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128화 (128/200)
  • 128화

    0.01초 소드마스터 128화 

    콰득-! 콰드득-!! 

    나의 염력이 저 바닥 끝까지 뚫을 기세로 카르펠을 짓눌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지 않은가. 

    이 엄청난 염력도 지속 시간이 끝나면 사라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내 허세는 이 힘이 영원할 것처럼 굴었다. 

    “악마의 힘을 빌려 본좌의 힘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 예나 지금이나 어리석구나, 카르펠.” 

    “우으읍-!” 

    놈은 지속 시간이 끝나기 무섭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기우뚱거리며 다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아슬란······. 크윽-.” 

    나는 망토를 과하게 펄럭이며 허리춤에 있는 검을 드러내 보였다. 

    “기회를 주마. 네가 가진 모든 힘으로 부딪혀 보거라.” 

    그러고는 병신 같은 허세를 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본좌가 단 일격으로 네놈의 처량한 인생을 끝내줄 터이니.” 

    “······!” 

    카르펠은 몸을 부르르 떨며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지금이 기회인 것일까. 

    저놈이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을 때 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일련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칼을 뽑아 검강을 날려 놈의 몸을 쪼개려고 할 때였다. 

    “그래.” 

    카르펠이 검은 마기로 가득한 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네 말대로 내 모든 걸 쏟아 부어 주겠다, 아슬란.” 

    겁을 먹고 물러날 법도 한데, 저놈은 동귀어진이라도 할 생각인 모양이다. 

    “하지만 고작 일격으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라! 이 목숨을 바쳐서 반드시 네놈을 죽이고 말 테니까!!” 

    콰아아아아-!! 

    치솟는 어마어마한 마기. 

    이 미친놈이 정말 나랑 같이 죽을 생각인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으고 있는 게 느껴졌다. 

    ‘잠깐. 이러면 나가리인데.’ 

    적당히 겁을 줘서 일단 물러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야 갑자기 포탈에 떨어진 플레임이 돌아올 때까지 시간을 벌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이놈은 그냥 여기서 자폭해 다 같이 죽자는 마인드인 것 같았다. 

    ‘사내새끼가 뭐 이리 포기가 빨라?’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하면 좋지? 

    일단 수호의 방패로 놈의 공격을 막아낸 다음에······. 

    “윽-!”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힘을 끌어모으던 카르펠이 갑자기 신음을 토해내며 몸을 비틀거렸다. 

    그러고는 자신이 들고 있던 검에게 소리쳤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주인인 나를 먹으려 들어!?” 

    그러자 마검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천지를 울리는 음성이 들려왔다. 

    [네놈은 터무니없이 약하군. 고작 한다는 게 자기 목숨을 버려서 상대를 죽이는 것이냐?] 

    “뭐야?!” 

    [난 오직 강한 자만을 주인으로 삼는다. 그리고 방금 난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닥쳐라! 네 주인은 바로 나야! 내가 이렇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누구한테 간다는 것이냐?” 

    [크큭. 살아 있다고? 네가?] 

    “!?” 

    마검은 카르펠의 몸에 담겨 있는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 그만!” 

    카르펠은 마검을 떨쳐내려고 했으나, 한번 달라붙은 것을 털어내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이미 넌 내게 모든 걸 바친 몸이다. 주인이면 주인답게 검을 사용했어야지. 검에게 모든 것을 바친 놈이 과연 주인이라 할 수 있느냐? 이제까지 내가 너에게 준 힘을 전부 가져가겠다.] 

    “아, 안 돼! 멈춰! 내가 네 주인이란 말이다!” 

    [더는 아니야.] 

    “으아아악!” 

    콰아아아아-!! 

    마검에 의해 카르펠의 힘이 빨려 들어가면서 놈의 형체가 점점 일그러지고 있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몸통이 찌그러져 가고, 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마지막에 남은 것이라고는 손으로 툭 건들면 부서져 내릴 것만 같은 살가죽과 뼈대뿐이었다. 

    “······.” 

    마검의 주인, 카르펠의 허무한 최후였다. 

    웅장하게 뻗쳐 있던 그의 날개도 깃털을 잃고 뼛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다. 

    ‘이, 이건 또 뭔 시츄에이션이여.’ 

    황당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검이 주인을 집어삼키다니. 

    그럼 이제 다 끝난 건가? 

    [아슬란.] 

    아니. 아직 끝이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시작일지도. 

    [내게 손을 뻗어라. 너의 힘이 되어 주겠다.] 

    마검이 내게 말하고 있었다. 

    놈의 붉은 눈동자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 모든 풍경이 검게 물들고 오직 나와 마검만이 어느 아공간에 있는 것만 같았다. 

