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0.01초 소드마스터 119화
“빛의 기사이시자, 대륙의 구원자이시며, 드래곤을 처단하시고, 드래곤의 복종을 받으신 위대한 일라이 왕국의 왕이시여. 당신의 종이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내게 붙은 수식어만 나열하면 반나절은 걸리는 것 같았다.
호드의 대족장, 막투르가 직접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
그에 따라 뒤에 있던 호드들도 모두 예의를 갖추었다.
“오랜만이구나, 막투르.”
나는 그들을 거만하게 내려다 보았다.
그 시선에 막투르는 더욱 고개를 숙였다.
“예, 왕이시여. 왕께서 매번 이루시고 있는 업적을 저희 호드들도 늘 듣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드래곤 슬레이어가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감축드립니다.”
“별 것도 아닌 걸로 축하할 필요는 없다.”
“아닙니다. 저희 호드는 늘 아이와 청년에게 아슬란 님의 위대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가르침을 늘 가슴에 새기고자 함입니다.”
대체 내가 무슨 가르침을 줬는지는 모르겠다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신변 잡기를 멈추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여기까지는 어인 일로 왔느냐?”
“이번에 저희 호드에게 맡기신 일을 직접 보고드리고자 왔습니다.”
내가 맡긴 일이라고 한다면······.
“드워프들 말인가?”
“예.”
고작 드워프들이 어디에 있는지 보고하는 내용이라면 그냥 서신만 보내도 될 일이다. 그런데 굳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뜻했다.
“자스트라 숲을 넘어 조금 이동을 하게 되면, 드워프들이 살고 있는 영토, 알렘바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300년 동안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살고 있던 드워프들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드워프는 대장장이 종족이라 불릴 만큼, 무기를 만드는 데에 있어서 최고의 종족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과거 300년 전에 인간과 힘을 합쳐 무기를 공급하며 악마를 쫓아낸 공을 세웠다.
그런데 그들이 300년 동안 지켜왔던 터전을 버리고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분명 호드를 시켜서 탐색하면 늘 드워프들을 찾아냈는데.’
내가 굳이 호드에게 드워프를 찾으라고 명령했던 건, 항상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이 게임을 플레이 할 때 드워프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는 것이 꽤 중요했는데, 그 이유로는 영웅의 검은 둘째 치고, 드워프에게서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지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종족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그들이 가진 제련 기술은 그 어느 왕국보다 뛰어나다.
그래서 이들의 도움을 받아 군사 장비를 업그레이드시켜 군사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했다.
더군다나 내게 필요한 아이템을 그들이 갖고 있기 때문에 찾으려는 것도 있었다.
‘근데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잖아.’
드워프들을 찾아내려고 했더니, 놈들이 본거지를 옮겼다라.
무슨 유목 민족도 아니고 드워프처럼 엉덩이 무거운 놈들이 본거지를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건-
‘또 난이도 이슈냐?’
그것 말고는 달리 다른 이유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찾을 수 있겠나?”
“현재 그곳을 점거하고 있는 종족이 있습니다. 아마 그들에게서 정보를 얻는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곳을 점거하고 있는 종족이 드워프들을 쫓아내기라도 했다는 건가?”
설마 드워프들이 멸망이라도 당했다는 거야, 뭐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을 점거하고 있는 종족이 다름 아닌 뮤즈족이기 때문입니다.”
뮤즈족?!
만약 이 허세가 내 몸 안에 똘똘 뭉쳐 있지 않았다면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 뮤즈족. 당연히 그 귀여운 놈들도 이 게임에 있겠지.’
워낙 거칠고 버라이어티한 삶을 살고 있는 터라, 그 종족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뮤즈족이 무엇인가.
그놈들은 아주 무시무시한 놈들이다.
전투적으로?
물론, 전투적으로도 위협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놈들이 위험천만한 종족인 이유는 바로,
‘외모 때문이지.’
게임 세계든, 현실 세계든, 외모라는 것은 참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별로 능력도 없고 쓸모도 없는 캐릭터라고 해도 일단 외모가 무척 뛰어나면 다른 스펙은 보지도 않고 자신의 부하로 들이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엄청난 노력을 하게 된다.
그에 있어서 뮤즈족도 마찬가지였다.
가히 그 귀여움은 이 게임을 통틀어 최강이라 불리며, 그 귀여움에 심장 폭행을 당해 뭣 모르고 붙잡으려고 달려들었다가 역으로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날 정도다.
‘그런데 왜 그놈들이 드워프 땅에 있는 거지?’
