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0.01초 소드마스터 123화
“꺄아아악-!”
“으아악!”
콰득-!
습격을 받은 마을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카릴리페는 무심한 눈동자로 그들을 내려다보다 검을 들었다.
그러자 검에서 기괴한 소리가 터져 나오며 저들의 시체를 마력처럼 빨아 들이기 시작했다.
“······테르카나.”
“예, 마검의 주인이시여.”
“대체 언제까지 이런 나약한 놈들을 잡아 죽여야 한단 말이냐?”
불만이 참 많아 보이는 목소리였다.
“그야 안정적으로 영혼을 수급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변수를 생기지 않게 하고 안전하게 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변수? 그까짓 것들은 내가 다 부숴 버릴 수 있다.”
“예.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악마가 대륙의 힘을 무시하며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무작정 쳐들어오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에 당했지요.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
“바로 아슬란을 말하는 겁니다.”
“!?”
그렇지 않아도 아슬란의 이름만 나오면 그 분노를 주체하지 못 하는 카릴리페였다.
그런 그의 성질을 알고 있기에 얼른 테르카나가 진정시켰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분노를. 그렇기에 그 뜨거운 마음을 풀어 드리고자 제가 그 검을 당신에게 바친 것이 아닙니까?”
“이제 난 놈을 잡을 준비가 되었다.”
“저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아슬란의 힘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대체 얼마나 강대한 힘을 가졌는지 가늠조차 되지가 않지요. 그러나 카릴리페 님도 이제 강해지셨습니다. 조금만 더 큰 힘을 모은다면, 아슬란을 향한 복수를 이루실 수 있을 겁니다.”
“그 얘기는 새로운 만찬을 준비했다는 건가?”
“예. 이번에는 이런 시시한 놈들이 아닌, 오랜만에 피가 끓어 오르는 전투를 만끽하실 수 있을 겁니다.”
뱀 같은 테르카나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이젠 폐허가 된 마을에 울려 퍼졌다.
* * *
“참으로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
오메르 왕국의 왕, 엘버스테인.
그는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성 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엘버스테인이 폭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오메르 왕국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백성들의 삶이 피폐해졌으며, 당장 다음날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 죽는 이들도 속출하였다.
“그때 만약 일라이 왕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큰일이었을 겁니다.”
오메르 왕국의 군사, 가일의 말이었다.
그의 말대로 일라이 왕국은 어려운 오메르 왕국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무역의 활로를 열어 지금의 경제 상태를 만들도록 도와주었다.
만약 그때 도움이 없었다면 오메르 왕국은 진작에 멸망했을 것이다.
“그래. 그동안 우리는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정작 군사력에는 돈을 투입하지 않았다.”
엘버스테인은 왕국 군사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조금씩 자금 투입을 하며 바꾸고 있긴 하다만-.
“일라이 왕국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
“왕이시여. 일라이 왕국의 군사력은 현재 대륙 최강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습니다.”
“후후. 당연한 일 아닌가? 무력 대륙 최강자이신 아슬란 님이 다스리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분이 항상 말씀하신 대로, 최강자가 이끄는 군대는 최강이 될 수밖에 없지.”
아슬란 밑에서 싸웠던 그 짧은 경험.
하지만 그것이 엘버스테인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 버렸다.
그는 아직도 아슬란을 자신의 주군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께서도 힘이 필요하실 거다. 앞으로 다가올 대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군은 강해져야 한다. 난 조금이라도 그분의 힘이 되어 드리고 싶다.”
“왕의 뜻은 소신도 잘 알겠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군사력에 힘을 준다면 일라이 왕국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왕국에 뒤쳐지지 않을 만큼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될 겁니다.”
“그래. 얼른 그리되어야겠지.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우리 왕국을 악마들의 발에 짓밟히게 놔둘 수는 없으니까.”
“예.”
“그런데 이번에 우리가 발견한 새로운 광물에 관한 건 어찌 되었지? 아슬란 님께 보고는 드렸나?”
“아! 그것이······.”
그리 얘기를 나누면서 이제 그만 왕궁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쿠쿵-! 쿠쿠쿵-!!
갑자기 검은 구름이 밀려 들어오고, 그 위로 내리치는 뇌격이 심상치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에서 생겨난 여러 개의 포탈이 흉측하게 생긴 악마 군사들을 비처럼 쏟아내기 시작했다.
“와, 왕이시여. 저건!?”
