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0.01초 소드마스터 79화
성수를 활용한 훈련은 계속되었다.
내가 만들어낸 그 끔찍혼 혼종의 물은, 얼른 버려 버렸다.
두 번 다시 만들어내고 싶지 않은 비주얼의 물이었다.
라파엘은 성수와 칼루탄을 이용해 공중에서 물 폭탄을 터트리는 무기를 개발해냈고, 왕궁 안에 성수가 흘러넘치고 있다는 소문이 백성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 물은 철저하게 군사적 용도로만 사용할 것이다. 외부로 반출하는 걸 엄히 금하겠다.”
“예, 대기사단장님.”
이 물이 왕궁 바깥에 퍼져 나가게 되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뻔했다.
이걸 가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테고, 가뜩이나 요즘 외부인들이 우리 성안에 자주 들락날락하고 있는데, 그놈들이 이 물을 왕창 챙겨가 다른 성에다 팔 가능성이 높다.
수요와 공급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든 걸로 엄한 놈의 배를 불리게 할 순 없지.’
팔아도 내가 판다.
내가 만든 물인데, 당연히 돈도 내가 벌어야지!
일단 시중에 풀지 않고 가치만 왕창 높여 놓은 다음에 팔아 버릴 작정이었다.
벌써 입가에 웃음꽃이 만개하려고 한다.
“대기사단장님! 급보입니다!”
그때 기사 하나가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현재 왕국 영토 곳곳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다수 발생했다고 합니다.”
또 경험치 이벤트 하라고 보내주는 건가.
이런 거 안 보내줘도 되는데.
“······숫자는?”
“최소 만 단위라고 합니다.”
“각 마을에 있는 주민들은 대피를 하였느냐?”
“그것이······. 현재 몬스터들이 마을이나 성을 습격하지 않고 모두 이쪽으로 향해 달려오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몬스터 웨이브는 보통 이벤트성으로 발생한다.
기사단을 훈련시키는 목적으로 토벌을 해도 좋고, 뭐 쓸만한 아이템들을 획득해 상단을 통해서 판매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플레이어의 경험치가 쭉쭉 올라가는 것도 장점 중 하나였다.
문제는,
‘나한테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거지.’
아슬란에게는 몬스터 웨이브가 아무짝 쓸모도 없다.
난이도 때문에 어차피 몬스터를 백날 잡아봤자 스텟 성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이 몬스터 웨이브는 애써 키워 놓은 마을이나 성을 손상시키는 악질적인 이벤트일 뿐.
그런데-
‘그걸 다 무시하고 왕궁을 향해 달려온다?’
내가 아는 몬스터 웨이브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
일단 눈에 띄는 곳이 있으면 무작정 돌진을 해 파괴를 하는 것이 바로 몬스터 웨이브이지 않던가.
그렇다는 건,
‘몬스터 웨이브가 아닌 다른 거다.’
거기까지 결론에 다다르자 나는 얼른 손을 들어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하거라. 이건 가벼운 몬스터 웨이브가 아니다.”
“그럼······.”
“악마의 공격일 가능성이 높다. 빠르게 움직여라.”
“예!”
악마의 공격이라는 내 말에 왠지 기사들의 눈동자가 초롱초롱 빛이 난다.
기분 탓인가.
그것은 곧 기분 탓이 아니라는 걸 성벽으로 나가면서 알게 되었다.
“악마들이 온다!!”
“빛의 심판을 보여 주자!!”
“기사단! 전원 아슬란 님의 힘을 놈들에게 보여 주자!!”
“오오오-!!”
기사들은 수통에 담긴 황금물을 머리 위로 쏟아부으며 함성을 질러댔다.
······광전사냐?
‘근데 숫자가 왜 저렇게 많은 거지?’
기사들의 사기가 높은 것은 좋다만, 지금 성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일라이 왕국 영토에 있는 몬스터들과 그 외 영토에 있는 몬스터들까지 싸그리 끌고 온 거 같은데, 검은 연기를 풀풀 풍기는 것을 보아 마기로 폭주를 시킨 게 분명했다.
‘저 많은 몬스터를 한꺼번에 통제할 수가 있다고?’
마을과 성을 지나치게 하고 여기로 몰려들게 한 것을 보면 이건 그냥 일반적인 폭주가 아니다.
분명 누군가가 저것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테르카나인가?’
하지만 놈에게 저 몬스터 군단을 조종할 만한 통제 능력은 없을 터.
저 정도 양이면 대악마급은 되어야······.
‘설마 헤르테미스?’
복종의 대악마, 헤르테미스.
그놈 정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놈은 자신의 특성으로 수십만의 몬스터 군단을 이끌 수 있으니까.
‘근데 헤르테미스가 나타날 정도라면 뭔가 진작 발견된 게 있었을 텐데.’
다른 것도 아니고 대악마를 소환하는 일이다.
라이텐 때처럼 헤르테미스를 소환하려면 분명 어디선가 전조 현상이 나타났을 터.
