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101화 (101/200)

101화

0.01초 소드마스터 101화

‘뭐, 뭐야. 이 퀘스트는?’

다른 것도 아니고 악마들의 왕이라니.

이건 장난이 좀 지나치잖아.

‘이런 퀘스트는 한번도 본적이 없어.’

악마들의 왕이 되어 대륙을 멸망시켜야만 게임이 클리어 되는, 이런 막장 퀘스트를 누군가 받아 봤다는 얘기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내가 최초?’

하지만 무슨 수로 악마들의 왕이 되라는 거야?

“이 세상은 운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약자로 평생을 지내며 짓밟힐 운명이 있고, 또 누구가는 영웅이 되어 대륙을 구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악의 왕이 되어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되는 운명도 있습니다.”

테르카나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멋대로 떠들어댔다.

“저는 당신이 바로 그런 운명을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그 힘과 냉철함, 그리고 모두를 압도하는 카리스마까지! 악마들의 왕이 되기에 딱 좋은 조건들이 아닙니까?”

놈은 내게 손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 제 손을 잡으십시오. 저는 당신의 준비된 종. 당신이 명령만 내리신다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 미친놈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나더러 지금 지옥으로 쳐들어가서 거기 있는 놈들과 싸우라는 건가?

말 같지도 않은 얘기였다.

그리고 내 안에 있는 허세 역시 테르카나의 말을 듣고 뜨겁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건방진 소리를 하는구나. 감히 너 따위가 내 종이 된다는 것인가?”

“······!”

“기사의 명예도, 긍지도, 그 자격도 없는 놈이 감히 이 몸의 종을 자처해?”

“그건······.”

“악마들의 왕이라고 했느냐?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것을 정녕 이루지 못할 거라 생각하느냐? 그런데 네놈은 건방지게 혀를 놀려 감히 나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그 말씀은 제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겁니까?”

“그래, 너 따위의 도움은 내게 필요하지 않다.”

그러자 테르카나가 미소를 지었다.

“과연······. 예상대로군요. 만약 당신이 저의 제안을 그냥 받아들였다면 오히려 제가 실망했을 겁니다.”

그 와중에 이놈은 나를 시험하고 있었던 건가?

하지만 그건 내 병적인 허세에 기름을 붓는 행위였다.

“결국 네놈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구나.”

쿠웅-!!

나는 염력으로 테르카나의 몸을 짓눌렀다.

그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져 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죽고 싶은 것이냐?”

“크으윽- 다, 당신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건 분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난 기울어진 그의 머리 위로 발을 올렸다.

그런 뒤,

“알고 있다. 이건 인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콰직-!

그 뒤통수를 강하게 짓눌러 놈의 얼굴을 바닥에 처박았다.

왠지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분명히 경고했을 텐데. 네놈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건 내겐 숨 쉬듯 쉬운 일이라고.”

“소, 송구합니다. 제가 주제넘는 소리를 하고 말았군요.”

“네놈의 주제를 알았다면 그만 꺼지거라. 너 같이 하찮은 놈을 죽이는 것조차 내게는 수치일 뿐이니.”

“······.”

내가 발을 치우자 테르카나는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곤죽이 되어 버린 면상이 참 보기 좋았다.

“그럼, 또 뵙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아니. 두 번 다시 보지 말자.

놈은 연기처럼 사르르 녹아내리며 사라져 버렸다.

“······갔나?”

이놈의 허세가 방금 전 사라진 테르카나처럼 사르르 내려가는 것을 보니, 정말 떠난 듯싶었다.

“어휴. 진짜 정신 없네.”

별 이상한 퀘스트를 다 받지 않나.

악마들의 왕이 돼서 대륙을 파괴해?

뭐 이딴 퀘스트가 다 있어?

그런데,

[메인 퀘스트 ‘악마들의 왕’을 시작합니다.]

[메인 퀘스트 ‘황제의 길’도 함께 이어 나갈 수 있습니다.]

분명 한사코 거절한 거 같았는데, 이놈의 시스템이 멋대로 퀘스트를 시작해 버리고 말았다.

* * *

“······역시 다르긴 다르군.”

자신의 인형과 연결되어 있던 정신을 끊은 테르카나.

그는 힐끗 입꼬리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만났던 가짜들과는 완전히 달라.”

그가 말하는 가짜들.

그들은 조금이라도 달콤하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주면 아주 거만하게 웃으며 테르카나가 건네는 손을 붙잡았다.

자신이 가진 탐욕을 아낌없이 이루기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의 끝은 테르카나 역시 알고 있다.

