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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87화 (87/200)

87화

0.01초 소드마스터 87화

[아란의 창]

-수호의 신, 아란이 후손들을 위해 남긴 창입니다.

-아란의 가호가 깃들어 있어 절대 부러지지 않습니다.

-창이 어디에 있든, 반드시 주인의 의지에 따라 돌아오게 됩니다.

-창으로 표적을 맞힐 경우, 강한 폭발을 일으킵니다. (단, 일정 이상의 힘이 가해져야 합니다.)

-귀속 효과로 언제든 창을 사라졌다 나타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나는 잠시 멍하니 아란의 창을 바라보았다.

분명 바닥에 꽂혀 있을 때만 하더라도 낡디 낡은 창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완전히 새것처럼 달라져 있었다.

‘설마 이게 뽑힐 줄은 몰랐지.’

게임에는 설정값이라는 것이 있다.

그 설정값을 벗어나게 되면 오류가 발생하고 버그가 터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그 설정값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알렉산더 아니면 절대 못 뽑는 창 아니었나?’

아니. 분명히 이건 알렉산더만 뽑을 수 있는 특별한 창이었다.

주인공의 원활한 플레이를 위해, 그리고 플레이어가 함부로 주인공을 없애지 않게 만들기 위해 만든 일종의 장치라고 해야 할까.

이 창은 단순히 가지고 있는 옵션 때문에 높게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아란의 창은 훗날 어떤 봉인된 장소를 열고자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알렉산더한테 줘야 하나?’

하지만 창에 달린 옵션을 보니, 그냥 주기도 아까웠다.

거기다 창은 뽑은 사람에게 자동으로 귀속된 터라, 내가 준다고 해서 주인이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하아- 이걸 뽑지만 않았어도 관광 수입을 달달하게 빨 수 있었을 텐데.’

갑자기 허세가 발동하는 바람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이기도 하고, 설마 이게 뽑힐 줄도 몰랐다.

‘대체 찰나의 괴력은 뭘까?’

찰나의 순간에만 압도적인 힘을 발휘하는 이 스킬은 쓰면 쓸수록 의문이었다.

분명 게임 제작자가 만들어 놓은 설정을 무시하면서까지 힘을 발휘할 수가 있다니.

그냥 그 능력 자체가 버그라고 해도 믿을 수 있는 수준이다.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대체 이걸 어떻게 할 거야!]

더군다나 아까부터 시끄럽게 이놈의 창이 떠들어대고 있는 터라 다시 돌려놓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대체 네가 어떻게 날 뽑은 건데? 난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 이 대륙을 구원할 영웅에게 뽑혔어야 한다고!!]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한번 획 창을 던져 보았다.

텅-!

창은 기둥에 박히지 않고 그대로 떨어졌다.

내가 손을 뻗으니, 창이 알아서 휘리릭 날아돌아왔다.

“이거 하나는 마음에 드네.”

[악! 누가 마음대로 던지라고 했어!]

“한번 더 해볼까.”

나는 다시 있는 힘껏 창을 던져 봤다.

터엉~!

이번에도 창은 기둥을 뚫지 못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아니. 고작 이거 하나 못 뚫는단 말이야? 무려 이 몸을 던져 놓고도?!]

“······.”

자존심 때문이라도 저 기둥만큼은 꼭 뚫어야겠다.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하며 창을 던져댔다.

그런데도 기둥은 아주 멀쩡했다.

아란의 창이 절규하며 울부짖었다.

[안 돼. 내가 이딴 쓰레기 같은 놈한테 뽑히다니! 아란! 다시 돌아와서 날 가져가 줘!]

아란의 이름을 부르짖었지만, 창만 꽂아 놓고 사라진 놈이 고작 이 창 쪼가리를 위해 다시 돌아올 리 만무했다.

[만지지 마! 이 더럽게 약한 새끼야! 내 몸에서 손 떼!]

슬슬 듣다 보니 빡치네.

안 그래도 아슬란의 처참한 스텟 때문에 나도 화가 나는데, 이놈이 내 성질을 박박 긁고 있었다.

[만지지 말라고! 저런 기둥 하나 뚫지 못하는 놈이 감히 어떻게 날 쓰겠다는 거야! 차라리 날 길바닥에 던져 줘. 너랑 같이 있느니, 차라리 지나다니는 사람들 발에 짓밟혀 사는 게 훨씬 나아!]

하찮은 작대기한테 이런 얘기까지 들어야 하나.

나는 창을 꾹 붙잡은 뒤 말했다.

“그래. 네가 원하는 대로 해줄게.”

[뭐야? 또 던지려고? 이제 그만 포기해. 너 같은 놈이 저걸 어떻게 뚫······으아아아!]

순간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나는 찰나의 괴력으로 놈을 냅다 던져 버렸다.

그러자,

콰직-! 쐐애애액-!!

