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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105화 (105/200)

105화

0.01초 소드마스터 105화

‘이렇게 극적인 연출을 하려고 한 건 아니다만.’

뒤바뀐 허세 때문인가.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어느새 드래곤 머리 위에 서 있었다.

“아슬란······.”

감히 인간 따위가 드래곤 머리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이 언짢았던 것인지, 플레임이 인상을 찌푸리며 작게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백성들이 있는 성에서는 난동을 피우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플레임.”

드래곤을 하찮게 내려다보며 꾸짖었다.

“내 말이 우스웠던 것이냐?”

“······.”

플레임은 찡그리고 있던 인상을 펴고 잠잠해졌다.

나는 시선을 돌려 저 아래 성기사들 사이에 있는 교황을 바라보았다.

“일라이 왕국에 온 것을 환영한다, 교황이여. 하지만 네놈도 마찬가지다. 감히 본좌의 영토에서 허락도 없이 칼을 뽑다니. 건방지구나.”

“네, 네놈? 지금 교황님께 그 무슨 무례를······!”

입은 갑옷을 보아하니, 여기 성기사들의 단장 같았다.

나는 단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무례라 했는가? 원한다면 진짜 무례가 무엇인지 본좌가 친히 보여주지.”

바로 그 순간.

화르르륵-!!

불의 룬이 발동되면서 내 몸 전체에 작은 불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찰나의 괴력을 쓴 것이 아닌, 오로지 내 힘만으로만 쓰는 불꽃이기 때문에 불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다.

딱 온몸에 불이 살짝 붙은 것만큼 보여 줄 수 있는 거랄까.

그런데,

“호오. 결국 싸우는 것이냐, 아슬란?”

내 발밑에 있던 플레임이 함께 붉은 기운을 발산하기 시작하면서 사방으로 흉흉한 기운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히, 히익-!”

“으헉!”

성기사들은 깜짝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고, 내게 입을 놀리던 기사단장도 얼굴이 굳어 버려 뭐라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점점 발밑이 뜨거워져 플레임의 기운에 내가 잡아 먹힐 것만 같은 느낌이 들 때였다.

“그만두세요!”

다급한 외침에 한창 끓어 오르던 플레임의 기운이 멈췄다.

교황은 마차에서 내려와 우리와 성기사 사이에 끼어들며 말했다.

“싸움은 멈추도록 하세요. 우린 피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런가? 어차피 싸우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거 같다만. 그럼 왕궁까지 따라와라.”

나는 다시 천천히 몸을 위로 띄우면서 플레임에게 말했다.

“저놈들이 왕궁 안으로 들어오는 동안 허튼짓을 하는 거 같거든, 얼마든지 태워 버려라, 플레임.”

“흐흐. 그런 거라면 쉽지.”

플레임은 음흉하게 웃음소리를 흘리며 내 뒤를 따라오는 성기사들을 내려다보았다.

“으어······.”

“히익.”

바짝 겁을 먹은 성기사들은 뒤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플레임이 자꾸 신경이 쓰여 제대로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했다.

플레임은 그런 그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뭣들 하고 있느냐. 꾸물대지 말고 얼른 움직여.”

기선 제압은 아주 확실하게 된 것 같았다.

* * *

아슬란은 망토를 펄럭이며 이미 저 먼 곳까지 날아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뒤로는,

쿠웅-! 쿠웅-!

땅이 울릴 정도로 발소리를 울리면서 레드 드래곤이 행렬을 따라오는 중이었다.

“여, 여긴 미친 나라가 분명합니다. 왕국의 왕이라는 자가 교단을 무시하다니. 심지어······.”

기사단장은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드래곤을 힐끗 쳐다본 뒤 얼른 고개를 돌렸다.

“드래곤을 애완동물처럼 다루다니요.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레헤나도 그 점이 충격적이었다.

저 드래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존재가 있었다니.

어쩌면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드래곤 나이트가 바로 아슬란이 아닐까?

“대왕께 경례!”

“충-!”

왕궁 문이 열리면서 앞서가는 아슬란을 향해 예의를 차리는 기사들이 보였다.

그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교황과 성기사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왕궁이 무척 단출하군요.”

성기사단장은 조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왕궁 바깥의 모습은 화려하기 짝이 없는데, 정작 왕이 살고 있는 이 왕궁은 굉장히 단조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대륙에 있는 돈이란 돈은 전부 일라이 왕국이 쓸어 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대체 왕궁의 모습이 왜 이리 허름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왕이란 자는 자신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일부러 돈을 써가며 왕궁을 웅장하게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이곳은 그와 정반대였다.

“일전에 들은 적이 있다. 아슬란 왕은 대기사단장 시절 때부터 끊임없이 백성들을 위해 돈을 쓰고 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었다고 말이다. 정작 자신이 머무는 처소와 이 왕궁에는 일절 돈을 쓰지 않았다고 하더군.”

