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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92화 (92/200)

92화

0.01초 소드마스터 92화

“그날 나는 보았다.”

아론은 잔을 높이 들며 기사들이 보는 앞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이곳 할라즈 성 위로 밝게 떠오른 신의 눈동자를!”

“오오······.”

“그리고 그 아래에서 보았다. 그 눈동자와 우리 모두를 관통하는 아슬란 님의 눈동자를!”

“오오-!”

아론이 말을 한마디 던지면 기사들은 동조하며 환호성을 지르기 바빴다.

이들이 이토록 환호하는 이유는, 바로 어제 할라즈 성 꼭대기에 나타났던 그 거대하고 찬란한 눈동자 때문이었다.

또한 그 아래에 있던 아슬란의 눈동자가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을 여기 있는 모든 기사가 보았다.

특히 아론은 그 경이롭고도 두려운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보았기 때문에 이렇게 간증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신의 눈동자가 있다면 바로 아슬란 님의 눈동자를 뜻하는 것이다. 그분의 타오르는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 있는 사악함이 전부 정화되었다! 난 그날 확신했다. 아슬란 님이야 말로 인간을 초월한 이 대륙의 진정한 절대자라는 것을! 그리고 우린 그분의 자랑스러운 기사들이라는 것을!”

“우와아아아-!!”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른 기사들의 함성이 성 전체에 울려 퍼졌다.

그들과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천천히 술잔을 들고 있던 호레스는 고개를 저었다.

“또 시작이군.”

가끔 이상한 종교로 선동하는 광신도들이 있다.

이렇게 일반 백성들이 오고 가는 대형 술집이나 거리에서 말이다.

지금 아론의 모습이 딱 그러했다.

“하지만 보기에는 좋지 않습니까?”

보기에 좋다라.

그래. 그것이 문제였다.

특정 종교의 광신도가 저런 행동을 보였다면 몇몇 혈기왕성한 사내에 의해 제압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누구도 아론의 연설에 거부감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듣고 싶어 하고, 더욱 그곳에 빠져들었다.

그건 아마도 아론 특유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사람의 귀와 정신을 자극하는 언변 실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중심이 아슬란 님이기에 가능한 것이겠지.’

또한 그가 다루는 주제가 늘 아슬란이기 때문에 이토록 기사들이 동조하며 환호를 하는 것이리라.

거기다 일반 백성들 역시 아론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배를 외쳤다.

그런 모습은 보통 일라이 왕국에서만 볼 수 있었는데, 이제 할라즈 성에서도 일상이 되어 버렸다.

역병처럼 퍼뜨리는 아론의 광적인 신앙심은 언제 봐도 무시무시하다.

“우린 다른 왕국처럼 신격화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각 왕국에서는 백성들로부터 왕권을 강화하고 더욱 그 위명을 드높이기 위해 신격화 작업을 하게 된다.

하지만 백성들도 멍청한 것은 아니기에 그냥 고개만 숙일 뿐, 누구도 왕을 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러한 신격화는 교단과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 왕국에서도 조심스레 하고 있다.

그러나 일라이 왕국은 그런 작업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당장 아슬란을 따르는 기사들이 제일 먼저 나서서 아슬란을 찬양하고 있고, 항상 아슬란에게 도움을 받고 사는 백성들 역시 그를 라할보다도 더 위로 추켜세우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아슬란은 이들이 보는 앞에서 악마를 정화시킨 인물이다.

“거기에 이번에는 그 성스러운 눈동자까지 보여 주지 않으셨습니까?”

넬라 기사단장은 아직도 그때의 일이 생생한지 경외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레스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기에 알고 있다.

이들이 이토록 그 거대한 눈동자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듣고 자라온 것이 있기 때문이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는 자신의 종을 지상에 보내거나, 혹은 자신의 눈동자를 대륙에 보내 사방을 굽어본다고 했다.

실제로 여러 경전을 읽어 보면 라할이나 그 외 신들의 눈동자가 성직자를 마주하는 일이 종종 나온다.

거기다 라할의 생김새를 묘사할 때 늘 나오는 것이 바로 두 눈동자가 황금처럼 찬란하게 타올랐다는 것이다.

“이쯤되면 저도 궁금합니다. 아슬란 님은 과연 인간이실까, 아니면 정말로 종족을 초월한 다른 존재일까.”

아론이 기사들과 아슬란을 찬양하고 있어도 묵묵히 지켜만 보고 있던 넬라였으나, 오늘만큼은 그도 감성적으로 바뀐 듯 보였다.

