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화
0.01초 소드마스터 102화
“너희는 오로지 왕가의 명맥 유지만을 외치고, 아슬란 님의 새로운 왕국을 거부했다. 그러므로 나는 같은 왕가의 핏줄이자, 이 일라이 왕국의 백성으로서 너희를 심판하겠다.”
루갈은 자신의 기사단을 이끌고 왕가의 사람들이 사는 왕궁 자택으로 쳐들어갔다.
루갈처럼 열렬하게 아슬란을 지지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왕가의 최고 권력을 주장하는 자들을 처단하기 위함이었다.
“루, 루갈 이놈!!”
“네가 우리 왕가를 배신하다니! 대체 아슬란이 뭐기에!”
“그분은 우리 왕국의 유일한 빛이자, 구원자이시다. 그분의 앞길을 방해하는 너희는 그저 이 왕국을 좀 먹는 존재일 뿐.”
“이놈!! 왕께서 네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이미 리베르트 왕은 죽었다.”
“!?”
“너희도 그 어리석은 왕의 뒤를 따르게 해주지.”
루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왕가의 사람들을 베어냈다.
“꺄아아!”
“으아악!”
왕궁은 온통 비명으로 가득해졌다.
* * *
“이게 대체 무슨······!”
왕궁에서 유혈사태가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호레스와 넬라 기사단장.
두 사람은 심장에 칼이 꽂힌 채 죽어 있는 리베르트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놈이 이런 짓을 벌인 것이냐!”
“그게······. 확인된 바로는 루갈 기사단장이라고 합니다.”
“루, 루갈? 정녕 루갈 공이 이런 짓을 벌였다고?”
루갈은 대외적으로 인정을 받는 왕가의 인물.
리베르트에게 자식이 없는 관계로, 만일 그가 죽으면 루갈이 다음 왕 자리를 이어받아야 되지 않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한사코 왕실의 일을 거부하며 기사단장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지금 루갈 공은 어디에 있지?”
“기사단을 이끌고 왕가의 사람들이 있는 왕궁 내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이토록 소식이 늦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루갈은 왕가의 사람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를 왕실 기사단장으로 세웠다.
즉, 왕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루갈이 작정하고 정보를 차단해 버리면 알려지기까지 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설마 루갈 공이 이런 짓을 꾸밀 줄은······!”
“리베르트 왕과 무슨 갈등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모르겠소. 평소 루갈 공의 행실을 미뤄 봤을 때, 아무리 감정적으로 격동을 해도 이런 짓을 저지를 사람은 아닐 것이오. 그리고 보시오. 여기 흔적만 봐도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소. 더군다나 기사단을 이끌고 왕가의 저택으로 갔다는 것은······.”
분명 계획적으로 일을 벌인 것이리라.
대체 언제부터 루갈은 이런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일까.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 어서 루갈 공의 뒤를 쫓도록 합시다!”
“예!”
넬라는 호레스와 함께 기사단을 이끌고 왕실 저택으로 향했다.
“아아-”
입구에서부터 진동하는 피 냄새에 호레스는 짧게 탄식을 터트렸다.
아니나 다를까.
“······전부 죽였구나.”
저택 안은 시체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누군가를 찔러 죽이고 있던 루갈을 발견할 수 있었다.
“루갈 공!”
넬라의 외침에 루갈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가책도 있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자신의 행동은 정당하다는 듯, 당당해 보였다.
“오셨구려, 넬라 단장.”
“이게 대체 무슨 짓입니까!”
“우리 일라이 왕국을 좀 먹으며, 앞길을 방해하는 자들을 처단했을 뿐이오.”
왕가의 저택이 모두 불에 타고 있었으며, 그 안에 생존자는 없는 듯했다.
“저들은 그대의 가족이기도 하오. 그런데 어찌 이리도 끔찍한 짓을! 하늘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실 라할이 두렵지 않소이까!”
“라할이라- 후후.”
루갈은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라할의 현신께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시거늘. 대체 누구를 두려워한단 말이오?”
“뭐, 뭐라고요?”
“넬라 단장. 그대들도 알겠지만, 나는 항상 내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했소. 한때는 나도 국왕이 되어 이 나라를 올바르게 이끌려고 했지. 그래서 어리석은 리베르트 왕이 후손을 낳지 못하게 몰래 약을 타서 먹여왔지.”
