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화
0.01초 소드마스터 100화
푸욱-!
상대방의 몸을 찌르고 등 뒤를 관통하는 감촉이 손잡이를 따라 내 몸 전체에 퍼져 나갔다.
“큭-!”
나는 짧게 신음을 내뱉으며 서서히 드러나는 그 형상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검디 검은 악마의 눈동자에 나의 허세가 불 같이 타올랐다.
“어둠 속에 숨어 있으면 이 눈을 피할 줄 알았느냐? 건방지구나.”
“과연······.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인가?”
물론, 처음부터 알진 못했다.
나타샤가 폭주하기 시작하고 그 뒤에 어렴풋이 이놈의 정보가 보였을 뿐이다.
[데이오르]
욕망의 악마, 데이오르.
그림자에 숨어 상대방을 조종하고, 그 욕망을 폭발시켜 파멸에 이르게 하는 악마였다.
본래 스토리를 따르자면 나타샤는 악마에 의해 타락하는 것이 아닌, 본인 스스로가 타락하여 악마와 손을 잡고 자신의 마력을 폭주시킨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악마에 의해 폭주를 한 듯싶었다.
만약 나타샤 뒤에 흐릿하게 나와 있던 정보창을 확인하지 않았다면 이 칼은 저 악마의 심장이 아니라 나타샤의 목을 찔렀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이 칼로 날 죽일 순 없다. 나는 욕망의 잔재이며, 탐욕과 질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힘을 모아 살 수 있다. 네 힘이 아무리 강하다고 한들, 인간의 탐욕이 가득한 이곳에서 날 죽일 순 없다는 것이다.”
데이오르는 욕망을 먹고 사는 존재.
강한 욕망이 있는 곳에서 그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이들은 모두 욕망의 노예다. 대륙 최강이고 싶어 하며, 이 대륙에 있는 모든 것을 갖고 싶어 하지. 난 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욕망을 느낄 수가 있다. 그렇다면 너는 어떻지? 너도 이들과 다를 바 없지 않나? 강자일수록 가지고 있는 욕망은 강한 법이니.”
데이오르는 자신의 심장을 관통한 검을 붙잡았다.
“과연 너의 욕망은 얼마나 추잡하고 더러운지 한번 볼까? 상대의 욕망이 더럽고 기괴할수록 내 힘도 똑같이 강해지니까.”
의기양양하게 데이오르는 기운을 퍼뜨려 내 안에 있는 욕망을 빨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못 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 이게 뭐야?”
그의 당황한 목소리가 떨려 왔다.
“분명 네게도 저들처럼 일그러진 욕망이 있을 터인데, 왜 이리도······!”
그야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바라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여인도, 강한 힘도, 이 대륙을 정복하고자 하는 야망도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하고 신성한 사명 하나만을 가지고 있을 뿐.”
“······!”
“그것은 욕망이 아니다, 악마여. 이것은 그저-”
이 게임을 클리어해 무사히 살아나고자 하는 본능뿐!
“이건 말도 안 된다. 너 같은 위정자는, 이 대륙을 떨게 하는 강자는, 반드시 비틀린 욕망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
데이오르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소리쳐댔다.
하지만 난 위정자도, 이 대륙을 떨게 하는 강자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재수 없게 이 게임 속으로 빨려 들어온 한 명의 플레이어일 뿐.
“넌 영원히 깨닫지 못할 것이다, 악마여.”
“이, 이럴 수는······!”
데이오르의 몸에 박혀 있는 검에서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얼른 이 몸을 먹어 치우고 싶다는 이 강렬한 욕망을 그가 느낀 것일까.
“그러니 이제 조용히 내가 걷고자 하는 길의 일부가 되어라.”
“아, 안 돼! 안 돼!!”
놈은 발버둥을 치며 발악했지만, 아가리를 벌린 포식자는 순식간에 놈의 몸을 먹어 치우고 그 안에 있는 어둠의 힘을 집어삼켰다.
콰아아아-!!
거친 비명과 함께 데이오르의 몸이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가 퍼뜨린 욕망의 힘도 황금빛 폭죽을 터트리듯 요란한 소리를 내며 소멸되었다.
“아, 아슬란.”
내 옆에 주저앉아 있던 나타샤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내 칼끝이 그 목으로 향했다.
“이번 일은 경솔했구나, 나타샤.”
“······.”
