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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17화 (117/200)

117화

0.01초 소드마스터 117화 

라일라칸. 

푸른 머릿결에, 푸른 눈동자. 

천상천하 유아독존 특성의 주인이자, 대륙에서 감히 대적할 자가 없는 진정한 최강자. 

늘 화면으로만 봤던 그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 있자니, 느낌이 이상했다. 

‘컴퓨터 화면으로 봤을 땐 진짜 잘생겼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하지만 제 아무리 대륙 최강자라고 해도 내 허세가 주눅들 일은 없었다. 

“아슬란이다.” 

왜냐하면 이 허세는 드래곤이 앞에서 아가리를 벌리고 있어도 전혀 흔들림이 없기 때문이다. 

“아슬란? 멋있는 이름을 가졌군. 본인이 가진 힘에 걸맞게 말이다.” 

그는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다른 자가 그런 이름을 가졌다면, 감히 어울리지도 않은 힘으로 허세를 부린다고 엄히 꾸짖었을 것이다.” 

라일라칸은 자신의 마력으로 만든 검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저것이 바로 라일라칸의 능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만물을 자신의 무기로 삼을 수 있는 특성. 

길바닥에 있는 썩은 나뭇가지를 명검처럼 쓸 수 있는 것이 바로 라일라칸의 능력이다. 

“대륙을 수호하는 위대한 검이시여.” 

“라일라칸 님을 뵙습니다.” 

“대륙의 최강자를 뵙습니다!” 

라일라칸 주변으로 칼라 왕국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카르만 역시 라일라칸의 모습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무릎을 꿇었다. 

“너희는 누구냐?” 

“칼라 왕국의 국왕, 카르만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뜻을 이어온 후손입니다.” 

“오호. 그렇다는 건 우리 가문이 왕가가 되었다는 것인가?” 

“예. 썩어 빠진 폭군을 폐위 시키고 새로운 왕국을 일으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래······. 결국 그리 되었군.” 

라일라칸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라일라칸.” 

“엘티히.” 

엘티히는 못 마땅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덤에 이상한 함정들을 설치해 놓았더군.” 

“아! 그래. 괜히 이상한 놈들이 들어와서는 안 되니까.” 

“하마터면 너를 부활시켜 주려 하는 사람들을 죽일 뻔했다.” 

“뭐, 결과적으로 아무도 죽지 않은 것 같은데?” 

“그거야 여기 있는 아슬란이 함정들을 미리 간파해 해체를 시켰기 때문이지.” 

“오. 그래?” 

라일라칸은 다시 내게 관심을 보였다. 

“신기하군. 당시 최고의 함정 설계자들이 만든 것들인데, 어떻게 그걸 쉽게 간파할 수가 있었던 거지?” 

그러자 잠시 사그라 들었던 허세가 용솟음 치듯 올라왔다. 

“내겐 그저 시시한 장난이었다. 그런 것들이 당대 최고의 함정 설계자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겠구나.” 

“하하하! 드워프 장인들이 그 얘기를 들었다면 까무러치겠는데? 내가 봐도 살벌한 함정들이 꽤 있었는데 말이야.” 

“라일라칸. 지금 이게 재밌다고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냐?”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군, 엘티히. 하지만 난 이 친구가 아주 마음에 들어. 원래 강자는 강자를 알아보는 법이라고 하지 않나? 오랜만에, 아니. 처음으로 동류를 만난 것 같아 기쁘군.” 

동류라니. 

네가 아슬란의 처참한 스텟을 보게 된다면 똑같이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까. 

“어떠냐, 아슬란. 내 옆에서 싸운다면 그보다 무한한 영광은 없을 터. 내 밑으로 들어와 함께 이 대륙을 구해 보겠느냐?” 

확실히 라일라칸 옆에서 싸우면 죽을 일은 덜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본좌는 누구의 밑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 

“네가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고 한다면 생각은 해보겠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상대는 라일라칸이었다. 

그런데도 이놈의 허세는 단 1g도 줄지를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서로 빈정만 상하고 앙금이 남을 만도 할 텐데, 라일라칸은 역정을 내는 대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너무나도 아쉽군. 네가 나의 후손이었어야 했는데 말이야.”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군.” 

나는 그만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돌아가겠다.” 

“응? 이대로 그냥 돌아가겠다고?” 

