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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94화 (94/200)

94화

0.01초 소드마스터 94화

귀가 가렵고 오한이 드는 것을 보아하니.

‘또 누가 날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이제는 익숙해져 버린 일상이었다.

“왜 그런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지? 설마 나 때문은 아니겠지?”

“이제야 눈치라는 것이 생겨서 다행이군. 알았으면 좀 가거라. 드래곤은 할 일도 없느냐?”

“그래. 없다. 아주 더럽게 없지. 오죽하면 멀쩡한 레어를 놔두고 새로운 둥지를 만들려고 했겠나?”

나태의 종족이라 불릴 만큼 드래곤은 하루 종일 레어에서 나오지 않거나, 배가 고파도 밖으로 기어 나오지를 않아 그냥 레어에서 굶어 죽어 나중에 그 뼈만 남게 되는 일이 있을 정도다.

하지만 이 자식은 허구한 날 할라즈 성으로 놀러와 열심히 먹고 마시기를 반복한다.

다른 드래곤들과는 다르게 부지런하다고 해야 할지.

적어도 굶어 죽을 놈은 아니었다.

“그런데 너, 어디 좋은 곳으로 놀러 간다며?”

좋은 곳?

설마 샤나 왕국을 말하는 건가?

“마법 축제가 열린다는 얘기를 들었다. 흥미가 생기더군. 그래. 기분이다. 이 몸이 특별히 같이 행차하도록 하지.”

“거절한다.”

“뭐, 뭣이?!”

다른 놈도 아니고 드래곤과 동행한다?

그건 온통 사건과 재앙을 몰고 다니겠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그냥 조용히 여기에 머물러 있어라. 괜한 말썽 피우지 말고.”

“누가 보면 매일 난동이라도 피우는 줄 알겠네!”

“그러니까 그 자중하는 모습을 잃지 말고 있으라는 뜻이다. 만약 내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허튼짓을 해놓았다면 그 벌을 내리겠다.”

“뭐, 뭐야? 벌? 감히 이 플레임 님에게 벌을 내리겠다고?”

“그래. 그 잘난 날개를 다 뜯어 주마.”

“이, 이놈이······!”

플레임의 기세가 뜨겁게 타올랐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저 이상으로는 플레임이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후우. 아량 넓은 내가 참도록 하지.”

언제 그랬냐는 듯, 플레임의 열기가 차갑게 식었다.

“대기사단장님. 모두 채비를 마쳤습니다.”

“그래, 곧 나가도록 하지.”

집무실을 나가니, 밖에는 기사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에 있던 플레임은 핀잔을 주듯 말했다.

“흥. 잘 다녀오든가, 말든가.”

“잘 지키고 있거라. 샤나 왕국에는 대륙에서도 유명한 과자들이 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이 성을 잘 지켜만 준다면 그 과자들을 가져와 주지.”

그 말에 플레임의 눈동자에 빛이 번쩍였다.

역시 먹을 거에는 사족을 못 쓰는 놈이었다.

* * *

“······저기 오는군.”

일라이 왕국의 최고 권력자이자 대륙의 소드마스터, 아슬란.

그 카르만과도 필적한다는 강자이면서, 현재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기사들을 이끌고 샤나 왕국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형님. 역시 정보대로 아슬란 주변에 마법 보호막이 하나도 없소.”

“그 카르만도 행군 중에는 항상 마법 보호막을 하고 다니는데, 아슬란 저자는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군. 저건 그냥 미친놈 아니오?”

슈벨은 제 동생들의 말에 입가를 비틀었다.

“그만큼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하지만 놈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목을 노리는 것이 바로 우리 형제라는 것을 말이다.”

슈벨 삼 형제는 암흑가에서 그 위명을 떨쳤던 자들이다.

그런 그들의 뛰어난 실력을 보고 카르팰이 정식으로 에인소프 왕국에 들여놓았고, 그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적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그런데······. 괜찮겠소? 상대는 그 아슬란인데.”

“나도 뜬 소문으로 들은 건데, 아슬란이 최근에는 드래곤까지 굴복시켰다고 하오. 거기다 무슨 신의 눈동자를 가졌다는데······.”

“풉. 지나가던 똥개가 웃겠구나. 드래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느냐?”

드래곤이라는 말에 슈벨은 확신했다.

