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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16화 (116/200)

116화

0.01초 소드마스터 116화 

부숴진 입구를 지나면 웅장한 라일라칸의 무덤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저 마법으로 떡칠된 입구를 무사히 열었다고 해서 안심할 순 없다. 

이곳 무덤 곳곳에 함정이 설치 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기 무덤에 뭘 그리 숨길 게 많아서 이런 걸 설치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라일라칸의 무덤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며 수없이 와봤던 곳이라 어느 곳에 함정이 있는지 나는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 알고 있다고 해서 함정들을 돌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이것들을 모조리 깨부술 만한 능력이 있어야 함정을 돌파해 라일라칸을 만나러 갈 수가 있다. 

‘근데 왜 내가 앞장을 서고 있냐?’ 

어쩌다 보니 모양새가 그리 되었다. 

엘티히가 가만 있던 나를 자극해서 허세가 날뛰는 바람에 문을 부숴 버리고 그대로앞장 서서 가게 된 것. 

‘이렇게 되면 함정을 내가 다 돌파해야 되는 거잖아?’ 

물론, 내가 직접 돌파할 생각은 없다. 

내 뒤에 든든한 네임드들이 얼마나 많은데. 

‘여긴······.’ 

그때 눈앞에 보이는 긴 돌다리에서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왜냐하면 이곳이 첫 번째 함정이기 때문이다. 

‘중간 정도 가다가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는 곳이었지?’ 

이 함정이 악랄한 것이, 처음 발을 들였을 때 다리가 무너지는 것이 아닌, 중간 정도 갔을 때 갑자기 무너진다는 것이었다. 

이 다리가 무너지게 되면 저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둠의 바닥으로 추락하게 된다. 

“왜 그러느냐, 아슬란?” 

엘티히의 물음에 나는 꼿꼿하게 세운 허리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함정이다.” 

“뭐?” 

“라일라칸은 꽤나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군. 이런 같잖은 함정을 설치하다니.” 

“함정이 있다고?” 

나는 다리 위로 발을 내디뎠다. 

“잠깐. 함정이 있다면서 너는 왜······.” 

“그깟 함정이 날 어찌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 

“그리고 이 함정은 바로 발동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지나야 발동이 되지.” 

내가 다리를 먼저 걸어 올라가자 내 부하들이 그 뒤를 따르려고 했다. 

“너희도 여기서 대기하고 있다가 오너라.” 

“아, 예.” 

그러면서 먼저 걸어가고 있는데, 뒤에서 카르만 부하들이 나누는 얘기가 들려왔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에이. 라일라칸 님께서 왜 그런 짓을······.” 

“근데 아무리 봐도 함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데?” 

“그럼 우리도 한번 걸어가 볼까?” 

그렇게 몇몇이 다리에 발을 들이는 순간. 

쩌적-! 콰콰콱-!! 

“으헉!” 

튼튼해 보였던 다리에 균열이 일어나고 무너져 내리면서 그들은 깜짝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지, 진짜 함정이 있었잖아?” 

“대체 왜 이런 함정이······!” 

“저, 저길 봐!” 

나는 망토를 펄럭이며 허공에 떠 있는 채로 그들을 한심하게 내려다 보았다. 

망토에 깃든 비행술 덕분에 나는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고 있었다. 

“사람 말을 잘 못 믿는 모양이군.” 

“······.” 

“먼저 가 있을 테니, 알아서들 걸어 오너라.” 

난 그들을 남겨두고 텅텅 빈 허공 위를 걸어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 * * 

“아니. 대체 왜 이런 함정이 여기에 있단 말인가?” 

“그러게나 말이오.” 

카르만 부하들의 말에 엘티히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라일라칸. 장난이 좀 심하구나.’ 

무덤 입구를 봉인하는 마법까지는 그렇다고 쳐도 이렇게 함정까지 만들었을 줄이야. 

이건 엘티히조차 모르던 일이었다. 