“!?”
전혀 몰랐던 이야기였다.
역시 리베르트에게 자식이 없었던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아슬란 님이 다 무너져가는 왕국을 바꾸는 것을 눈앞에서 보고 난 이후부터 생각이 달라졌소. 나는 왕이 될 그릇이 아니라고 말이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 왕국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그날 깨달았소.”
그는 진득하게 피가 묻어 있는 칼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바로 내 손에 피를 묻혀 그분의 길을 여는 것. 그것이 나의 운명이었소. 그분께서는 신성한 기사의 긍지와 명예를 아시는 분. 그런 분이 절대 스스로 칼을 들어 이들을 죽이지 않을 것임을 난 알고 있었소. 그렇기에 내가 운명을 따른 것이오.”
루갈이 말하는 운명.
그것은 바로 자신이 대신 피를 흘려 아슬란을 왕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난 한 치의 후회도 없소. 이것으로 나의 운명은 완성이 되었고, 일라이 왕국의 무궁한 영광은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날 것이오.”
루갈이 언뜻 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이긴 했지만, 호레스와 넬라는 그런 그를 손가락질할 수 없었다.
은연중에 그들이 바라던 일을 루갈이 대신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끝을 냅시다. 내 운명의 마지막은 그대들의 손에 맡기겠소이다.”
“루갈 공······.”
“자, 검을 드시오, 넬라 단장. 내가 죽어야 이 운명이 완성될 것이니. 나는 왕 자리를 꾀하여 반란을 일으킨 폭도이며, 그대들은 그러한 폭도를 막은 충신들이오. 반드시 그리되어야만 하오.”
루갈이 자세를 잡고 넬라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넬라도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
“······.”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스걱-!!
넬라의 검이 정확하게 루갈의 몸을 베어 버렸다.
털썩-
루갈은 곧 칼을 떨어뜨리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넬라 단장. 부디 그분을 잘 보필해 주시길 바라오.”
“······알겠습니다.”
넬라는 눈물을 머금으며 루갈의 목을 쳐버렸다.
“······.”
맥없이 쓰러지는 루갈을 호레스와 넬라는 묵묵히 바라만 보았다.
* * *
왕궁으로 돌아온 나는 충격적인 보고에 순간 정신이 나갈 뻔했다.
“······그리하여 반란을 주도한 폭도 루갈은 넬라 기사단장에 의해 저지당했으며, 그 자리에서 처형을 당했습니다!”
루갈.
거의 만날 일도 없고, 존재감도 거의 없는 캐릭터.
내가 그를 왕실 기사단장으로 내세운 건 그의 특성 때문이었다.
왕가에서 그나마 사람 노릇을 하는 인물인데, 그 특성이 무려 [정의로움] [올곧음] [충직함]이었다.
즉, 사람을 배신할 일은 없다는 것이었다.
스텟은 별 볼 일 없어도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에 그를 왕실 기사단장으로 세웠던 것인데, 그런 놈이 반란을 일으켜?
‘아무리 난이도가 있다고 해도.’
이 세계에 오랫동안 갇히면서 한 가지 알게 된 건, 캐릭터에게 부여된 특성은 난이도와 상관없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루갈은,
‘반란을 일으킨 게 아니다.’
분명 뭔가가 있다.
그리고 그 무언가를 지금 이들이 내게 숨기고 있다는 강한 직감이 왔다.
그래서일까.
“호레스.”
“예, 대기사단장님.”
아주 강렬한 허세가 용솟음치며 내 몸을 가득 채웠다.
“정녕 루갈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맞느냐?”
“······그렇습니다. 그가 왕을 죽이고 왕가의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것이 반란이 아니고서야 무엇이겠습니까?”
“다시 한번 묻겠다. 그가 정말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냐?”
“······그, 그건.”
바로 그 순간.
쿠웅-!!
혼돈의 피어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전각에 모인 모두에게 임했다.
“크헉!”
“으악!”
수십 명의 신하와 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들을 짓누르는 무시무시한 피어에 압도되어 감히 몸을 일으킬 수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나는 거만하게 손으로 턱을 괸 채, 호레스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내게 무어라 말을 하고 싶어도 입도 뻥긋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윽고 15초라는 짧은 시간이 지나가고.
“으헉!”
“크읍-!”
