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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18화 (118/200)

118화

0.01초 소드마스터 118화 

“꺄아아악!” 

“도, 도망쳐!” 

어둠에 빠진 대륙. 

끊임 없이 출몰하는 악마 군단은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을 짓밟아 놓았다. 

오직 파괴만이 삶의 목적인 악마들은 그렇게 끝 없이 진격을 이어갔다. 

“칼라 왕국의 위대한 기사들이여! 악마들을 쓸어 버려라!” 

“겁 먹지 마라! 절대 도망치지도 마라! 맞서 싸우면 우리가 승리한다!” 

칼라 왕국의 최전방에 있던 기사단은 비록 숫자는 적어도 서로를 격려하며 어떻게든 악마 군단의 진격을 막아 세우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 공포를 이기지 못 하고 도망을 치는 병사들이 점차 늘어났는데, 도망가던 그들의 발걸음이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적 앞에서는 결코 등을 보이지 않는 것이 기사이건만.” 

천공에 울려 퍼지는 그 목소리에 그들은 위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푸른 마력으로 하늘에 떠 있는 한 남자가 보였다. 

“너희는 기사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리고 그 남자가 손을 뻗자, 푸른 마력의 검들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으, 으아아악!!” 

그 검들은 도망을 치고 있던 기사들을 순식간에 도륙내 버렸다. 

그 모습을 보고 기사들은 두려움에 비명조차 내지 못했다. 

“두려워 하지 마라. 나 라일라칸이 왔으니, 이제 너희가 패배할 일은 없다.” 

대륙의 최강자라 불렸던 소드마스터, 라일라칸. 

그는 기사들 사이에 내려와 온몸에 가득한 푸른 마력의 빛을 발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내디뎠다. 

“내가 선봉에 설 테니, 다들 알아서 따라오도록.” 

“······.” 

방금 전 라일라칸이 아군을 무참히 쓸어 버린 그 끔찍한 참상이 아직도 눈에 어른 거리고 있는 터라 그들 중 누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라일라칸은 단신의 몸으로 악마 군단을 향해 뛰어갔다. 

그리고 그가 칼을 뻗는 순간. 

콰콰콰쾅-!! 

큰 마력 폭발이 일어나면서 앞에 있던 악마 군단의 진형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 

촤아아악-!! 

라일라칸이 칼을 가볍게 휘두를 때마다 뻗어 나가는 검강이 악마들의 몸을 갈랐고, 그야 말로 일방적인 학살이 벌어졌다. 

마치 장난감 다루듯, 악마들이 얼마나 달려들든 라일라칸은 그 크기나 숫자에 연연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건 전부 베어 버렸다. 

“저, 저것이 정말로 라일라칸?” 

“과연······.” 

기괴할 정도로 막강한 라일라칸의 모습에 병사들은 할 말을 잃어 버리고 말았다. 

너무나도 일방적으로 저 사내가 혼자서 악마들을 쓸어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높이 칼을 들자, 

콰지지직-!! 

하늘 위로 신전의 기둥 같은 거대한 대검들이 만들어 지더니, 그것들이 일제히 지상으로 낙하하여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캬오오오!” 

“키에에엑!” 

오로지 전진만을 외치던 악마들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고 주춤 거리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라일라칸은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끝까지 그들 안으로 파고 들어 그가 가진 모든 스킬을 쏟아 부었고, 마침내 이 군단을 움직이고 있던 대악마까지 쓰러뜨렸다. 

“라, 라일라칸?! 어떻게 네놈이 이곳에!” 

“넌 뭐지?” 

“날 기억하지 못 하는 것이냐? 300년 전 그날 내가 너를······.” 

스걱-! 

라일라칸은 상대가 하는 말을 다 들어보지도 않고 목을 베어 버렸다. 

“미안. 내가 곧 죽을 놈의 얼굴 같은 건 잘 기억을 못해서.” 

대악마를 죽이면서 튀어 나오는 마핵도 칼끝으로 꿰뚫어 버린 뒤 그 자리에서 터트리는 등, 그의 압도적인 무력을 아낌 없이 선보였다. 

“라일라칸 님.” 

“아. 이제야 왔나?” 

라일라칸을 따라 출정을 했던 기사단은 평야에 가득한 악마들의 시체를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일인군단이 아니던가. 

왜 그토록 선조들이 라일라칸을 칭송하며 그가 대륙의 구원자라고 강조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 혼란의 시기에서 이 정도의 힘을 발휘하는 자가 있다면 누구라도 그 뒤를 따랐을 것이다. 

“흠. 아직 힘이 좀 덜 돌아온 것 같군.” 

“이, 이게 말입니까?” 

칼라 왕국의 대기사단장, 미뉴엘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아직 힘이 다 돌아온 게 아니라면, 대체 힘이 다 돌아왔을 땐 얼마나 더 큰 위력을 보여 줄 수 있단 말인가. 

