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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81화 (81/200)

81화

0.01초 소드마스터 81화

[테르카나. 내가 친히 힘을 빌려줬는데도 건방진 인간들을 굴복시키지 못한 것이냐?]

검은 구슬 수정에서 나오는 탁한 목소리에 테르카나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헤르테미스 님. 생각지도 못한 변수를 만나 그리되었습니다.”

[그런 변수조차도 능히 해결할 수 있도록 내 힘을 들여 레바노스를 주지 않았더냐?]

“예. 그리하셨지요. 하지만 레바노스 조차 넘을 수 없는 산이 있더군요.”

[······.]

헤르테미스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테르카나에게 물었다.

[그 산이라는 것이 아슬란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저희가 생각을 잘못한 듯합니다. 지금까지 아슬란이 테키나 종족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건 단순히 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네 말은 그자의 힘이 우리 대악마 중 하나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이냐?]

“감히 말씀드리지만, 그렇습니다. 천계의 천사를 상대하는 것만큼 무척 까다롭고 위험한 인물입니다.”

두려울 것이 없는 테키나 족속이지만, 그들이 유일하게 상대하기 꺼려하는 것이 바로 천계였다.

그런데 아슬란이 그들과 같은 동급이라.

[그래서 네 계획은 뭐지?]

“위대한 테키나 족속의 부활을 꿈꾸는 숭배자들이 이 대륙에는 아주 많습니다. 조만간 어둠이 대륙을 삼키게 되는 건 시간 문제. 다만, 그 시작하는 위치가 잘못되었을 뿐입니다.”

[시작하는 위치?]

“그동안 우린 최약체라 여겼던 일라이 왕국을 중심으로 부활을 꾀했지만, 더 이상 그곳은 최약체가 아닙니다. 그러니 다른 왕국을 노리는 수밖에요.”

이번에도 깊은 침묵이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너를 믿어 보지.]

“감사합니다, 헤르테미스 님.”

그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끝이 났다.

검은 수정구는 다시 정상적인 푸른 수정으로 돌아왔고, 테르카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이 땅을 밟지도 못하는 것들이 여전히 자존심만 살았구나.”

테르카나는 일라이 왕국을 완전히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동했다.

테키나 족속의 부활을 원하는, 어리석은 숭배자들은 대륙 전체에 득실거리고 있으며, 악마를 소환하는 건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계획대로 테키나 족속을 소환해 대륙을 혼란에 빠뜨리면 되겠지만.

“너희를 위해서도 내게 새로운 계획이 있지.”

그 중심에는 바로 아슬란이 있었다.

* * *

‘뭔가 오한이 드는 거 같은······.’

100% 확률로 누가 날 죽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내 생존 본능이 말해 주었다.

나는 옆에 있던 호레스를 슬쩍 쳐다보았다.

“······왜 그러시는지?”

“흠- 아무것도 아니다.”

호레스는 내 의심 가득한 눈총을 받으며 말을 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영토 대부분에 감시탑을 추가로 설치했습니다. 이대로 유지가 된다면 앞으로 빈틈없는 감시를 할 수 있게 될 겁니다.”

“중갑병에 대한 건?”

“그 부분도 준비가 거의 다 됐습니다. 중갑 기병단을 새로 신설해 장비를 충당하고 있으며 당장 오늘부터 훈련을 시작할 겁니다.”

“그 외 것들은?”

“대기사단장님이 만드신 신성한 성수를 이용한 마법 무기도 추가 제작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저번처럼 공성 무기와 칼루탄을 활용해 공중에서 터트릴 수도 있고, 아니면 마법진을 활용하여 큰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우주 방어진이 차츰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어차피 일라이 왕국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가 어떻게 되든 나와 크게 상관없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내 몸을 지키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영토 전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방어 강화에 힘쓰고 있었다.

저번과 같은 몬스터 웨이브가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고, 언제 어디서 악마가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고수 난이도만 해도 숭배자들이 미쳐 날뛰니까 더 조심해야 된다.’

게임 난이도에 따라 숭배자들의 숫자가 결정된다.

난이도가 쉬우면 쉬울수록 숭배자의 숫자가 적어 소환되는 악마의 숫자도 같이 적어지고 그 빈도 역시 현저하게 줄어든다.

하지만 난이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숭배자들이 미친 듯이 소환만 해대서 악마가 곳곳에 득실거리게 되는데, 이건 무려 극악 난이도이지 않은가.

스토리가 벌써 이렇게나 진행된 것도 다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아이템 수급인데.’

여기 주변에서 뽑아 먹을 만한 게 없다.