그런데, 

‘아슬란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정녕 그는 모르는 것이 없어 보였다. 

엘티히의 마법이 들어간 문을 단번에 부숴 버린 것도 그렇고, 저번에 말했던 대로 자신은 이 세계에서 모르는 게 거의 없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 사실인 것일까? 

엘티히조차도 알지 못했던 이 무덤의 함정을 아슬란은 속속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만 징징 대고 따라오기나 해라.” 

엘티히는 무너진 다리 앞에 발만 동동 구르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 한심한 놈들을 위해 마력으로 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엘티히 님.” 

그들과 함께 다리를 건넌 엘티히는 다음 장소로 가는 길목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아슬란을 만날 수 있었다. 

“왜 먼저 가지 않고?” 

“이곳에도 함정이 있다.” 

“또?” 

“그래. 저기 거대한 석상들이 보이나? 저 세 개의 석상이 함정이라 할 수 있지.” 

높게 솟아 올라와 저 천장까지 닿을 것처럼 보이는 세 개의 석상. 

이것들이 정말 함정이란 것인가? 

“그럼 내가 만든 봉인문을 쳐부셨듯이, 저것들도 다 부수고 가지 그랬느냐?” 

“······그걸 내가 부숴 놓았다고 혹시 마음이 상하기라도 했는가?” 

“허! 누, 누가 그런 걸로 마음이 상했다고!” 

“그런 거라면 좀 더 단단하게 만들지 그랬나?” 

순간 할 말이 없었다. 

그 당시 자신이 부릴 수 있는 최고의 봉인 마법을 그곳에 심어 놓았노라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저놈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토끼를 잡겠다고 이 무덤을 다 무너뜨릴 순 없지 않나?” 

그 말은 즉, 고작 저런 걸로 힘조절을 잘못 했다가는 이 무덤 전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허세를 부린다고 눈살을 찌푸렸겠지만-. 

‘아슬란이라면.’ 

충분히 검강 한번으로도 이 무덤을 반으로 쪼갤 수 있는 사내이지 않은가. 

저 드래곤을 일격에 베어 버리고 그 발로 머리를 짓밟은 남자다. 

그러니 구태여 힘을 발휘하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레바노스.” 

“예, 왕이시여.” 

“저 석상들을 부셔라.” 

“예!” 

어느새 아슬란의 충직한 기사가 된 소드마스터 레바노스. 

그는 명령에 따라 대검을 꺼내어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우득-!! 

레바노스가 입구를 지나 가까이 다가오자 가만히 있던 석상들이 하나 둘 경직된 몸을 풀며 움직였다. 

슈우우웅! 콰앙-! 

놈들이 공격을 가하기 전에, 레바노스가 먼저 대검을 던져 그들을 공격했다. 

대검이 저 거대한 돌덩이를 꿰뚫고 실타래처럼 길게 늘어져 몸을 묶어 버리는 등, 레바노스의 공격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콰콰쾅-!! 

그렇게 연달아 가해진 공격에 의해 석상들은 그 덩치에 맞지 않게 너무나도 쉽사리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마지막 남은 석상까지 깔끔하게 반토막을 내어 버리고 온 레바노스. 

그를 바라보는 카르만 부하들의 시선이 심상치 않았다. 

모두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라이 왕국이 많이 성장하긴 했구나.’ 

대륙 최약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반대가 된 것 같았다. 

아슬란을 따르는 저 부하들의 실력은 직접 않아도 알 수 있을만큼 느껴지는 기세가 대단했다. 

“계속 가도록 하지.” 

그 이후에도 아슬란은 어디에 함정이 있는지 미리 알려 주고 부하들을 시켜 제거하는 등, 그 어떤 함정도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못했다. 

라일라칸은 자기를 위해 무덤을 만든 것인지, 아니면 후손들을 죽이고자 함정 시설을 만들어 놓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 함정을 지나고 나서야 마침내-. 