끝없이 탐욕을 쫓다 결국 그 말로는 비참했고, 테르카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조롱하며 가지고 놀다 종국에는 질렸다는 듯 길거리에 가져다 버린다.

그것이 테르카나가 이 허무한 인생을 즐기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탐욕을 일깨우는 내 능력에도 꿈쩍하지 않다니.”

아슬란은 달랐다.

그는 끝까지 테르카나의 손을 잡지 않았다.

오히려 그 머리를 짓밟고 인생 최고의 수치심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왜일까.

“크흐흐.”

테르카나는 기분이 나쁘다기보다는, 오히려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

드디어,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인물이 이 대륙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래, 너 같은 인물을 원했다.”

아슬란 그자는 테르카나 고유 능력인 탐욕의 유혹에도 꿈쩍하지 않았고, 자신의 힘과 신념을 믿고 있었다.

테르카나는 보고 싶었다.

그런 그가 최후에는 망가지는 모습을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더 보고 싶은 건, 저 무저갱이라 불리는 지옥에 갇혀 있는 악마들의 왕을 쓰러뜨리고, 그 사악한 왕좌에 앉아 이 대륙을 호령하는 아슬란의 모습이었다.

“생각보다 일을 빨리 진행해야겠군.”

아슬란은 말했다.

테르카나의 도움 없이도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악마들을 무릎 꿇리고 그들 위에 설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가 행동하지 않으면 그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아슬란이 무엇을 보고 그 격조 있는 발걸음을 움직이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나, 테르카나에게는 그를 움직일 능력이 있었다.

“반드시 널 그 왕좌에 앉히고 말겠어.”

바로 잠들어 있는 지옥의 왕을 깨우고 이 대륙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 말이다.

그렇게 한다면 아슬란도 어쩔 수 없이 그 악마들을 상대해야 할 터.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결국 그는 그 모든 사악한 존재를 쓰러뜨려 악마들의 왕이 될 것이다.

나 테르카나가 그리되도록 만들 것이기 때문에!

“크흐흐흐.”

그의 음흉한 웃음소리가 동굴 안에 짙게 울려 퍼졌다.

* * *

다음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라이 왕국으로 돌아가고자 짐을 꾸렸다.

내가 일라이 왕국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벌써 퍼진 것인지, 나타샤가 직접 나와 나를 붙잡았다.

“아슬란, 왜 벌써 간다는 것이냐?”

너 같으면 이 소름 끼치는 곳에서 계속 있고 싶겠냐.

누구는 폭주해서 매혹 마법으로 사람들을 회까닥 돌게 하질 않나, 누구는 제멋대로 내 숙소로 들어와 이상한 메인 퀘스트를 던져 주지 않나.

‘처음부터 여기를 오겠다고 한 게 내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고작 골드에 눈이 멀어 하마터면 아까운 목숨을 날릴 뻔했다.

“조금만 더 있다 가거라. 너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 자들이 이곳에 아주 많다.”

어느새 나타샤와 같이 다른 왕국의 사절단들이 그 뒤로 줄줄이 모여드는 게 보였다.

그곳에는 네임드 캐릭터들이 왕창 섞여 있었다.

그래서일까.

더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졌다.

“난 이미 내 행동을 뜻을 전했다. 악마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과 그 악마를 이 손으로 직접 죽인 것을 저들은 똑똑히 보았다. 그럼에도 깨닫는 것이 없다면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들의 시선에 내 허세는 단전에서부터 들끓어 올라 마침내 혀에 닿았다.

나는 망토를 펄럭이며 아까부터 콧노래를 부르고 있던 말을 천천히 움직였다.

“저들에게 전해라. 나 아슬란은 기사의 긍지와 명예를 아는 자들과 힘을 합친다고 말이다. 그런 자격조차 없는 자들에게는 응징만이 있을 뿐이다.”

······나도 내가 뭐라고 지껄이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저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슬란 님! 당신이 이 대륙의 구원자입니다!!”

그에 따라 하나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오직 당신만이 악마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시킬 수 있습니다!”

“부디 저희를 버리지 마십시오!”

“저희와 함께 싸워 주십시오!!”

그 환호성에 감명이라도 받은 것인지, 끝없이 달아오르던 허세에 나는 손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 주먹을 가볍게 쥐자,

“와아아아-!!”

“우리에게 응답하셨다!!”

어마어마한 함성이 성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 * *

“테르카나인지 뭐라카나인지. 그놈은 대체 뭘 하는 것이냐?”

일라이 왕국의 국왕, 리베르트는 초조하게 침소 안을 돌아다녔다.