이 게임의 악랄한 점이 바로 난이도가 높을수록 플레이어가 시작한 왕국 주변에는 먹을 만한 아이템을 거의 남겨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저번에 작성해 놓은 비밀 노트를 기반으로 일라이 왕국 영토 내에 있는 아이템을 찾아 나섰지만 수확이 없었다.

즉, 이 게임이 의도적으로 아이템을 나와 먼 곳에 배치해 두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건 아이템 삭제까진 안 했다는 거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스펙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막히지 않았다는 뜻이니.

‘그럼 다른 왕국으로 넘어가 봐야 하나.’

그렇다고 무턱대고 기사단을 이끌고 쳐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고······.

제일 가까운 할라즈 왕국부터 넘어가서 아이템 수급하는 것도 꽤 좋아 보이던데.

‘몰래 국경을 넘어가기라도 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이건 좀 더 고민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지금 훈련을 진행하고 있는 건가?”

“예. 중갑 기병의 훈련은 이미 시작됐습니다.”

“한번 점검을 해봐야겠군.”

나는 호레스와 혹은 다른 놈들이 뒤에서 한탕 해 먹고 대충 만든 것이 아닌지 확인하고자 직접 훈련소로 발걸음을 했다.

둥-! 두둥-!

“오오오!!”

훈련장 안은 북소리와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으로 가득하다.

두껍고 단단한 갑옷으로 무장한 중갑 기병단은 위엄찬 모습으로 앞에 나와 신호에 맞춰 천천히 앞으로 진격했다.

“쏴라!!”

이윽고 궁병단장의 명령에 궁병들이 화살비를 내렸다.

쏴아아아-!!

일반 기병이었다면 날아오는 화살비를 보고 우왕좌왕 거렸겠지만, 중갑 기병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 무게 때문에 움직임이 빠르진 않았지만, 이들은 무엇 하나 두려울 것이 없다는 듯 천천히 똑바로 나아갔다.

티팅-!

타타탕-!

수백 발의 화살이 기마대를 덮쳤다.

그러나 그 어떤 화살도 중갑을 뚫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부러졌다.

“오오-.”

“과연 저것이······.”

훈련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하지만 놀라기에는 이르다.

“쏴라-!!”

이번에는 화살비와 더불어 마법 병단이 만들어낸 마법탄이 쏟아져 나갔다.

콰앙-! 콰쾅-!

마법탄이 터지고 화살이 비처럼 내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중갑 기마병 중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이 없었다.

이들 모두 두꺼운 갑옷, 두꺼운 방패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타고 있는 말들 역시 마법탄이 터질 때 깜짝 놀라 몸부림을 조금씩 칠 뿐, 낙마할 정도의 어수선함은 보이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거운 무게 때문에 몸부림을 힘껏 칠 수가 없던 까닭이다.

‘과연 최상위 클래스 병단답네.’

중갑 기병은 사실 왕국에서 만들어낼 수 있는 최강 기병단이다.

보통 게임을 하게 되면 최고의 병단을 뽑기 위해 업그레이드를 하고 막대한 돈을 쓰지 않던가.

중갑 기병이 딱 그런 병종이었다.

내가 저들을 뽑을 수 있었던 건 샤를렌 가문과의 활발한 교역 때문인데, 칼루탄과 엘프족을 통해서 파는 특산품으로 지금 일라이 왕국은 떼돈을 벌고 있다.

문제는 그 떼돈을 전부 다 국력 강화에 쏟아붓고 있다는 것.

‘조금만 기다려라.’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땐 세금도 팍팍 올리고 내 주머니를 가득 채워 대륙 최고의 부자가 되어 줄 것이다.

“진격!”

“오오오오-!!”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던 중갑 기병단은 진격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허수아비로 세워 둔 방패병들을 단숨에 격파하고 궁병단과 마법 병단이 있는 곳까지 순식간에 이동했다.

“워······.”

“엄청나다······.”

“이게 일라이 왕국의 기병이라니.”

사방에서 탄성을 터트렸다.

‘이게 돈의 힘이구나.’

역시 게임이나 현실이나 돈이 최고다.

“크흡- 으흐흑.”

한창 돈맛에 취해 있을 때 옆에서 갑자기 누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호레스였다.

눈물 콧물 다 흘리고 있던 호레스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소, 송구합니다. 이것이 정말 꿈인지 생시인지 믿어지지 않아서······.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저희 군의 수준은 처참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지금은 저 칼라 왕국과 맞붙어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

저기, 감동을 깨고 싶진 않지만.

지금 이 수준으로 칼라 왕국과 싸웠다가는 그대로 전멸이다.

‘그래도 다른 왕국에 비하면 엄청 강한 건 맞지.’

스토리는 풀악셀을 밟은 것처럼 진행됐지만, 왕국들의 발전은 아직 미미한 수준.