막투르의 말대로 뮤즈족은 타 종족과 싸움을 벌이는 전투적인 민족이 아니다.
햄스터 같은 털뭉치 외모에 걸맞게 놈들은 초식을 즐기지, 결코 살육을 즐기진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뮤즈족을 우습게 보면 안 되는 것이, 놈들이 쓰는 공격은 죄다 독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 덤볐다가는 맹독에 중독되어 죽기 일쑤였다.
“하여 그들을 공격해서 드워프에 대한 정보를 받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하는지 혜안을 듣고자 직접 오게 되었습니다.”
워낙 호전성이 강한 종족이라 그런지, 드워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뮤즈족을 공격하려 한다는 발상이 웃기기도 했다.
‘뮤즈족이라······.’
솔직히 그 귀여운 놈들을 컴퓨터 화면이 아닌,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맞았다.
그래서 고민을 하고 있던 중,
[새로운 퀘스트를 시작합니다.]
갑자기 내 앞에 정보창이 나타났다.
[영웅의 검]
-뮤즈족을 통해 사라진 드워프 종족을 추적하십시오.
-보상으로 5골드를 얻습니다.
뮤즈족이 나타난 건 역시 우연이 아닌 모양이다.
이렇게 게임이 내 등을 떠밀고 있을 정도면.
거기다 퀘스트 이름이 영웅의 검이었다.
그렇다는 건 이번 퀘스트는 드워프들이 만들었다는 영웅의 검과 관련이 있어 보였다.
“그들과 전투를 벌일 필요는 없다. 충분히 대화로도 해결이 가능할 테니. 본좌가 직접 군을 이끌고 갈 것이다.”
“예? 왕께서 직접 말입니까?”
“왕이시여. 차라리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가서 드워프의 뒤를 쫓겠습니다.”
내가 직접 가겠다는 말을 꺼내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기사들이 앞으로 나서며 내게 말했다.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왕을 대신하여 임무를 완수하겠나이다!”
“왕께서는 일라이 왕국의 태양이십니다! 부디 저를 대신 보내 주십시오!”
내가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왕이 되려 하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서부터 행동의 제약이 생기는 까닭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이기도 했다.
왕이라는 존재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며, 만일 불상사로 왕이 죽게 될 경우 왕국은 큰 혼란에 빠진다.
그렇기에 신하들은 내가 몸소 나서서 무언가를 하려는 걸 꺼려하는 것이다.
“너희들에게 묻겠다.”
나는 왕좌에서 턱을 괸 채 신하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본좌가 직접 나서는 것을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답은 이미 나도 알고 있었다.
이들이 걱정하는 건 나의 안위였다.
그러나,
“왕께서는 일라이 왕국의 전부이십니다. 헌데, 만일 왕께서 봉변을 당하신다면 우리 왕국은 큰 혼란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맞습니다. 부디 왕을 대신하여 저희를 보내 주십시오. 왕께서 무너지시는 건 곧 일라이 왕국의 멸망입니다!”
왕을 생각하는 이들의 근심과 걱정, 그리고 충심은 내 허세를 뚫지 못했다.
오히려,
“건방지구나.”
내 허세를 꿈틀거리게 만들 뿐이었다.
“내 가벼운 손짓은 하늘을 가르며, 내가 디디는 발걸음은 땅을 무너뜨린다. 헌데 누가 감히 본좌를 해할 수 있단 말이더냐?”
“······.”
그 말에 신하들은 숨을 죽였다.
“본좌가 허락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존재도 감히 이 몸에 손을 대지 못한다. 이 대륙의 종족들이 그토록 믿고 따른다는 저 라할조차 내게 손끝 하나 닿을 수 없다. 그런데도 너희가 감히 본좌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이더냐?”
이들의 침묵은 활활 타오르고 있던 내 허세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었다.
나는 식은땀을 뚝뚝 흘리고 있는 아론을 불렀다.
“아론.”
그러자 아론은 퍼뜩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예, 왕이시여!”
“너도 저들과 같은 생각인 것이냐?”
아론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십니다. 누가 감히 왕을 해할 수 있단 말입니까. 다만 바라옵건대, 부디 소인이 왕을 호위하여 알렘바르로 갈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역시 눈치가 빠른 아론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기사들도 얼른 말을 바꾸었다.
“소인들도 함께 가겠습니다!”
“왕께서 가시는 여정에 불편함이 없도록 보필하겠나이다!”
나는 왕좌에서 일어나 몸을 돌려 붉은 망토를 휘날렸다.