“이제 막 봉인에서 풀려 났으니, 너도 추스를 시간이 필요하겠지. 자세한 이야기는 그때 하도록 하지. 지금 당장 하는 건 의미가 없어 보이니.” 

300년 만에 깨어났기 때문에 제 아무리 라일라칸이라고 해도 힘을 다시 되찾고 이 대륙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갈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자꾸 라일라칸이 내게 친근한 척을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꺼림칙했다. 

거기다 이대로 아슬아슬하게 허세로 줄타기를 했다가는 진짜 사고를 한번 크게 칠 거 같기도 했고. 

‘근데 잠깐.’ 

우리가 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배가 있긴 한 건가? 

* * * 

“정말 가버렸군.” 

“저, 저런 건방진! 라일라칸 님께서 이렇게 돌아오셨는데, 그냥 혼자 돌아가 버리다니요!” 

“저자의 무례에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원래 저렇게 거만하기 짝이 없는 작자입니다.” 

“거만하다라······.” 

칼라 왕국 신하들의 말에 라일라칸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런 건 거만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 

“강자로써 갖는 특권 같은 거겠지. 품격이라고 해야 할까? 그걸 알 리가 없는 약자들은 때때로 그것을 거만함이라 표현하더군.” 

“······.” 

“나 역시 그런 소리를 많이 들어왔다. 지금 너희가 아슬란에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할 말이 없어 침묵을 지켰다. 

“일단 왕국으로 돌아가시지요.” 

“그래. 내 고향으로 가야지. 그립구나. 얼마나 많은 게 바뀌었을지 궁금하군. 그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라일라칸은 주변을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빛의 증표를 받은 기사는 어디에 있느냐?” 

“······예?” 

“저 무덤 문이 열리려면 엘티히의 마법이 필요하고, 동시에 빛의 증표를 받은 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 무덤은 절대 열리지 않아.” 

“그, 그것이······.” 

이들의 반응만 봐도 알겠다는 듯 라일라칸이 말했다. 

“설마 그 빛의 증표를 받은 자가 아슬란이라는 것은 아니겠지?” 

“······.” 

“너희 얼굴을 보아 하니, 내 말이 맞았구나. 아쉽군. 그래도 빛의 증표는 내 후손 중 하나가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자 한 기사가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비록 빛의 증표를 받지는 못하였으나, 여기 국왕 카르만은 라일라칸 님의 뜻일 받들어 대륙 최강자가 되었습니다!” 

“예. 국왕 카르만이야 말로 대륙에서 인정하는 첫 번째이자 최강의 소드마스터! 그 힘을 의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 

라일라칸은 고개를 돌려 카르만과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그의 눈가에는 곧 실망감이 어렸다. 

“아가. 네가 정말 대륙 최강자가 맞느냐?” 

카르만을 아가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아마 라일라칸이 유일할 것이다. 

“그건······.” 

“아쉽지만 넌 이 대륙의 최강자가 아니다. 내 눈은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거든.” 

“······?” 

라일라칸은 본인의 푸른 눈동자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이 눈은 상대방의 능력을 꿰뚫어 본다. 그리고 상대가 나를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지. 그리고 카르만 너는 날 죽일 수 없다. 그럴 만한 능력이 없어.” 

“······.” 

“하지만 아슬란. 그자는 다르다. 그자에게서는 특별한 힘이 느껴져. 제 아무리 나라도 범접할 수 없는······ 그런 힘 말이다. 그리고 그자를 이 두 눈으로 봤을 때, 머리가 아려올 정도로 요동을 치더구나. 난생 처음으로 느껴보는 죽음의 그림자였다.” 

지금까지 라일라칸이 상대와 싸워 매번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모두 이 눈 덕분이었다. 

상대방이 나를 죽일 수 있는지, 없는지. 

이 전쟁이 나를 죽일 수 있는 없는지를 매번 살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누구도 자신을 죽일 수 있을 만한 위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처음으로 라일라칸은 보았다. 

아슬란이란 남자의 뒤에서 일렁이는 그 무시무시한 죽음의 공포를 말이다. 

“나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는 존재가 이 대륙에 있다라······. 아주 적절한 시기에 깨어난 것 같아 다행이군.” 

“······.” 