창은 흠집조차 내지 못하던 기둥을 뚫어 버리고 저 높은 지붕까지 뚫은 뒤, 그대로 저 하늘 높이 로켓처럼 날아가 버렸다.

“······.”

그렇게 얼마쯤 흘렀을까.

쿠우웅-!!

“아-.”

밖에서 들리는 폭발 소리에 나는 또 한번 크게 사고를 쳤음을 깨달았다.

얼른 집무실 밖을 나가 보니,

“대, 대기사단장 님!”

“저걸 보십시오!”

이곳 할라즈 왕국에 있는 내 집무실에서 보이는 저 먼 산 절벽에 큰 폭발이 일어나 절벽이 무너져 내리고 잔해가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대체 저게 뭐지?”

“몬스터인가?”

“하지만 저런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 몬스터라니······. 혹시 드래곤?!”

나는 당황해 하는 기사들에게 말했다.

“모두 호들갑 떨지 말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거라.”

“아, 예. 대기사단장님.”

그런 뒤 손을 뻗으며 가만히 기다렸다.

“······대기사단장님?”

기사들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몰라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이윽고,

쐐애애액-!!

저 먼 거리까지 날아갔던 창이 바람을 가르며 내게 돌아왔다.

“와-”

“저, 저 창은!”

내 의지에 따라 돌아온 창이 손에 착 달라붙었다.

[하아아-]

그런데 또 돌아오자마자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지거리를 할 줄 알았던 아란의 창이 진한 숨을 내쉬며 말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아까처럼 던져줘.]

“······?”

[그 짜릿한 기분을 한번 더 느끼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또 던져줘. 그럼 네가 하라는 건 뭐든 할게, 주인!!]

갑자기 180도 태세 전환이 된 아란의 창이었다.

나는 놈이 더 이상한 소리를 하기 전에 얼른 귀속화 시켰다.

그러자 창이 잔상처럼 뿅 사라져 버렸다.

‘이것도 나름 쓸만하네.’

이것이 아란의 창이 가진 하나의 장점이었다.

굳이 귀찮고 무겁게 창을 들고 다닐 필요 없이 그냥 사라지게 만들었다가 필요하면 다시 나타나게 만들면 된다.

‘폭발력도 꽤 되는 거 같고.’

여전히 지진 난 듯 흔들리고 있는 산을 바라보았다.

저 밑에 사는 사람은 없을 테니, 아마 인명 피해는 없을 것이다.

고작 절벽 조금 무너졌다고 해서 무슨 일이 있겠는가?

* * *

“아란의 창을······. 아슬란이? 틀림없는 사실이더냐?”

“그렇습니다, 왕이시여!”

칼라 왕국의 국왕, 카르만.

그는 오늘 저녁에 들어온 보고를 듣고 눈가가 꿈틀거렸다.

아란의 창.

하늘이 인정한 영웅이 아니라면, 그 예언된 존재가 아니라면 절대 뽑을 수 없다는 창이다.

그런데 그걸 아슬란이 뽑았다는 것인가?

‘그렇다는 건 아슬란 그놈이······.’

왕좌에 앉아 있던 카르만은 주먹을 꽉 쥐었다.

“고작 그런 창 하나 뽑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맞습니다. 대륙의 영웅이 이곳에 계시지 않습니까?”

“왕께서 그 창을 뽑고자 하셨다면 진작 뽑았을 겁니다.”

“맞습니다!”

아마 여기 전각에 모여 있는 신하들은 모를 것이다.

카르만은 이미 오래 전 그 창을 뽑기 위해 몰래 잠행을 했던 적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창을 잡자마자 들었던 음성이 머릿속에 떠나가질 않는다.

[넌 힘이 강하긴 하지만, 내가 기다리고 있던 영웅이 아니야.]

신하들의 말대로 고작 창 하나 뽑았다고 해서 대륙의 영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운명이란 정해진 것이 아닌,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니까.

하지만 그날 카르만은 정말 온 힘을 다해 창을 뽑으려 했으나, 그것은 끝끝내 뽑히지 않았다.

오히려 헛수고를 한다며 창이 비웃기까지 했던 걸 기억한다.

그런데 그놈이 아슬란에게 넘어갔다라.

“왕이시어. 최근 들어 폭주하는 몬스터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예. 심지어 악마로 추정되는 몬스터들도 함께 섞여 나오고 있어 불안감이 날로 증폭되는 중입니다. 조속히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듯싶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아슬란이 가짜 성수를 만들어 백성들을 현혹시키고 있고, 그것이 진짜인 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그 성수를 가지고자 큰돈을 들고 일라이 왕국으로 가고 있다는 정보가······.”

카르만은 신하들이 하는 얘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아슬란이 아란의 창을 뽑았다는 것이 그만큼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대륙에서는 말한다.

아슬란이 카르만에 필적하는 강자라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껏 카르만은 그것이 개소리라고만 생각했다.