“그런······.”

성기사단장은 아슬란을 다시 보게 되었다는 듯 침묵을 지켰다.

‘그것이 성군의 자질이겠지.’

성군.

대륙 역사상 성군이라 불리던 자가 몇이나 되었던가.

사실 이 대륙에는 항상 강자와 약자만 있었을 뿐.

진정으로 성군이라 불리는 왕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 백성들에게는 아슬란이 곧 성군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우리 교단이 오래토록 찾고 다니던 사람이 바로 아슬란일 수도······.’

그럼 여기까지 성물을 가져오게 된 것도 전부 신의 뜻이 아니었을까?

* * *

교황은 전각까지 군말하지 않고 따라 들어왔다.

모든 신하와 기사단장이 모인 곳에서 그녀는 당당히 앞에 나와 섰다.

“오오. 저분이 교황이신가.”

“과연······.”

신하들은 처음 보는 교황의 모습에 신기해하는 듯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교황은 원래 세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그 존재를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나는 왕좌에 앉아 교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황이여. 이제 이곳에 무슨 연유로 왔는지 말하라.”

그러자 교황은 잠시 주변을 바라보다 대답했다.

“제가 신전에서 나와 이곳 일라이 왕국까지 온 이유는 바로······.”

그녀는 손가락으로 날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슬란, 당신을 심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

“뭐, 뭐라?!”

“우리 왕을?”

좌중이 웅성거렸다.

나는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킨 뒤 교황에게 말했다.

“감히 누가 누구를 심판한다는 것이냐?”

“저는 라할과 빛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몸. 대륙을 악으로 물드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정화하는 것이 저의 신성한 임무입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이 대륙을 어지럽히는 악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대고 본좌를 심판하겠다는 것인가?”

“처음에는 그리할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이 왕국에 발을 들이고, 이곳의 백성들을 본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이야 말로 우리가 기다렸던······.”

교황이 무언가를 말하고 있을 때였다.

“교, 교황님!”

성기사들이 뒤에서 다급하게 교황을 불렀다.

“서, 성물이!”

“성물이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곳까지 가지고 온 성물.

멀쩡하게 가만히 있던 그것이 갑자기 강렬한 빛을 뿜어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기사들은 얼른 성물을 내려놓고 뒤로 물러났다.

“누구도 접근하지 말거라. 선택받지 않은 자가 성물에 닿으면 죽게 된다.”

저건 좀 위험해 보이는데.

괜찮은 건가?

성물이 저렇게 날뛰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혹시 알렉산더 때문에?’

나는 알렉산더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녀석도 두려운 눈빛으로 성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물의 힘에 닿으면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성물은 결코 알렉산더를 해치지 못한다.

그렇다면,

‘지금이 기회구나.’

성물이 저렇게 반응을 하는 건 알렉산더 때문일 터.

그럼 여기서 알렉산더를 시켜 저 성물을 만지게 한다면-!

‘새로운 메인 퀘스트가 발동되겠지?’

알렉산더를 영웅으로 키워 대륙을 구한 뒤에 끝나는 메인 퀘스트!

이 게임에서 가장 편하고 깨기 쉬운 메인 퀘스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알렉산더.”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알렉산더를 불렀다.

그러자 그는 내게 고개를 돌렸다.

“예, 왕이시여.”

“가서 저 성물을 진정시키거라.”

“······예?”

알렉산더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듯 나를 쳐다보았다.

“가서 저 성물을 만져 보라는 것이다.”

“······.”

그러자 교황이 내게 소리쳤다.

“안 됩니다! 선택받지 않은 자가 성물을 함부로 만지게 되면 천벌을 받게 되어 그 자리에서 죽을 겁니다.”

하지만 난 알렉산더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날 믿거라, 알렉산더. 넌 할 수 있다. 저 성물이 널 죽일 일은 없을 것이다.”

알렉산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물을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멈추세요! 그러다 정말 죽는다고요.”

교황의 경고에 알렉산더가 대꾸했다.

“난 그 무엇보다도 우리 대왕의 말을 믿습니다.”

“네?”

“저분께서 괜찮다고 하셨으니, 전 분명히 괜찮을 겁니다.”

“그게 무슨······.”

점점 더 빛이 강렬해지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제 눈이 멀 것만 같았다.

알렉산더는 천천히 성물에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것을 만지는 순간.

파앗-!!

폭주하던 성물의 빛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이다.

“······.”

잠시 전각에 정적이 흘렀다.

교황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알렉산더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성물을 만지고도 멀쩡할 수가······. 설마······.”

이제야 교황도 깨닫게 된 것인가.

알렉산더가 바로 빛이 선택한 영웅이라는 것을.

“아슬란. 당신이 이 힘을 제어한 건가요?”