우리처럼 중갑 기병을 뽑은 곳은 거의 없을 것이다.

딱 칼라 왕국 하나를 제외하고 말이다.

칼라 왕국은 시작부터 대륙 최강 왕국이었으며, 그곳을 다스리는 왕 역시 대륙 최강자라 불린다.

그렇기에 게임을 수월하게 플레이하고 싶으면 칼라 왕국부터 선택해 시작하라는 것이 뉴비를 위한 조언이었다.

‘지금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지.’

아직 칼라 왕국만큼의 수준이 되지는 못했으나,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나저나 저놈은······.’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냐?

“······.”

나는 저 멀리 한 자리 꿰차고 앉아 있는 레바노스를 불편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런 내 시선을 알아차린 것일까.

레바노스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고개를 까닥이자 놈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가 있는 쪽으로 총총 다가왔다.

그런데,

“흠흠.”

“저희는 자리를 비켜 드리겠습니다.”

“두 분. 편하게 말씀 나누십시오.”

갑자기 수하들이 알아서 자리를 비켜 주는 것이 아닌가.

나도 소드마스터고, 저놈도 소드마스터이니, 두 강자끼리 진득하게 얘기를 할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아니. 너희가 다 가버리면 어쩌라고.’

저런 괴물과 나를 단둘이 남겨 놓고 가다니.

이런 책임감 없는 놈들.

“······.”

어색한 침묵이 우리 둘 사이에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까부터 조금씩 끓어 오르기 시작하던 허세가 곧 머리끝까지 차올랐기 때문이다.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머무를 수 있게 허락해 주시면 안 되겠소?”

“소?”

“······허락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대체 무슨 목적으로?

우리 왕국에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고맙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민폐만 될 뿐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내 밑으로 들어오겠다는 것이냐?”

“그, 그건······.”

“아니면 방랑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언제든 떠날 것이냐? 한 가지만 해라.”

“자, 잠시 머무르다 가는 건 안 됩니까?”

“어차피 떠날 사람을 내 형제로 받아들일 수 없다. 난 나의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에게만 곁을 내어 준다.”

레바노스는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하려는 거지?”

“······확인할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확인할 것이라는 건 나에 관한 것인가?”

“······.”

대답이 없는 것을 보니 맞는 것 같았다.

“미리 말을 해 두지만, 난 사르디엘 종족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남고 싶어 했던 게 아닌가? 더군다나 난 테키나 족속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레바노스는 내가 두 개의 힘을 동시에 다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어둠의 힘을 이용해 타격을 가했으니, 맞은 사람은 당연히 알 수밖에 없다.

빛을 집어삼키는 어둠의 힘을 말이다.

“역시 그랬군요······.”

“네가 천계의 핏줄이라고 해서 나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나?”

내 말에 그는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 제게 천계의 피가 섞였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내가 이 대륙에서 알지 못하는 건 없다, 레바노스.”

“······.”

나는 그런 그를 무미건조한 눈동자로 바라보며 물었다.

“이제 궁금증을 풀었으니, 떠나겠느냐?”

하지만 그는,

“아니요.”

의외의 답을 내놓았다.

“더더욱 이곳에 남고 싶어졌습니다.”

“이유는?”

“당신이 가진 그 힘이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어둠과 빛을 동시에 다스릴 수 있는지, 당신의 정체가 정녕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나는 말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네가 알고 싶어 하는 힘의 정체가 전부 템빨이라고는 차마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무려 레바노스가 내 부하 역할을 자처하겠다면 이건 완전 대박 중의 초대박이었다.

“좋다. 허락해 주지.”

그러니 당연히 허락을 해주었다.

물론,

“하지만 만약 우리 왕국과 나의 명예를 더럽힌다면 그땐 그 목을 확실하게 잘라 주지.”

허세를 부리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레바노스는 흠칫거리며 고개를 숙였다.

“잘 알겠습니다.”

난 유레카를 외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레바노스가, 그것도 무력 96짜리의 무시무시한 강자를 부릴 수 있는 날이 오다니.

감동에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도 잠시.

“대기사단장님!!”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와 내게 아뢰었다.

“아뢰옵니다! 할라즈 왕국에서 보낸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할라즈 왕국?”

사신단도 아니고 달랑 서신 하나만?

나는 기사가 건네는 서신을 받아들었다.

그러는 순간.

[메인 퀘스트, 황제의 길의 가이드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할라즈 왕국의 구원

-위기에 빠진 할라즈 왕국을 구원하십시오.

-보상으로 10골드를 얻습니다.

내가 애써 무시하고 포기해 버렸던 황제의 길 퀘스트가 제멋대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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