“종을 울려라! 저건 필시 악마 군단이다!”
엘버스테인은 칼을 뽑아 들며 하늘에 열린 포탈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음허한 기운을 내뿜으며 내려오는 검은 갑주의 남성이 보였다.
“······!”
바라보기만 해도 위협적인 기운을 풍기고 있던 남성은 자신의 뒤를 두둥실 따라다니는 검을 붙잡았다.
그러자 엄청난 살기가 사방에 퍼져 나가며 주변을 검게 만들었다.
“대체 저놈은······.”
위험을 감지한 엘버스테인의 손이 부르르 떨려오고 있었다.
* * *
“끄으읍-!”
“으헙-!!”
기사단장들은 성벽만 한 크기의 돌을 밧줄로 묶어 옮기며 갖은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보통 사이즈의 돌이 아니었다.
성벽 보수를 위해 만들다 남은 부분을 훈련 목적으로 남겨 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은 성벽 한쪽을 칼로 예리하게 자른 듯한 무거운 돌덩이를 밧줄로 묶은 채 맨손으로 옮겨야 하는 것이었다.
“으억. 도, 도저히는······.”
“이건 절대 못 옮깁니다!”
힘 좀 쓴다는 단장들은 결국 포기하고 바닥에 벌러덩 쓰러졌으며, 알렉산더와 아론은 끝까지 악을 쓰면서 어떻게든 돌을 옮기고자 했다.
그래도 그들이 힘을 잘 발휘해 준 덕분에 돌이 조금씩 움직였다.
“쯧. 한심하구나. 나의 기사라는 것들이 이것 하나 옮기지 못하는 것이냐?”
“소, 송구합니다.”
“하지만 돌이 너무 무겁습니다.”
단장들의 나약한 소리에 내 허세가 강렬하게 치밀어 올랐다.
나는 앉아 있던 자리에서 내려와 그들이 훈련을 하고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바닥에 내려놓은 밧줄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밧줄들이 염력을 통해 내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모든 근육과 핏줄이 곤두선 채 돌덩이를 옮기고 있던 알렉산더와 아론에게서도 밧줄을 빼앗았다.
“고작 이런 것이 무겁다고 징징대는 것이냐?”
나는 밧줄들을 한꺼번에 붙잡아 그대로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찰나의 괴력이 발동되면서 나는 밧줄을 끌어당기다 못 해 번쩍 들어 반대 방향으로 집어 던지듯 내려쳤다.
그러자,
콰아아앙-!!
저 무겁디 무거운 돌덩이들이 한꺼번에 번쩍 들려 반원을 그린 뒤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쩍 벌린 채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들을 향해 밧줄을 던지며 말했다.
“한번만 더 본좌 앞에서 나약한 소리를 한다면 용서하지 않겠다.”
“······예!”
“그리고 다음에는 내가 정해 놓은 선까지 꼭 저 돌들을 가져다 놓을 수 있게 훈련하도록.”
“예!!”
가끔씩 이렇게 군기를 잡아줘야 기사들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훈련을 받는다.
나는 적당히 그들에게 훈계한 뒤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자 옆에서 무언가를 맛있게 쩝쩝 대며 먹고 있던 플레임이 킬킬 웃음을 터트렸다.
“애들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 시켜도 가능한 걸 시켜야지.”
“이 세상에 불가능이란 것은 없다, 플레임. 각자 마음먹기에 달린 거지.”
“호오~ 이제 그런 명언까지.”
그러면서 플레임은 다시 맛있게 과자를 주워 먹었다.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며 뭐라 하던 놈이 다시 터덜터덜 밧줄을 잡으려고 돌아가는 기사들에게 빨리빨리 움직이라며 재촉을 하고 있었다.
“왕이시여.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그때 라파엘이 다가와 내게 말했다.
“오메르 왕국에서 새로운 광물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새로운 광물?”
“예. 주황빛을 띠는 광물인데, 손으로 만지려고 하면 무언가가 강력하게 밀어내는 느낌이 난다고 합니다.”
그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주황색 광물인데, 만지려고 하면 밀어내는 느낌?
이거 설마······.
‘알브레늄 아니야?’
정말 맞다면 엄청난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알브레늄이 무엇인가.
칼루탄에 이은 굉장히 쓸모 있는 광물이다.
칼루탄이 가진 살상력이 뛰어나다면 알브레늄은 방어에 특화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걸로 갑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알브레늄은,
‘방어막을 만드는 거니까.’