“한 왕국을 이끄는 대마법사라는 것이 고작 악마의 꾐에 넘어가다니. 그러고도 네가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나는 들고 있던 칼을 거두고 검집에 집어넣었다.
“반성하거라. 나타샤. 네가 나의 옛 스승이기에 오늘은 그냥 넘어가겠다만, 또 이런 일이 있다면 그땐 가차 없이 네 목을 베어 버릴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난 나타샤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나타샤의 욕망에 이끌려 이곳까지 몰려왔다 내 덕분에 정신이 풀린 자들.
그들은 모두 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중 누구 하나 감히 내 앞길을 막는 자가 없었다.
혹여라도 내가 가는 길에 서 있다면 얼른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난 그들의 시선에 강한 허세와 심취를 느끼면서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리고 저 입구에 다다르는 순간.
[히든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욕망의 악마, 데이오르 처치.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 * *
“나타샤 님.”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나타샤는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서 그녀는 아슬란이 떠나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악마조차도 찾을 수 없는 욕망이라.”
“네?”
“아슬란을 말하는 것이다. 나의 욕망을 먹이 삼아 힘을 키웠던 그 악마는 아슬란에게서 어떠한 욕망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인간이라면, 심지어 아슬란 정도의 위치가 되는 인물이라면 당연히 그 안에 욕망이 가득 쌓여 있을 터.
하지만 악마는 아슬란 안에서 욕망을 찾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다른 무언가를 보았고, 그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아슬란은 그것을 자신의 사명이라 일컬었다.
사명.
그게 대체 무엇이기에 아슬란은 자신의 욕망을 깨끗하게 버릴 수 있었던 것일까.
“내 꾐에 넘어오지 않는 이유가 있었구나.”
그 투철하고 단단한 정신력은 오직 사명 때문이었단 말인가.
처음에는 하리엘을 위한 마음 때문인 줄 알았더니.
“흐흥. 그랬단 말이지.”
하리엘이나 다른 여인 때문에 자신에게 마음을 주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건가?
더군다나 그 악마와 아슬란의 대화를 유추해 봤을 때, 그는 홀로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하며 제 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 외로운 자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는 틈이 언제든 생겨날 수도 있다는 뜻인가?
“나타샤.”
쿵-! 발소리를 내며 성난 음성과 함께 그녀의 앞을 막고 있는 건 바로 카르만이었다.
“이 일에 정확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머나. 아까 못 보셨어요? 이건 저도 피해자랍니다. 악마가 비겁하게 제 몸 안으로 들어와 그런 일을 꾸민 걸 대체 어떻게 막으라는 거예요?”
“넌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이지 않나? 그런데 고작 그런 악마 하나를 막아내지 못했다고?”
“제가 아무리 뛰어난 대마법사라고 해도 악마를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잖아요. 제가 아슬란처럼 악마를 죽이고 다니는 사람도 아닌데.”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슬란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악마를 제대로 상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잘잘못을 따질 게 아니라, 아슬란에게 달려가서 고맙다고 고개부터 조아려야 하지 않을까요, 카르만 님?”
“뭐라?”
“하마터면 우리 모두 큰일을 당할 뻔했는데, 아슬란 덕분에 살았으니까요.”
카르만은 입술을 짓씹으며 몸을 돌렸다.
쿵쿵대는 발소리에 그의 감정이 어떤지 드러났다.
‘아슬란.’
카르만은 나타샤의 매혹 마법에 간신히 정신을 붙들고 있었다.
그런데 아슬란은 어찌된 영문인지 아무런 타격이 없어 보였고, 오히려 그는 신성한 불길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마법을 전부 풀어 주었다.
‘대체 그 불길은······.’
따뜻하고 신성했던 그 불길.
그리고 아슬란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광채.
그건 마치 라할의 현신을 보는 듯했다.
‘어쩌면 정말로-’
카르만은 잠시 말도 안 되는 일을 떠올렸다.
정말로 어쩌면 아슬란은······.
* * *
‘식겁했다.’
밖으로 빠져나오면서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던 허세가 차갑게 식으며 내려갔다.
원래는 나타샤의 폭주를 알렉산더가 막아야 하는 건데, 그 멍청한 놈도 똑같이 헤벌쭉 매혹에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내가 나서게 되었다.
‘차라리 데이오르가 폭주시킨 게 다행일 수도.’
순수하게 나타샤가 스스로 마력을 폭주시킨 거라면 방금 전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을 것이다.
