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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12화 (112/200)

112화

0.01초 소드마스터 112화

깊은 밤.

달과 별들의 빛을 의지하여 이 어두운 밤을 보내야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여기 사람들은 양손으로 신성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램프를 들고 다니며 한자리에 모였다.

“오늘도 많은 분이 오셨군요.”

이윽고 그들 앞에 아론이 걸어 나왔다.

“이 대륙의 평화와 빛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한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아론 역시 신성한 빛을 밝게 내뿜고 있는 램프를 들고 있었다.

“이 램프를 보십시오. 이번 검의 원탁 때문에 처음으로 일라이 왕국에 오신 분들에게는 이 램프가 굉장히 생소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다른 램프들과 달리, 이건 기름을 이용하거나, 혹은 촛대를 이용하여 만든 것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신성한 빛이 이 안에서 타오르고 있기 때문이죠.”

아론은 램프의 뚜껑을 열어 그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여 주었다.

“이곳에는 바로 성수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는 그 성수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성스러운 물입니다. 그리고 이 성수를 만들어내신 분은 우리가 온 마음과 뜻을 다해 섬기는 아슬란 님이 만드신 겁니다.”

이 램프에서 나오는 불은 성수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램프를 개발한 건 바로 라파엘이었다.

성수로 성스러운 불을 일으키는, 참으로 신비한 램프였다.

“오오······.”

“과연······.”

기도회에 모인 사람들은 아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구에서 나눠 준 램프를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아슬란 님께서는 하늘이 인정한 예언된 존재이자 이 대륙을 구원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하지만 그분께서는 단 한번도 그 사실을 강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떠벌리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의 겸손함은 저 바다보다도 깊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 백성들을 사랑하고 아끼시는 마음처럼 말이지요.”

아론이 애끓는 목소리로 말하자 기도회에 모인 사람들도 감명받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분께서 분노하시면 그 힘은 가히 하늘을 떨게 할 정도입니다. 그분이 내디디는 발걸음마다 땅이 갈라지고, 그분이 목소리를 낼 때마다 창공이 열립니다.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하신 분께서 오늘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의 이름 아래 모인 자들은 절대 파멸되지 않을 것임을.”

“오오······.”

“그런 말씀을······.”

아론은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이 군중에게 숨기지 않고 말해 주었다.

“그분의 힘이라면 모든 왕국을 무릎 꿇리고, 그들의 군사력을 파괴하며, 백성들의 터를 충분히 재로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그분께서는 힘을 쓰기보다는 따뜻한 대화를 먼저 청하셨고, 따뜻한 손길을 먼저 베푸셨습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악에서 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

아론은 어느새 눈물까지 글썽이며 울먹거렸다.

“아슬란 님께서는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왕궁은 여전히 보잘것없이 낡았지만, 이곳 일라이 왕국은 어떻습니까? 모든 것이 새것으로 바뀌었고, 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안락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오늘도 저 춥고 낡아 빠진 왕궁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허어-”

“어찌 그런······!”

“지금이라도 새로운 왕궁을 건설해야 하는 거 아니야?”

“옳소!”

격해진 군중의 반응에 아론은 고개를 저었다.

“저희도 여러 차례 건의를 올렸지만, 그분께서는 한번도 윤허를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이번에도 그러시겠지요. 한 푼이라도 더 백성들을 위해 쓰고자 말입니다.”

“아아-”

“과연 성군이시구나······.”

그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하나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늘 이 자리에 일라이 왕국 출신 말고도 다른 왕국 분들이 많이 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아슬란 국왕께서는 사사로운 욕심이 없으신 분입니다. 오직 이 대륙과 이 대륙에 있는 백성들만을 생각하시는 분임을 오늘 꼭 알아 가셨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아론은 앞에 있던 잔을 들었다.

“자, 모두 잔을 듭시다.”

군중들도 램프를 내려놓고 잔을 높이 들었다.

“빛을 위하여.”

그의 말에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다.

“아슬란 님을 위하여!”

그러고는 잔에 담긴 성수를 한번에 들이켰다.

“오늘 밤도 이렇게 모여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2부에서 뵙겠습니다. 오늘도 빛의 따뜻함과 아슬란 님의 용맹함이 당신들과 함께하기를.”

“와아아-!!”

성 전체가 떠나갈 것만 같은 군중의 함성소리였다.

“이것이 그 유명한 기도회라는 것이군.”

“예. 한번 기도회가 열릴 때마다 수십 만의 인파가 몰린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다른 왕국에서도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올 정도로 그 인기가 엄청 나다고 들었습니다.”

엘버스테인은 램프를 들고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웃음꽃이 활짝 핀 어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교단에서는 딱히 제재를 안 하는 건가?”