한때 자신이 대륙 최강이라 자부했던 과거가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현재 대륙에서 소드마스터라 불리는 자들의 실력은 전부 어린 아이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한창 전성기였을 때라면 이보다 절반의 힘으로 능히 이놈들을 쓸어 버렸을 거다.” 

“······그, 그렇군요. 과연 대단하십니다. 이 대륙 누구도 감히 라일라칸 님의 힘에 대적하지 못할 겁니다.” 

그 말에 라일라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글쎄. 난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예?” 

“그날 아스렐 섬에서 너희도 보지 않았느냐? 아슬란, 그자를 말이다.” 

아슬란. 

그 이름만 떠올리면 미뉴엘은 오금이 저려왔다. 

검의 원탁 회의에서 자신을 손가락 하나로 날려 버린 것도 그러 하고, 그 이후에도 그가 보인 힘은 가히 범접 불가였기 때문이다. 

그런 미뉴엘의 반응을 라일라칸이 눈치챘다. 

“아슬란과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그, 그가 강한 것은 맞지만, 라일라칸 님에 비하면 한참 멀었습니다!” 

“후후. 내게 아부를 하려고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는 없다. 너도 솔직하게 나와 아슬란 중에 누가 더 강할지 저울질 하기가 어렵지 않느냐?” 

“그, 그건······.” 

“괜찮다. 내가 원래 누군가와 비교질을 하는 걸 무척 싫어하긴 하지만, 아슬란이라면 충분히 참작해 줄 수 있으니.” 

“그자를 그 정도로 높이 평가하시는 겁니까?” 

검을 쓰는 자라면, 강함을 추구하는 자라면, 라일라칸이란 존재는 신에 가까웠다. 

아니. 그들에겐 라할보다도 더 높은 자였다. 

미뉴엘 역시 라일라칸은 어릴 때부터 숭배해 왔던 우상이었다. 

그런 그가 아슬란을 저리도 높이 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줄곧 아슬란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는 나를 신경조차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참새가 드래곤의 뜻을 어찌 알겠느냐. 약자는 강자가 바라보는 풍경이 무엇인지 절대 알 수 없다.” 

“······.” 

“강자는 늘 자신의 목표만을 바라보고 다른 것에는 일절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늘 같은 것을 바라보는 것이 강자를 만드는 것이다.” 

자신도 대륙 소드마스터 중 하나인데, 그냥 일개 기사 취급을 받는 것 같아 기분이 상했지만, 미뉴엘은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악마들을 상대로 일인군단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준 것이 바로 저 라일라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그렇다고 하면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지금도 아슬란은 이미 나에 대한 존재를 잊고 앞으로의 일만을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강자가 갖는 자세일 테니.” 

라일라칸은 어느덧 해가 지고 있는 평야를 바라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듯이, 언젠가는 누가 태양이 될지 결정지어야 할 날이 올 것이다. 

* * * 

“누가 또 내 욕을 하나.” 

나는 귀를 후비다 의자에 편히 기댄 채 헤실헤실 미소를 지었다. 

“라일라칸이 그래도 빨리 깨어나서 다행이야.” 

스토리에 맞지 않게 내가 빛의 증표를 받으면서 심하게 이야기가 꼬였지만, 결과론적으로 라일라칸이 부활했다. 

그것으로 된 것이다. 

“라일라칸은 거의 치트키 같은 존재니까.” 

개발자들이 라일라칸을 왜 만들었겠는가? 

플레이어들이 보다 더 쉽게 게임을 깨라고 만든 것이다. 

말 그대로 라일라칸은 합법적인 치트키였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특성에 맞게 무시무시한 스텟과 능력을 가지고 있어 라일라칸은 그야 말로 대륙 최강이었다. 

악마 군단이 쳐들어와도 단신으로 쓸어 버릴 수 있을만큼 말이다. 

“대악마도 그렇고 바빌론도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여러 네임드가 힘을 합쳐야 간신히 싸워 이길 수 있는 대악마. 

그런 대악마보다 훨씬 강한 바빌론까지. 

라일라칸은 일대일로 감당이 가능할만큼, 가히 최강이란 말이 부족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라일라칸은 싸우는 것도 좋아하잖아.” 

이게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라일라칸은 싸우기 위해 태어난 존재였다. 

그렇기에 가급적이면 많은 전투에 내보내는 것이 베스트라고 볼 수 있었다. 

즉, 앞으로 일어날 모든 악마와의 전투에서 라일라칸이 나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나는 뒤에서 편하게 구경만 하면 된다는 거지.” 

그것이야 말로 내가 바라던 행복 게임 플레이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되는 것도 있었다. 

“만일 라일라칸을 앞에 세워서 테키나 족속을 전부 몰살 시킨다면 그 다음은?” 

원래 게임 스토리에서는 영웅병에 걸린 라일라칸이 다시 언젠가 위기에 빠질 수도 있는 대륙을 위해 다시 봉인에 들어간다. 

그렇게 알렉산더가 온 대륙에 평화를 이끌어내며 끝이 나는데······. 