라이텐 사건을 겪은 뒤로 영토 감시를 더욱 촘촘하게 해 놓은 뒤라, 대악마를 소환할 정도의 소란이었다면 진작 내 감시망에 포착이 되었을 것이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모르겠다만.’
지금은 저것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게 급선무였다.
“대기사단장님! 명령만 내려 주신다면 저희가 가서 놈들을 쓸어 버리고 오겠습니다!”
황금물로 온몸을 적신 광전사가 되어 버린 기사단은 자신들을 보내 달라며 아우성을 쳤다.
기사들은 저 황금물을 마시거나, 몸에 뿌리기만 해도 전투력이 급상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미안한데······. 저 물에 그런 능력은 없어.
‘이를 어쩐다.’
나가서 싸우는 건 자살 행위이고, 그렇다고 성안에 틀어박혀 싸우자니 저 많은 몬스터가 성벽 위로 떼거지로 올라오기 시작하면 금방 이곳은 혼돈에 빠질 것이다.
‘한창 성벽을 높이는 와중에 쳐들어오냐. 좀만 늦게 오지.’
우주 방어진을 건설하기 위해 성벽 공사를 계획 중에 있었다.
만약 그것만 완성이 되었어도 이렇게 불안해하진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꼼짝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건가?’
그런 절체절명의 순간.
“대기사단장님~!”
저 아래에서 청명한 라파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마법 병단과 함께 투석기를 가져와 배치하는 중이었다.
라파엘은 빠르게 위로 올라와 내게 말했다.
“이번에 저희가 만든 신무기요! 그걸 써볼 때가 된 거 같아요!”
신무기라면 저번에 만들었다는 그 물 폭탄?
“안 그래도 만들어 놓기만 하고 실전에 쓸 기회가 없었는데 히히.”
라파엘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각 성벽 뒤로 투석기들을 놓고 무기를 공급했다.
투석기는 모든 성벽에 놓아도 될 만큼 부족함이 없었다.
혹시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해 공성 무기를 잔뜩 만들어 둔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됐다.
“신무기?”
“대체 그게 뭐지?”
기사들은 투석기에 올라오고 있는 주먹만 한 크기의 말랑말랑한 물 폭탄을 기이하게 바라보았다.
라파엘은 그것들을 수북하게 투석기 위에다 쌓아 올려놓았다.
‘저게 효과가 있으려나?’
솔직히 아직은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이 방법을 한번 믿어보는 수밖에 없다.
나는 내 명령을 기다리는 투석병들을 향해 손을 든 뒤, 곧바로 내렸다.
“쏴라-!!”
“악마들을 모두 죽여라!”
철컥-!
투석기들이 일제히 움직이며 물 폭탄을 하늘 높이 쏘아 올렸다.
퍼퍼펑-!!
달려오는 몬스터 군단 위에서 폭발한 폭탄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황금물이 소낙비처럼 아래로 쏟아졌다.
“키에에엑-!!”
그 물에 닿자마자 몬스터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자욱한 검은 연기는 어느새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그 광경을 보고 기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우, 우와아아-!!”
“오오오-!”
“이것이 바로 아슬란 님의 힘이다! 이 악마 놈들!”
뭐야. 이게 정말 효과가 있잖아?
그것도 상상 이상으로 뛰어난 파괴력을 보이고 있었다.
‘저게 일반 몬스터 웨이브였다면 어림도 없었겠지만-.’
마기에 폭주한 몬스터이기 때문에 황금물이 효과를 보이는 것이었다.
퍼퍼펑-!!
투석기는 쉴새 없이 움직이며 폭탄을 쏘아 올렸다.
그리고 무섭게 다가오던 몬스터 웨이브는 제자리에 멈춘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폭탄이 다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개발한 지 얼마 안 된 신무기라 폭탄의 양이 한정적이었다.
아. 아쉽다.
조금 더 있었으면 저것들을 다 쓸어 버렸을 텐데.
“대기사단장님! 명령을!”
“명령을!”
몸이 근질거려 보이는 기사들이었다.
그들의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내게 집중되자 잠잠하던 허세가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성벽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밑이 낭떠러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멈추지 않고 천천히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너희에게 명하겠다.”
내 몸은 어느새 허공 위에 떠있었다.
나는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기사단에 명령을 내렸다.
“저 더러운 미물들을 내 눈앞에 치워 버려라.”
그러자 그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성문을 열었다.
“아슬란 님을 위하여!!”
“악마들을 모조리 죽여라!”
기사들은 황금물을 다시 한번 온몸에 뿌리며 진격했다.
저런 모습을 보니, 마치 광기에 덮인 광신도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와아아-!!”
“키에에엑!”
곧 기사단이 몬스터 군단과 충돌하여 싸움을 벌였다.
숫자는 저쪽이 훨씬 많았으나, 폭탄 공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몬스터들은 기사단에 의해 속절없이 쓸려나가고 있었다.
‘완전 압도적이잖아?’
설마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만약 내가 성수를 만들지 않았다면, 아니. 저 몬스터들이 마기에 휩싸이지 않은 그냥 일반적인 몬스터 웨이브였다면 오늘 이 왕궁이 파괴되었을지도 모른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근데 내 말은 어디에 있냐?’