“뮤즈족에게 갈 것이다. 모두 채비하거라.”
“존명!”
그들의 우렁찬 목소리에 나는 조금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이렇게 허세를 부리다가 나중에 내가 나서지 말아야 할 때 저놈들이 안 말리면 어떡하지?
왕이 된 이후에 더욱 심해진 허세 때문에 크게 일을 치르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됐다.
하지만 속은 걱정과 근심으로 타들어 가고 있으나,
펄럭~!
이들에게 보이는 발걸음은 위풍당당하기 그지없었다.
* * *
철컥.
‘말은 손끝으로 하늘을 가르고, 발로는 땅을 무너뜨린다는 허세를 지껄였지만.’
막상 출정할 땐 우리 왕국 최고의 정예 부대를 데리고 나왔다.
군마부터 기사까지 전신이 철갑으로 이루워진 제 1 중갑병은 내가 만든 기마대 중 최강이었다.
날아오는 화살 공격은 아무렇지 않게 튕겨낼 수 있고, 마법탄 공격 역시 버텨내는 뛰어난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이들은 긴 창에 두꺼운 방패까지 들고 있어, 만일 이들이 돌진하게 된다면 현존하는 왕국의 군대 중 과연 이들을 막을 수 있는 부대가 몇이나 될지 의문이었다.
“과연 왕께서 이끄시는 군대의 위세가 대단하군요.”
막투르는 사뭇 두려운 눈빛으로 내 뒤를 따르고 있는 중갑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런 막투르의 말에 아론이 나를 대신해 말했다.
“만일 자스트라 영역에서 전투가 벌어져 왕께서 직접 나서신다면, 그날로 자스트라는 두 번 다시 생명이 살 수 없는 지옥도가 될 것이오.”
“그, 그런······.”
“그러한 불상사를 막고자 우리 기마대가 나서는 것이지. 적들에게는 차라리 우리가 나서는 것이 자비롭게 느껴질 것이오.”
두 번 다시 생명이 살 수 없는 지옥도?
왠지 아론이 나보다 더 허세를 잘 부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웃긴 건 막투르는 그 말이 정말 사실인 양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본인도 직접 왕께서 싸우시는 걸 옆에서 보았소. 그 파괴적이고 재앙 같은 힘은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몸이 전율을 일으키곤 하오.”
“후후. 잘 알고 있군. 자. 이거 받으시오.”
아론이 물병 하나를 건네자 막투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우리 군대에게만 보급이 되는 성수요. 우리 왕의 은총이기도 하지.”
“서, 설마 이것이 그 유명한······!?”
“그대에게만 별도로 주는 것이니, 잘 챙기시오.”
아론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자 막투르는 크게 감격한 얼굴로 얼른 물병을 챙겼다.
······아주 둘이 북 치고 장구 치고 잘 놀고 있는 듯하다.
“이곳입니다.”
그리고 어느새 우린 자스트라 숲을 넘어 뮤즈족들이 산다는 알렘바르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가 알렘바르입니다.”
나는 일단 주변을 스윽 살펴봤다.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내가 이 중갑병들을 데려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푸슉-!
무언가 바람을 가르고 날아와 행군을 이어가던 중갑병의 갑옷에 맞았다.
팅~
경쾌한 소리와 함께 가느다란 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
그리고 그것이 마치 신호탄처럼 이어지면서,
푸슈슉-!!
사방에서 침들이 날아와 중갑병의 갑옷을 때렸다.
“적습이다!!”
“모두 방어 태세!”
“왕을 호위하라!!”
중갑병들은 내가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쏜살같이 달려와 내 주변을 방패로 감싸 안았다. 하지만 가만 있어도 모자를 판에 이놈의 허세가 끝까지 헛소리를 지껄였다.
“치우거라.”
“하, 하지만 왕이시여!”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기사들은 낮아진 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언제 저 독침이 내 몸에 꽂힐지도 모르는데도 나는 이들의 보호 속에서 벗어나 주먹쥔 손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펼치는 순간.
화아아악-!!
강력한 염력이 돌풍처럼 발동되어 사방에 퍼져 나갔다.
날아오던 침들은 고스란히 왔던 방향으로 거슬러 돌아갔고, 수풀이 모두 꺾여 나가면서 여기저기서 짧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엣쿵-”
두 손과 두 발이 달린 작은 털 뭉치 하나가 나무에 부딪혀 내 앞으로 튕겨 나왔다.
그것은 순진하기 그지없는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기울였다.
“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