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99화 (99/200)

99화

0.01초 소드마스터 99화

샤나 왕국에는 총 3명의 대마법사가 있었다.

나타샤, 자하트, 카르티엘.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들과 이 왕국을 이끄는 사람은 바로 나타샤.

그녀의 뛰어난 마법 능력은 대륙에서도 인정하는 바이며, 나타샤의 마법 실력은 그 전설적인 엘프의 여왕, 엘티히와 맞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나타샤 님께서는 아슬란을 너무 아끼시는 것 같군.”

“놈의 능력을 너무 높게 보는 것도 문제긴 해.”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한 근거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왕궁 안에서 다른 마법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던 자하트와 카르티엘이었다.

“이번 연회가 끝나고 나서 전부 아슬란 이야기로 시끄럽습니다.”

“벌써부터 그와 접촉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자들이 보이더군요.”

그것이 문제였다.

이번 마법 축제에서 당연히 주목을 받아야 하는 건 샤나 왕국이었다.

이 신비스럽고 아름다운 마법에 빠져 모두가 샤나 왕국과 나타샤 앞에 고개를 조아리길 바랐다.

하지만 정작 모든 관심은 아슬란이 가지고 가고 말았다.

항상 가십 거리가 넘쳐나는 저 고위층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아슬란 이름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대외적으로 샤나 왕국의 영향력을 늘리려 했던 우리의 계획이 어그러지게 된다.”

현재 대륙 곳곳에서 악마들이 출몰하며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마법의 힘은 그 어떤 왕국들보다 강하나, 백병전을 해야 하는 보병의 힘이 매우 약하기 때문에 타 왕국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래서 다른 왕국과의 교류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고자 했던 것이 이들의 계획이었다.

그렇기에 마법 축제를 열어 환상적인 마법을 이들에게 선보이며 그들로 하여금 저절로 손을 내밀 수 있게 만들려 했던 것인데······.

“혹시 이것도 아슬란의 계획이 아닐까요?”

“뭐라?”

“나타샤 님이 그러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매우 똑똑한 자라고. 일부러 제일 마지막에 연회에 등장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고, 카르만과의 불꽃 튀는 경쟁으로 이들의 머리에 확실히 각인을 시켰습니다. 아슬란 자신은 결코 카르만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샤나 왕국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다.

의도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갈등으로 아슬란은 확실하게 편을 갈라놓았다.

카르만과 아슬란은 영원히 친해질 수가 없는 사이.

그렇다면 다른 왕국들은 둘 중 누구를 선택해야만 이득을 볼 수 있는지 계산하고 있을 터.

그런 과정 속에서 아슬란은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과시하듯 연회장에서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그게 전부 우리 샤나 왕국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고?”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법 축제는 사실상 우리 왕국을 드높이기 위한 축제. 그것을 망쳐 버리고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돌려놓은 건 아슬란이지요.”

부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자하트와 카르티엘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슬란 그자가 그 정도로 치밀한 인간이었단 말인가.

“일단 자존심이 상하지만, 다른 왕국에 은밀히 연락을 넣어 보거라. 그들에게서 도움을 받아야만 외곽 수비가 수월하게 가능해진다.”

“알겠습니다.”

그리 뜻을 정하고 이제 그만 왕궁을 나서려는 때였다.

“······?”

앞서 가던 자하트가 발걸음을 멈추며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방금 무언가······.”

카르티엘도 같은 것을 느꼈는지 똑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로 나타샤가 있는 곳이었다.

“자하트. 너도 나와 같은 것을 느꼈나?”

“그래. 사악하고도 익숙한 그런 기운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설마 나타샤 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확실하다. 얼른 가보지.”

그들은 빠르게 움직여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으로 달려가 보았다.

“이건······?”

그들이 도착한 곳은 왕궁 안에 있는 나타샤의 침소.

그곳에서 응축된 마력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미 그 주변을 지키고 있던 기사들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채였다.

“나타샤 님!”

필시 무슨 일이 생긴 거라 확신한 자하트가 먼저 그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발을 떼기도 전에,

콰아아아-!!

