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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75화 (75/200)

75화

0.01초 소드마스터 75화

“국왕이시여. 이건······.”

엘버스테인의 호위대장, 루보르는 사방에 난자한 시체에 말을 잇지 못했다.

그건 여기 있는 기사들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다.

어찌 이리도 끔찍할 수가.

이들의 시체를 보면 어떻게든 반격을 하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럴 새도 없이 모두 일방적으로 당했다.

“그래. 왕국을 어지럽히고 나아가 이 대륙 전체를 어둠으로 빠뜨리려 한 이교도들의 마땅한 최후라 할 수 있다.”

엘버스테인의 말에 기사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메르 왕국의 기사단 중 절반 이상은 아슬란을 처음 마주하는 것이었다.

그의 힘과 위용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이 수많은 이교도 무리를 단번에 쓸어 버리고, 저 악마까지 처단할 정도라면 대체 얼마나 그 힘이 막강하다는 것인가.

“근데 라이텐이라는 악마는 대체 뭐지?”

아슬란이 죽였다는 라이텐이란 대악마.

대악마라면 한때 대륙을 멸망 직전까지 이끌었던 테키나 족속의 최강 병기들이지 않은가.

설마 그 대악마가 다시 나타났다고?

“시체가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생김새를 보면 얼추 대악마 라이텐이 맞는 거 같아요.”

“라파엘 공은 잘 아시는구려.”

“네, 엘프들은 악마에 대해 여러모로 교육을 많이 받거든요. 한 가지 의아한 것이 있다면, 분명 엘티히 여왕님께서는 당분간 대악마가 나타날 일은 없다고 하셨어요. 거기다 대악마를 혼자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요. 심지어 대악마를 죽이기 위해서는 마기를 봉인시키거나, 정화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라파엘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대악마는 인간이 감히 혼자 상대할 수 없는 등급의 악마다.

또한 놈들의 마기를 봉인하거나 정화하지 않으면 절대 죽지 않는 불사였다.

그런데 대체 아슬란은 어떻게 그 악명 높은 라이텐을 혼자서 죽일 수 있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지 않소?”

“네?”

“아슬란 님이기에, 바로 저분이기에 가능했던 것이오.”

“······.”

“저분 앞에서는 아무리 대악마라도 초라해 보일 뿐이지.”

엘버스테인에 대한 이야기는 라파엘도 많이 들어왔다.

그가 아론 못지않은 엄청난 아슬란의 충신이라는 것도.

솔직히 다른 왕국의 왕이, 한 나라의 대기사단장에게 충성한다는 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지만, 오늘 보니 알겠다.

엘버스테인은 아론보다 더한 아슬란의 사람이었다.

“보시오. 오늘도 위용 넘치는 저분의 모습을.”

말 위에서 근엄한 얼굴로 화려하게 망토를 펄럭이고 있는 아슬란의 모습을 엘버스테인은 감격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론조차도 한 수 접고 들어갈 만한 엄청난 충심이었다.

그러다 아슬란의 눈동자가 엘버스테인과 라파엘이 있는 곳에 닿았다.

“한심한 놈들. 아직도 꾸물거리고 있는 것이냐? 빠르게 정리하거라. 그래야 해가 떨어지기 전에 왕국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냐?”

꾸짖는 그의 목소리조차도 그리웠던 엘베스테인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

“예!”

* * *

[신속]

-30초 동안 몸의 움직임이 빨라집니다. 탈것을 타고 있을 경우, 함께 속도를 공유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1분)

-사용자의 힘과 신속이 비례합니다.

“흠-.”

일을 끝내고 나서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이번에 새로 얻은 능력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확실히 이걸 쓰면 몸의 움직임이 가벼워진단 말이지.”

신속이란 스킬을 쓰게 되면 체감상 평소보다 두 배는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가 있게 된다. 그동안 답답했던 아슬란의 움직임에 활력을 불어넣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딱 그 정도가 끝이었다.

두 배 빨리 움직인다고 해서 드라마틱하게 움직임이 빨라진 것도 아니다.

독소 조항과도 같은 <사용자의 힘과 신속이 비례합니다.>라는 제한이 걸려 있었기 떄문이다.

“그런데 이건······.”

진짜는 그 다음이었다.

[순보]

-최대 15m의 거리를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합니다. 탈것을 타고 있을 경우, 함께 속도를 공유합니다

-매우 빠른 속도로 일격을 날릴 수 있게 됩니다.

찰나의 괴력과 신속이 합쳐진 결과물.

바로 순보였다.

“이걸 사용하자마자 거의 순간이동을 했단 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도 아니었다.

그냥 뜬 눈으로 순식간에 15m 거리를 한번에 이동해 버렸다.

내가 이동을 한다는 느낌조차 받지 못하고 말이다.

“스킬 설명만 보면 순보를 사용하면서 공격도 날릴 수 있는 거 같은데.”

대악마 라이텐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잘만 하면 순보로 이동을 하면서 공격을 날리는 게 가능할 것 같았다.

“역시 훈련을 해야겠지?”

그 어떤 것이든 충분한 훈련이 없다면 실전에서 사용할 수가 없다.

