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0.01초 소드마스터 115화
“ᛤᛪᚸᚹᚺᚼᚾᛟᛯᛡ.”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어둠의 문자와 언어로 주문을 외우고 있던 악의 사제들.
그들은 용암이 철철 흐르는 뜨거운 지옥 구덩이에서 악마들을 한 데 모아 놓고 의식에 열중했다.
“ᚸᚹᚺᚼ!”
그리고 주문의 끝에 다다르자 땅이 흔들리면서 사방에 불길이 치솟았다.
그 불길은 마법진이 그려진 가운데 서 있던 악마들을 집어삼켰다.
“캬오오오!!”
동료들이 불에 타들어 가고 있는데도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들에게는 동료 의식이라는 게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약하면 잡아 먹히고, 강자가 오로지 약자를 짓밟으며 통치하는 것이 바로 테키나 족속의 진리였다.
“그분께서 깨어나신다. 맞이하거라. 영원한 불꽃의 지배자를.”
이 의식을 주도하던 제사장의 말에, 모여 있던 모든 악마가 괴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무언가가 울부짖으며 제단 바닥을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크오오오-!!”
불길이 기둥처럼 솟아오르고, 그 밖으로 검은 두 뿔이 머리 위에 날카롭게 솟아오른 악마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손에는 용암으로 이루어진 검이 들려 있었으며, 검게 그을린 살가죽에는 온통 뜨거운 불길로 가득했다.
“······.”
한바탕 크게 괴성을 지르더니, 곧 잠잠해진 그에게 제사장이 다가갔다.
“우리의 지휘관이 되시며, 위대한 분을 섬기시는 바빌론이시여. 당신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지?”
“300년입니다. 단탈리온 님.”
“300년?”
그 말에 단탈리온은 제사장의 목을 붙잡았다.
“컥! 다, 단탈리온 님!”
“그 오랜 시간 동안 나를 이 구덩이에 처박아 놓고 있었다는 것이냐!”
“소, 송구합니다. 하지만 단단했던 봉인이 깨진 것이 최근이라, 저희도 방법이······.”
“이런 쓸모없는 것들.”
단탈리온은 제사장을 집어 던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내 힘은 완전하지가 않다. 이대로 싸운다면 300년 전과 똑같은 일이 되풀이되겠지.”
악마들이 그 앞에 엎드리며 말했다.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내 심장은 자신들을 영웅이라 일컫는 자들에게 강탈당하여 이 대륙 어딘가에 숨겨졌다. 하지만 지금은 느껴진다.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너희는 그곳으로 가서 내 심장을 찾아오너라. 그럼, 다시 한번 우리 테키나 족속이 대륙을 불로 뒤덮어 놓게 될 것이다!”
“캬오오오-!!”
악마들은 한목소리로 함성을 질렀다.
이들 모두를 이끌 수 있는 지휘관이자, 레메게톤의 수족이라 불리는 바빌론 중 하나인 불의 악마, 단탈리온의 부활이었다.
* * *
“어서 오십시오. 선조들께서 잠드신 이곳, 아스렐 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스렐 섬은 역대 칼라 왕국의 왕들이 묻혀 있는 곳으로, 이곳에 최초로 묻힌 사람이 바로 라일라칸이었다.
그래서 라일라칸의 정기를 느끼고자 성지 순례하듯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이곳 아스렐 섬 바깥은 아이스 드래곤의 서식지입니다. 어느 날부터 놈이 아스렐 섬 주변에 레어를 만들어 지나가는 배마다 공격을 해댔지요.”
그랬던가.
아스렐 섬이 언제부터 드래곤의 서식지가 되었던 거지.
한번도 이 게임을 플레이 하면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이다.
아스렐 섬의 책임자, 호리에드는 주변을 둘러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모두 무사히 도착하셨군요. 물론, 함대에 피해가 있긴 했겠으나, 목숨을 잃지 않고 여기까지 오셨다는 건 역시 그 드래곤을 카르만 님께서 물리치신 거겠지요?”
“······.”
누구도 그 말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호리에드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호칭은 오직 카르만 님에게만 어울리는 칭호이니 말입니다!”
같은 ‘호’씨라서 그런가.
저 양반도 눈치가 더럽게 없다.
“음? 부, 분위기가 왜 이래? 내가 무슨 말실수라도 한 겐가?”
“······들어가지.”