어제 그 장면이 그에게는 그만큼 충격적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겠소. 그분을 알아갈수록 놀랍고 두려울 따름이오.”

그런 호레스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아슬란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의 껍데기를 쓰고 온, 정말 신화 속의 ‘신’인 것은 아닐까?

그 강렬하고 성스러웠던 눈동자가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아오. 눈깔이야.”

어제 그 난리를 한번 치고 나서 나는 눈병이라도 난 것처럼 눈이 따가웠다.

천상의 눈빛.

이 스킬을 어제 처음 쓰게 되면서 알게 됐다.

이건 나한테 적이 어떤 방식으로 공격을 하게 되고, 또 내가 방어를 하지 못하면 어떻게 죽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그리고 스킬의 부작용으로 따가움이 동반됐다.

“일시적으로 스텟이 상승되는 건 좋다만.”

이렇게 눈이 따가운 채 있어야 하는 건 사절이다.

“그래도 스킬 하나는 기깔 나네.”

그 어디든, 내가 잘 아는 장소라면 천상의 눈동자를 펼쳐 그들을 감시할 수 있고, 누군가 날 공격하려고 하면 천상의 눈빛이 발동되어 나를 지켜준다.

이 정도면 엘라의 팬던트가 충분히 밥값을 한다고 할 수 있었다.

“잠깐. 근데 천상의 눈동자가 어디까지 되는지 안 써봤잖아?”

어제 천상의 눈동자를 내 집무실 위로 띄운 게 전부였다.

그 눈동자를 다른 곳에 펼친다면?

거기다 이 옵션 효과에는 천상의 눈동자를 통해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걸 테스트해 봐야 하는데.”

어디에다 이 사우론의 눈을 풀어볼까 고민하던 중.

“대기사단장님. 아론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론의 목소리에 나는 퍼질러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목소리는 굵어지고 따가워서 껌뻑 거리를 반복하던 눈동자에 힘이 강하게 들어갔다.

“들어와라.”

“예.”

아론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내게 아뢰었다.

“무슨 일이지?”

날 바라보는 아론의 눈빛이 평소보다 더 깊어 보였다.

“샤나 왕국의 대마법사, 나타샤가 대기사단장님을 초대했습니다.”

나타샤가 나를?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저번에 검의 원탁 회의 때 마주쳤던 여자 아니던가.

“나타샤가 나를 왜 초대한단 말이냐?”

“샤나 왕국에서 마법 축제를 연다고 합니다. 그때 각 왕국의 고위직을 초대하여 현재 이 대륙에 출몰하고 있는 악마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교단에서 발악하며 절대 악마가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어느 순간부터 악마들은 우리 왕국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다른 왕국에서만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뭐, 우리야 잘된 일이지만,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왜 악마들이 우리를 노리지 않는 것인지.

혹시 원기옥이라도 모아서 한번에 털어 버리려는 건 아니겠지?

‘마법 축제라.’

예전 같았으면 안 나가려고 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샤나 왕국의 마법 축제는 대륙에서도 굉장히 유명하다.

대마법사들의 나라, 샤나.

검의 왕국 ‘만’이 있다면, 마법에는 ‘샤나’가 있다.

‘만’ 왕국이 마법사를 일절 들이지 않는 것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으나, 여기 왕국의 기사들 역시 마법을 조금은 쓸 줄 안다.

‘게임 플레이할 때도 참 신비스러운 왕국이긴 했지.’

모든 왕국에 마법이 깔려 있으며, 어디에 어떤 마법이 설계되어 있는지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법 축제는 형식상이고, 실상은 검의 원탁 회의와 다를 바가 없었다.

여기 초대장에 적혀 있는 대로, 검의 원탁 회의처럼 각 왕국의 사람들을 초대해 회의하고 외교를 하기 위한 모임이었다.

‘지금은 참석하는 게 맞겠지?’

마법 축제가 지금 열린다는 건 스토리 라인을 그대로 따라가는 것을 뜻한다.

잦은 악마들의 출몰에 위기감을 느낀 왕국들이 서로 힘을 합치고자 이런 대규모 축제를 열어 서로 만나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샤나 왕국의 마법 축제]

-축제에 참여하십시오.

-보상으로 5골드를 받습니다.

골드 퀘스트까지 부여됐다.

일라이 왕국이 왕따 당해서 혼자 공격받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번 회의는 참석하는 것이 맞았다.

“알겠다고 전하거라.”

“예. 여기 초대장을 놓고 가겠습니다. 자세한 일정이 나와 있습니다.”