나는 서재에서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저택 밖으로 나가 보았다.

“가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설계해 만들어 놓은 훈련장입니다.”

역시 돈이 좋긴 좋다.

나는 나 혼자 실컷 훈련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두었는데, 그 규모도 크고 시설도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내가 여기서 나올 때까지 누구도 안으로 들이지 마라. 정말 급한 일이 있으면 그때 와서 아뢰도록.”

“예, 가주님.”

나는 집사를 밖으로 보내 놓고 훈련장 안에서 몸을 대충 풀었다.

그리고 훈련에 쓸 허수아비를 하나 세워 둔 다음,

파앗-!

순보를 이용해 순식간에 그 옆으로 이동했다.

“오- 장난 아닌데.”

이게 순보라는 거구나.

만화에서나 볼 법한 이동 능력이었다.

0.01초밖에 안 되는 그 찰나의 시간에 빠르게 상대의 옆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거기서 동시에 공격까지 날릴 수 있다면?

“이건 그냥 최강의 암살 스킬이잖아?”

상대가 누구든 단번에 끔살할 수 있는 엄청난 스킬임에는 분명했다.

“거리가 좀 아쉽긴 하지만.”

15m면 나름 준수한 거리였다.

지근 거리까지 유도해 공격을 가하면 되는 거니까.

“한번 더 해보자.”

나는 쿨타임을 초기화시킨 뒤 다시 한번 허수아비 옆으로 이동해 보았다.

이번에는 칼을 뽑아 날리려고 했지만, 검을 뽑기도 전에 순보로 도착을 해버렸다.

“이런.”

너무 빨라서 칼을 뽑지도 못하다니.

“이건 컨트롤 미숙 같은데.”

스킬이 잘못된 게 아니라 아직 내가 이 스킬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이런 건 해결법이 의외로 간단하다.

“그냥 박아.”

무지성으로 훈련을 하면 언젠가는 된다는 것.

“오늘 어디 한번 될 때까지 해보자.”

쿨타임을 기다려야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염력을 연습하면 되니까.

아주 마음에 드는, 효율적인 훈련 방법이었다.

* * *

‘아이고- 삭신아.’

오늘도 출근 도장을 찍는 직장인마냥 왕궁으로 온 나는 어디 안 아픈 곳이 없었다.

순보를 쓰면서 칼을 뽑는 것까지는 참 좋았는데, 문제가 있었다.

이 저질스러운 몸은 순보를 사용했을 때의 충격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칼을 뽑는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 몸이 전부 뻐근하고 아픈 것이었다.

“신체 능력 개선해 주는 능력을 빨리 얻든가 해야지.”

극악 난이도 때문에 스텟을 올릴 순 없으니, 아이템으로라도 능력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앞으로 조금만 더 하면 될 거 같은데······.”

훈련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순보를 쓰면서 일격을 날리게 될 경우, 찰나의 괴력을 쓰지 않아도 굉장히 준수한 파워의 일격이 나간다는 것이었다.

순보가 가진 엄청난 스피드가 일격에 힘을 실어 주면서 그런 결과가 나오는 거 같은데, 아직은 컨트롤 미숙이라 더 많은 훈련이 필요해 보였다.

“쓰읍. 다른 몸이었으면 솔직히 이 정도의 훈련은 필요도 없었겠지.”

그 예를 들자면 아마 저기서 혼자 열심히 칼을 휘두르며 훈련하고 있는 알렉산더일 것이다.

성장 폭발이라는 저 사기적인 패시브 스킬이 나한테도 있었다면······.

“알렉산더.”

“아! 대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훈련을 하고 있었나?”

“예. 대기사단장님의 발끝이라도 따라잡고자 훈련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허세가 끓어 올랐다.

“내 발끝이라······. 꿈이 크구나.”

“실망하시지 않게 꼭 이뤄 보겠습니다.”

나는 알렉산더의 스텟을 살펴보았다.

지금은 아론과 무력 수치가 똑같으나, 이제 곧 그를 아늑히 뛰어넘게 될 것이다.

아아. 불쌍한 우리 아론.

처음에는 내가 가진 최고의 사기 캐릭이었는데, 이제는 전투 능력 판별기로 전락을 해버렸구나.

‘근데 얘는 왜 아직도 퀘스트가 안 뜨는 거지?’

알렉산더를 내 휘하에 둔 지도 꽤 되었다.

물론, 여태껏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알렉산더를 내 밑에 둔 적이 없었다.

카르만으로 플레이하게 되면 스토리에 따라 알렉산더를 휘하에 둘 수 있긴 한데, 이놈이 게임 성격상 누구 밑에 오래 있을 놈이 아니다.

무려 이 대륙을 구원해야 할 주인공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플레이 방식이 나뉘는 것이다.

주인공을 도와 대륙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주인공을 대신해 내가 대륙을 구할 것인지.

만약 후자를 택하게 되면,

‘주인공을 죽여야 플레이가 무척 깔끔해지지.’