비행 지속 시간이 1분밖에 되지 않아 지상으로 내려오긴 했는데, 내 말만 보이지 않았다.
주인이 여기에 있는데 퍼뜩 나타나지 못할망정, 분명 어디선가 또 혼자 다른 말에게 치근덕거리고 있는 게 분명하다.
‘내 말을 얼른 가져오라고 명령을······.’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앙-!!
“으아악!”
“커헉!”
줄에 매달린 대검 하나가 빙글빙글 춤을 추며 기사들을 베어 버리고 있었다.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그 검의 움직임을 보고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레바노스밖에 못 하는 건데?’
더 큰 대검을 줄에 묶어 휘두르는 건 레바노스의 특기였다.
더군다나 저런 빛의 검강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 역시 레바노스의 능력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촤아아-!
걷히는 연기 사이로,
[레바노스]
무력: 95
지력: 85
방랑자 레바노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
레바노스는 멍한 눈동자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놈이 왜 악마 편에 선 거지?
아니.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는 건가?
저거 하는 몸짓을 봐서는 나한테 달려올 거 같은데?
“흐아압!!”
채앵-!!
하지만 레바노스가 움직이기 전에 아론이 먼저 그에게 달려와 칼을 휘둘렀다.
그 옆으로 알렉산더와 하리엘도 합세해 난타를 이어갔다.
콰콰콱-!!
그러나 상대의 무력은 무려 95.
거기다 레바노스는 속도, 힘, 기술 등등.
어느 곳 하나 빠지는 것이 없는 육각형 소드마스터였다.
일단 태생부터가 천계의 핏줄이라서 사기적인 능력과 피지컬을 갖추고 있었다.
콰앙-! 콰아앙-!!
과연 몇 수 위의 힘 차이를 보여 주며 레바노스는 저 세 명의 협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고 있었다.
‘저 세 명한테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나는 일단 들어갈까?’
나는 스리슬쩍 뒤로 물러나 성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괜히 저놈이 눈에 불을 켜고 여기까지 달려오면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심스레 발을 빼려는 때였다.
쉬익-!
대검을 붕붕 돌리며 세 명의 협공을 막아내고 있던 레바노스의 모습이 일순 사라졌다.
“어, 어디로 갔지?”
그의 움직임을 놓친 아론이 뒤를 돌아보았을 땐.
“!?”
높이 날아오른 채, 한쪽 날개를 활짝 펼친 레바노스가 나를 향해 대검을 휘두르며 내려오고 있었다.
* * *
“보면 볼수록 재밌는 놈들이군.”
테르카나는 황금빛 연기를 내뿜으며 쓰러져 가는 몬스터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런 역공을 당할 줄이야.
헤르테미스가 만든 지팡이로 이 많은 몬스터 군단을 일으키는 데에는 성공했을 때만 하더라도 일라이 왕국을 금방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상대가 이런 것을 준비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성수로 만든 폭탄이라니. 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성수는 교단에서도 소량만 만들어 낼 수 있다.
저렇게 무식하게 쏟아부을 정도의 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라이 왕국은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성수로 만든 물을 뿌려 애써 만들어 놓은 이 몬스터 군단을 쓸어 버리고 있었다.
“거기다 이 성수는······. 일반 성수보다 훨씬 강력하군.”
상대가 상대인 만큼 헤르테미스의 힘까지 빌려 이런 무대를 준비했건만.
아슬란 저자는 항상 몇 수 앞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아직 하나가 더 남아 있지.”
아슬란을 죽이기 위한 마지막 카드.
방랑자 레바노스.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 몬스터 군단으로 저 왕궁을 파괴한 뒤 아슬란을 궁지에 몰아 레바노스로 하여금 상대하려고 했는데,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 빛의 힘으로 라이텐을 죽였을진 몰라도, 이번에는 다를 거다.”
레바노스 역시 아슬란과 마찬가지로 빛의 힘을 다루는 자다.
악마에게는 악몽 같은 두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한 대륙 최강자 두 명이 만났으니, 지루한 대결은 아닐 터.
과연 레바노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던 놈들을 치워 버리고 곧장 아슬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화려하게 펼친 천상의 날개는 감정이 메말라 있던 테르카나조차 감탄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콰아아앙-!!
하지만 레바노스가 날린 일격은 아슬란의 손끝에 가로막혔다.
방어막 같은 건가?
거기에 흡수된 힘이 반사되듯 뻗어지자 레바노스는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부웅-!
첫 타는 보기 좋게 막혔으나, 두 번째는 다를 것임을 알려 주듯, 줄에 매달린 레바노스의 대검이 빠르게 회전하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아슬란에게 달려가 일격에 끝을 보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힘을 끌어모으며 마침내 아슬란을 향해 발을 내디디려는 순간.
펄럭~
어느새 그의 옆에 붉은 망토가 펄럭이고 있었다.
“······?”
레바노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느리구나.”
그곳에는 거만하고 꼿꼿한 자세의 아슬란이 격조 있는 발걸음으로 옆을 지나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죽는 그 순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