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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09화 (109/200)

109화

0.01초 소드마스터 109화

“우리가 승리했다!!”

“우와아아아-!!”

만 왕국의 기사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얼싸안고 기뻐했다.

악마들은 그들을 통솔할 대악마를 잃고 나서 큰 혼란에 빠져 혼비백산하다 결국 뿔뿔이 흩어졌고, 만 왕국의 기사단이 그 뒤를 쫓으며 유린하는 모양새가 나왔다.

‘다행히 잘 끝났네.’

적진 한복판에 떨어져 꼼짝없이 뜯어 먹히겠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크라엘이 적절한 타이밍에 군을 이끌고 나와서 살 수 있었다.

‘그럼 이제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그때 내 눈에 띈 것이 하나 있었다.

‘저건-’

뮤티엘이 죽으면서 남긴 마기핵.

원래는 이 핵을 갈라야 대악마를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성스러운 불길 때문인지, 이 마기핵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며 그저 작게 꿈틀거리기만 했다.

나는 그 마기핵을 향해 손을 뻗었다.

콰아아아-!!

그러자 마기 포식자가 발동되면서 놈의 마기핵이 내 손으로 흘러들어왔다.

내게 쏟아져 들어올 땐 검은 기운을 풍기고 있으나, 손에 닿는 순간 성 속성으로 변환이 되어 밝은 빛을 뿜어냈다.

언제 봐도 신기한 능력이었다.

“마기를 정화하시는 것이군요. 아름답습니다.”

교황은 내가 악마의 힘을 먹어 치우고 있다는 걸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아슬란 님.”

크라엘은 라이에르와 키엔을 양옆에 낀 채 내게 다가왔다.

나와는 앙금이 남아 있는 자들.

하지만 그들은 내 앞에 다가와 정중하게 예를 차렸다.

“우리 왕국을 구원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

그에 따라 다른 기사들도 내게 고개를 숙였다.

혹시라도 날 공격하면 어쩌나 싶었던 불안감이 쑤욱 해소되었다.

그와 동시에 허세가 들끓기 시작했다.

“본좌는 그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저희 왕국과 일라이 왕국의 사이가 무척 좋지 않을 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주셨군요. 정말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성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을 이대로 보낼 순 없지 않습니까?”

“성대한 연회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교황이 옆에 있긴 하지만, 따지자면 사실상 나 혼자만 여기에 있는 것인데, 미쳤다고 저 성안으로 들어가겠는가.

누가 날 죽이려고 하면 어쩌려고.

“본좌를 위해 연회를 열 생각하지 말고, 이번 전쟁으로 인해 피해 입은 백성들을 위해 그 돈을 쓰도록 해라.”

“아······.”

“역시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보내드리는 건······.”

바로 그때였다.

쿠구구구-!

악마들을 몰아내면서 다시 화창하게 돌아온 하늘이 붉게 변하더니, 그 위로 불길한 날갯짓 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엘과 기사들은 곧 불안에 빠졌고,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더니 곧 아래로 떨어졌다.

쿠우웅-!!

“!?”

“저, 저건!”

웅장한 위용과 넓게 펼쳐진 두 날개.

이 대륙 최강의 종족이라 불리는,

“크롸라라라-!!”

드래곤이었다.

“드, 드래곤!?”

“왜 여기서 드래곤이!”

당황한 기사들이 잠시 넣어 두었던 무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들은 드래곤의 포효에 벌써 겁을 집어 먹었고, 감히 가까이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아슬란.”

레드 드래곤, 플레임.

녀석이 내 이름을 불렀다.

“역시나 여기 있었군.”

크라엘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내게 물었다.

“아슬란 님. 이, 이 드래곤을 아십니까?”

“그래. 너희에게 악의가 있어서 온 것이 아니니, 경계할 필요 없다.”

그러자 플레임이 피식 웃으면서 크라엘과 기사들을 바라보았다.

“그깟 무기를 들고 있다고 해서 이 몸한테 생채기 하나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어리석은 것들.”

짧은 그르렁거림 속에 붉은 불길이 치솟았다.

