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0.01초 소드마스터 124화
플레임과 함께 공간 이동으로 오메르 왕국 근처에 도착한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이게 또 다 뭔 일이야?’
하늘에서 신성한 기둥과 함께 떨어진 나와 플레임에게 어그로가 끌린 악마들.
아니. 악마라고 하는 것이 맞을까.
놈들은 내가 이제껏 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단 한번도 본적이 없는 흉측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팔인지 다리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것들이 여섯 개가 달려 있고, 검게 그을린 얼굴과 몸통에 갑주가 씌워진 상태였다.
“아아아~.”
공간 이동을 사용하게 되면 이렇게 기둥 주변을 아기 천사들이 빙글빙글 돌게 된다.
또 그 뒤로 천사들이 합창을 하며 신성한 노래를 부른다.
당연히 누구라도 어그로가 끌릴 수밖에 없는 상황.
악마인지, 아니면 새로운 몬스터인지 모를 괴물들이 전부 나와 플레임에게 시선을 돌렸다.
“······플레임.”
“흐흐. 그래. 오랜만에 싸움이로군.”
플레임은 괴성을 지르며 아이의 몸에서 드래곤으로 돌아왔다.
간만에 날뛸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크게 흥분한 듯보였다.
[내가 바로 하늘의 제왕, 드래곤이다!]
콰아아아아-!!
저 커다란 몸통만 한 에고를 터트리며 쏟아 보낸 브레스가 땅을 긁으면서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그 아래에 있던 몬스터들의 몸은 가루가 되어 사라졌고, 브레스는 저 성벽 윗자락까지 닿아 쭉 뻗어 나갔다.
그런 뒤 플레임은 길게 트림을 했다.
“꺼억-.”
“······?”
“아-. 여기 오기 전에 먹은 게 이제 소화가 돼서.”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눈짓을 보냈다.
그런 내 제스쳐를 찰떡 같이 알아들은 플레임은 사방에 있던 이 몬스터들을 향해 마음껏 불을 토해냈다.
콰아아아-!!
“캬오오오-!”
과연 드래곤은 비대칭 전력이라고 칭하는 이유가 있다.
아무리 많은 숫자의 몬스터라고 해도 플레임이 브레스로 지져 버리니, 순식간에 그 숫자가 줄어 들고 있었다.
놈들이 기를 쓰며 달려 들어도 플레임은 크게 날갯짓을 하며 하늘 높이 날아올라 브레스를 쏘아내면 그만이었다.
더군다나 드래곤은 각자 특성에 맞는 광역 마법도 부릴 줄 알아서, 그야 말로 오직 파괴만을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콰쾅-! 콰콰쾅-!!
플레임이 일으키는 불의 폭풍과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덩이들이 사방을 불지옥으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동안 먹을 걸 좋아하는 멍청한 모습만 보여줘서 그렇지, 역시 대륙 최강의 종족 드래곤다운 파괴력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잠시.
“크하하하! 이 버러지 같은 놈들. 나약하기 짝이 없······ 크엑!”
저 성벽에서부터 날아온 검은 검강이 빠른 속도로 치달아 플레임과 부딪혔다.
날개로 막아내긴 했으나, 살이 타들어 가는 강력한 마기에 플레임은 장난기가 사라진 얼굴로 성벽 쪽을 바라보았다.
그의 날카로운 그르렁거림이 이빨 사이로 튀어 나오고 있었다.
쐐애애액-!!
검은 구체 같은 것이 성벽 위로 튀어 올라 바람을 가르며 플레임에게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어리석은-!”
플레임은 입에 가득 머금은 브레스를 날려 마주오는 검은 구체를 정면으로 맞췄다.
콰아앙-!!
브레스에 맞은 검은 구체는 튕겨 나가듯이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곳에서는 내가 저번에 잔상으로 보았던 그 마검의 주인이 있었다.
놈은 차마 눈으로 쫓기 힘든 속도로 달려들어 플레임의 다리부터 머리 끝까지 비행하듯 솟구쳐 올라가며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러댔다.
콰콰콰콱-!!
휘몰아치는 검은 검격이 플레임의 거대한 몸통 곳곳에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이런 쥐새끼 같은 놈!”
플레임은 날개로 놈을 내려치며 땅에 처박았다.
그리고 몸에 나 있던 상처들은 금방 회복이 되었다.
괴랄한 전투 능력과 더불어 괴랄한 회복 능력이었다.
“역시 드래곤은 쉽지 않군.”
마검의 주인, 카릴리페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아 놓고도 멀쩡한 걸 보니, 저놈도 스텟이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놈이 바라보는 곳은 플레임이 아닌 내 쪽이었다.
“아슬란.”
놈은 내 이름을 불렀다.
“네가 저 최강의 종족이라는 드래곤을 죽였다지? 저런 거대한 괴물을 어떻게 죽일 수 있었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군.”
“······.”
