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화
0.01초 소드마스터 127화
쿠쿵-!!
찰나의 괴력으로 던진 아란의 창은 쭉 뻗어 나가 방어막에 꽂혔다.
이윽고 그것이 폭발하자 방어막과 성벽이 동시에 무너져 내렸다.
“우와아아아-!!”
그것을 보고 기사단은 크게 함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그걸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 아니. 드래곤도 하나 있었다.
“윽. 갑자기 안 좋은 기억이······.”
플레임은 그날 레어가 내 손에 박살난 트라우마가 떠올랐는지 머리를 매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손을 높이 들고는 짧고 간결하게 기사단을 향해 말했다.
“진격.”
그러자 기사단이 어마어마한 함성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일라이 왕국을 위하여!!”
“아슬란 님을 위하여!!”
기사단은 맹렬한 속도로 돌진했다.
하지만 성벽을 부쉈다고 해서 끝난 것이 아니다.
놈들이 성벽 밖으로 온갖 함정을 설치해 두지 않았던가.
시커먼 구덩이에서 흑마법으로 탄생한 악마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고, 그중에는 충분히 기사단의 진격을 멈출 수 있는 거대한 몸통을 가진 악마도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촤아아악-!!
가장 먼저 선두에 달리던 아론이 함정에서 튀어나온 악마들을 화려한 검술로 처단했고, 그 뒤를 따르는 알렉산더도 보조했다.
또한 이미 하늘 위를 거의 비행하다시피 뛰어다니고 있던 레바노스가 대검을 던지자 함정에서 나오는 악마마다 그 자리에서 펑펑 터져 버렸다.
‘그래. 이게 군대지.’
네임드들이 앞장서서 골칫거리를 먼저 해결해 주면 중갑병은 거칠 것 없이 돌격한다. 그렇게 그들은 큰 어려움 없이 부서진 성벽까지 다다랐다.
“크오오오!!”
그곳에도 온갖 괴물들이 득실거렸지만,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던 기사단은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사방에서 그들의 진격을 막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전부 죽여라!!”
“아슬란 님의 명예를 위하여!!”
우리 기사단은 그리 쉽게 꺾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칼루탄 랜스로 무장하고, 또한 온몸을 중갑으로 방어하고 있어서 몬스터들이 달려들어 상처를 내려고 해도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나가떨어졌다.
더군다나 후방에서도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퍼퍼펑-!!
후방에 있는 투석기가 성수를 날려 보내며 그것들이 공중에서 폭발하자 악마들은 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끼며 몸부림을 쳤다.
성수는 악마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공격이기 때문이다.
“위대하신 아슬란 님의 축복이다!”
“모두 아슬란 님의 은총을 받으며 싸워라!”
그에 반해 기사단은 성수를 온몸에 적시고 입으로 그것을 마시며 더욱 사기를 드높였다. 그 가운데에는 아론의 광적인 선동이 함께 했다.
“나도 가서 날뛰고 오면 안 되나?”
플레임은 몸이 근질거린다는 듯 말했다.
“그냥 여기 있거라.”
“왜? 내가 가서 싸우면 순식간에 다 쓸어 버릴 수 있을 텐데.”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쩝.”
플레임을 보낸다면 당연히 더 수월하게 놈들을 쓸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레임을 내 곁에 두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아직 그놈이 나서지 않았잖아.’
이 모든 사태를 일으킨 마검의 주인, 카르펠.
놈이 아직 전투에 나서지 않았다.
그리고 놈이 나서게 된다면 전쟁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도 몰랐다.
만약 놈이 저들과 싸우기를 거부하고 내 목숨을 앗아가고자 이곳으로 달려온다면?
‘그땐 플레임을 고기 방패로 세워야지.’
그것이 내 완벽한 계획이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 소름 돋게.”
플레임은 뭔가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몸을 들썩거렸다.
하지만 눈치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미 플레임은 내 완벽한 계획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 * *
“이런. 역시 아슬란의 군대는 강하군요. 가히 최강이 이끄는 군대답습니다.”
테르카나의 말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으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일라이 왕국은 과연 강했다.
아슬란이 창을 던져 방어막과 성벽을 동시에 부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고, 일라이 왕국의 기사단이 저토록 강할 거라는 것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카르펠은 짙게 숨을 내쉬며 검을 붙잡았다.
“테르카나.”
“예, 말씀하십시오.”
