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화
0.01초 소드마스터 126화
“출진하라!!”
“일라이 왕국의 영광을 위해!!”
“우리의 왕, 아슬란 님을 위해!!”
“승리를!!”
일라이 왕국은 에인소프 왕국의 만행을 온 대륙에 알리고 전쟁을 선포했다.
원래 전쟁은 보급과 명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던가.
그런 현실성은 이 게임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다.
명분 없이 싸우게 될 경우, 제 아무리 강대한 왕국이라 해도 군사들의 사기가 바닥을 치게 되며, 반란 위험도 높아진다.
또한 보급 역시 군의 강함과 별개로 제때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큰 타격을 입게 된다. 하지만 우리 군은,
‘두 가지 모두를 충족했지.’
샤를렌 가문을 통해 활발한 무역을 해오면서 곳곳에 무역로가 뚫렸고, 무역로를 지나는 상인들을 보호하고자 만든 전초 기지들이 보급 역할을 하면서 우리 군은 보급에 쪼달릴 일이 없었다.
또한 에인소프 왕국의 왕, 카르펠이 마검의 주인이 되고, 그가 이끄는 악마 군단이 대륙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명분도 가지게 되었다.
내가 빛의 기사로 인정을 받으면서 악마를 처단하는 일은 일라이 왕국에게도 사명처럼 여겨지는 일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이처럼 군사들의 사기가 높은 것이었다.
“빛이 우리와 함께한다!”
“아슬란 님이 곧 빛이시다!”
“우오오오-!!”
그리고 무엇보다 이들의 사기가 높은 데에는 아론의 결정적인 역할도 있었다.
사이비 종교처럼 나를 숭배하는 신도들을 모으고, 또 포섭을 해오던 아론은 어느새 기사단 전체를 아슬란교로 끌어들였다.
그래서 아론이 한번 선동을 하기 시작하면 이 광신도들은 내 이름을 외치며 불구덩이에 뛰쳐 들어갈 만큼의 수준이 되었다.
“빛의 이름으로!!”
“아슬란 님의 이름으로!!”
행군하는 내내 군사들을 독려하며 내 이름을 드높이고 있던 아론.
나는 그런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무서운 놈.’
병사들의 사기를 올려 주는 건 고맙다만, 왜인지 무서운 기분도 들었다.
저것이 종교의 광기란 말인가?
어쩌다 우리 군이 광신도 집단으로 변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겉으로 티를 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렇게 군사들이 모여 있을 땐 늘 팔짱을 낀 채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선봉에 서기 때문이다.
어떠한 마법적인 보호도, 군사들의 경호 역시 없다.
화살이라도 한 발 날아오면 죽기 딱 좋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나아갔다.
푸르르~!!
이놈의 말 새끼도 똑같이 허세에 전염되어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제일 뛰어난 명마가 되어 앞발을 내딛는다.
“왕이시여. 이제 곧 루에스 마을입니다.”
루에스 마을은 에인소프 왕국의 영토 중 하나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마을이었다.
거기서부터 수비군이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
루에스 마을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쥐새끼 한 마리 보이지가 않았고, 습격을 받았는지 마을 곳곳이 망가져 있었다.
“정찰병을 보내라.”
“예.”
중갑을 착용한 정찰병들이 먼저 마을로 들어가 주변을 수색했다.
이윽고 그들이 내게 달려와 보고했다.
“마을에 아무도 없습니다.”
“확실한가?”
“예.”
누가 여기를 공격한 거지?
설마 카르펠 이 미친놈이 자기가 다스리는 영토를 공격하기라도 했나?
일단 마을에 아무도 없다고 하니, 나는 경각심을 누그러뜨리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런데,
쿠웅-!
불길한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이 마을 중앙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저런 게 나오면 보통 무언가가 땅 밑에서 솟구쳐 올라오던데.
콰콱-! 콰콰콱-!!
과연 다년간 단련된 나의 게임 빅데이터에 따라 흉측한 몬스터들이 땅 위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적이다!!”
“모두 전투 준비!!”
기사들은 갑작스럽게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몬스터 군단을 보고 당황하며 재빨리 방어 태세에 들어갔다.
“모두 당황하지 마라.”
그때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라파엘.”
“네?”
“새로운 발명품을 실전에서 쓸 때가 온 거 같군.”
그러자 라파엘은 무슨 뜻인지 알겠다는 듯 군사들의 행렬 사이에 끼어 있던 마법사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미리 챙겨 두고 있던 알브레늄을 꺼낸 뒤 간격을 맞춰 바닥에 올려 두었다.
라파엘은 눈을 감은 뒤 짧은 주문을 외웠다.