나도 플레임이 저렇게 날뛰면 끽소리도 못 하고 죽어, 인마.
“아직 나는 부족한 것인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건만. 이 정도의 힘이라면 충분히 네놈을 넘어설 수 있을 거라 여겼건만······!”
그 말에 잠잠하던 내 허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감히 누구를 넘어서?”
나는 거만한 고갯짓으로 카릴리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따위가 본좌의 힘을 넘어서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 천지가 뒤집힌다고 해도 감히 이 아슬란을 뛰어넘을 순 없다.”
카릴리페가 작게 웃음 소리를 냈다.
“너는 항상 그런 자세였지. 모두가 자신의 아래라는 듯이 말하는 그 태도 말이다.”
“난 너희가 내 아래라는 듯 행동한 적이 없다.”
난 한 발자국 카릴리페에게 다가가 말을 이었다.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너희는 이미 본좌의 아래이니까.”
“······!”
잠시 멍하니 날 바라보던 카릴리페는 곧 미친 사람마냥 웃음을 터트렸다.
마기에 잠식되어 있어서 그런지, 그 웃음 소리마저도 위협적이었으며, 끓는 듯한 음성이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아슬란.”
놈은 불안하게 갑자기 뒤에 두둥실 떠 있던 마검을 붙잡으며 말했다.
“아직 내 힘이 네놈 발끝에도 미치지 못 한다는 건 인정하겠다. 하지만 저 밑바닥에 있는 지렁도 밟히면 꿈틀 거린다는 것을 보여 주마!”
아니. 굳이 안 보여줘도 되는······.
콰악-!!
카릴리페는 검을 반대로 들어 땅에 꽂았다.
그러자 강력한 마기가 그 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힘의 전부를 보여 주겠다.”
더욱 검을 땅 밑으로 집어 넣자, 검 위로 붉은 눈동자가 나면서 그 밖으로 강력한 마기가 솟구쳐 나왔다.
콰아아아-!!
부채꼴로 퍼져 나가기 시작하는 마기 폭풍에 의해 플레임은 날개로 스스로를 방어했지만, 그 힘에 떠밀려 저 먼발치까지 밀려났다.
다행히 나는 본능적으로 펼친 수호의 방패가 몰아치는 마기를 막아내는 중이었다.
“······.”
속에서는 심장이 벌러덩 거리며 쿵쾅 대는 중이었지만, 겉으로는 아주 덤덤하게 방어막 너머에 있는 카릴리페를 바라보고 있었다.
투구 때문에 보이지는 않으나, 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 것을 보아 하니 이를 악물며 정말 모든 힘을 쏟아 붓고 있는 듯보였다.
‘이거 너무 길어지면 곤란한데.’
슬슬 방패의 지속 시간이 지나가려 한다.
그런데 저놈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쿨타임을 초기화 시켜 한번 더 수호의 방패를 써야 할 것 같았다.
그 후에도 이 마기 폭풍이 끝나지 않는다면······?
‘그냥 죽는 거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공간 이동을 쓰는 게 아닌데.
그랬다면 진작 이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예 죽으라는 법은 없는 것인가.
“이런 건방진 놈!!”
마기 폭풍에 떠밀려 저 먼발치까지 밀려났던 플레임이 단단히 화가 난 목소리로 브레스를 발사했다.
콰아아아-!!
그 덕분에 마기 폭풍이 쓸려 나갔고, 내 방어막도 지속 시간이 끝나 함께 사라져 버렸다.
“······.”
카릴리페는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한 듯했다.
“그렇게 힘을 쏟아냈는데도 털끝 하나 닿지 못 하다니.”
땅에 꽂혀 있던 검이 저절로 띄어 올라 카릴리페의 옆에 나란히 섰다.
“하지만 기다리거라. 곧 너의 힘을 내가 뛰어 넘게 될 테니.”
놈은 이대로 도망치려는 듯보였다.
하지만 내 허세가 놈을 그냥 보낼 리 없었다.
“멈춰라.”
나는 강렬하게 끓어 오르는 허세를 따라 허리춤에 있던 검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받은 선물이 있으니, 그에 따른 보답은 해줘야겠지.”
그리고 그것을 가볍게 휘두르는 순간.
⎯⎯⎯!
하늘 높이 솟아 오른 검강이 카릴리페를 향해 치달았다.
“!?”
놈은 다급하게 검은 방어막을 펼쳐 마주오는 검강을 막아 보았지만,
콰직-! 콰드득-!!
검강과 부딪힌 방어막은 그 파괴적인 돌진력을 막아내지 못하며 점점 금이 가고 망가지려 하고 있었다.
결국 카릴리페는 냅다 옆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검강은 그대로 카릴리페의 방어막을 부숴 버린 뒤, 그의 오른팔도 가볍게 자르며 지나갔다.
“크아아아악!!”
마기에 절여 있어도 고통은 느낄 수 있는지, 카릴리페는 괴성을 질러댔다.