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당신이 성물의 힘을 억지로 봉인시킨 거냐고 묻는 겁니다.”

당연히 아니다.

내가 무슨 수로 저 성물의 힘을 제어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저, 저건!”

“교황 님!”

알렉산더의 발밑으로 빛의 마법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빛의 기둥이구나!’

오직 이 게임의 주인공만이 경험할 수 있다는 빛의 기둥.

신의 부름을 받아 정식으로 빛의 기사라는 타이틀을 얻는 상징적인 이벤트였다.

하지만 알렉산더 이외에 다른 자가 빛의 기둥을 맞게 될 경우에는 심판을 맞이하게 된다.

즉, 죽는다는 것이다.

‘드디어!’

나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동안 알렉산더를 대륙의 영웅으로 키우고자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저놈이 칼라 왕국으로 가지 않고 우리 왕국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스토리가 꼬여서 걱정도 많이 했다만, 결국에는 스토리대로 게임이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빛의 기둥을 받아 알렉산더가 표식을 받기만 한다면-’

메인 퀘스트가 새로 발동되어 테키나 족속만 막아내면 이 지긋지긋한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내가 아니다.”

인생은 항상 변수의 연속이라고 했던가.

“너희가 기다리던 분은 바로 저곳에 계신다.”

알렉산더가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그의 아래로 생겨나던 빛의 마법진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니!?”

“우리 대왕의 발아래에?”

그 마법진 갑자기 내 밑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뭐야. 시발.’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감지했지만, 이미 늦었다.

마법진은 발동을 시작했고, 그 위로 빛의 기둥이 떨어졌다.

콰아아아-!!

나는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기둥을 맞으며 내게 미소를 짓고 있는 알렉산더를 바라볼 수 있었다.

‘알렉산더. 저 새끼가······!’

기어코 날 죽이는구나.

“평생 저주할 테다!!”

하지만 그 비명은 놈에게 닿지 못했다.

이미 빛의 기둥에 의해 내 몸은 전혀 다른 곳에 소환되었기 때문이다.

“여긴······.”

사방이 어두컴컴하다.

그러나 곧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와 함께 주변이 환하게 변했다.

[빛의 부름을 받은 자여.]

거대한 신전.

오직 주인공만이 밟을 수 있는 라할의 성소.

그곳에 내가 발을 들이게 되었다.

[너는 우리가 기다리던 예언의 존재가 아니구나.]

목소리를 울리고 있는 건 저 끝에 서 있는 날개 달린 남자였다.

[우스시엘]

천계의 천사이자, 라할의 성소에서 주인공에게 빛의 표식을 내리는 자.

그러나 그의 음성에는 분노가 가득해있었다.

[감히 선택받지 못한 자가 이 성스러운 땅을 밟다니.]

우스시엘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씻지 못할 죄를 이곳에서 심판하겠다.]

정확히 게임과 똑같이 흘러갔다.

알렉산더가 아닌, 다른 자가 이 땅을 밟게 될 경우 심판을 당하게 된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심판하라.]

우스시엘의 말에 양옆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거대한 동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높이만 무려 30m가 넘는 거대한 크기의 두 동상이 칼을 뽑아 내게 겨누었다.

[순순히 심판을 받아들여라. 이곳에서는 그 어떤 마력도, 오러도 사용할 수가 없으니.]

우스시엘의 목소리가 진하게 울려 퍼졌다.

그의 말대로 이곳 성소에서는 마력이나 오러를 이용한 그 어떤 힘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감히 신의 노리개로 만들어진 추잡한 창조물 따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스러운 성소조차 나의 끓어 오르는 허세를 막아내지 못했다.

“누구를 심판한다고 지껄이는 것이냐?”

당황한 우스시엘은 헛기침을 터트리기까지 했다.

[그래. 마음대로 지껄이거라. 결코 이곳에서 넌 살아 돌아갈 수 없다.]

수호자의 동사들이 들고 있던 칼이 내 몸 가까이 다가왔다.

그 날카로운 날이 내 몸을 닿으려는 찰나.

“건방 떨지 말거라.”

나는 그 예리한 날을 향해 팔을 뻗으며,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투웅-!!

내 손가락과 부딪힌 칼날에서 거센 파공음이 울리더니, 내게 칼을 겨누던 동상의 몸이 기우뚱 무너져 내리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이 퍼져 나가면서 검은 기운이 순식간에 동상의 몸을 조각내 버리기 시작했다.

콰콰콰쾅-!!

이 성소를 지키는, 감히 이곳에 발을 들인 자를 심판하는 수호자의 동상이 그렇게 산산이 조각난 채로 무너졌다.

“!?”

우스시엘은 입을 쩍 벌린 채로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 버렸다.

난 그런 그를 향해 말했다.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감히 누구도 날 심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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