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
0.01초 소드마스터 88화
이 대륙 몬스터 중 최강이라 불리는 종족, 드래곤.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저 벨루로트 플레임이란 놈은 레드 드래곤, 화염 드래곤, 플레임 드래곤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대기사단장님?”
내가 말없이 저 어린 아이로 변신해 있는 빤히 드래곤을 쳐다보고 있자 옆에 있던 아론이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모두 재촉하지 말거라. 대기사단장님께서는 지금 저 작고 왜소한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는 거다.”
“아아- 역시 그런······.”
“······.”
지랄도 풍년이었다.
우적우적-
아주 맛깔나게 과자를 처먹고 있던 플레임은 만족을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금화 한 닢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뒤 뚜벅뚜벅 식당 밖으로 나가려 했다.
“······.”
플레임은 나와 슬쩍 눈을 마주쳤다.
잠깐 나를 바라보던 그 눈빛은 누가 봐도 불쌍한 인간 아이의 것이었다.
누구 하나 이 아이를 드래곤이라 생각하지 못할 만큼, 정말 잘 만들어진 몸이었다.
놈은 곧 내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다행히 나한테 별 관심이 없구나.’
뭔가 해코지를 하러 온 거 같진 않았다.
그렇다면 천만다행이다.
그러고 보니 레드 드래곤은 한 가지 이상한 취미가 있었는데, 바로 이렇게 인간의 탈을 쓰고 내려와 인간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드래곤들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내려오긴 하다만.
그것들은 보통 끝에 도시를 파괴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제발 빨리 좀 나가라.’
만약 나한테 관심이 없다면 땡큐다.
그리고 나 역시 드래곤의 고상한 취미에 털끝만큼도 신경 쓰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
드래곤이라는 거대한 존재와 눈을 마주쳐서일까.
이놈의 허세가 미친 듯이 차오르며 내게 강렬한 충동을 안겨 주었다.
그 멈출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충동은 곧 내 혓바닥으로 전해졌다.
“멈춰라.”
그 낮고 위협적인 음성에 플레임은 가던 발걸음을 멈췄다.
‘니미.’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어도 이미 늦었다.
내게 관심이 없었던 드래곤은 이제 관심이 생겨 버렸다.
놈은 표독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허세를 자극시킬 뿐이다.
“왜 네가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뻔뻔하게 어린아이 모습으로 위장하고 있는 플레임을 경멸스럽게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을 속일 순 없어도, 이 몸의 눈을 속일 순 없다. 벨루로트 플레임.”
아이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
“벨루로트 플레임?”
“그게 누구지?”
기사들은 옆에서 영문도 모른 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끝까지 정체를 밝히지 않을 셈인가?”
그런 내 말에 플레임은 힐끗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인간이구나. 아무리 뛰어난 눈을 가진 자라도 내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거늘. 더군다나 내 정체를 알면서도 그리 꼿꼿하게 서 있다니.”
“그럼 드래곤이 내 도시에서 활개를 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것이냐?”
그제서야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했다.
“드, 드래곤?!”
드래곤.
그 이름마저 두려움을 주는 존재.
하지만 기사들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눈치였다.
설마 이런 작고 왜소한 아이가 드래곤일 수 있냐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건방진 인간이군. 그래서 너 따위가 어떻게 할 작정이지?”
순간 저 작은 몸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살기에 기사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각자 허리춤에 손을 가져다댔다.
“······.”
방금 전까지 멀쩡했던 기사들 얼굴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고, 두려움이 물들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살기와 그 위압적인 기운일 테니, 당연히 저런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으리라.
“고민 중이다.”
“무엇을?”
“널 이 자리에서 단칼에 베어 죽일지. 아니면 자초지종을 들어볼지.”
“뭐, 뭐야?”
드래곤은 곧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만으로도 식당 전체가 흔들렸고 땅이 갈라지기까지 했다.
“네가, 나를? 단칼에 베어?”
아이의 몸 뒤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그림자는 곧 플레임 드래곤의 본 형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을 보고 기사들이 뒷걸음질을 쳐댔다.
“저, 저건!”
“드, 드래곤!?”