    [카르펠은 내가 공을 들여 키운 놈이다. 그런데 너는 놈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제압했지. 나는 이 대륙 최강의 검. 최강은 최강을 알아보는 법. 그러니 당연히 대륙 최강자가 최강의 검을 갖는 것이 맞다.] 

    내가 볼 때 저놈은 사람 보는 눈이 없는 것 같다. 

    [나와 함께한다면 그동안 가지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 힘을 갖게 해 주겠다. 그 누구도 너를 대적할 수 없을 것이며, 너는 영원히 최강으로 군림하게 될 것이다.] 

    문제는 저 마검의 목소리가 내 머리를 파고들어 정신을 흔들어 놓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허세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어서 쉽사리 뚫릴 일은 없겠지만, 그 유혹의 목소리에 점점 몸이 이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검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지금까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여러 마검을 만나봤다. 

    하지만 대부분이 쓸모없는 것들이라 그냥 무시했는데, 저건 달랐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카르펠을 괴물로 만들어 버릴 만큼 분명 붙어 있는 옵션과 증가하는 스텟양이 엄청나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설마 이 아슬란의 개똥 같은 스텟도······. 

    [감히-] 

    바로 그때였다. 

    [검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운 더러운 잡종이 입을 놀리는 것이냐?] 

    처음 들어보는 새로운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대체 누가 말을 하는 거지? 

    나는 허리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검의 공명에 밑을 내려다보았다. 

    설마 너냐? 

    [가소롭구나.] 

    그동안 내가 수백 번이나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었던 놈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근엄하고 위엄 넘치는 목소리로 마검을 다그치고 있었다. 

    [뭣이? 아슬란에게는 너 같은 철쪼가리가 어울리지 않는다. 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지 않느냐!] 

    뭐······. 마검이 딱히 틀린 말을 한 거 같진 않습니다만. 

    [최강에게는 최강의 검이 어울린다. 너 같은 철쪼가리는 내가 단숨에 쪼개 없애 주지.] 

    마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가 스멀스멀 모형을 갖추더니, 두 뿔이 달린 마귀의 형태로 변하였다. 

    저건 좀 징그러운 거 같은데. 

    [어리석구나. 그러니 네가 잡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 검은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놈을 신랄하게 까내렸다. 

    [너는 주인을 조종하고 삼키려 들지만, 나는 오직 주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최강의 검은 오직 최강자의 뜻에 따르는 것이다.] 

    [뭐야?] 

    [검은 검이었을 때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너는 이미 그 틀을 한참이나 벗어났다.] 

    그러면서 내 검이 강한 진동을 일으키며 스스로 검집에서 빠져나와 내 앞에 두둥실 떠다녔다. 

    [주인.] 

    그 강렬한 음성이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그대의 힘은 나의 힘. 나의 힘은 곧 그대의 힘.] 

    그리고 나는 보았다. 

    검과 내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우리 둘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 검의 강한 의지가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는 건 확실했다. 

    [나를 잡아라. 그리고 눈앞에 있는 너의 적을 베어라.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너를 위해 쓰겠다.] 

    나는 그 의지의 부름에 따라 검을 붙잡았다. 

    이제껏 느낄 수 없었던 강력한 기운이 내 몸 안에 흘러넘쳤다. 

    [이 어리석은!] 

    마검은 그런 나를 향해 소리쳤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구나. 아슬란. 네놈의 선택은 틀렸다! 최강자가 되고 싶었다면 나를 붙잡았어야지!] 

    하지만 내 검의 목소리가 더욱더 크게 울리고 있었다. 

    [틀린 것은 너다.] 

    [뭐?] 

    [보아라. 마검이여. 이미 내 주인은······.] 

    나는 허세처럼 그 강렬한 끓어오름을 주체하지 못하며 천천히 그 힘에 따라 검을 휘둘렀다. 

    [이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은 최강이다.] 

    바로 그 순간. 

    콰직-!! 

    [······!?] 

    검은 마기와 찬란한 빛이 한 데 섞인 검강이 솟구쳐 나가면서 허공에 떠있던 검을 베고 지나갔다. 

    마검은 반으로 갈라져 어스러진 마기를 흐트려 놓았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나는 결코 파괴할 수 없는 검이거늘······!] 

    그 말에 내 허세가 목구멍으로 차올랐다. 

    “이 세상에서 본좌가 베지 못할 것은 없다. 그건 너 역시 마찬가지다.” 

    [크크······. 그런 것인가?] 

    짧은 웃음 소리가 지난 뒤, 온통 검게 물들어 있던 세상이 유리창에 금이 가듯 깨지면서 사라졌고 나는 번뜩 정신을 차렸다. 

    “······?” 