“무려 교단의 교황이 기도회에 참석하지 않습니까? 교황마저도 인정하는 기도회를 어떻게 교단이 탄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구나. 아론, 그가 참으로 뜻깊은 모임을 만들어냈어.”

아론이 처음으로 주최했던 이 기도회는 시간이 갈수록 그 위세가 커져 지금은 수십만 명의 신도들이 모이고 타 왕국에서 이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올 정도로 그 인기가 대단했다.

항상 이야기로만 듣던 기도회를 직접 참석한 엘버스테인은 왜 이것이 그토록 인기가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슬란의 뛰어난 무용담과 그가 얼마나 백성을 아끼는지에 대해 알면 알수록 그 신앙심이 더욱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우리 왕국 백성들도 이 기도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격려하거라.”

“예, 그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엘버스테인은 아주 흡족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다 문득 저 뒤편에 보이는 왕국을 바라보게 되었다.

“일라이 왕국은 이토록 휘황찬란하게 바뀌었는데, 어찌 왕궁은 저리도 낡게 두시는 건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아론의 말대로 백성들을 위해서만 돈을 쓰시겠다는 건가?”

엘버스테인도 한 나라를 이끄는 국왕이기에, 오직 백성들만을 위해 돈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다.

“오늘도 내가 얼마나 부족한 왕인지 깨닫고 가는구나.”

그 역시 왕국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왕이었지만, 그는 항상 아슬란과 스스로를 비교하며 부족함을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매번 다짐한다.

자신이 주군으로 모시는 아슬란을 닮아 가겠다고 말이다.

“우리도 얼른 2부 기도회에 참여하도록 하지.”

“예, 왕이시여.”

2부 기도회로 향하는 엘버스테인의 발걸음은 무척 가볍고 즐거웠다.

* * *

“흐음- 그래. 이 맛이야.”

나는 의자에 푹 기대어 앉아 시원한 마사지를 받고 있었다.

“역시 마법 마사지가 최고라니깐.”

이 의자에는 안마 기능이 마법으로 걸려 있어 밤마다 이렇게 마사지를 받는 게 최고의 낙이었다.

이렇게 안마를 받고 난 뒤에 푹신한 침대에 누워 있으면 잠이 솔솔 온다.

“역시 돈은 딱 내 침소에만 쓰길 잘했다.”

신하들은 몇 번이나 내가 왕궁을 리모델링해서 싹 바꾸자는 제안을 올렸다.

하지만 난 알고 있지 않은가.

왕궁을 리모델링 하는 데에 들어가는 돈이 엄청 나다는 것을 말이다.

그 돈이면 차라리 성을 하나 새로 짓는 게 나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해서 낡은 곳에 생활할 생각은 없는 터라, 내가 지내는 이곳 침소와 집무실 안에 있는 가구들을 바꿔 놓았다.

“여긴 요리도 잘하지, 편의 시설도 잘되어 있지, 이 정도면 뭐 극락이지.”

뉴튜브를 볼 수 있는 핸드폰만 있으면 딱인데, 그게 참 아쉬웠다.

“오늘도 한고비를 잘 넘겼으니, 쉴 자격이 있다.”

오늘 최종 합의가 끝났다.

왕국끼리의 전쟁이 당분간 금지되고, 악마가 출몰하는 곳은 서로 도와 막아 내기로 말이다.

즉, 이 대륙에 있는 모든 왕국이 연합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맹주는 바로 나였다.

“카르만이 당연히 반대할 줄 알았는데.”

어디서 마음을 고쳐먹은 것인지, 카르만은 순순히 이를 따랐고, 다른 왕국들도 알아서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이제 막아 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악마들을 다 막아 낸 이후에는 어떡하지?

그래도 게임이 안 끝나 버리면······?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말자.”

일단 놈들을 막아 내는 것이 중요하니까.

쿵-! 쿠쿵-!

그런데 그때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들려와 내 단잠을 깨웠다.

“이게 뭔 소리야?”

아론이 또 그 이상한 기도회를 열어 폭죽놀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소리가 가까웠다.

“왕이시여!”

그때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냐?”

“치, 침입자입니다! 누군가가 무단으로 왕궁을 침입해 지금 레드 드래곤 플레임과 싸우고 있습니다!”

“······뭐?”

아니. 세상 어떤 미친놈이 우리 왕궁에 침입해서 레드 드래곤이랑 싸우고 있는 거지?

나는 그 미친놈 면상을 보기 위해 천상의 눈동자를 켰다.

황금 불길의 눈동자가 왕궁 위로 만들어지면서 바깥 상황이 내게 훤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직도 팔팔하구나, 늙은 마녀.”

“건방진 놈. 그 긴 혓바닥을 오늘 내가 뽑아 주마.”

엘티히와 레드 드래곤 플레임이 마법으로 지옥도를 펼치려 하고 있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둘 다 뭐 하는 짓이지?”