플레임은 내가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오며 말했다.
“재밌겠구나. 하지만 네게 정말 그런 능력이 있을지 의문이로군.”
놈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정신력을 갉아먹고 굴복시키는 드래곤 피어였다.
“윽-!”
아론을 제외한 나머지 기사들은 각자 들고 있던 칼을 놓치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
아론도 간신히 칼만 들고 있을 뿐,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세로 무장한 나는 온몸이 뒤틀리고 내장이 뒤섞이는 느낌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거기서 한술 더 떴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라. 드래곤.”
실로 대단한 정신병이 아닐 수 없다.
플레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이 도시에서 파는 과자가 마음에 들어 가만히 놔두려고 했더니, 네놈이 기어코 나를 자극하는구나.”
쿠웅-!
그런 뒤 놈은 더욱 강한 피어를 발동해 순식간에 주변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헉!”
“으악!”
드래곤 피어가 퍼져 나가자 아론부터 기사들, 그리고 식당 주인과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모두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
드래곤의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이 내 머릿속을 파고드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왜 넌 멀쩡한 거지?”
이게 멀쩡한 걸로 보이냐.
안 그래도 숨 막혀 뒤질 거 같은데.
웃긴 건 드래곤의 피어조차 이 허세를 꺾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천근만근 변해 버린 몸뚱이가 버티지 못하고 먼저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간단하다.”
이번에도 역시 병신 같은 허세를 부렸다.
“네놈이 나보다 약하기 때문이지.”
“뭐야!?”
나는 플레임이 흥분해서 붉은 불꽃을 높이 피워올리기 전에 혼돈의 피어를 발동시켰다.
쿠우우웅-!!
강력한 피어가 플레임의 피어와 맞부딪혔다.
처음에는 비등비등해 보이던 두 개의 힘은 곧 한쪽으로 기울이고 말았다.
“!?”
플레임은 찰나의 괴력으로 만들어진 그 무지막지한 피어에 몸을 움찔거렸다.
점점 강해지는 압박과 짓누름에 그는 이빨을 뿌득 갈았다.
어떻게든 버텨 내기 위해 악을 썼지만, 그럴수록 고통만 깊어질 뿐이다.
“이, 이런 말도 안 되는······!”
급기야,
쿵-!
그의 무거운 한쪽 무릎이 바닥을 뚫었다.
그렇게 15초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면서 내가 뿌린 혼돈의 피어가 사라져 버렸다.
“······.”
플레임은 충격에 빠진 얼굴을 하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인간이······인간 따위가 이런 힘을······!”
난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간단한 일이라고.”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나보다 약하기 때문이다.”
나를 올려다보는 플레임의 눈동자에는 경악과 두려움이 동시에 담겨 있었다.
* * *
“······.”
플레임은 앞서가고 있는 아슬란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대체 저 인간은 무엇이기에, 모든 족속 중에서 최강이라는 드래곤의 피어를 견뎌내는 것에 모자라 자신만의 피어로 드래곤을 압도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치욕은 수백 년 동안 이어진 삶 속에서 단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
제아무리 대륙에서 강한 자들이라고 할지언정 드래곤 앞에서는 모두 고개를 숙이지 않았던가?
‘분명 뭔가가 느껴지는 거 같진 않은데.’
드래곤의 눈은 특별하다.
상대에게 있는 오러, 혹은 마력의 양을 볼 수가 있다.
그것으로 상대가 얼마나 강한지, 약한지를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남자에게서는 그 어떤 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 흔한 오러와 마력이 티끌만큼도 없는, 정말 나약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그런데 피어를 발동하는 순간, 그때만큼은 온 세상을 집어 삼킬 만큼 어마어마한 힘을 뿜어냈다.
‘그렇다는 건 의도적으로 힘을 숨기고 있다는 건가?’
상대방이 자신의 힘을 파악하지 못하도록, 미처 깨닫지 못하도록 매 순간 스스로의 힘을 갈무리한다는 뜻이리라.
실로 대단한 경지가 아닐 수 없었다.
“일찍 돌아오셨군요, 대기사단장님. 그런데······. 그 아이는 누구입니까?”