주인공과 협력해도 되지만, 그럼 스토리에 따라 주인공이 주목을 받게 되고 여기저기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게임 초반부터 주인공을 죽이고 시작하는 것이 거의 정석이었다.

하지만 전자를 택하게 될 경우,

‘게임을 가장 빠르게 클리어할 방법이다.’

주인공을 도와 대륙을 구하고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

게임 스토리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최단 시간에 클리어하는 방법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얼른 이 게임에서 벗어나려면 주인공을 도와 스토리를 최대한 빨리 끝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아직도 메인 퀘스트가 안 뜬다.’

보통 플레이어가 주인공을 만나 서로 친분을 쌓게 되면, 얼마 안 있어 알렉산더를 도와 대륙을 구원하라는 내용의 퀘스트가 뜬다.

이것이 바로 이 게임의 엔딩까지 이어지는 메인 퀘스트다.

사실 게임 엔딩까지 이어지는 메인 퀘스트는 몇 가지가 더 있다.

플레이어의 게임 플레이 방식에 따라 게임을 엔딩시키는 메인 퀘스트가 달라지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루트는 알렉산더를 중심으로 게임을 끝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알렉산더와 대화를 나눠 봐도 메인 퀘스트가 뜨질 않고 있었다.

얼른 이놈을 열심히 굴려야 게임이 끝나고 나도 집으로 돌아갈 텐데 말이다.

‘내가 모르는 다른 게 있는 건가.’

알렉산더와의 친분이 덜 쌓였나.

아니면 알렉산더가 일라이 왕국으로 오면서부터 스토리가 다 꼬여 버린 것일까.

머리가 어지럽다.

이러다 메인 퀘스트가 나오지 않아서 영영 게임이 깨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오늘 연회에 참석한 모두를 치하하겠노라. 너희의 노고가 오늘도 우리 일라이 왕국을 강성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깊은 생각에 빠져 있다 나는 리베르토 국왕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오늘은 엘버스테인의 환영식과 기사단을 치하하기 위한 연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아슬란 대기사단장.”

“예.”

리베르토는 내게 잔을 건네며 말했다.

“오늘 난 피곤해서 이만 들어갈 터이니, 알아서 연회를 잘 이끌어 주길 바라네.”

“······그러시지요.”

그는 짧은 연회사만 남긴 뒤에 양쪽으로 여자를 끼고 연회장을 나섰다.

점점 리베르토는 왕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그냥 하루종일 놀기만 하는 것 같았다.

‘쓰읍. 세금 아깝네.’

한 푼이라도 아껴서 성벽을 높이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악마들에게서 내 한 몸 지키기 위해 우주 방어진을 쌓아야 하는데, 저놈은 돈만 축내고 있다니.

‘놔두자. 내 일을 방해하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저러는 게 나았다.

만약 다른 왕이었다면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커지는 나를 견제한답시고 엄청나게 태클을 걸어댔을 것이다.

하지만 일라이 왕국은 사실상 아슬란의 베라크 가문이 권력을 잡고 있기 때문에 왕이 내 앞길을 막을 순 없었다.

“오늘도 왕께서는 그냥 들어가시는군요.”

여자들과 깔깔 웃으며 퇴장하는 리베르토의 뒷모습을 엘버스테인이 경멸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난 피식 웃으며 엘버스테인의 잔을 채워 주었다.

“왕궁을 비워 놓고 오는 네가 할 얘기는 아닌 것 같구나.”

왕이라는 놈이 왕국을 함부로 비워 놓고 오면 쓰나.

내가 이래서 왕을 안 하려는 것이다.

왕이라는 직책을 갖게 되는 순간, 왕궁이 감옥처럼 변해 함부로 어딜 나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저는 항상 일라이 왕국이 더욱 강성해지고 아름다워졌으면 합니다.”

“오메르 왕국과 일라이 왕국은 매우 근접해 있다. 주변국이 강성해지면 너에게도 좋은 일은 아닐 텐데?”

“아슬란 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라면 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우리 오메르 왕국이 당신의 통치 아래 들어간다고 해도 전 따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아슬란 님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놈이 위험한 소리를 하고 앉아 있네.

지금 일라이 왕국 하나도 버거운데, 거기까지 내가 어떻게 맡으라고.

“벌써 취한 것이냐?”

“아닙니다. 오늘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또렷합니다.”

엘버스테인은 내가 따라 준 잔을 한번에 입에 털어 넣은 뒤 말했다.

“이제 아슬란 님께서도 결단을 내리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대륙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슬란 님.”

엘버스테인은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아슬란 님께서 일라이 왕국의 왕이 되신다면 저는 전에도 그랬듯, 앞으로도 충심으로 당신을 따를 것입니다.”

“!?”

“여기 연회장에 있는 모두 같은 생각일 겁니다. 어쩌면 다들 아슬란 님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일지도요.”

이놈이 술 먹다 갑자기 헛소리를······.

잠깐.

이 구도, 이 대사.

어딘가 익숙하다.

아니나 다를까.

[메인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황제의 길]

-대륙 최초의 제국을 건설하여 황제가 되십시오.

-퀘스트 완료 시, 게임이 끝을 맞이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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