말 그대로 알브레늄은 밖으로 뿜어내는 에너지로 다가오는 무언가를 막아내고 튕겨내는 효과를 지녔는데, 이것을 모아 마법으로 그 힘을 잘 컨트롤 하게 한다면 광역 방어막을 만들어 낼 수가 있게 된다.
즉, 마을이나 성벽 전체에 방어막을 만들어 적들의 침입을 차단한다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이놈이 어디에 있나 엄청 찾아다녔는데.’
알브레늄 같은 광물은 랜덤으로 발견이 되는 거라서 대륙 전체를 이 잡듯이 뒤져야 찾을 수 있다.
아니면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우연찮게 발견이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알브레늄에 대한 소문이 퍼져 다른 곳에서 눈독을 들이기 전에 얼른 내가 먼저 가서 차지해야만 한다.
‘안 그래도 그 미친 마검 새끼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니까.’
천상의 눈동자로 봤을 때, 그 마검의 주인이라는 놈은 내게 굉장히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는 꼬라지를 봐서는 언제라도 날 죽이려고 올 거 같은데,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알브레늄을 이곳에 가지고 와 방어막을 구축해 놓을 필요가 있어 보였다.
“플레임.”
“응?”
“다 먹었느냐?”
“아니. 아직.”
“그럼 일어나라. 나와 갈 곳이 있다.”
“잠깐. 아직 다 안 먹었다니깐?”
혼자 가기는 좀 그러니, 호위병사처럼 플레임을 데려가는 것이 좋아 보였다.
나는 라파엘에게 말했다.
“그 광물을 당장 채광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내가 먼저 그곳에 가 있을 테니, 라파엘 네가 책임지고 오메르 왕국으로 병력을 데리고 오너라.”
“아, 네.”
그런 뒤 나는 아이 모습을 하고 있는 플레임의 뒷덜미를 붙잡았다.
“가지.”
“아니. 나 아직 다 안 먹었······으아아악!”
난 오메르 왕국을 떠올리며 공간이동 능력을 사용했다.
* * *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해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엘버스테인이었다.
“억울한가? 너의 나약함으로 저들을 지킬 수가 없어서? 나도 알고 있다. 한때 나 역시 너처럼 나약했으니까.”
단신으로 성벽 위에 있던 왕의 기사단을 쓸어 버린 카릴리페는 바닥에 쓰러져 벽에 기대고 있던 엘버스테인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너도 이제 나의 일부분이 될 것이니, 기뻐하거라. 넌 최강자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 말에 엘버스테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웃어?”
“네놈의 오만함이 너무나도 한심해서 그렇다. 어딜 감히 최강자라는 명예를 그 입에 담는 것이냐?”
카릴리페는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엘버스테인의 목을 붙잡은 뒤 그를 높이 들었다.
“네 실력이 소드마스터에 버금간다 들었다. 그렇다면 네놈도 알 텐데. 나의 힘이 얼마나 막강하지.”
그러자 엘버스테인은 여전히 비웃음을 잃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
“네가 강한 것은 인정하나, 결코 최강은 아니다.”
“뭐라?”
“내가 아는 최강자는 오직 이 대륙에 한 분뿐. 그분이 지닌 힘은 네놈이 발톱만큼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 말에 카릴리페가 꽉 엘버스테인의 목을 붙잡았다.
“그분이라 함은 아슬란을 말하는 것이냐?”
“흐흐. 그래. 잘 알고 있구나.”
“미안하지만, 이제 그놈도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리 믿고 싶은 거겠지. 만약 그분이······. 이 자리에 계셨다면, 우리와 함께 있으셨다면 네놈은 감히 이 성벽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네놈의 목이 떨어졌을 테니!”
아슬란을 향한 엄청난 신뢰를 가지고 있는 엘버스테인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카릴리페는 분노하며 악력으로 그 목을 부러뜨리려 했다.
그런데,
피이이잉-!!
“······?”
저 멀리서 번쩍이는 황금빛과 이어지는 붉은 빛이 땅을 가르며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성 밖에 가득하던 카릴리페의 군사들을 쪼개 놓으며 점점 올라와 마침내-
“!?”
카릴리페를 덮쳤다.
콰아앙-!!
카릴리페는 그것을 맞고 성벽 아래로 떨어져 버렸다.
간신히 목숨을 건진 엘버스테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그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 아슬란 님?”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드래곤 머리 위에 서 있는 아슬란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