    주변을 바라보니,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분명 방금 전까지 난 검을 들고 있었는데, 내 검은 허리춤에 잠잠이 있었다. 

    또한 마검은 여전히 허공에 떠 있기만 했다. 

    환상을 본 것인가? 

    아니면······. 

    쩌적-! 쩌억-! 

    그런데 마검이 썩어 버린 나뭇가지처럼 바스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음성이 마지막으로 들려왔다. 

    [지켜보겠다, 아슬란. 너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마검은 가루가 되어 허공에 흩날렸고, 그 안에 박혀 있던 붉은 보석이 천천히 내 앞으로 날아와 손바닥 위로 사뿐이 내려앉았다. 

    [태초의 보석 - 갈망]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다만, 정말 이 보석이 마검에 박혀 있었다니. 

    드워프 이놈들이 설마 이걸로 무기를 만들 줄은 몰랐다. 

    이제까지 한번도 드워프가 이 위험천만한 보석으로 무기를 만드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인 이 보석을 애지중지하며 숭배하기까지 하니까. 

    ‘이것이 라일라칸과 같은 괴물들을 상대로 쓸 수 있는 보석.’ 

    물론, 이 보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라일라칸에 버금가는 놈들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의 마지막 발악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거기다 내게는 라일라칸이 있으니, 이 보석을 쓸 일도 없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이 보석을 써야 한다는 건 그만큼 목숨이 위험하다는 뜻이니. 

    “왕이시여!” 

    “아슬란 님!”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일단 보석을 안에 넣어 두었다. 

    이 게임을 엔딩까지 달리면서 절대 쓸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카르펠은······. 아니?!” 

    부하들은 그제서야 카르펠의 시체를 보게 되었다.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린 그의 몸뚱이에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면서 힐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보아하니, 내가 카르펠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카르펠이 날뛰면서 내 뒤에 있던 수비대까지 한꺼번에 날아가 버리는 바람에 나와 카르펠 단둘만 이곳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카르펠은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그 대가를 치렀을 뿐.” 

    그러자 아론이 거들며 나섰다. 

    “맞습니다. 감히 아슬란 님에게 단독으로 덤비는 선택을 하다니. 그의 어리석은 선택이 결국 죽음으로 이르렀군요.” 

    아니. 그런 뜻으로 말한 건 아닌데. 

    “과연 아슬란 님이십니다. 그토록 자비로우시고 은총이 많으신 당신께서, 감히 당신의 힘에 반기를 드는 카르펠에게 그 진노를 보이셨군요.” 

    “오오-.” 

    “과연 우리의 왕이시로다.” 

    아론은 기사들과 함께 내게 예를 표하며 말했다. 

    “이로써 온 대륙이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의 힘을 의심하고 대적하는 순간, 하늘의 진노가 내려쳐 대륙이 갈라지고,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는 것을!” 

    “······.” 

    그쯤 하면 됐다, 아론아. 

    지금껏 내가 여러 허세를 겪어 봤지만, 저런 다른 종류였다. 

    더 소름이 돋는다고 해야 할까. 

    “군을 정비해라. 감히 이런 짓거리를 벌인 드워프들을 벌할 것이다.” 

    “예!” 

    나는 일단 아론에게 할 일을 던져 주고 얼른 내게서 멀어지게 했다. 

    더는 녀석의 말을 못 들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놈은 대체 뭐야?’ 

    나는 허리춤에 있던 검을 매만졌다. 

    그 무시무시한 마검 앞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을 최강이라 자부하던 놈이지 않았던가.

    진짜 이놈이 사실은 최강의 검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이. 또 말을 안 할 셈이냐?’ 

    [······.] 

    웃긴 놈일세. 

    아까는 뭐 내 힘은 어쩌구 지 힘은 어쩌구 지껄이던 놈이 부끄러운 건지 아니면 그냥 무시하는 건지 또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래. 네 좋을 대로 해라.’ 

    이제 더는 나도 말을 걸고 싶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며 이 답답한 놈에게서 신경을 끄려고 했는데-. 

    [찬란한 베라크 보검에 새로운 옵션이 개방되었습니다!] 

    “······?” 

    [찬란한 베라크의 보검] 

    -검과 주인이 강한 정신력으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병적인 허세를 공유합니다.) 

    -히든 옵션, ‘검의 포효’를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단, 검의 포효는 시전자의 힘에 비례합니다.) 

    새로 개방된 검의 옵션. 

    그것도 광역 스킬 중 하나로 알려진 검의 포효를 사용할 수 있다니! 

    하지만 그중에서 한 가지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 검이 아슬란의 병적인 허세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아까 내가 검과 연결되어 있다고 느낀 것도······.’ 

    최강 어쩌고 지껄인 것도 전부- 

    ‘허세였던 거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