“일단 여기 밑에 있는 놈들을 대충 처리하고 나서 나는 곧장 아슬란에게 달려갈 것이다. 최대한 방해꾼이 없으면 한다.”
“방해꾼이라면······. 저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드래곤을 말씀하시는 거겠군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벽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는 완전히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악마 군단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아슬란 군대에 의해 유린을 당하고 있었으며, 이대로 가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할 것처럼 보였다.
카르펠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이런 쓸모없는 놈들.”
그때 그를 향해 중갑 기마대가 다가왔다.
그들이 날린 랜스 마법탄이 카르펠에게 일제히 적중했다.
“고작 이딴 걸로 날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하지만 카르펠을 쓰러뜨리기에는 한참 부족한 화력이었다.
그는 가볍게 칼을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검강이 뿜어져 나가며 마주 오던 기마대를 한꺼번에 쓸어 버렸다.
“흐아아압-!!”
검강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 뿌연 연기가 가득했으나, 곧 우렁찬 함성과 함께 그것을 가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일라이 왕국의 대기사단장 아론이었다.
그의 뒤로 알렉산더가 함께 있었다.
채앵-!!
아론과 알렉산더가 서로 협력하여 카르펠에게 파상공세를 펼쳤다.
이들의 화려하고 뛰어난 검술에 카르펠의 몸에 검상이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들이!”
화가 머리끝까지 난 카르펠은 마검을 높이 들어 주변에 있던 악마의 시체와 기사단의 시체를 모조리 흡수했다.
그러고는 강렬한 마기를 뿜어내며 그의 등 뒤로 검은 촉수 같은 것이 튀어 나왔다.
두 개의 팔, 그리고 네 개의 검은 촉수.
그 흉측하고 위협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카르펠이 손을 뻗었다.
그러자 촉수가 아론과 알렉산더를 공격하고, 그 뒤에 있던 기사단까지 덮치며 그들의 몸을 찔렀다.
“여기서 전부 죽여 주마.”
마검으로는 검강을 토해내고, 한 손으로는 마기로 가득한 화염을 뿜어낸다.
또한 촉수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기사들의 몸을 찌르고 쪼갰다.
감히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는 카르펠의 무시무시한 힘에 기사단이 주춤거리고 있을때였다.
스걱-!!
마법탄을 발사해도, 칼로 찌르고 성수를 부어도 꿈쩍하지 않던 촉수가 잘려나갔다.
카르펠은 감히 자신의 촉수를 자른 자가 누구인지 바라보았다.
“레바노스.”
대륙의 10대 소드마스터 중 하나이자, 방랑자로 불렸던 남자.
“하지만 지금은 아슬란의 개가 되었구나. 그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말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신 분이지. 그분의 힘을 한번이라도 마주한다면 누구나 그렇게 느낄 것이다.”
“흐흐. 그래. 그렇다면 내가 놈의 목을 베어 너희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게 해주겠다.”
“꿈도 크구나.”
콰아앙-!!
레바노스와 카르펠이 충돌하면서 사방으로 파공음이 퍼져 나갔다.
아론과 알렉산더가 나서서 레바노스를 도왔지만, 벌써 잘려나간 촉수를 재생시킨 카르펠은 단신의 몸으로 이들의 공격을 전부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다가는 고립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크오오오-!!”
그가 포효하며 마기를 사방에 퍼뜨렸다.
그러자 일라이 왕국 기사단에 짓눌려 주춤거리던 악마 군단이 다시 힘을 되찾으며 기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이놈들이!”
“막아라!”
다시 한번 이곳은 기사들과 악마들이 섞인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카르펠은 그 기회를 노려 레바노스에게 달려가 그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그러고는 발길질을 날려 그를 저 성벽에 처박았다.
이대로 레바노스와 결판을 낼 수도 있지만,
“······.”
지금 카르펠의 눈에는 레바노스가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그의 눈에 담겨 있는 것은 저 뒤에서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아슬란이었다.
파앗-!!
그는 번쩍 날아올라 아슬란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그 앞에 착지하며 지독한 마기를 뿜어냈다.
“아슬란. 결판을 낼 때가 되었다.”
그런 카르펠의 말에 플레임이 콧방귀를 뀌었다.
“이제 내가 나설 차례인가? 넌 이제 뒤졌어.”
플레임은 몸을 가볍게 풀며 드래곤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런데,
“응?”