아슬란을 맞이하던 호레스는 그의 옆에 있는 작은 아이를 보고 물었다.
그러자 아슬란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드래곤이다.”
“아, 드래곤이군요.”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해서일까.
호레스는 아슬란이 플레임과 함께 집무실을 들어가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잠깐. 드, 드래곤? 드래곤이라고!?”
호레스가 뒷목을 붙잡고 쓰러지려 하자 기사들이 그를 다급하게 부축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슬란은 플레임과 함께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펄럭~
화려하게 망토를 펄럭이며 아슬란이 자리에 앉았다.
물론, 아주 당연하게 상석에 앉으며 그는 턱을 괴고 거만한 자세로 플레임에게 눈짓했다. 너도 알아서 찾아 앉으라는 듯.
“······.”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이었으나, 플레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아까 전 그 일이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제 말해 봐라. 여기에는 대체 무슨 일로 온 거지?”
그리고 이 아슬란이라는 인간에게 흥미가 갔다.
평생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준 인간은 한번도 본적이 없었던 까닭이다.
드래곤을 앞에 두고도 겁먹지 않고 저리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는 자가 과연 이 대륙에 몇이나 되겠는가?
* * *
‘심장 떨려 뒤지겠네.’
병적인 허세가 아니었다면 엄동설한에 맨몸으로 누워 있는 사람마냥 오들오들 몸을 떨었을 것이다.
나는 내 앞에 마주 앉아 있는 플레임을 노려보았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한번 허세로 저지른 이상, 끝까지 유지해야 한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찰나의 괴력으로 죽이는 방법도 있지만-’
놈이 지금 인간의 몸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여기서 놈을 베어봤자, 그 안에 있는 드래곤의 본체는 베어내지 못한다.
즉,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서는 저 몸을 파괴하고 본체로 돌아온 드래곤을 한번 더 베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브레스 한번이면 그냥 녹아내릴 텐데.’
내가 칼을 들기도 전에 콧김으로 내뿜는 불길로 내 몸이 순식간에 녹아내릴 건 자명한 일이었다.
“이곳 성 밖에 있는 로데오 산맥에서 나는 새로운 둥지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새로운 둥지?
“그것이 이제 완성 단계에 이르렀는데, 어디선가 날아온 공격에 내가 애써 만든 둥지가 파괴되었다.”
건드릴 것이 없어서 드래곤의 둥지를 건드려?
어떤 미친놈인지 그 면상을 한번 좀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공격이 날아온 곳이 바로 이 성이었단 말이지.”
하필이면 드래곤 둥지를 건든 놈이 이 성에 있다는 건가?
“여긴 유독 맛있는 것들이 많아서 내가 가끔씩 오던 곳이었다. 그래서 이곳을 쓸어 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시장을 돌아다니며 그동안 맛있게 먹어 왔던 걸 한 번 더 먹어보려 했지.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여기까지 왜 왔는지 까먹고 말았다.”
“······.”
그러니까 성을 파괴하려고 씩씩대며 왔는데, 눈앞에 보이는 맛있는 거에 정신이 팔려 자기가 왜 왔는지도 까먹고 있었다는 얘기였다.
······이 새끼 이거 좀 모자란 놈인가.
“그러다 후식으로 과자를 먹고 있던 중 너를 만나게 된 거였고.”
하지만 다시 떠올렸으니, 얼른 상황을 수습해야만 한다.
“그렇군. 헌데, 정말 이곳에서 공격을 날린 게 확실한가?”
“확실하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길쭉한 창 같은 것이 산맥에 꽂히더니, 곧 큰 폭발을 일으켜 내 둥지를 함몰시켰다. 그리고 그 창이 이쪽으로 되돌아가더군.”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이지.
다른 것도 아니고 드래곤의 눈으로 본 것이니, 분명 틀림없을 것이다.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그런 짓을······.
그런데 잠깐.
‘창?’
순간 내 뇌리를 스치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 창이라는 게 아란의 창은 아니겠지?’
나도 창을 힘껏 던졌다가 애먼 절벽을 무너뜨리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드래곤의 둥지를 박살 냈다는 미친놈이 설마······.
‘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