“아슬란!!”
분노로 가득한 목소리였지만, 놈은 끝끝내 내게 달려들지 못했다.
오히려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이 수모는······ 결코 잊지 않겠다. 반드시 네놈의 사지를 찢어 내가 하나 하나 씹어 먹어 줄 것이다.”
아주 살벌한 말을 아끼지 않고 내뱉는 카릴리페였다.
지금 기회를 잡았을 때 놈을 죽여야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도 더 이상 쓸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못해도 플레임은 할 수 있었다.
“크하하하-! 겁대가리 없이 날뛰더니, 꼴 좋다.”
그런데 이놈은 얼른 브레스를 쏴도 모자를 판에 상대방을 비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이놈의 허세는,
“감히 본좌를 해하려 했으니, 그 죗값을 치러야겠지. 목을 내놓거라.”
쥐뿔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면서 입만 털어댔다.
하지만 그게 먹히기라도 한 것일까.
파앗-!
놈은 얼른 자리를 피하고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고는 자신의 투구를 왼손으로 부숴 뜨리며 얼굴을 드러냈다.
“아슬란. 나를 기억하겠느냐?”
얼굴이 먹칠을 하고 있어 처음에는 잘 못 알아볼 뻔했지만, 저 특이한 이목구비에서 나는 단번에 상대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또한 그것을 마치 확인시켜 주듯, 정보창이 내 앞에 나타났다.
[카르펠]
카릴리페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에인소프 왕국의 국왕, 카르펠이었다.
“오늘의 일을 잊지 않겠다. 다음에는 반드시······ 반드시 네놈을 죽일 것이다!”
이윽고 그의 뒤로 포탈이 생겨났다. 놈은 주저 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사라졌고, 오메르 왕국을 공격하던 몬스터들도 썰물처럼 빠져 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뭐야. 다 도망치고 있잖아?”
심술을 부리듯이 플레임은 도망치는 몬스터 군단을 향해 브레스를 가볍게 날렸다.
놈들은 엉덩이에 불을 붙인 채로 잘만 도망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조금 웃기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아했다.
‘이게 대체 뭔 상황인 거지?’
카릴리페라는 정체불명의 캐릭터가 사실은 마검에 의해 타락한 카르펠이었다니.
심지어 이런 스토리는 게임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단 한번도 이런 스토리가 있다는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카르펠은 굉장히 나에 대한 원한이 깊어 보였다.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저번에 천상의 눈동자 때문에 그런 건가?’
내가 천상의 눈동자로 카르펠을 크게 놀래킨 적이 있었다.
그때 이후로 카르펠은 갑자기 정신 이상 증세를 보여왔고, 왕이 저 모양이니 당연히 나라 꼴이 잘 돌아갈 리 없었다.
특히 최근에는 더욱 왕국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 반란까지 일어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반란은 금방 제압이 되었다고는 하는데, 그 이후로도 왕국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고만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 줄은······.
‘왠지 저놈이 이끌고 다니는 몬스터 군단도 뭔가 이상했지.’
게임에서 한번도 본 적이 없는 몬스터들이지 않은가.
저런 흉측한 생김새라면 잠깐만 마주쳤어도 금방 기억이 났을 텐데 말이다.
즉, 카르펠이 정신 이상을 보이면서 새로운 스토리가 열렸다고 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미치겠네.’
언제 테키나 족속이 대륙 전체를 침공할지도 모르는 상황에, 소드마스터 중 하나이자 일국의 왕이라는 놈이 마검에 의해 타락해 버리다니.
‘내 잘못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설마 나도 모르는 새로운 스토리가 열리게 될 줄 알았나.
“아슬란 님!”
그때 엘버스테인이 말을 타고 내게 달려왔다.
놈은 눈물을 글썽 거리며 말했다.
“역시······ 역시 저희를 구하러 오셨군요.”
차마 너희가 발견한 광물을 빼앗으려 왔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그 대신 짧게 혀를 차며 핀잔을 주었다.
“쯧. 고작 이런 놈들에게 쩔쩔 매다니. 아직 부족하구나, 엘버스테인.”
“아직 가르침이 많이 필요합니다. 헌데 혼자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본좌의 힘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플레임은 인상을 찌푸리며 엘버스테인을 다그쳤다.
“난 안중에도 없냐?”
“앗. 플레임 님. 송구합니다.”
“뭐, 아슬란 혼자 왔어도 해결될 일이긴 했으니까, 할 말은 없네.”
플레임 없이 혼자 왔다면 진짜 아찔했을 것이다.
나는 망토를 펄럭이며 앞장섰다.
“들어가겠다. 지금부터 할 일이 많아 보이니.”
“예!”
나는 엘버스테인과 함께 성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검의 주인, 테키나 족속, 거기다 이번에 새로 발견한 광물까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날 몰아 붙이듯이 말이다.
이것이 정말 난이도 때문인가?
아니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