“지금까지 아슬란의 위명은 너무 허황된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 드래곤도 마찬가지야. 어떻게 인간이 드래곤을 굴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냐. 그 말은, 놈이 자신의 실력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이야기를 꾸몄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여태까지 아슬란이 이룬 성과를 보면 마냥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오.”

“그것도 맞다.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다만, 그 최약국이었던 일라이 왕국이 지금은 에인소프 왕국을 위협할 정도이니. 그래서 국왕 카르팰이 우릴 보낸 것이 아니겠느냐?”

슈벨은 단검을 올곧게 잡으며 제 아우들에게 말했다.

“그러니 모두 필살의 의지로 놈의 숨통을 끊어라. 이 일격으로 죽이지 않으면 우리가 죽는다.”

“걱정하지 마시오.”

“상대가 누구든, 일격 싸움에서는 자신 있소. 심지어 상대는 보호막도 없지 않소이까?”

슈벨과 그의 형제들이 강한 이유는 바로 눈으로 쫓을 수 없는 속력에 있었다.

이들이 칼을 휘두르면 표적이 된 상대는 자신이 죽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목이 떨어져 버린다.

그 주변 사람들조차 표적이 무엇에 당했는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슈벨 형제는 유유히 자리를 떠나게 된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빼앗아 명성을 얻어왔다.

이번에는 저 소드마스터 아슬란의 목을 베어 그보다 더 높은 명성을 얻고자 했다.

“간다.”

“알겠소!”

아슬란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그들은 응축하고 있던 기운을 폭발시켜 빠르게 튀어 나갔다.

그 순간 마치 시간이 멈춰 버린 듯, 모든 것이 동작을 멈추었고, 그 안에서 슈벨 형제만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죽어라, 이 우매한 놈.’

제 동생들이 먼저 양옆으로 날아 들어와 아슬란의 목덜미를 노렸다.

독이 가득 묻은 저 단검에 스치기만 해도 즉사였다.

그런데.

“······?”

단검이 닿으려 하는 찰나.

아슬란의 눈동자가 갑자기 황금빛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설마 저것이 아우가 말했던 그 신의 눈동자라는 것인가?

마치 그것을 증명하듯, 아슬란은 가벼운 몸짓으로 날아 들어오던 단검 공격을 피해 버렸다.

‘그걸 피했다고 끝이 아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슈벨이 항상 마지막 일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그는 아슬란의 심부를 향해 단검 끝을 조준하며 뻗어 나갔다.

하지만,

착-!

놀랍게도 그의 단검은 아슬란의 손끝에 걸리고 말았다.

그 순간 멈춰 있던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니!?”

“암살자다!!”

“대기사단장님을 지켜라!”

슈벨은 단검이 아슬란의 손가락에 붙잡힌 통에 허공에서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아슬란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눈동자로 바라보며 그를 내동댕이 쳐버려렸다.

“크악!”

“혀, 형님!”

동생들의 목소리에 그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모두 도망쳐라. 어서!”

이번 작전은 실패였다.

지금은 한 사람이라도 도망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아슬란은 저 둘을 순순히 보내주지 않았다.

“멈춰라.”

그의 말 한마디에 제 형의 말을 듣고 도망치려 했던 두 아우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들의 의지로 멈춘 것이 아니다.

어떤 강렬한 힘이 그들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감히 그런 조잡한 실력으로 이 아슬란을 노렸다는 것이냐? 건방지구나.”

그가 가볍게 손을 비틀자 동생들의 생명과도 같은 다리가 부러져 버리고 말았다.

“으아악!!”

저건 또 무슨 능력인 거지?

아슬란은 천천히 말을 앞으로 끌고 나가며 바닥에 쓰러진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두 아우를 내려다보았다.

눈동자에서 맹렬하게 타오르고 있는 황금 불길을 보고 그들은 더 큰 비명을 질러댔다.

“으, 으아아아아!”

“사,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아슬란은 그런 그 둘을 바라보며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죽이는 것조차 가치가 없는 놈들이구나. 이놈들을 포박해라.”

“예!”

기사들은 그들을 일으켜 강제로 사슬에 묶어 버렸다.

포박을 당하는 와중에도 슈벨은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행군을 이어가는 아슬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 * *

‘이, 이런 미친.’