갑자기 발밑으로 포탈이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으에에에엑~!”
그대로 플레임은 포탈에 빠져 버렸고, 그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포탈이 닫혀 버렸다.
“······.”
잠시 정적이 흘렀다.
카르펠은 비웃음 젖은 입가로 말했다.
“방해꾼은 사라졌군.”
테르카나가 명령을 아주 잘 수행해 주었다.
그 덕분에 카르펠은 아슬란과 단둘이 남게 됐다.
“그 잘난 말 위에서 내려오너라, 아슬란.”
아슬란은 그런 카르펠을 거만하게 내려다보았다.
“건방지구나.”
카르펠이 지독한 마기를 뿜어내고 있는데도 아슬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네놈의 실력으로는 본좌를 말 위에서 내리게 할 수 없다.”
“흐흐. 끝까지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하지만 그런 오만함도 이제는······. 음?”
그때 뒤에서 세차게 날아오는 대검이 카르펠을 덮쳤다.
“감히 그분에게 다가갈 수 없다!”
“레바노스! 또 방해하는 것이냐!”
카르펠은 역정을 내며 레바노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재빠른 몸놀림과 자유자재로 대검을 다루던 레바노스는 카르펠의 몸을 여러 차레 베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콰직-!
“크헉!”
그의 가슴 정중앙을 대검으로 꿰뚫기까지 했다.
“죽어라. 기사의 명예도 모르는 이 더러운 놈.”
하지만 카르펠은 아직 웃음을 잃지 않고 있었다.
“기사의 명예라고 했느냐?”
치이이익-
그의 가슴에 박아 넣은 레바노스의 대검이 검게 물들어가며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
레바노스는 얼른 대검을 뽑아 뒤로 물러났다.
만약 계속 자리를 유지했었으면 저 마기에 의해 잡아 먹혔을지도 모른다.
“기사의 명예란 힘을 끝없이 갈구하는 것이다. 그러니 똑똑히 지켜보거라. 힘을 향한 나의 갈망이 얼마나 큰지를!”
마검이 번뜩이며 붉은빛을 발했다.
그리고 소용돌이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처럼 몰아치더니, 저 성에서 싸우고 있는 몬스터들과 악마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캬오오오-!”
그것들은 몸부림을 치면서 저항했지만, 한번 시작된 흡수는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마검에 강제로 끌려 들어갔다.
“이게 무슨······.”
그 충격적인 광경에 레바노스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콰득-! 콰드득-!!
카르펠의 등 뒤로 검은 날개가 하나씩 뻗어 나왔다.
촉수에 이어 이번에는 검은 날개라.
그 흉측함에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크하하하!!”
모든 악마 군단을 흡수해 자신의 힘으로 삼은 카르펠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 소리에도 어마어마한 마기가 실려 있었다.
그는 주체할 수 없는 힘에 취하며 소리쳤다.
“그래. 바로 이 힘이다. 이 정도 힘이라면 라할이 온다고 해도 이 몸을 막을 수 없다!”
레바노스는 몸이 떨려왔다.
카르펠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무시무시하다는 걸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저 웃음만 터트렸을 뿐인데도, 그 안에서 새어 나오는 힘에 의해 몸이 마비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일까.
푸욱-!
“크악!”
카르펠이 달려와 날개로 자신의 몸을 찌르는 순간에도 레바노스는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이제 저 뒤에서 네놈의 주인이 어떻게 죽는지 잘 지켜보거라.”
“크으읍-”
카르펠은 날개에 꽂힌 레바노스의 몸을 높이 든 뒤 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아슬란.”
그는 천천히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보이느냐? 이것이 바로 신의 힘이다! 네놈 따위는 이제 내 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죽일 수가 있다! 크하하하!!”
마음껏 힘을 발산하던 카르펠은 아슬란을 철저히 짓밟아 버릴 심산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히-”
아슬란은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한시도 허공에 떠 있는 카르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나를 내려다보며 말을 하다니.”
“······?”
“무엄하구나.”
바로 그 순간.
콰아앙-!!
“!?”
허공에 떠 있던 카르펠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이, 이게 무, 무슨······!”
카르펠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했으나,
콰아앙-!!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어마어마한 힘에 감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잊지 말거라.”
그리고 그의 뒤통수에 무심한 시선이 꽂혔다.
“그곳이 바로 너의 자리다, 카르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