“난 어떻게 되는 거지?” 

메인 스토리가 이상하게 꼬인 지금, 앞으로 내용이 어떻게 될지가 의문이었다. 

“거기다 혹시라도 실수해서 레메게톤이 깨어나기라도 하면······.” 

지옥의 왕, 레메게톤. 

테키나 족속의 궁극적인 목표는 레메게톤을 부활시켜 대륙을 파괴하는 것이다. 

300년 전 대전쟁에서 대륙 종족들이 레메게톤의 부활을 간신히 막아냈고, 지금도 우리는 레메게톤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 

만약 레메게톤이 깨어나면 그땐 게임은 끝났다고 봐야 했다. 

“아무리 라일라칸이 우리에게 있어도 레메게톤은 라할에 버금가는 신이니까.” 

라할이 빛의 신이라면, 레메게톤은 어둠의 신이기 때문에 그 차이가 너무나도 심하다. 아무리 쉬운 난이도로 게임을 플레이 해도 레메게톤이 부활하는 순간, 게임 난이도가 갑자기 지옥 모드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뭐, 지금은 라일라칸이 있으니, 딱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레메게톤이 부활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내지 않고 모든 전투에 라일라칸을 앞세운다면 아주 수월하게 테키나 족속을 몰아낼 수 있게 될 터. 

하지만-. 

“대비를 해서 나쁠 건 없겠지.” 

다행스럽게도 나는 이 게임의 고인물이었다. 

그리고 레메게톤도 여러 번 상대해봤다. 일부러 놈을 부활시켜서 상대해 본적이 있을 정도. 그렇기에 레메게톤을 어떻게 상대해야하는지, 그 공략법 역시 알고 있었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헛기침을 몇 번 한 뒤에 목소리를 높였다. 

“밖에 있느냐?” 

그러자 시종 하나가 빠르게 안으로 들어왔다. 

“왕이시여. 부르셨습니까?” 

“호레스를 불러와라.” 

“예.” 

얼마 지나지 않아 호레스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왕이시여.” 

이 노인네는 평소에 뭘 먹고 다니는지 아주 얼굴에 화색이 환하게 돌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보다 더 젊어진 느낌이랄까? 

“혈색이 좋아 보이는군. 관리를 잘 받고 있는 모양이지?” 

“허허. 이렇게 왕께서 일라이 왕국을 잘 이끌어 주고 계시니, 저는 하루 종일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지경입니다. 제 건강이 좋아진 건 국왕 덕분이지요.” 

그러니까 내가 나라를 잘 다스리니까 뒤에서 삥땅 치는 게 많아 가지고 잘 먹고 잘 산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내가 너무 무력 쪽에만 인재풀을 신경 썼나.’ 

호레스를 대신할 만한 인재가 없어서 쓰고 있을 뿐이지, 기회가 되면 언제고 갈아 치울 예정이었다. 

“헌데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드워프들이 어디에 정착을 해서 살고 있는지 알아봐야겠다.” 

“드워프들 말입니까?” 

“그래. 자스트라 영역 쪽은 호드족이 잘 꿰고 있으니, 그들과 함께 찾아 보거라.” 

드워프들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운 아이템 하나가 내게 꼭 필요했다. 

물론 그들이 순순히 내줄지가 의문이긴 하지만, 그게 있다면 레메게톤을 상대할 수 있는 비장의 무기 하나를 갖게 되는 것이다. 

“드워프들을 갑자기 찾으시는 이유라면 혹······.”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레스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영웅의 검 때문에 그러신 겁니까?”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지. 

영웅의 검. 

이 대륙을 구원할 수 있는 자에게 바친다는, 드워프가 만든 최고의 검이다. 

하지만 일단 그걸 들기 위해서는 기본 스텟에서 무력이 90은 기본으로 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즉, 난 들 수 없는 검이었다. 

“왕께서는 하늘이 인정한 영웅이시니, 당연히 그 검을 가지셔야겠지요.” 

그래서일까. 

갑자기 단전에서부터 허세가 끓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호레스.” 

“아, 예. 왕이시여.” 

“본좌가 고작 그딴 검 하나에 집착할 것 같은가?” 

“그, 그건······.” 

“본좌가 원한다면 이 손가락 하나로도 대륙을 반으로 쪼갤 수 있다.” 

“!?” 

“그런데도 그따위 검이 내게 필요할 거라 생각하느냐?” 

호레스는 얼른 내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소, 송구하옵니다. 제가 감히 주제넘은 말을 했습니다.” 

“잘 알았다면 얼른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오너라.” 

“예, 왕이시여.” 

이마에 식은땀을 주륵 흘리고 있던 호레스가 헐레벌떡 밖으로 나갔다. 

난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뭐? 손가락 하나로 대륙을 반으로 쪼개?” 

왕이 된 이후 쓸데없이 허세 능력이 업그레이드 되면서 더 장황하게 허세를 늘어놓는 것 같아 큰일이었다. 

“이것도 병이다 병.”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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