전장의 포효가 담긴 목소리에 둘의 움직임이 멈췄다.

“윽-!”

“큭-! 어, 어떻게······.”

두 놈 모두 몸을 떨며 마법의 힘으로 버티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감히 내 왕궁에서 뭐 하는 짓이냐고 물었다.”

그 말에 레드 드래곤이 억울하다는 듯 먼저 말했다.

“아니, 나는 그냥 평소처럼 맛있는 걸 먹고 있었을 뿐인데, 다짜고짜 이 늙은 아줌마가 나타나서 나를······.”

“아줌마? 네가 정녕 오늘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

나는 또 흥분하려 드는 엘티히를 진정시켰다.

“엘티히. 아무래도 나와 볼 일이 있어서 온 거 같은데, 그만 소란피우고 이쪽으로 오너라.”

“······쯧.”

엘티히는 두 손 가득 머금고 있던 마력을 푼 뒤 레드 드래곤을 힐끔 노려보았다.

“넌 이따 두고 보자.”

“흥,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래도 둘 다 오래 살았다 보니, 서로 아는 사이인 모양이다.

물론, 좋은 사이인 거 같진 않았다.

나는 얼마 안 있어 내 침소로 들어온 엘티히를 맞이했다.

“내 왕궁에서 허락도 없이 마법을 쓰다니. 무례하구나, 엘티히.”

“그건······. 내가 미안하게 됐다.”

엘티히는 자리에 앉으며 날 슬쩍 쳐다보았다.

“왜 그러지?”

“방금 그건 무엇이었느냐? 그 기이한 눈동자와 목소리. 몸을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더군.”

“그저 잡기술일 뿐이다.”

“엘프의 여왕을 꼼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고작 잡기술이라. 정말 너는 인간이 맞는지 가끔은 의심스럽구나. 레드 드래곤의 행동을 보아하니, 그놈은 여기서 네 애완동물 역할을 하는 거 같던데. 대체 어떤 인간이 드래곤을 애완동물로 삼는단 말이냐?”

“······여기 온 이유가 뭔지 얘기나 해라, 엘티히.”

“내가 꼭 못 올 곳이라도 온 것처럼 얘기하는군.”

그 말에 나는 덤덤한 얼굴로 대꾸했다.

“야밤에 여인이 남자의 침소에 찾아왔다는 건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일이긴 하지.”

“!?”

그러자 엘티히가 격분하듯 소리쳤다.

“그, 그게 무슨 뜻으로 하는 소리냐!”

“별 뜻은 없다. 사람들이 그렇게 본다는 거지.”

“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그럴 의도로 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왠지 엘티히의 얼굴에 홍조가 끼는 것 같았다.

“흠흠. 오늘 네게 긴히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것이다. 내 수하를 데리고 오지 않은 건, 누구도 들어서는 안 될 얘기이기 때문이지. 최근에 네가 빛의 증표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빛의 증표를 받으니, 엘티히가 왔다라.

나는 그녀가 왜 왔는지 알고 있었다.

이것 역시 스토리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 잘 알고 있군.”

“그것 때문에 내가 여기 온 것이다. 빛의 증표가 나타났다는 건, 이 대륙에 큰 위기가 오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거든. 그리고 이날을 위해 오래 전 준비했던 것이 있지. 오직 이 대륙에서 소수의 인물만 알고 있는······.”

난 잔에 술을 천천히 따르며 엘티히의 말을 끊었다.

“네가 왜 여기 왔는지 알고 있다, 엘티히.”

“그래? 아니. 넌 모를 거다.”

“라일라칸 때문 아닌가?”

그 말에 엘티히의 눈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크게 떠졌다.

“그, 그걸 대체 어, 어떻게······.”

“저 깊은 곳에서 잠들어 있는 라일라칸을 깨우기 위해 날 찾아왔다는 걸 알고 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대체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라일라칸의 후손들조차 모르는 일이다. 대체 너란 놈은······.”

당연하지.

내가 이 게임을 얼마나 질리도록 플레이했는데.

빛의 증표를 받으면 일어나는 이벤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라일라칸의 부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잠들어 있는 라일라칸을 깨우는 것이 맞겠다.

하지만 들끓어 오르는 내 허세가 그걸 곧이곧대로 얘기해 줄 리 없었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보며, 또한 모든 것을 깨닫는다. 이 대륙에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거라 보느냐?”

“······.”

엘티히는 말없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 심취하면서 나는 술잔을 들이켰다.

‘라일라칸. 드디어 네가 나올 때가 됐구나.’

게임 설정상 이 대륙 최강자를 뽑으라고 한다면 카르만을 먼저 뽑겠지만, 라일라칸이 깨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왜냐하면 그의 특성은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대륙에 그보다 강한 자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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