테르카나가 악마의 힘으로 아슬란을 몰아내 주겠다는 제안을 했었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 주겠다 했지만, 한번 침공이 실패하자 테르카나 그놈은 그 뒤로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제기랄. 이대로 가다가는······.”

이곳 왕궁에 자신의 편은 없었다.

모두가 아슬란 이름만 칭송하고 있으며, 백성들조차 아슬란을 따른다.

누구 하나 이곳의 왕인 리베르토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 있었다.

이미 잊혀버린 그 이름을 생소하게 느낄 정도였다.

“아슬란. 그놈 손에 죽게 될지도 모른다······!”

리베르트는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이었다.

누가 언제 배신할지 모르기에 항상 눈치를 봐야만 했다.

대체 왕인 내가 왜 그런 꼴을 당해야 한단 말인가!

“왕이시어. 루갈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오! 그래. 루갈. 어서 들어오너라.”

그나마 믿을 거라고는 이 왕가의 핏줄 중 하나이자 자신의 조카인 루갈 뿐이었다.

“그래. 어찌 되었느냐?”

“왕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신하들을 모았습니다. 물론 숫자는 많지 않으나, 같이 힘을 합친다면 왕권을 다시 강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루갈은 일라이 왕국의 기사였다.

물론, 왕가의 핏줄이기에 황실을 지키는 호위기사 노릇을 하고 있다.

“그들을 만나보러 가시겠습니까? 모두 왕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는 중입니다.”

“오냐. 그 충직한 신하들을 만나는 것을 내가 어찌 주저하겠는가. 루갈, 네가 고생이 많았구나.”

“아닙니다. 저는 오직 이 왕국을 찬란하게 만들고 싶을 뿐. 그러려면 왕가가 바로 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옳은 말이다. 얼른 가자꾸나.”

루갈의 인도에 따라 리베르트는 자신과 뜻을 함께할 신하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12명의 신하가 모여 있었다.

“왕을 뵙습니다.”

“그래. 아직 나를 따르는 자들이 이렇게나 있었다니.”

“물론입니다. 어찌 왕을 배신할 수가 있단 말입니까?”

루갈은 왕을 상석에 앉혀 놓고 그들 앞에 서서 말했다.

“여기 있는 모두에게 묻겠소. 정녕 그대들은 대기사단장 아슬란을 처단하길 바라시오?”

그러자 그들이 한마음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그렇군. 그대들의 충정은 내 잘 알았소.”

리베르트가 오랜만에 흡족한 얼굴로 그들을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스르릉-

“나의 소중한 일라이 왕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면······.”

갑자기 루갈이 허리춤에서 칼을 뽑더니, 그대로 그중 하나의 목을 베어 버렸다.

“!?”

“루, 루갈 공!!”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루갈은 묵묵한 얼굴로 그 옆에 있는 신하를 찔렀다.

“으아아악!”

“루, 루갈 공!”

“죽어라. 이 일라이 왕국을 썩게 만드는 간신들아.”

“미, 미친! 저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잠긴 문은 열리질 않았다.

“감히 어딜 가는 것이냐?”

그에게 대항하는 기사도 있었지만, 루갈도 허투루 훈련을 해왔던 것이 아니기에 아주 깔끔한 검술로 이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

갑작스럽게 벌어진 상황에 리베르트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루갈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는 칼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왕이시어. 저는 일라이 왕국이 우리 왕가에 의해 다시 찬란해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왕권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지금 이 나라를 변화시킨 것이 누구입니까?”

“루, 루갈. 왜, 왜 이러는 것이냐?”

잔뜩 겁을 먹은 리베르트 앞에서 루갈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바로 아슬란 대기사단장님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이 왕국을 찬란하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권을 강화하고 왕가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제 뜻은 여전히 같습니다. 다만, 그 왕이 잘못되었을 뿐.”

“루, 루갈! 저, 정신 차리거라! 너도 왕가의 핏줄이야!”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란 말입니까? 저는 그저 일라이 왕국을 사랑하는 한 명의 백성일 뿐. 그깟 피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고는 루갈이 칼끝을 날카롭게 세웠다.

“기사의 긍지와 명예를 우선시하며 그 신성한 정신을 앞세우시는 아슬란 님께서는 결코 왕좌에 앉으려 하지 않으시겠지요. 왜냐하면 당신이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말입니다.”

“루갈! 그, 그놈은 우리 왕가를 멸망시키고 일라이 왕국을 통째로 삼키려 드는 자다! 그런 자의 편을 들겠다는 것이냐!?”

“예. 그것이 이 왕국을 위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

“그런고로 왕이시여.”

루갈은 천천히 리베르트에게 다가갔다.

“이제 그만 죽어 주십시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