손발이 오들오들 떨리고 심장 박동수가 미친 듯이 치솟는 것 같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것을 티 내지 못했다.

‘슈벨 형제가 왜 나를!’

대륙 최고의 암살자로 뽑히는 인물이 몇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슈벨 형제다.

스텟은 별거 없지만, 라이텐과 마찬가지로 초신속이라는 능력이 있어 그것으로 자신들보다 스텟이 높은 캐릭터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 버린다.

일격필살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놈들이라는 건데, 그놈들이 내 목숨을 노렸다.

‘천상의 눈빛이 아니었다면.’

신성한 보호가 첫 일격을 막아 주긴 했겠지만, 두 번째로 이어진 일격은 결코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천상의 눈빛이 죽음의 위기를 미리 감지하고 자동으로 반응을 해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배후가 누구인지 물어도 쉽게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기사들이 고문을 하며 놈들의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래도 그냥 저냥한 암살자는 아니라는 듯 나름 지조를 지키고 있었다.

‘그런데 고문하지 않아도 누가 배후인지는 이미 알고 있잖아.’

슈벨 형제가 게임 내에서 유명한 건 바로 에인소프 왕국의 카르팰 때문이다.

마검사로도 불리는 놈은 슈벨 형제의 재능을 알고 그들을 기용해 자신의 정적을 모두 죽여 버린다.

심지어 자기 아비까지 죽여 왕 자리를 차지하는 등, 아주 지독한 새끼였다.

‘그런데 나를 노렸다 이거지?’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렇다고 곧장 군을 일으켜 에인소프와 결전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사슬로 칭칭 묶여 있는 슈벨 형제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흠칫했다.

“카르팰이 보냈느냐?”

“······!?”

“안 봐도 뻔하지. 그놈이 너희를 이용해 제 아비를 죽이고 왕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뿐인가? 놈은 왕국 내에 있는 정적들을 다 너희의 칼로 죽이지 않았더냐?”

“그, 그걸 어떻게!”

역시 내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고작 너희 같은 쓰레기들로 내 목숨을 노리려 하다니. 그 발상이 참으로 우습구나.”

“······.”

나는 옆에 있던 아론에게 말했다.

“저놈들의 목을 베어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역겨우니.”

“예!”

“자, 잠시만! 으, 으아악!”

아론의 칼날에 슈벨 형제라는 악명 높은 암살자 형제가 허무하게 최후를 맞이했다.

‘카르팰 이 새끼를 어떻게 한다······.’

뭐라도 보복을 하긴 해야 겠는데, 대체 뭘 어떻게 갚아 줘야 하는 거지?

그리 고민을 하던 중.

“그걸 한번 해볼까?”

문득 재밌는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 * *

“쯧. 아직도 연락이 없더냐?”

“예.”

설마 실패인가.

밤이 이렇게 깊었는데도 슈벨 형제에게서 아무런 연통이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슈벨 형제로도 무리였던가?”

마법 보호막도 없이 다니는 아슬란을 노리기에는 슈벨 형제만큼 좋은 카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설마 그놈들이 붙잡혀서 배후를 불진 않았겠지?

“쓰읍- 그럼 곤란한데.”

괜히 일을 크게 벌였다가 된통 당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그리 밤새 고민하다 카르팰은 침소에 들었다.

그렇게 잠에 들어 꿈속을 헤매고 있었는데,

“끄응······.”

단잠을 깨우는 밝은 빛에 그는 짜증을 내며 일어났다.

“대체 누구냐? 누가 이리도 불을 밝히고 있는 게야?”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시종들의 대답이 아닌, 비명소리였다.

“꺄아아아!”

“으, 으아아!”

거기서 카르팰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하며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나타난 것은 바로,

“으, 으헉!”

뜨겁게 타오르는 황금빛 눈동자, 항상 이야기로만 들었던 신화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라할의 눈동자였다.

[카르팰. 제 아비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은 찬탈자여.]

이 드넓은 침소를 가득 채운 저 눈동자에서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왔다.

[감히 네놈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구나.]

그 목소리의 울림에 성 전체가 흔들렸고, 카르팰은 고막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아 괴로움에 몸부림을 쳐댔다.

“끄아아악!”

방어막을 쳤음에도 저 목소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

[네놈이 그러고도 살기를 바라느냐?]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극악스러운 공포에 카르팰은 바지가 축축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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