데이오르 정도로는 나타샤의 마력 폭주를 일으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해야 할까.
“아슬란 님!”
“대기사단장님!”
얼마 안 있어 내 수하들이 헐레벌떡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차갑게 식고 있던 허세가 다시 끓어 올랐다.
난 경멸스러운 눈초리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한심한 놈들.”
“······.”
“내 수하라는 것들의 정신력이 이렇게나 형편없어서야.”
저 카르만도 나타샤의 매혹에 넘어가는 마당에 이들이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하긴 했다.
“그래도 저는 대기사단장님의 성수 덕분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아슬란 님의 위대한 신성력이 담긴 성수를 들이붓는다면 그 어떤 악마의 마법도 버틸 수······.”
“아론.”
나는 한창 들뜬 채로 떠들어 대고 있는 아론을 부르며 말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아, 예······.”
아론은 얼른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씰룩이는 입술을 보니, 오늘 또 술집에 가서 사람들을 한껏 선동시킬 요량인 듯하다.
“대륙 최강자 곁에 있는 자들 역시 최강이어야만 한다. 오늘 같은 추태를 너희가 또 보인다면 그땐 그 자질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터. 항상 정신을 단단하게 만들고, 육신을 단련해라.”
“예!”
“알아들었으면 다들 물러가라.”
나는 그들을 보내고 나서야 숙소로 들어올 수 있었다.
이제야 쉴 수 있겠구나, 라고 안심했지만-
“이렇게 또 뵙는군요, 아슬란 님.”
내 숙소에 불청객 한 명이 들어와 있었다.
나는 그 기분 나쁜 얼굴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테르카나]
인간이면서 악마를 돕는 조력자, 테르카나.
놈의 캐릭터 설정은 사이코패스라서, 인간이 악마의 손에 죽든 천계의 손에 죽든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멸망을 당하든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다.
거기다 놈은 오직 자신의 욕망만을 따르기 때문에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더 악마에 가까운 놈이었다.
악마보다 더 악마다운 캐릭터라고나 해야 할까.
그런 놈이 지금 내 신성한 숙소에 마음대로 들어와 있었다.
“죽고 싶어서 온 것이냐?”
“아슬라 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몸은 그저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을.”
“네 빈 껍데기를 조종하는 본체가 어디에 있는지, 내가 못 찾을 줄 아느냐?”
“그것 역시 알고 있기에 매번 심장을 부여잡으며 떨고 있습니다.”
떨긴 개뿔.
오히려 이런 걸 스릴로 느끼며 즐거워 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오늘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온 것일 뿐. 저는 당신과 절대로 척을 질 생각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드리고자 하는 말을 들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테르카나가 이렇게 누군가에게 공손한 자세를 보이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항상 교만하고 오만하며 그저 자신의 욕망에 따라 대륙을 멸망에 이르게 하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제까지 그 어떤 플레이어도 테르카나를 잡아 죽인 적이 없다.
나 역시 수없이 게임을 플레이 해봤지만, 끝끝내 테르카나는 죽일 수가 없었다.
“저는 당신의 힘을 알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그 전능함! 저 라할조차도 해내지 못 한 일을, 당신은 하고 계십니다. 오늘 일도 마찬가지였지요.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나타샤의 매혹을 당신은 이겨내셨습니다.”
이건 처음 들어보는 대사였다.
테르카나가 저런 말도 할 줄 아는 놈이었나?
항상 재수 없게 말 몇 마디만 던져 놓고 사라지는 놈이라 플레이어들의 주먹을 울게 만든 놈이지 않던가.
“거기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찾아 헤매던 분을 드디어 만났다는 것을.”
그리고 갑자기 테르카나는 내게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저는 악마를 추종하고 그들을 이 대륙으로 끌고 오는 자. 하지만 그들을 이끌어야 할 왕은 잠들어 있으며, 현재 혼란만 가득한 상황입니다. 그러나 당신이라면 그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 겁니다.”
바로 그때였다.
[새로운 메인 퀘스트가 발동됩니다.]
뜬금없이 여기서 게임을 끝낼 수 있는 메인 퀘스트가 나타났다.
[악마들의 왕]
-모든 악마의 왕이 되어 대륙을 정복하십시오.
-퀘스트를 완료할시 게임이 끝나게 됩니다.
그건 이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새로운 퀘스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