그것을 보고 겁을 먹어 뒷걸음질을 치는 기사들을 보며 플레임은 혼자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왔느냐, 플레임?”

“흠. 갑자기 네가 교황이랑 사라지는 바람에 왕국이 난리가 났다. 일각에서는 금지된 사랑의 도피가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더군.”

그 말에 교황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 사랑의 도피라니요! 그, 그 무슨 마, 말도 안 되는!”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그래서?”

“네가 만 왕국이 위기에 빠졌다는 보고를 듣고 나서 사라졌다기에 한번 와봤을 뿐이다. 그런데 진짜 여기 있었군.”

플레임은 곧 고개를 축 내리며 내게 말했다.

“타라. 왕국까지 데려다주지. 일라이 왕국은 네가 잠깐이라도 없으면 엉망이 되는 거 같더군.”

“그래. 돌아가야겠지.”

나는 녀석의 등 위로 올라갔다.

“이, 인간이 드래곤 위로 올라가다니.”

“이럴 수가······.”

기사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다는 듯이 우리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또 한번 허세가 뜨겁게 타올랐다.

“본좌는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외면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적하는 자가 있다면 그것 역시 피하지 않는다.”

“······.”

그들은 말없이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니 도움이 필요하거든 언제든 본좌에게 오너라. 너희를 외면할 일은 없을 터이니.”

물론 별 말 같지도 않은 일로 계속 도와 달라고 오는 건 곤란했다.

“가자, 플레임.”

“크롸라라라-!!”

플레임은 하늘의 제왕, 드래곤답게 크게 포효하며 날갯짓을 시작했다.

그러자 붉은 기운이 퍼져 나가면서 순식간에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드래곤 위에서 바라보는 대륙의 풍경은 사뭇 달라 보였다.

* * *

“······.”

크라엘은 저 하늘 높이 붉은 불길을 휘날리며 날아가는 드래곤을 바라보았다.

“저것이 드래곤 나이트······인가?”

옆에 있던 라이에르의 말에 크라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직 신화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드래곤 나이트가 바로 저것이겠지.”

“하지만 그게 실제로 존재하다니. 믿을 수가 없군.”

“나도 내가 지금 무얼 본 것인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건 마찬가지일세.”

신화 속, 혹은 이야기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드래곤 나이트.

대륙 최강의 종족, 드래곤 위에 올라타 전장을 휩쓰는 기사를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드래곤은 오만하고 모든 종족을 제 아래로 보기에 당연히 자신의 등을 인간 따위에게 허락할 리 없었다.

그러나 오늘 여기서 모두가 보았다.

신화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드래곤 나이트가 실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도 바로 아슬란, 저 사내가 그 주인공이었다.

“오늘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의 연속이로군.”

“그래. 갑자기 빛의 기둥으로 전장 한복판에 나타나질 않나, 마지막에는 드래곤과 함께 떠난다라. 이 소문이 퍼지게 되면 과연 몇이나 이걸 믿으려 할지.”

아마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세. 전쟁에서 승리하긴 했지만, 왕국의 피해가 막심하지 않은가?”

“그래. 사실상 여기를 빼고 나머지는 전부 흔적조차 남지 않고 파괴되어 버렸지.”

대승을 거두었으나, 남은 건 상처뿐인 전쟁이었다.

악마들의 침공으로 인해 이곳을 제외한 다른 성들과 마을들은 전부 쑥대밭이 되어 무너져 버렸다.

“이제 어떡하면 좋지? 그것들을 우리가 복구시킬 수 있을까?”

“······.”

크라엘은 잠깐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래곤을 타고 웅장하게 날아가던 아슬란의 흔들림 없는 모습이 여전히 눈에 생생했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군.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이 아름다운 만 왕국과 이 나라의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단이 필요해 보였다.

* * *

일라이 왕국으로 돌아온 나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나날을 보냈다.

대기사단장 때도 그렇고, 왕이 된 이후에도 똑같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으며, 내가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야근을 풀로 채워야 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거기다,

“넌 교단으로 안 돌아가나?”

“조금만 더 있을 예정입니다. 빛의 선택을 받은 분께서 여기 있으시니,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군요.”