침소 위로 거대한 진홍빛 마력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

“뭐, 뭐야. 저건!”

응축되어 있던 마력이 폭발이라도 한 것처럼 높게 솟아오르며 그곳에서 진홍빛 마력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헉!”

“윽!”

마력에 노출된 마법사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해보지 못하며 하나둘 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의 눈이 풀리고 입으로는 헛소리를 내뱉었다.

“나타샤 님······. 으헤헤······.”

“저는 당신의······. 노예입니다. 크흐흐.”

자하트와 카르티엘은 이 심상치 않은 마력을 제어하고자 자신들의 마력을 풀었다.

“이, 이건 분명히 나타샤 님의 마법일세.”

“그래. 매혹 마법이야. 그런데 이토록 강력하다니.”

그들은 부하들처럼 매혹에 걸리지 않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그들이 풀어 놓은 마력도 붉게 변하며 그들의 정신을 파고들었다.

“아, 안 돼.”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던 자하트와 카르티엘도 부하들과 똑같이 눈이 풀리면서 실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괜히 시간만 버렸네.”

불의 룬을 사용해 보고 싶었는데, 갑작스러운 나타샤의 방문에 그러지도 못했다.

지금이라도 어디 넓은 공터를 찾아봐야 하나.

그러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늦었는데.

“대기사단장님! 아슬란 님!!”

그때 소란스러운 하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설마 또 나타샤가 장난질을 하는 건가?

하지만 그녀는 내가 알고 있는 그 하리엘이 맞았다.

“괜찮으신가요?”

“그래.”

“휴. 다행이다.”

“나타샤가 널 풀어줬나 보군.”

“아, 알고 계셨어요?”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벌이지 말라고 경고를 단단히 해두었다.”

하리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 다음 쭈뼛쭈뼛 내 눈치를 보았다.

“무슨 일이지?”

“저 혹시······. 다른 일은 없었는지······.”

“다른 일?”

“네. 나타샤가 제 몸을 가지고 대기사단장님께 이상한 짓을 한 건······.”

“이상한 짓?”

나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

“이상한 짓이라면 정확히 어떤 것?”

“그, 그거 이, 있지 않습니까. 남녀 사이에 그······.”

“도무지 알아듣지 못하겠구나. 정확히 말을 해 보거라.”

“아이참! 다 아시면서!”

나는 곧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뭘 우려하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만, 별일은 없었다. 왜? 무슨 일이 있기를 바란 것이더냐?”

그러자 하리엘은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그, 그럴 리가요! 괘, 괜찮으신 걸 확인했으니, 전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경직된 모습으로 서둘러 나가 버렸다.

하여튼 놀리는 맛이 있는 놈이라니깐.

그러다 문득 나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

지금까지 아슬란의 몸을 하고 있으면서 이토록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분명 타인 앞이라 병적인 허세가 자동으로 발동되면서 절대 감정적인 표현을 얼굴로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하리엘 앞에서는 쉽게 웃고 있는 거지?

‘이게 설마 내가 모르는 아슬란의 특성이 또 있는 건가?’

그것도 하리엘에게만 적용이 되는?

아니지. 이건 특성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

“진짜 아슬란의 마음이라면?”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이 하리엘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그런 일련의 생각이 스쳐 지나갈 찰나.

“아, 아슬란 님!”

밖에서 또 다시 하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매우 다급해 보이는 목소리였다.

그녀는 나를 밖으로 불러내고자 계속 소리쳐댔다.

“지, 지금 밖에!”

무슨 일이지?

하리엘이 저렇게 당황할 정도라면 필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일 터.

아니나 다를까.

“······?”

깜깜한 밤인데도 불구하고 바깥이 온통 붉게 변해 있었고, 하늘에서 내리는 붉은 빗방울에 모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으윽-!”

하리엘은 끝까지 저항하고 있었지만, 결국 그 빗방울에서 나오는 붉은 마력에 잠식되어 눈동자마저 붉게 변하며 천천히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이 왕궁에 있는 모든 이가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이 붉은 마력을 쏟아내는 원천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미친.”

나는 얼른 숙소 문을 닫아 버렸다.