“이곳이다.” 

라일라칸이 묻혀 있는 무덤에 다다를 수 있게 되었다. 

엘티히는 사각형으로 이루어진 무덤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래. 300년 전과 별 다를 바가 없구나.” 

이곳에 심어져 있는 마법 덕분에 잘 관리가 되어 있는 듯했다. 

“이제 그만 라일라칸을 깨워라, 엘티히.” 

“그래야겠군.” 

엘티히는 손을 뻗어 무덤에 걸려 있는 마법을 천천히 풀었다. 

“300년 전 나는 여러 마법사와 함께 이곳에다 라일라칸을 봉인했다. 그가 원했기에 했던 일이지. 하지만 인간이기에 봉인 마법을 쓴다고 해서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지.” 

엘티히의 손짓에 따라 무덤 위로 심장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불멸의 삶을 산다는 레메게톤의 수족이자 악마들의 지휘관 바빌론. 그들 중 하나였던 단탈리온의 심장을 빼앗아 이 마법진에 사용했다. 그리고 이 심장의 힘이 라일라칸에게 다시 숨결을 불어 넣어 주게 될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심장으로부터 붉은 파동이 일어나 그 아래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붉은 기운이 하늘 위로 뻗어 나오면서 무덤 문이 열렸다. 

그런데, 

[드디어 찾았다.] 

불길한 목소리가 저 아래에서 울려 퍼지며 검은 손아귀가 튀어 나와 심장을 움켜쥐었다.

[여기 있었구나.] 

* * * 

‘뭐, 뭐야 이거. 왜 여기서 악마가 튀어 나와?’ 

이 무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엘티히의 설명이 끝난 뒤 무덤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라일라칸이 나와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것이 내가 수백 번 플레이를 하며 봤던 장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키에에엑-!! 

캬오오-!! 

악마들이 라일라칸의 무덤에 대량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아, 악마다!” 

“막아라!” 

당황한 기사들은 칼을 뽑아 들고 몰려드는 악마와 싸움을 벌였고, 엘티히는 저 밑자락에서 올라오는 웃음소리 몸을 잘게 떨었다. 

그것은 곧 황소처럼 길게 뻗은 검은 두 뿔과 거대한 몸뚱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엘티히. 대륙의 마녀여. 마침 잘 왔구나.” 

“너는······ 단탈리온? 어떻게 네가 이곳에!?” 

“흐흐흐. 300년 전 그 일을 난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오늘이야 말로 네놈들을 모조리 불에 태워 죽여 주마!” 

대악마 중에서 그들의 대장 노릇을 한다는 바빌론! 

불의 악마라 불리는 단탈리온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대체 왜 저놈이 여기에······.’ 

아무리 난이도 때문이라지만, 절대 이곳에서 등장할 리가 없는 놈이다. 

그런데도 놈이 이곳에 나타났다. 

이 모두를, 그리고 나를 죽이기 위해! 

콰아아아-!! 

높이만 20m에 달하는 상당한 몸뚱이. 

그 몸에 걸맞는 대검까지. 

놈이 한번씩 검을 휘두를 때마다 사방이 불길에 휩싸였고, 악마들과 싸우던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숯덩이가 되어 버렸다. 

콰아앙-!! 

엘티히 역시 놈의 입에서 내뿜는 불길과 대검으로 인해 저 먼발치까지 밀려났다. 

“흐압-!!” 

잠시 보이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레바노스가 펄쩍 뛰어 날아올라 허점을 공략했지만-. 

“간지럽구나.” 

단탈리온은 가볍게 손가락으로 레바노스를 쳐내며 저 벽에 처박아 버렸다. 

“왕이시여!” 

부하들은 내 곁으로 달려와 밀려오는 악마들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들도 알고 있었다. 

백날 여기서 악마들을 막아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결국 저 거대한 악마를 쓰러뜨려야만 이 난관을 해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건 카르만 역시 알고 있는 일이었다. 