카르만은 힐긋 호리에드를 노려본 뒤 부하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인사 명령이 어떻게 내려올지 벌써 빤히 보였다.
“오오-”
“과연 여기가······.”
아스렐 섬 안쪽에 들어서자 우리 뒤를 따르던 기사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 무덤은 그 어느 무덤과 비교하기를 거부할 정도로 웅장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300년 전, 대륙을 구한 기사들의 거대한 석상들이 만들어져 있고, 그들이 마치 지하에 있는 무덤을 방어하듯 나열되어 있었다.
다른 왕들의 무덤에 비해 그 크기부터가 압도적인 라일라칸의 무덤.
엘티히는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하여튼, 이놈은 죽은 다음에도 허영심으로 가득하구나. 뭐, 정확히 말하자면 아직 죽은 게 아니긴 하다만.”
엘티히 말대로 자신의 위대함을 여실히 드러내고자 이렇게 무덤을 크게 지은 거라고밖에 볼 수가 없었다.
‘이 무덤을 설계한 것도 라일라칸이니까.’
누군가가 라일라칸의 영광스러움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이 무덤을 만든 것이 아닌, 라일라칸이 스스로 봉인되기 전에 자기가 직접 설계에 참여하여 건설한 곳이라는 것이다.
“대륙의 최강자였으며, 그 위대함은 하늘을 떨게 할 정도였던 라일라칸 님을 경외하고자 왕들께서는 자신들의 무덤을 최대한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라일라칸이 너무 크게 만들어 버린 탓도 있어서 칼라 왕국의 선조들도 나름 크게 만들긴 했지만, 그에 비교하면 작은 수준이었다.
계속 재잘재잘 설명을 해가며 우리를 안내하던 호리에드는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여기까지가 제 권한으로 안내해 드릴 수 있는 곳입니다. 이 입구부터는 철저히 출입이 통제되고 있습니다. 300년 동안 그 누구도 이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지요.”
카르만은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열어라.”
“하지만 이곳은 라일라칸 님께서 출입을 금하신······.”
“왕의 명령이다. 열어라.”
“저도 왕의 명령을 따르고 싶으나, 이 문은 열쇠가 없습니다. 또한 아주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어 완력으로나, 마법으로도 열 수가 없습니다.”
그런 호리에드의 말에 카르만은 뒤를 바라보았다.
“누가 열어 보겠나?”
“저희가 열겠습니다!”
왕의 부름에 기사들이 나서서 각자 칼을 뽑았다.
그곳에는 소드마스터 미뉴엘도 있었다.
“흐아압-!”
그들은 우렁찬 포효와 함께 문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카앙-!!
하지만 검들이 죄다 튕겨 나가면서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기사들은 다시 한번 심기일전하며 문에 달려들었지만, 몇 번을 내리쳐도 문은 멀쩡했다. 대신, 그들의 손바닥만 찢어져 피가 나올 뿐이었다.
“마법은 마법으로 다스리면 될 일.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기사들이 안 되니, 이번에는 마법사들이 나섰다.
과연 인재풀이 짱짱한 칼라 왕국답게, 3명의 대마법사, 크라울리, 레비안, 티샤르가 나섰다.
“한번에 해보겠나? 아니면 각자?”
“나한테 맡기시게. 내가 단번에 열어 볼 테니.”
크라울리는 마법진을 펼쳐 이 문에 새겨진 마법이 무엇인지부터 해독에 들어갔다.
그는 곧 감고 있던 눈을 뜨며 인상을 찡그렸다.
“설마 했더니, 이렇게나 강력하고 난해한 마법들이 걸려 있을 줄이야.”
“그 정도인가?”
“그래. 대체 얼마나 많은 마법이 고작 이 문 하나에 들어간 것인지 모르겠군.”
“그만큼 라일라칸께서 아무도 들이기를 원치 않으셨던 거겠지.”
사실은 그 반대였다.
누구도 들이기를 원치 않은 것이 아니라, 이 정도도 못 넘을 거면 들어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라일라칸의 경고 같은 것이었다.
‘대마법사 3명이 있어도 이 문은 못 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라일라칸이 얼마나 지독한 놈인지, 이 좁은 통로에 이런 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즉, 마법으로 이 입구를 부숴 놓으려고 한다면 이 좁은 통로까지 폭삭 내려앉아 전부 다 함몰되어 버리게 설계를 해 놓았다는 것이다.