“그래.”

나는 초대장을 스윽 살펴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이게 함정은 아니겠지?”

그냥 게임을 하는 거였다면 별 의심 없이 갔을 것이다.

본래 스토리대로 게임이 진행되는 것이니까.

하지만 난이도가 극악이다 보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혹시 나타샤 그년이 날 죽이려고 하는 거라면······.”

나타샤는 스토리에 따라 둘로 나뉜다.

악마에게 넘어가거나, 아니면 주인공 일행에게 힘을 실어 주거나.

이번 스토리는 그녀가 어떻게 될지 가늠이 되질 않았다.

만약 그녀가 악마와 손을 잡은 것이라면 괜히 잘못 갔다가 죽을 수도 있는 노릇.

“흠.”

나는 잠시 고민하며 턱을 쓸어내렸다.

“천상의 눈동자를 시험 삼아 써 봐도 되잖아?”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난 곧바로 눈을 감고 샤나 왕국을 떠올렸다.

게임에서만 보던 그 신비스러운 왕국의 모습을.

그와 동시에 천상의 눈동자를 발현하자,

화아아아악-!!

불길이 치솟는 소리가 귓가에 울리며 내 앞에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마법의 왕국, 샤나.

내가 게임에서 보던 모습과 얼핏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그 속은 완전히 달랐다.

모든 것이 생생하게 보였고, 또렷했다.

이 눈의 좋은 점은 저 먼 곳까지도 명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눈을 굴리며 왕국 안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축제 준비에 한창이긴 하네.’

적어도 마법 축제가 거짓말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으헉!”

“꺄아아악!”

“저, 저게 뭐야!?”

그런데 그 아래를 빤히 내려다보고 있자 성안에 모여 있던 백성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이윽고 마법사들이 몰려오며 그들은 갖은 마법을 펼쳐 내 눈을 향해 조준했다.

거기서 날아오는 파이어볼과 그 외 마법탄들을 바라보며 나는 손을 휘휘 저었다.

마치. 3D 안경을 끼고 있을 때 뭔가가 다가오면 깜짝 놀라 발버둥을 치는 것처럼 말이다.

“어후. 이거 너무 생생해도 문제네.”

나는 얼른 천상의 눈동자를 꺼버렸다.

갑작스레 날아온 마법 공격에 너무 놀랐던 탓이다.

진짜 생생한 VR을 경험한 느낌이랄까.

“아, 근데 목소리를 테스트 안 해봤잖아.”

그 참을성 없는 놈들이 갑자기 마법 공격을 퍼붓는 바람에 정작 해야 할 걸 못했다.

그래도 한 가지 알게 된 건, 내가 모니터에서 봤던 그 장소만 떠올리면 천상의 눈동자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 이번에는······.”

샤나 왕국을 한번 더 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예의주시해야 할 곳에다 스킬을 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그런 곳이 딱 하나 있었다.

나는 쿨타임을 기다렸다가 그 장소의 모습을 떠올리며 천상의 눈동자를 켰다.

그러자,

화아아악-!!

이번에도 불길이 이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가 예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바로 레이어스 교단의 신전이었다.

“으, 으헉!”

“저, 저건!”

신전에 있던 사제들과 기사들, 그리고 기도를 하기 위해 올라왔던 일반 백성들까지.

그들 모두 기겁하며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나는 가만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그들의 정보를 확인해 봤지만, 악마로 보이는 것들은 없었다.

“라, 라할이시다!”

그때 어디선가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곧 메아리처럼 퍼져 나가면서,

“라할께서 오셨다!!”

“저건 라할의 눈동자다!!”

갑자기 하나둘 소리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정말 이 눈동자가 라할이라고 믿는 것처럼 말이다.

“라할이시여!”

신전 안에 사람 중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긴. 황금빛 눈동자에 불길까지 치솟고 있으니, 내가 봐도 신의 눈동자가 생각할 만하다.

‘무슨 말이라도 하긴 해야 하는데.’

이 눈을 신전에서 뜬 이유는 이놈들이 또 악마와 작당을 벌이고 있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천상의 눈동자를 통해 목소리를 보내는 것도 테스트를 해보려고 했다.

그런데 이렇게 모두 절을 올리며 고개를 조아리고 있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두 듣거라.]

바로 그때였다.

잠잠하던 내 허세가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기 시작한 것이.

[내가 항상 너희를 지켜보고 있다.]

나는 감히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바닥에 엎드려 있느 그들을 향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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