촤아아아-!!
그 주문에 반응한 알브레늄들이 주황빛을 번쩍이며 서로 연결되더니, 곧 둥근 원형의 방어막을 만들어냈다.
“캬오오오!!”
쿵-! 쿠쿵-!!
미친 듯이 달려오던 몬스터 군단은 우리 군 주변으로 펼쳐진 방어막과 부딪혔다.
알브레늄의 단단한 내구성을 뚫지 못하고 있던 놈들은 억지로 몸을 비비며 어떻게든 방어막을 뚫으려고 했다.
그러나 간신히 몸을 비벼 방어막을 뚫었어도 그 힘에 몸이 전부 타 버리거나, 아니면 몸통의 절반만 간신히 넘어갈 수가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알브레늄의 능력이었다.
저 강력한 방어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지만 이렇게 방어막만 펼치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랜스병 앞으로!”
“오오-!”
아론을 포함한 기사단장들의 지휘에 맞춰 랜스병들이 방어막 앞에 섰다.
그리고 그들이 쭉 창을 앞에 내밀며 조준을 마쳤다.
라파엘은 내게 고개를 돌렸다.
명령을 내려달라는 그녀의 눈동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착-!
방어막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무식하게 앞으로 밀기만 하던 몬스터 군단이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그 기회를 우리 군이 놓칠 리 없었다.
“발포!”
콰콰콰쾅-!!
랜스병들이 마법탄을 발포하자 사방에서 검은 피가 솟구쳤다.
모두 저 흉측한 몬스터 군단을 터트리면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연이어 발포되는 랜스의 마법탄에 의해 잔뜩 몰려 있던 몬스터 군단은 우리 기사단을 건드리지도 못한 채 터져 나갔다.
그로 인해 정말 순식간에 그 많던 몬스터 군단 대다수가 죽어 버렸다.
나는 그 속 시원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박수를 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진짜 사기긴 하다.’
이것이 나의 자랑스러운 군대구나.
특히 칼루탄 랜스와 알브레늄의 방어막이 만들어내는 합작은 가히 예술이었다.
실제로 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되면 사기적인 조합을 꼽는 것이 있는데, 바로 칼루탄과 알브레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늘 컴퓨터 화면으로 봐왔지, 실제로 보게 된 건 처음이라 그 엄청난 파괴력과 효용성을 보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제법.”
이놈의 허세 때문에 그 기쁨을 온전히 겉으로 표현하진 못했다.
“우와아아아-!!”
“우리의 승리다!!”
그에 반해 기사들은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난 그들에게 핀잔을 주듯 말했다.
“고작 이따위 승리에 함성을 지르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계속 진격한다.”
“예!!”
그렇게 여러 마을과 성을 지났다.
방금 전 마을과 똑같이 그곳들도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고, 아까처럼 몬스터 군단이 우리를 공격하는 일도 없었다.
마치 방금 전 그건 환영 인사였다는 듯이 말이다.
“왕이시여. 저곳입니다. 저곳이 바로 에인소프 왕국의 수도, 리레프 성입니다.”
지독한 마기를 내뿜고 있는 리레프 성.
다른 곳들과는 확실히 겉모습부터가 달라 보였다.
찬란한 대도시의 모습이 아닌, 누가 봐도 악마들에 의해 잡아 먹혀 버린 도시라고 해야 할까.
더군다나,
“저 성벽을 잘 보세요. 악마들의 마법이 씌워져 있어요. 성벽 주변 바닥들도 그렇고요.”
놈들은 나를 막고자 철저히 대비한 것이 느껴졌다.
성벽 주변으로 검은 바닥에 흑마법이 깔려 있었고, 성벽 역시 검은 마법으로 떡칠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또한 성벽 위에 악마들이 잔뜩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검의 주인 카르펠이 테키나 족속과 한패라는 것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광경이리라.
‘생각보다 빡세겠는데.’
저 정도로 두꺼운 방어벽을 쌓고 있을 줄이야.
흥분해서 먼저 우리한테 쳐들어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나름 방어도 할 줄 안다는 건가?
“아론.”
“예, 왕이시여.”
“너의 본분이 무엇인지 알겠지.”
나는 옆에 있던 아론을 쳐다보며 말했다.
“본좌가 칼을 뽑는 일이 없도록 하거라.”
왜냐하면 난 저기서 싸울 생각이 요만큼도 없거든.
괜히 잘못 휘말렸다가 악마들의 밥이 되고 싶지 않았다.
“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뒷짐만 지며 구경할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이들에게 활로를 열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오랜만에 꺼내서 쓰는 거 같네.’