스르릉-! 

현존하는 대륙의 최강자라고 불리는 카르만. 

마침내 그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고 단탈리온을 향해 번쩍 날아올랐다. 

카르만이 허공 위로 날아올라 길게 칼을 직선으로 휘두르자, 

스걱-!! 

저 거대한 몸뚱이에 검격이 생겨나며 그대로 단탈리온을 베어 버렸다. 

“컥-!” 

과연 대륙 최강자답게 카르만의 무시무시한 일격이 단탈리온을 휘청이게 만들었다. 

카르만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연속해서 검을 휘둘러 마구잡이로 단탈리온의 몸을 난도질했다. 

설마 카르만이 저 단탈리온을 혼자서 이기는 건가? 

······라는 기대도 잠시. 

“인간 주제에 제법이군. 내 심장을 되찾지 않았다면 위험했겠어.” 

단탈리온의 상처 입은 몸이 금방 불길에 의해 회복되며 놈은 휘청이던 몸의 균형을 다 잡았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인간이구나.” 

그러고는 위에서 아래로 칼을 내리찍으며 카르만과 부딪혔다. 

콰콰쾅-!! 

그 무지막지한 힘에 카르만은 저 바닥에 굉음을 내며 처박히고 말았다. 

그러면서 단탈리온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양옆으로 칼을 휘둘러 거센 불길을 일으켰다. 

“으아아악!” 

“아, 아슬란 님!!” 

폭풍처럼 일어난 불길에 의해 내 부하들이 전부 휩쓸려 날아가고 말았다. 

과연 대악마들의 지휘관, 바빌론다운 힘이었다. 

지금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정도 인원으로는 도저히 바빌론을 이길 만한 방법이 떠오르지가 않았다. 

“너로구나.” 

그때 내 위로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 

“그 멍청한 라할이 선택했다는 빛의 기사가 말이다. 네놈에게서 무척 역겨운 빛의 냄새가 난다.” 

놈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내 손에 처참하게 죽어 버리면 라할 그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무척 궁금하구나. 크하하!” 

단탈리온은 검을 두 손으로 붙잡고 검끝을 아래로 내렸다. 

이대로 내 몸을 산산조각 내버리기 위함이리라. 

“죽어라. 그래도 라할이 선택한 기사이니, 내 최대한 힘을 써주지.” 

아니.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콰아아앙-!! 

단탈리온이 두 손으로 잡은 검으로 아래를 내리 찍으면서 본능적으로 발동된 내 수호의 방패와 맞부딪혔다. 

쿠쿠쿠쿵-!! 

수호의 방패는 저 거대한 단탈리온의 검을 막아내고 있었고, 놈은 어떻게든 이 방어막을 뚫고자 더욱 강하게 힘을 불어 넣었다. 

그로 인해 땅이 갈라지고, 무덤 전체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피이이잉-!! 

내 방어막이 반사하는 데미지는 커질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단탈리온이 들고 있던 검을 부러뜨리기까지 했다. 

“크헉-!” 

결국 내 방패를 뚫지 못 한 단탈리온은 그 안에서 퍼져 나오는 힘에 의해 몸이 기우뚱 거리다 못 해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15초를 넘긴 내 방어막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대체 어떻게······!” 

쓰러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던 단탈리온은 자신의 부러진 검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인간 따위가 내 힘을 막아낼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순순히 패배를 인정하진 않았다. 

놈은 불길로 가득한 몸의 온도를 더욱 뜨겁게 올리며 소리쳤다. 

“어디 한번 이 지옥불도 막아 보거라, 인간!!” 

단탈리온은 검을 버리고 그 대신 주먹으로 용암보다 뜨거운 불을 일으켰다. 

그것을 내 머리 위로 내려쳐 한번에 나를 터트릴 심산인 듯보였다. 

‘수호의 방패를 또 써봐야 하나?’ 