난 이게 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건 바로 나타샤의 붉은 마력 폭주.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사건 중 하나로, 보통 이 이벤트는 스토리 중후반쯤에 나온다.

거기다 전조 현상이 있기 때문에 마력 폭주가 일어나는 시기를 대충 추측할 수 있었는데, 이건 그 어떠한 전조도 없이 갑자기 벌어졌다.

“나타샤의 매혹 마법은 카르만도 못 견디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불굴이라는 뛰어난 정신력을 가진 카르만 조차도 나타샤의 마력 폭주를 정신적으로 이겨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직 이 마법을 풀 수 있는 건 엘티히 정도 되는 마법사나, 주인공인 알렉산더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이, 일단 여기를 벗어난 다음에 생각을 해봐야······.”

아직 지붕이 날 지키고 있어 줘서 괜찮지만, 저 지붕도 얼마 가지 않아 뚫리게 될 것이다. 그전에 이곳을 어떻게든 빠져나가야 한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스르르륵-.

마치 커튼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순간 내가 있던 방 안 풍경이 달라졌다.

온통 빨갛고, 정신 나간 사람들이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모여드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들려오는 음산한 음성.

“아슬란.”

뒤를 돌아보니, 그곳에는 나타샤가 있었다.

붉은 날개를 넓게 펼친 채, 두둥실 허공 위에 떠있던 그녀는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보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건 모두 네가 초래한 일이다.”

“······.”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난 포기하지 않는다고.”

이런 미친년.

내가 이래서 이년을 되도록 보고 싶지 않았던 건데.

“크으읍-”

누군가의 앓는 소리.

그것은 다름 아닌 카르만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칼을 지탱한 채 몸을 부르르 떨며 서 있는 것이 전부였다.

그 뒤로는 알렉산더가 멍한 눈동자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 우리 게임의 주인공!

빨리 네 능력으로 이 마법을 좀 풀어 봐라.

그러나 알렉산더도 맛이 가도 한참 간 것 같았다.

“으헤헤. 나, 나타샤 님.”

에라이 쓸모없는 새끼.

그리고 그다음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아론이었다.

“으으윽-!”

아론도 카르만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매혹을 버텨내고자 노력하는 것 같았다.

급기야 그는 허리춤에 있던 수통을 꺼냈다.

“아, 아슬란 님이 주신 이 신성한 힘으로 부정한 기운을 씻어 내리라!”

그러고는 수통 안에 담긴 성수를 벌컥 들이켠 뒤, 나머지 있는 것을 제 몸에 뿌려댔다.

“······.”

저놈은 컨셉이 아니라 정말 저 성수가 만능이라고 믿는 거였구나.

그딴 게 통하는 거였으면 내가 진작 뿌렸지.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푸하-!”

성수를 뒤집어쓴 아론이 붉은 마력에서 해방되는 것이 아닌가?

“역시 아슬란 님의 신성력은 위대하다!”

아론은 그 힘을 간증하듯 큰 목소리로 소리쳐댔다.

그것이 거슬렸던 것인지, 나타샤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붉은 마력의 해일이 아론을 덮쳤다.

“꾸웩!”

나타샤는 내게 말했다.

“이제 여기 있는 모두와 함께 너도 내 노예가 되는 것이다, 아슬란. 그러니 내게 굴복해라.”

문제는 그 붉은 마력의 해일이 내게도 들이닥쳤다는 것이다.

그것을 맞고 내 정신이 붕괴되어 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까와는 많이 다를게다. 이번에는 아무리 너라도 버텨내지 못할걸?”

그 말대로다.

나타샤의 마력이 내 정신을 산산조각내다 못 해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그 끝 없는 갈망과 욕망이 점점 차오르면서 나는 저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노예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소롭구나.”

그 끄트머리에 남은 허세가 밀려오는 붉은 파도를 막아내며 꿈틀거렸다.

“이런 같잖은 유혹에 이 아슬란이 넘어갈 거라 생각했느냐?”

나타샤는 인상을 찡그리며 다시 붉은 해일을 내게 쏘아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듯, 나는 충만하게 허세를 부렸다.