나는 손을 펼쳐 아란의 창을 소환했다.
[아아. 주인. 너무나도 오래 기달렸어. 한번만······. 제발 한번만 더 나를 던져줘. 이 몸이 다 부셔져 버릴 정도로 세게.]
“······.”
내가 이놈을 지금까지 안 꺼낸 이유가 있었다.
다시 집어넣을까 싶었지만, 지금은 놈의 힘이 필요한 때이지 않은가.
‘원하는 대로 해줄 테니까 입 좀 닥쳐. 다시 집어넣기 전에.’
[읍-!]
나는 아란의 창을 꽉 붙잡았다.
저번에도 느낀 거지만, 그립감 하나는 뛰어난 녀석이었다.
그러고는 저 먼 성벽을 향해 찰나의 괴력으로 냅다 놈을 던져 버렸다.
[으아아아~! 바로 이거야!!]
아란의 창이 내뱉는 행복한 비명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 * *
“왔군. 아슬란.”
일라이 왕국이 에인소프 왕국을 향해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을 듣고 카르펠은 이곳을 완벽한 방어 시설로 만들었다.
다른 마을과 성에 있던 사람들은 대다수 마검에 의해 흡수되거나, 혹은 몬스터 군단으로 변모하여 사실상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카르펠은 몬스터 군단 하나만 마을에 남겨 두고 나머지는 전부 이 성으로 데려왔다.
거기다 테르카나가 악마들을 데리고 와 이곳에 주둔시키면서 곳곳에 함정을 설치하고 방어 마법을 펼쳤다.
그야말로 아주 완벽한 방어 기지가 된 것이었다.
“저는 왕께서 흥분하여 아슬란을 당장 공격하러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런 테르카나의 말에 카르펠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놈이 오겠다는데, 굳이 내가 먼저 나갈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일라이 왕국의 군대가 강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저놈들을 먼저 꺾어 버릴 필요가 있어. 최강이라 여기던 군대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절망하는 아슬란을 천천히 죽여 주는 것이 더 통쾌하지 않겠느냐? 크크.”
그 작은 웃음소리에도 살벌한 마기가 퍼져 나온다.
에인소프 왕국에 있는 백성들과 신하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먹은 카르펠은 그 힘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테르카나도 위협을 느낄 정도의 강함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할 만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절로 들었다.
“테르카나. 네놈의 목적은 잘 알고 있다.”
“그렇습니까?”
“나를 이용해 테키나 족속으로 하여금 이 대륙을 집어삼키려는 것이겠지. 뭐, 마음에 들진 않지만, 내가 허락을 해주지. 아슬란을 죽인 뒤, 나는 곧바로 일라이 왕국으로 진격할 것이다. 그 이후에도 다른 왕국들을 침공할 것이고. 테키나 족속은 알아서 내 뒤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
그 말에 테르카나는 입꼬리를 씰룩였다.
카르펠은 한 가지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자신은 단순히 테키나 족속으로 하여금 이 대륙을 점령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바로 저 멀리서 붉은 망토를 펄럭이고 있는 아슬란 쪽이었다.
그런데······.
“음?”
무언가 아슬란 쪽에서 날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저게 뭐지?”
테르카나에 이어 카르펠도 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사라진 정체불명의 물체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쐐애애애액-!!
바람을 가르는 어마어마한 소리와 함께 창 하나가 성벽에 꽂혔다.
쿠우우우웅-!!
그 진동이 온몸에 느껴질 정도로 강력한 충돌이었으나, 그 창이 방어막을 부숴 놓진 못했다.
카르펠은 곧 비웃음을 지었다.
“멍청한 놈. 테키나 족속의 방어 마법은 최고라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고작 창 하나로 여기를······.”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직-! 콰드득-!
방어막에 일어나는 균열이 점점 넓게 퍼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콰아아아앙-!!
창이 크게 폭발하면서 방어막이 무너졌다.
또한 그 뒤에 있던 성벽 역시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캬오오오!!”
성벽 한 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면서 악마들이 그 밑에 파묻혀 버렸다.
“저, 저게 무슨······!”
저 두꺼운 방어 마법을 창 하나로 뚫은 것도 어이가 없는데, 그 뒤에 있던 성벽까지 와르르 무너져 내리다니.
카르펠은 황당한 기함을 터트렸다.
그리고,
“돌격하라!!”
“우와아아아-!!”
잠잠하던 일라이 왕국의 기사단이 맹렬하게 돌진하기 시작했다.
“아슬란······.”
카르펠은 이를 뿌득 갈며 오늘도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말 위에 있는 아슬란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