교황은 집에 가지 않고 아예 왕국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살려는 것 같았다.

“마침 오늘은 아론 기사단장이 주도하는 기도회가 있다더군요.”

“······기도회?”

그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심지어 그것을 주도하는 게 아론이라고?

“빛을 향한 기도회라고 들었습니다. 오늘은 거기에 참석을 해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론이 주도를 한다고 하니, 뭔가 사이비스러운 냄새가 났다.

“그래. 네 알아서 하거라.”

“그럼 이만. 오늘도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일이 바빠 죽겠는데, 교황은 하루에 한번씩 꼭 찾아와 나랑 같이 티타임을 가지려고 한다.

볼수록 이상한 여자였다.

왜 집에 안 돌아가고 여기서 난리인지 원.

그리고 더욱이 이상한 건 티타임 때마다 하리엘이 차를 가지고 따라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하리엘 님도 그만 방해하고 같이 일어나시지요. 왕께서는 무척 바쁘신 분이랍니다?”

“교황님께서도 그걸 아시면서 늘 국왕의 시간을 빼앗으시지 않습니까?”

두 사람은 웃으면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둘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것이 살기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둘이 나가고 나면 꼭 한차례 폭풍이 휘몰아쳤다가 지나간 느낌이 들었다.

“그나저나······.”

드디어 집무실에 혼자 남게 된 나는 스킬 창을 확인해 보았다.

[두려운 발걸음]

-발을 디딜 때마다 반경 15m에 있는 상대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합니다.

뮤티엘을 죽이고 나서 얻은 스킬.

대악마를 죽여서 얻은 스킬 치고는 그냥저냥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달리 생각을 해보면-

“독을 징그럽게 먹물처럼 뿌리는 스킬이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심지어 내가 얻은 건 이 스킬 뿐만이 아니었다.

[만독지체]

-모든 독에 면역이 됩니다.

“그래. 이거지.”

무려 만독지체다.

만독지체가 무엇인가?

그 어떤 독에도 면역이라는 몸!

뮤티엘이 독을 다루는 악마였던 만큼 이 패시브 스킬은 엄청난 능력이었다.

“이거면 독 공격은 이제 안심이다.”

왕이 되었으니, 누군가가 내 왕 자리를 노리고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고 혹은 독살을 하려 들 수도 있다.

여기서 제일 까다로운 것이 바로 독살인데, 이건 언제 어떻게 당할지 모르는 거라 조심을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만독지체를 얻었으니, 이제 독으로는 날 죽일 수 없게 되었다.

“근데 두려운 발걸음은 뭐지?”

이런 스킬이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봤는데.

나는 잠시 고민하다, 한번 밖으로 나가보았다.

어차피 앉아서 써봤자 이 스킬이 갖는 효과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왕이시여.”

밖에는 시종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난 두려운 발걸음 스킬을 사용하며 한번 움직여 보았다.

“······!”

그러자 내 주위에 있던 시종들이 잠깐 멈칫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더욱 깊이 숙였다.

‘스킬 효과는 딱 여기까지인가?’

생각해 보면 이 스킬은 뮤티엘과 무척 잘 어울렸다.

그 흉측하고 더러운 게발로 잘그락 잘그락 돌아다녔으니 보는 사람은 얼마나 공포였겠는가. 그런데 거기다 스킬까지 뿌리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전의를 상실해서 감히 덤비지를 못했을 것이다.

나름 컨셉에 맞춘 스킬이라고 해야 할까?

‘그럼 여기다 찰나의 괴력을 섞는다면······?’

여기에도 찰나의 괴력을 섞을 수가 있는 걸까.

물론 안 될 건 없어 보였다.

나는 생각을 다 하기도 전에 먼저 실행으로 옮겼다.

그러자,

쿠웅-!!

발을 가볍게 내디뎠을 뿐인데, 갑자기 땅이 요동치고 건물이 흔들렸다.

“아··· 아아······.”

그리고 내 뒤에 있던 시종들은 신음을 내더니, 곧 바닥에 모두 엎드렸다.

“와, 왕이시여!”

그와 동시에 내 앞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제왕의 군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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