“만일 네가 그자를 꺾는다면 그땐 너를 대륙의 최강자로 인정해 주마. 그전까지는 함부로 최강자라는 이름을 입에 담지 말도록. 너무 한심해 보이지 않느냐?” 

“······예.” 

라일라칸의 목소리에 담긴 서슬 퍼런 살기에 그들은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다 곧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얼굴로 말했다. 

“그런데 언제까지 이 칙칙한 곳에 있을 거지? 오랜만에 깨어나서 그런지 배가 고프구나. 뭐라도 먹으면서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봐야겠다. 마침 나를 오매불망 기다리며 그 아름다운 외모를 잃지 않은 엘티히도 있지 않느냐?” 

“죽고 싶으면 어디 더 지껄여 보거라, 라일라칸.” 

“후후. 까칠한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아무래도 진짜 여기서 죽여야겠구나.” 

라일라칸과 엘티히가 서로 회포를 풀고 있을 때,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왕이시여.” 

“무슨 일이지?” 

“지금 밖에서 큰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소란?” 

“예. 그······ 일단 나와서 직접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엘티히가 파괴 마법을 발현해 라일라칸에게 날리기 직전. 

그는 카르만에게 말했다. 

“한번 나가보지. 무슨 일인지 궁금하지 않느냐?” 

“아, 예.” 

“엘티히. 반가운 마음은 잘 알았으니, 그만 하고 따라와라.” 

“이익-!” 

엘티히는 손을 부르르 떨며 화를 삭혔다. 

그들은 모두 무덤 밖을 나와 아스렐 섬 항구로 나가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크롸라라라-!!” 

“으, 으헉!” 

레드 드래곤이 웅장하게 날개를 펼친 채 포효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아슬란?” 

망토를 화려하게 휘날리며 꼿꼿하게 서 있는 아슬란이 보였다. 

놀랍게도 그는 드래곤의 머리 위에 서 있었고, 부하들은 바들바들 몸을 떨며 간신히 드래곤 몸통을 붙잡아 균형을 잡는 중이었다. 

아슬란은 무덤에서 나오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자, 

[들어라.] 

“으헉!” 

“크읍-!” 

아스렐 섬 전체를 울리는 목소리가 그들의 고막을 흔들고 몸을 짓눌렀다. 

[함선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카르만 너의 허락이 필요하다 하여, 배를 타지 않고 그냥 바다를 건너려고 한다.] 

라일라칸 역시 그 목소리에 몸이 경직됨을 느꼈다. 

그는 간신히 그 짓누름 속에서 벗어나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슬란. 너는 드래곤까지 다루는 것이더냐?” 

그런 그를 근엄하게 내려다보고 있던 아슬란이 그 이름을 불렀다. 

[라일라칸.] 

그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머리골을 울리며 퍼져 나갔다. 

[내게 할 말이 있다면 일라이 왕국으로 와라.] 

라일라칸은 감히 자신을 내려다보며 거만한 눈동자를 하고 있는 아슬란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네 얘기를 들어주지.] 

그 말을 끝으로 그가 몸을 돌리자, 마치 주인이 이야기를 끝내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잠잠하던 드래곤이 날개를 펼쳤다. 

레드 드래곤은 킬킬 웃으며 온몸이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 하고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크크. 잘들 있거라, 애송이들.” 

그리고 그것이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자 뜨거운 바람이 그들을 덮쳤다. 

“크롸라라라-!!” 

거기다 이어지는 드래곤의 포효에 그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슬란과 그의 부하들은 드래곤을 타고 저 바다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 

라일라칸은 이따금씩 드래곤의 울음 소리가 들리는 저 수평선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라, 라일라칸 님.” 

이윽고 그는 실 없이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구나. 내가 정말로 적절한 시기에 눈을 뜬 것 같아 다행이다.” 

수많은 강적과 마주하며 그들과 싸워서 지금의 자리까지 온 라일라칸이었다. 

하지만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껏 마주했던 그 누구보다도 아슬란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했음을 말이다. 

저 지옥의 왕조차 자신의 몸을 떨게 만들지 못했거늘. 

“아슬란.” 

라일라칸은 제 손에 맺힌 식은땀을 매만졌다. 

“정말 재미있는 사내로다.” 

누군가를 꺾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피가 이토록 끓어 넘치는 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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