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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73화 (73/200)

73화

0.01초 소드마스터 73화

S급에 달하는 옵션이 달린 목걸이를 얻었다는 기쁨도 잠시.

나는 연속으로 들어오는 황당한 보고들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엘버스테인이 보았다는 그 악마가 동쪽에서도 나타났다는 것이냐?”

“예! 국경을 지키던 수비대를 무시하고 통과해 그 뒤를 추적했으나, 따라잡지 못했다고 합니다!”

벌써 이런 보고가 여섯 번이나 들어왔다.

즉, 사방으로 렉카디가 일라이 왕국의 국경을 넘어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렉카디가 단 한번도 기사단과 충돌하지 않았다는 것.

‘그놈들 성격상 안 싸울 리 없을 텐데.’

그 흉포한 놈들이 마치 공통된 목적지가 있다는 듯 기사단과 추격대를 지나쳐 어디론가 모이고 있었다.

‘잠깐. 이거 설마······.’

순간 뇌리에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렉카디는 인간의 정기를 흡수하여 힘을 키운다.

하지만 그것들은 때론 스스로의 힘을 키우기보다는 다른 무언가를 위해 정기를 흡수한 뒤 저장하곤 한다.

그 다른 것이라는 건 바로,

‘의식이구나.’

렉카디가 골치 아픈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괴롭혀 힘을 키운다는 것도 있지만, 이놈은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테키나 족속의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의식에 필요한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숭배자들이 또 모여든 건가?’

그래서 렉카디가 여럿 모이게 되면 플레이어는 어딘가에 숭배자들이 모여 있는 거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렉카디가 모아온 에너지를 바탕으로 의식을 펼쳐 봉인을 풀거나, 혹은 악마를 소환하는 짓을 저지르기 때문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여기서 계속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출정 준비를 해라. 놈들이 어디서 모이는지 찾아야겠다.”

“예!”

나는 영토 지도에 놈들이 모일 만한 예상 장소를 체크해 두었다.

여러 방향에서 모이고 있는 렉카디들이 갈 만한 곳.

고인물 경험상으로 유추해 봤을 때 숭배자들이 의식을 펼칠 만한 장소.

그곳을 찾아야 한다.

‘아니. 이것들은 허구한 날 내 영토에서 지랄이야.’

저 넓디넓은 땅들을 놔두고 왜 내 영토에서 이러는 건지 모르겠다.

악마를 소환하기 딱 좋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들도 참 많을 텐데.

이것도 다 난이도 때문인 건가.

아니면 그냥 이 게임이 나를 억까하는 건가.

“출정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대기사단장님!”

그래도 다행인 건 엘버스테인까지 현재 우리 왕국에 합류한 상태라는 것이다.

사방으로 수색 작전을 펼친 뒤, 숭배자들이 어디서 의식을 펼치는지 알아내면, 그때 놈들을 막아내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무조건 악마가 소환되기 전에 끝을 낸다.’

대체 어떤 악마를 소환하려고 렉카디까지 끌어모아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분명했다.

* * *

쿠구구구-

물살 가르듯 땅 아래에서 헤엄치며 다가오는 렉카디들.

놈들은 몸 안에 저장되어 있는 정기를 꺼내 꼬리에 집중시켜 그것을 마법진 안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마법진에서 지독한 마기가 꿈틀거렸다.

숭배자들은 그 광경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그르르-”

정기를 다 바친 렉카디가 작게 울음을 터트리자 숭배자 중 하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뒤로 물러나라. 생긴 것도 역겹게 생긴 놈이. 쯧.”

들고 있던 지팡이로 몇 번 땅을 찍자, 렉카디 목에 걸려 있는 검은 사슬 같은 것이 진동했다.

그 진동에 따라 렉카디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흐흐. 이 나약한 악마 놈들. 조만간 너희 모두가 우리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숭배자들이 마냥 대책 없이 악마를 소환해내고 있는 게 아니었다.

검은 사슬이라는 흑마법을 통해 소환해낸 악마를 통제하고, 그들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이 이들에게 있었다.

“이것이 전부 테르카나 님 덕분입니다. 이 건방진 악마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숭배자들이 악마를 소환해 자신들의 이익대로 써먹을 수 있게 된 건 전부 테르카나라는 흑마법사 덕분이었다. 그가 가르쳐 준 흑마법으로 악마들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됐다.

“저는 오히려 여기 계신 분들의 큰 결단에 감탄할 뿐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대악마 소환이라······.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하. 저희에게는 테르카나 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희에게 알려 주신 마법은 확실하겠지요? 만약 대악마 통제에 실패하게 되면 그건 정말 큰일이지 않습니까?”

테르카나는 자신에게 의문을 품고 있는 숭배자를 힐긋 바라보았다.

“정 믿음이 가지 않으신다면 지금이라도 의식을 중단하셔도 좋습니다.”

그러자 상대는 얼른 손사래를 쳤다.