그들은 참았던 숨을 뱉어내며 바닥에서 몸부림을 쳐댔다.
그들에게 섞여 있던 레바노스도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숨을 헐떡이며 놀란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시선은 오직 호레스에게만 향해 있었다.
“끝까지 솔직하게 답하지 않는다면, 이곳에 모인 너희를 전부 죽여 버리겠다.”
“!?”
멈출 줄 모르고 끓어 오르는 내 허세에 저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묻겠다. 루갈이 정녕 반란을 일으킨 것이냐?”
그에 대한 물음에 호레스가 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엎드린 채 소리쳤다.
“대기사단장님. 루갈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뭐라?”
호레스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말해 주었다.
루갈, 그런 놈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을 만큼 존재감 없이 충실하게 왕실 기사단장 노릇만 하던 놈이, 설마 그런 일을 꾸밀 줄은 전혀 몰랐다.
“그는 자신의 죽음과 왕가의 몰락이 아슬란 님을 위한 일이라 믿고 있었습니다!”
루갈의 특성이 설마 이런 식으로 작동할 줄은 몰랐다.
그냥 충직하게 자신의 일만 할 줄 알았는데, 자신의 신념에 따라 망설이지 않고 이런 일을 벌일 수가 있다니.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 한 일이었기에 대처도 할 수 없었다.
“국왕을 죽인 것이 정녕 나를 위한 일이라고?”
“리베르트는 호시탐탐 대기사단장님의 등 뒤에 비수를 꽂을 넣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여러 왕국과 내통하고, 또한 악마와도 손을 잡아 왕국의 문을 활짝 열어놓으려고 까지 했습니다! 어찌 그런 자를 살려 둘 수 있단 말입니까!”
리베르트는 탐욕이 있는 자였다.
그래서 내 뒤를 한 번쯤은 노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늘 조심했었는데, 호레스가 그를 유심히 관찰하며 감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믿었고, 저희 역시 그가 틀렸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비록 거친 방법이긴 하였으나, 왕가의 핏줄이 아닌, 아슬란 님이 이 왕국의 국왕이 되어야 한다는 건 저희 모두가 바라는 일이었습니다!”
곧 호레스를 따라 전각에 모인 모든 신하와 기사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바닥에 조아렸다.
“부디 왕이 되어 주십시오!”
“왕이 되어 주십시오, 아슬란 님!”
“저희 왕국을 이끌어 주십시오!”
나는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나더러 더럽혀진 왕좌에 앉으라는 것이냐! 감히 너희가 내 긍지를 우습게 여기는 것이냐!”
“기사의 긍지보다, 그 명예보다 앞서는 것이 바로 왕국의 미래입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찌 긍지와 명예를 논할 수 있겠나이까!”
“부디 왕이 되어 일라이 왕국을 이끌어 주십시오!”
그들은 모두 한마음 한목소리로 외쳐댔다.
“감히 아슬란 님을 기만하고, 이 일을 묵과한 죄는 전부 이 늙은이에게 돌리십시오. 하지만 이 피를 뿌리는 한이 있더라도 아슬란 님은 반드시 왕이 되셔야 합니다. 지금 왕좌는 비어있고, 아슬란 님 말고는 그 자리에 감히 앉을 사람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아슬란 님이야 말로 하늘에서 내려준 대륙의 구원자이며 우리 왕국의 영웅이십니다! 왕의 자리는 하늘이 점지해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호레스의 말에 아론이 거들며 나섰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한심한······!”
나는 그들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로운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메인 퀘스트, ‘황제의 길’]
-일라이 왕국의 왕이 되십시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이 시스템까지 지랄이었다.
하지만 나는 퀘스트를 거부했다.
그러자,
-일라이 왕국의 왕이 되십시오.
‘싫다.’
-일라이 왕국의 왕이 되십시오.
‘싫다니깐!’
시스템에 이어 이번에는 내 등 뒤에서 저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일라이 왕국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앞뒤로 내게 왕이 되라 소리쳤다.
메인 퀘스트 황제의 길을 부정하며, 왕이 될 기회마저 일부러 져버렸다.
그 이유는 이 게임을 조금 더 수월하게 클리어하고자 함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왕이 되어 버린다면 나는······.
-일라이 왕국의 왕이 되십시오.
“왕이 되어 주십시오, 아슬란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