저 압도적인 중압감과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카리스마.
그에 따른 놀라운 힘까지.
아슬란은 지금껏 봐왔던 자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라일라칸은 보았다.
‘저건······.’
아슬란에게서 나오는 붉은 기운을.
저 붉은 기운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바로 라일라칸 자신을 언제든 죽일 수 있는 힘을 상대가 가졌다는 뜻이다.
그것이 라일라칸의 몸에 전율을 일으켰다.
‘그 누구도 날 죽일 수 없을 거라 믿었거늘.’
직접 마주한 적은 없지만, 지옥의 왕 레메게톤조차 자신을 죽일 수 없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슬란을 보고 있자면 그러한 자신감이 사실은 허망한 자만함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아슬란. 너는 나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라일라칸의 물음에 아슬란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 눈빛에는 차가움과 뜨거움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늘 사람을 둘로 나눈다. 배려를 해줘야 하는 약자와, 그럴 필요가 없는 강자로 말이지.”
“······?”
“그리고 지금껏 난 단 한번도 강자를 만난 적이 없다.”
그 말을 끝으로 아슬란은 부하들이 있는 곳으로 먼저 내려가 버렸다.
“······”
절벽 위에 홀로 남게 된 라일라칸은 고요한 정적을 지키다,
“풉-!”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 웃음 소리는 점점 더 커지면서 그는 실성한 사람처럼 중얼 거렸다.
“그럼 나 역시 너한테는 배려를 해줘야 하는 약자라는 것이냐?”
라일라칸은 처음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것을 이해해 주고 이 고독한 외로움을 공감해 줄 수 있는 강자를 만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슬란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껏 만나왔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라일라칸을 약자로 보고 있었다.
한평생 최강자의 인생을 살아온 라일라칸에게는 믿기 어려운 일이었으나,
“이런 감정은 오랜만이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상대방을 뛰어 넘고 싶다는 승부욕일 것이다.
참으로 오랫동안 잊어 버렸던 그 감정이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그러니 내 언젠가는······.”
반드시 널 넘어서겠다.
“네가 날 똑같은 강자로 볼 수 있게.”
라일라칸은 그리 다짐했다.
“일단은······.”
그는 자신이 리베리엄 화산에서 얻은 영원의 불을 꺼내며 내려다 보았다.
“나의 수족들을 먼저 살려 내야겠지.”
대체 아슬란이 이걸 어떻게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들을 살려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는 짧게 숨을 고른 뒤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자신의 새로운 집이 된 칼라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 * *
오늘도 한바탕 개소리를 지껄인 다음 나는 얼른 절벽에서 내려왔다.
더 있다가는 라일라칸이 검을 뽑아 내 목을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젠 하다하다 대륙 최강자한테도 지랄이냐.’
이놈의 허세는 상대가 누구든 상관하지 않았다.
강자와 약자를 나눈다고 했던가.
이 허세 앞에서는 모두가 약자였다.
‘그나저나.’
나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슬쩍 매만져 보았다.
‘생각보다 세네?’
[검의 포효]
-시전자의 힘에 비례해 검의 포효를 날립니다.
-최대 반경 300m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찬란한 베라크의 보검이 새로운 옵션을 개방하면서 얻게 된 검의 포효.
찰나의 괴력을 섞어 사용하면 최대 반경 300m까지 포효가 뻗어 나가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포효란, 내가 목소리로 소리치는 것이 아닌 검이 힘을 폭발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 폭발의 위력은 가히 대단했고, 내가 암속성 불길로 유인했던 악마들을 한순간에 쓸어 버렸다.
‘앞으로 쓸 일이 많겠어.’
나는 나지막이 미소를 지었다.
이런 강력한 광역 스킬은 언제나 환영이었다.
“왕이시여.”
내가 지상으로 내려오자 아론이 내게 다가왔다.
“어찌 되었느냐.”
“드워프들은 거의 다 죽은 듯합니다.”
“거의 다?”
“10명의 생존자를 찾아냈습니다.”
라일라칸이 다 죽여 버린 줄 알았는데, 그래도 10명 정도 남아 있었다.
“데려와라.”
“예.”
이윽고 초조한 얼굴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드워프들이 보였다.
그들을 보고 나는 속으로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최고의 대장장이들이 다 죽은 건 아니었구나.
하지만 겉으로는 냉담한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악마와 손을 잡은 더러운 핏덩이들이 아직도 살아 있었구나.”
그러자 놈들은 알아서 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조아렸다.
“아이고~! 살려 주십시오. 저희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던 것뿐입니다요.”
이 게임을 하면서 늘 느끼는 거지만, 드워프들은 행동이 귀여우면서 웃기다는 것이다.
“우리 왕이 어느 날 갑자기 악마와 손을 잡고는 이런 무시무시한 곳에 우리를 데려오고 일만 시켰습니다요.”
“저희는 억울합니다요!”
“우리도 악마가 싫습니다요!”
그들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자기들도 악마와 결탁하기 싫었고, 억지로 일만 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희의 죄악이 없어질 거라 생각하느냐?”
“······.”
“너희가 마검을 만든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그들의 억울함은 누구 풀어준다는 것이냐?”
“그, 그건······.”
섣불리 답을 하지 못 한다.
난 속으로 빙고를 외쳤다.
이 드워프들은 마검을 만드는 데에 투입이 됐었고, 그 말은 마검을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다는 뜻이리라.