그렇다고 한들 놈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할 뿐, 결코 놈을 죽일 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혹한의 룬] 

-시전자의 힘에 비례하여 혹한의 능력을 사용하게 됩니다. 

불의 룬과 마찬가지로 내 힘에 비례하여 쓸 수 있는 혹한의 룬. 

바로 어떤 것이든 얼려 버리는 아이스 드래곤의 능력이었다.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공격을 막아도 죽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죽는 거라면 마지막 발악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죽어라, 빛의 기사여!!” 

나는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단탈리온의 주먹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우리 둘의 주먹이 서로 맞닿는 순간. 

쩌엉-!! 

“······!?”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차가운 한기가 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내 앞에는 한순간에 모든 불길과 함께 얼어 버린 단탈리온이 서 있었다. 

내게 주먹을 내려치고 있는 자세로 말이다. 

“이, 이럴 수가.” 

“저게 무슨······!” 

그 장엄하고도 놀라운 광경에 악마들과 싸우고 있던 기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나 역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보이는 이 거대한 얼음 석상에 잠시 넋을 잃었다. 

‘해··· 해치웠나?’ 

바로 그 순간. 

콰직-! 콰드득-!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오늘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가, 감히······!” 

단단하게 얼어 있던 얼음이 깨지면서 놈의 사악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단탈리온은 힘겹게 몸을 움직이며 자신을 구속하고 있는 얼음을 깨뜨렸다. 

“감히 인간 따위가!!” 

전보다 훨씬 약해진 불길. 

갈라지는 목소리. 

나는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바빌론 정도 되는 보스 몬스터에게는 항상 나타나는 현상. 

게임을 너무 쉽게 끝내서는 안 되기에 플레이어들을 더 괴롭히고자 만든 개발자들의 장치. 

바로 발악 패턴이었다. 

‘시발. 여기서 더 뭘 어쩌라는 거야?’ 

놈이 약해져 있는 것은 맞으나, 발악 패턴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있는 모든 걸 쥐어 짜내 싸우는 거라 놈의 공격에 스치기만 해도 사망이었다. 

하지만 놈이 발악을 하는 것도 잠시. 

촤아아악-!! 

푸른 빛으로 둘러 싸인 무언가가 솟구쳐 올라오더니, 놈의 다리 밑부터 시작해 저 머리끝까지 베어 버렸다. 

“억······.” 

눈으로 차마 쫓을 수 없는 그 빠른 검술에 단탈리온은 허무할 정도로 무릎을 꿇었다. 

놈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너, 너는······.” 

“300년 전에 분명 죽였던 거 같았는데, 또 그 일을 반복하게 만드는군.” 

그는 단탈리온의 몸을 가르고 그 안에 쿵쾅 대고 있던 심장을 꺼내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단탈리온이 괴성을 지르며 그 몸이 녹아 내리고 말았다. 

“죽는 순간도 그때와 똑같구나. 다시 보지 말자.” 

나는 단탈리온의 목숨을 단숨에 끊어 버린 사내를 쳐다보았다. 

푸른 머릿결에 귀한 귀족 가문 자제 같은 얼굴. 

그는 이 대륙의 최강자, 라일라칸이었다. 

“저, 저분이 설마······.” 

“라, 라일라칸!” 

단탈리온이 죽으면서 악마들도 함께 사라졌다. 

기사들은 푸른 광채를 내뿜으며 천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라일라칸 앞에 다가갔다. 

하지만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자신의 후손들이 아닌, 바로 나였다. 

“미안하다. 네가 마무리를 지으려 했던 것 같은데, 내가 그 영광을 빼앗아 버리고 말았군.” 

그는 내게 정중히 사과를 하다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이구나.” 

그러면서 내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300년 전에도 모든 존재 중에 나를 대적할 수 있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넌 다르구나.” 

지금껏 내가 마주한 라일라칸과는 확연히 다른 눈동자였다. 

“날 죽일 힘을 가진 인간이라······. 네 이름이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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