“이런 건 내게 통하지 않는다. 나타샤.”

그러자 나타샤의 얼굴이 사악하게 일그러지고, 그 뒤에 일렁이는 검은 그림자 역시 선인장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래. 너는 끝까지 넘어오지 않는다는 거지? 그렇다면······.”

나타샤는 곧 자신의 뒤로 붉은 창들을 만들어냈다.

“차라리 죽여 주겠어. 내가 가지지 못하면 다른 사람도 널 가지지 못하게 말이야.”

저, 저 미친년이 기어코······!

과연 내가 얼마나 막아낼 수 있을까.

지금 허세로 버텨내고 있긴 하지만, 물리적 공격이 들어오면 그땐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먼저 공격을 날리고 싶어도 나 역시 간신히 서 있는 게 고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잠깐. 분명 아론은-.’

그때 성수로 자신을 뒤덮고 있던 붉은 마력을 씻겨낸 아론이 떠올랐다.

그렇다는 건 내 안에 있는 성 속성 능력이 나타샤의 힘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일까?

“죽어라, 아슬란! 죽어서라도 내 곁에 남거라.”

나타샤가 만들어낸 수백 개의 창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만약 정말로 내 성 속성 능력이 저 붉은 마력에 효과가 있는 것이라면-

[불의 룬]

나는 거기서 마지막 도박을 걸었다.

* * *

“크으으-”

온몸의 신경이 다 끊어지고 간신히 붙잡고 있는 정신 줄을 이대로 놓쳐 버릴 것만 같았다.

아니. 이대로 놓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편해지리라.

그렇게 카르만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에 서서히 넘어가고 있던 중.

‘······아슬란?’

그는 나타샤 앞에 당당히 서 있는 아슬란을 볼 수 있었다.

‘넌······.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 거지?’

이 미친 듯한 타는 갈증.

몸을 끓게 하는 욕망.

이 모든 것이 나타샤가 만들어낸 붉은 마법이다.

하지만 아슬란은 항상 그랬듯이 꼿꼿하게 허리를 세웠다.

이런 유혹 마법은 저자에게 정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는 것인가?

대체 어떻게?

“죽어라!”

그것을 깨달은 나타샤도 질려 버렸는지, 이대로 아슬란을 죽이려 들었다.

바로 그 순간.

화아아악-!!

아슬란 몸에서 피어오르는 어마어마한 신성한 빛이 불길처럼 퍼져 나왔다.

그 불길은 사방에 있던 사람들을 뒤덮었고, 마침내 카르만에게까지 닿았다.

“!?”

하지만 일반 불길과는 달랐다.

몸에 달라붙어도 이 불은 사람을 태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 사람에게 붙어 있는 붉은 마력을 남김없이 태워 버려 이 뜨거운 욕망 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이건 대체······.”

그로 인해 카르만과 마찬가지로 다른 이들도 붉은 마력에서 해방되어 하나둘 정 신을 차렸다.

그리고 보았다.

이 거대하고 신성한 불의 폭풍을 일으키면서 제 몸도 밝게 빛내고 있는 아슬란을 말이다.

“······라할?”

그 말이 카르만의 입에서 절로 튀어 나왔다.

라할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만약 보게 된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꺄아아아악-!!”

신성한 불길은 마침내 그 앞에 있던 나타샤까지 불태우며,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붉은 마력이 소멸되어 가고 있었다.

털썩-!

결국 붉은 날개를 잃고, 그 아름다운 자태까지 잃은 나타샤가 바닥에 풀썩 쓰러졌다.

그리고 아슬란은,

스르릉-!

허리춤에 있던 검을 뽑아 들며 천천히 나타샤를 향해 걸어갔다.

“아, 아슬란.”

나타샤는 힘을 다한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그런 부름에 답하지 않으며 아슬란은 검 끝을 세우고 그녀에게 점점 빠른 속도로 다가갔다.

죽음을 직감한 나타샤가 애원하듯 소리쳤다.

“아슬란. 자, 잠깐. 안 돼!”

그리고,

푸욱-!

아슬란의 검은 주저 없이 상대의 몸을 관통해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