만약 여기서 난 마검을 만들지 않았다고 발을 뺐으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놈이라 여겨 그냥 이 자리에서 죽게 놔뒀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놈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본좌는 자비롭다. 또한 너희의 억울함 역시 알고 있다. 너희들의 왕은 이미 벌을 받았고, 마검은 파괴 되었으며, 그 주인도 죽었다. 그러니 기회를 주겠다.”
드워프들이 눈빛을 반짝였다.
“일라이 왕국으로 너희를 데려갈 것인즉, 그곳에서 밤을 낮처럼 지내며 끊임없이 연구에 몰두하고 우리 왕국을 위해 장비를 만들어라. 너희가 연구하고 만든 장비들은 모두 악마를 퇴치하는 데에 쓰일 것이다.”
“오오······.”
“저희에게 작업장을 주시는 겁니까요?”
“그래. 할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요!”
“최고의 걸작을 만들어 드리겠습니다요!”
드워프들은 서로 부둥켜 안으며 살았다고 만세를 외쳐댔다.
하지만 기뻐하기는 이르다.
왕국에 들어가는 즉시, 쉬지 않고 작업장 안에서 굴리며 놈들을 부려 먹을 작정이기 때문이다.
* * *
“라일라칸 님!”
라일라칸이 돌아왔다는 소식에 기사들과 신하들이 그에게로 몰려갔다.
갑작스레 자리를 비우고 사라진 터라 성 안이 혼란스럽지 않았던가.
“어딜 다녀오시는 겁니까?”
“저희가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라일라칸은 잔잔한 미소로 대답했다.
“별일 아니었다. 잠시 볼 일이 있어서 다녀온 것일 뿐. 그리고 내가 너희를 놔두고 사라지기라도 할까 두려운 것이냐? 이 대륙이 위협 받고 있는 한, 내가 사라지는 일은 없다.”
“역시 라일라칸 님이십니다.”
“항상 당신만을 믿고 있습니다.”
“저희를 부디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런 라일라칸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
바로 칼라 왕국의 왕, 카르만이었다.
“······.”
라일라칸이 칼라 왕국으로 온 뒤로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여전히 카르만에게 충성하는 신하들이 있는 반면, 라일라칸에게 노골적으로 충성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라일라칸을 따르는 세력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였다.
“왕이시여.”
그런 기류는 단순히 카르만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오른팔이자 두뇌 역할을 하고 있는 제렌도 같은 것을 느꼈다.
“라일라칸을 따르는 세력이 너무 커지고 있습니다.”
“······.”
“지켜만 볼 작정이십니까?”
카르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라일라칸 님을 따르는 자들을 붙잡아 모조리 교수형에 처할까? 아니면 라일라칸 님과 싸워야 하는 것일까?”
“······.”
제렌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주변을 살피다 조용히 말했다.
“지금 당장 척을 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천천히 물밑 작업을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게 무슨 뜻이지?”
“라일라칸 주변으로 첩자들을 심어,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내는 것입니다. 만일 그가 왕조를 노린다면······.”
“그만.”
카르만은 제렌의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저분은 나의 조상이시다. 나는 저분의 핏줄이기도 하고. 그런데 나더러 저분의 뒤를 치라는 것이냐? 그리고 저분이 정녕 내 왕좌를 노릴 거라고 생각하느냐?”
“주군. 권력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아무리 자기 핏줄이라고 해도 권력 앞에서는 그저 썩어 빠진 뿌리일 뿐. 더군다나 라일라칸 님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지 않으셨습니까? 혈육의 정이 느껴지지도 않을 겁니다.”
제렌의 말이 구구절절 맞았으나, 카르만은 고개를 돌렸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무작정 적개심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하다. 오히려 저분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수도 있다. 일어나지도 않은 싸움을 벌이려고 하면 큰 위험이 따라올 수밖에 없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카르만은 마음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주군. 그러지 마시고······.”
바로 그때였다.
“여기 있었구나, 카르만.”
뒤에서 들리는 라일라칸의 목소리에 제렌은 화들짝 놀랐다.
언제 그가 가까이 왔는지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건 카르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분명 저 멀리 있었는데, 언제 여기까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온 것일까.
“오셨습니까.”
“그래. 내가 갑자기 말도 없이 나가서 적적했느냐?”
“······.”
“너한테 시킬 일이 있다, 카르만.”
라일라칸은 카르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가볍게 두드렸다.
“힘을 좀 쓸 줄 아는 기사단을 준비시켜라. 그들과 함께 갈 곳이 있다.”
“예?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그건······ 가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서둘러 채비를 하거라. 준비가 되는대로 바로 갈 예정이니.”
“······.”
라일라칸은 그리 말을 하고 카르만에게서 멀어졌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카르만은 가만히 쳐다보았다.
라일라칸은 이 왕국의 왕인 카르만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는 것이 말투에서 느껴졌다. 아무리 조상격이라고 해도 왕이라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조금이라도 존중을 해 줘야 하는 것이거늘.
라일라칸은 늘 제멋대로였고, 항상 명령하는 투로 카르만에게 말했다.
그래서일까.
카르만은 점점 라일라칸이 의심스러웠다.
정말 저자가 칼라 왕국을 위하는 것인지, 이 대륙을 위하는 것인지.
“제렌.”
카르만은 뒤에 있던 제렌을 불렀다.
“예, 왕이시여.”
“아까 네가 말한 것을 자세히 말해 보거라. 첩자를 심는다고 했던가?”
그러자 제렌이 더욱 가까이 다가와 대답했다.
“예. 제가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래. 내 귀는 열려 있다.”
제렌은 카르만이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린 것이 다행이라 여기며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바를 아낌 없이 털어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