‘파괴 마법으로 열려면 열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여기 통로가 무너지면서 무슨 꼴을 당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생각보다 여기 여는 건 간단하잖아?’
이 문은 힘으로 열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엘티히만 있다면 이 문은 쉽게 열 수 있다.
왜냐하면 여기다 마법을 걸어 놓은 것이 바로 엘티히였기 때문이다.
엘티히와 더불어 여러 마법사가 만든 마법을 이 문에 걸어두었고, 그것을 열 방법을 알고 있는 건 엘티히 뿐이었다.
즉, 이곳을 이렇게 만든 이유는 후손들보고 엿이나 먹으라는 라일라칸의 삐뚤어진 마음도 아주 조금은 있겠지만, 엘티히가 없으면 넘어올 자격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콰앙-! 콰쾅-!!
“그, 그만! 이러다 통로가 무너지겠다!”
마법 해독이 되지를 않으니, 냅다 파괴 마법을 갈겨 버린 대마법사 세 명은 통로가 지진 난 듯 흔들리자 마법을 멈췄다.
“후- 이걸 어떡하면 좋지?”
“파괴 마법을 무분별하게 썼다가는 통로가 무너질 것 같은데?”
“아무리 강한 파괴 마법을 써도 문이 열리지 않을 수도······.”
그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나는 엘티히를 슬쩍 바라보았다.
과연 저것들이 어떻게 이 난관을 해쳐 갈지 지켜보는 재미라도 들린 것인지, 절대 앞으로 나서지를 않았다.
종국에는,
“정녕 방법이 없는가?”
“송구합니다. 너무나도 강력한 마법이 걸려 있어 해독하는 데에 며칠이 걸릴 듯합니다.”
“며칠?”
카르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그는 칼을 천천히 뽑아 들었다.
“강력한 마법이라-”
그가 칼에 힘을 불어넣고 내리치는 순간.
콰직-! 콰콰콱-!!
문에 걸려 있는 봉인이 크게 스파크를 일으키며 튀어 올랐고, 통로는 파도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양옆으로 균열이 일면서 조금이라도 잘못 건드렸다가는 통로 전체가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그만. 이제 거기까지 하거라.”
이러다 정말 다 무너지게 생기자, 보다 못한 엘티히가 나섰다.
“하여튼 인간들이란. 무조건 힘으로 몰아붙인다고 해서 다 해결되는 줄 아느냐?”
엘티히는 못마땅하다는 듯 카르만과 그의 부하들을 꾸짖었다.
“이 마법은 너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완력이나 파괴 마법으로 해제가 되지 않도록 내가 정말 강력한 마법을 이곳에다 심어 두었거든.”
“이 봉인을 만든 것이 엘티히 여왕이란 말이오?”
“그래, 카르만. 네 힘이 뛰어나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완력으로는 절대 이 문을 부술 수 없다. 너희 알량한 그 마법 실력으로도 말이지.”
“······.”
엘티히는 비웃음 젖은 입가로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문 앞에 걸어갔다.
거기까지 했으면 딱 알맞을 것을.
갑자기 엘티히가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슬란. 너라도 이 문을 부수기는 힘들 거다. 그만큼 정교한 마법이 들어간 문이거든.”
그 말이 총의 방아쇠가 되어 잠잠해 있던 내 허세를 깨워 버리고 말았다.
“웃기는 소리를 하는구나.”
“뭐?”
나는 망토를 펄럭이며 엘티히 옆으로 다가갔다.
“이 세상 어떤 마법도 본좌의 힘을 막아낼 수 있는 건 없다.”
“자신만만하구나. 그럼 너도 카르만처럼 한번 도전을 해보려는 것이냐? 괜히 망신당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거라.”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욱 내 허세라는 불길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내가 도전을 하는 것이 아닌, 네 마법이 내 힘에 도전하는 것이다.”
“······?”
그리고 나는 냅다 문을 향해 발길질을 날렸다.
그러자,
콰아아앙-!!
큰 굉음과 함께 문이 부서져 나가면서 막혀 있던 입구가 열렸다.
“······.”
엘티히를 비롯해 이곳에 있던 모두가 넋이 나간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뻥 뚫린 입구로 걸어가며 말했다.
“물론, 네 알량한 마법으로는 감히 내 힘을 버틸 수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