아슬란 그자가 예전과 달라진 것은 맞으나,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힘에는 다다르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젠 정말 모르겠군.’

훗날 아슬란과 자신이 맞붙게 된다면 과연 쓰러지게 되는 상대는 누구일까.

그날 원탁 회의에서 봤던 아슬란의 싸늘한 눈동자가 떠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카르만은 피가 끓는 것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뒷덜미가 서늘해는 것도 같이 느끼고 있었다.

* * *

“레바노스.”

“예.”

“게으름 피우지 마라. 내 눈에는 다 보인다.”

“아······. 예.”

짬도 안 되는 놈이 벌써부터 개수작을 부리고 있어.

네 무력만 아니었으면 진작 쫓아냈다.

‘그래도 저번보다는 확실히 정리가 된 느낌이네.’

당분간 할라즈 영토가 안정될 때까지 나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건 바로,

“대기사단장님. 부디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일라이 왕국에서는 이제 메말라 버려 거의 찾을 수가 없는 골드 퀘스트가 이곳에는 지천으로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든 말하라.”

나는 그들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이들이 주는 골드는 내게 무척 소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냥 자리에 앉아서 부하들에게 손가락을 까닥이는 것이 전부였다.

“알렉산더. 이 노파의 억울함을 풀어 주도록 하라.”

“예!”

“라파엘. 너는 가서 부서진 곳을 마법으로 복원시켜 놓아라.”

“네!”

부하들도 이젠 능숙해져서 그냥 말하면 척척 알아서 일을 잘 끝내고 돌아온다.

내가 일을 시키면 부하들이 달려가서 퀘스트를 완료하고, 보상과 칭찬은 내가 받는 아주 완벽한 시스템이었다.

“이 모든 것이 다 대기사단장님 덕분입니다.”

그때 옆에 있던 켈린이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요 며칠 동안 대기사단장님께서 힘을 보태 주신 덕분에 백성들의 삶이 훨씬 더 나아졌습니다. 또한 치안도 정말 많이 좋아졌고요. 과연 일라이 왕국이 왜 크게 부흥을 했는지 알겠군요. 이렇게 아슬란님께서 가장 낮은 자리로 오셔서 백성들의 삶을 살피시니, 당연히 왕국이 강해질 수밖에요.”

난 그런 켈린을 바라보며 똑같이 미소를 지었다.

“켈린.”

“예, 대기사단장님.”

“너도 놀지 말고 일해라.”

“······.”

대마법사라고 해서 이런 잔업에 빠지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켈린까지 일을 시키러 보낸 뒤에도 나는 부하들과 함께 주변을 돌아다니며 퀘스트 수급을 위해 열심히 움직였다.

이렇게 부지런히 움직여야 얼른 골드도 벌고 이 게임에서 탈출을 할 것이 아닌가.

“아이고. 대기사단장님. 어서 오십시오. 제가 정말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한번 와서 드셔 보시겠습니까? 미리 자리도 다 비워 놓았습니다.”

저번에도 여기 식당 주인장은 내게 음식과 술을 제공하더니, 오늘도 또 이런다.

그냥 거절해도 되겠지만, 여기서 파는 바베큐가 정말 예술이라 거절하기 힘들었다.

사실 여기 주변을 거닐던 건 그 바베큐 때문도 있었다.

“성의를 거절하진 않겠다.”

“감사합니다. 가문의 영광입니다, 대기사단장님.”

저번에 연설을 한 뒤로 나에 대한 평판이 굉장히 좋아진 상태였다.

거기다 계속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있어서 내게 남아 있던 악감정 역시 이곳에서는 거의 사라졌다.

나는 부하들과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작은 체구의 한 아이가 식탁 앞에 앉아 과자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근데 저 아이는 주인장 아들인가?”

“아- 저 아이는······. 가끔 오는 아이입니다. 저런 행색에 배까지 굶고 있는 것 같아 과자를 준 적이 있었는데, 그날 이후부터 가끔씩 나타나 저렇게 과자를 먹으러 오곤 합니다. 아! 물론, 올 때마다 과자와 바꿔 먹을 것들을 들고 오고요. 근데 어제도 왔는데 오늘도 온 건 좀 이상하군요.”

그렇구나-하고 그냥 넘겨 들으며 자리를 찾아 앉으려고 할 때였다.

‘잠깐만.’

나는 안으로 들어가던 발걸음을 멈칫거렸다.

저 아이, 왜인지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그리고 과자를 먹는다라-.

설마······.

‘아, 아니겠지.’

혹시나 싶어 나는 내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과자를 먹고 있는 아이의 정보를 살펴보았다.

[벨루로트 플레임]

“!?”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고 하마터면 숨이 넘어갈 뻔했다.

왜냐하면 저 아이의 정체는 바로,

'레드 드래곤?!'

무려 드래곤이었기 때문이다.

‘미친. 드래곤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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