“허허. 의심이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누가 감히 테르카나 님을 의심한단 말입니까?”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저도 의식이 끝날 때까지 계속 여러분 곁에 있을 거니까요.”

“감사합니다, 테르카나 님.”

“그렇게 해주신다면 저희에게는 큰 힘이 될 겁니다.”

테르카나는 주변 지형을 살펴보다 말했다.

“용케도 이런 곳을 찾으셨군요.”

“예. 일라이 왕국에서도 낌새를 눈치채고 기사단을 풀어 수색 중에 있으나, 여긴 사방이 산맥으로 가려져 있어 쉽게 찾지 못할 겁니다.”

소환 의식을 진행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라는 것이었다.

거기다 의식을 통해 나오는 대악마를 곧바로 일라이 왕국에 보내 그곳을 공격할 예정이기도 했다.

“이제 준비가 거의 끝났군요.”

“모두 갑시다.”

숭배자들과 그들을 지키기 위해 고용된 용병의 숫자까지 더하면 천 명이 훌쩍 넘는 인원들이었다.

숭배자들은 완성된 마법진 앞에 섰다. 그리고 이번 의식에 쓰일 봉인구를 그 가운데에 놓았다.

“이것이 바로 대악마 케르슈만이 봉인되어 있다는 봉인구다. 우린 오늘 이 위대한 의식을 통해 대악마 케르슈만을 깨우고, 우리 숭배자들의 힘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다!”

“우와아아-!”

숭배자들의 주문이 이어지고 그들의 마력이 마법진에 흡수되면서 봉인구에 점점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콰직-!

얼마 안 있어 봉인구가 강력한 마기에 의해 부숴졌고, 그 안에 잠들어 있던 힘이 소용돌이쳤다.

“오오- 드디어 봉인이 깨지는 것인가.”

“이런 역사적인 순간이!”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분명 봉인구에 갇혀 있어야 할 대악마 케르슈만은 보이지 않고 그 대신 알 수 없는 힘이 폭발하듯 번쩍이다 마법진 위로 좁은 문 하나가 생겨났다.

“이게 무슨······.”

이윽고 그 문틈으로 두 손아귀가 튀어 나왔다.

그 손아귀들은 위아래를 붙잡아 좁은 문틈을 넓게 벌리고 있었다.

“대, 대체 왜 게이트가 열리고 있는 것이냐?”

“이건 분명 봉인구일 텐데······.”

숭배자들이 수상한 낌새를 눈치챘을 땐 이미 늦었다.

갑작스레 열려 버린 게이트 밖으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다.

다그닥-

반인반마(半人半魔).

인간의 몸통과 말의 몸통을 합친 괴물.

압도적인 크기와 몸 전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독한 살기에 숭배자들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 위협적인 존재는 크게 숨을 들이쉬다 내뱉었다.

“여기 공기도 오랜만이군.”

그것이 내뿜는 공기와 목소리 모두 숭배자들에게는 공포스럽게 다가올 뿐이었다.

“뭐, 뭘 하고 있느냐! 어서 저 악마를 잡아라!”

어디선가 들려오는 명령에 숭배자들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준비했던 마법을 펼쳤다.

촤르르-!

검은 사슬이 팔과 다리를 묶고 마지막은 목까지 봉인해 버렸다.

완전히 상대를 붙잡았다고 생각한 원로 숭배자가 말했다.

“네 정체를 밝히거라, 악마여.”

“뭐야. 이건.”

하지만 악마는 자신의 몸에 걸린 사슬들을 하찮게 바라보며 그것을 간단하게 끊어 버렸다.

“아, 아니?!”

“사슬들을 저리 간단히!”

그 악마 곁으로 테르카나가 다가가 인사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라이텐 님.”

“테르카나. 이놈들은 뭐냐?”

“라이텐 님을 위해 준비한 제물들입니다. 마음껏 즐겨 주시길.”

라이텐이라는 이름에 몇몇 숭배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갔다.

“라, 라이텐? 그 죽음의 말이라고 불리는 라이텐?”

라이텐은 양팔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양손으로 검은 낫이 생겨났다.

“몸풀기로는 적당한 놈들이로구나.”

“노, 놈을 죽여라!”

하지만 그들이 마법을 펼치기도 전에 그들의 눈앞에서 라이텐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 어디로 갔······.”

“이놈들로는 준비 운동도 안 되겠다, 테르카나.”

어느새 그는 그들의 뒤에 나타났다.

“대, 대체 언제?”

촤아아악-!!

그와 동시에 수십 숭배자의 몸이 난도질당하며 쓰러졌다.

라이텐은 자신의 낫에 묻은 피를 할짝거리며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역시 인간의 피 맛은 좋구나.”

“으, 으아아악!”

한번 피 맛을 봐버린 라이텐의 눈동자가 광기로 얼룩졌다.

그는 자신의 눈에 띄는 인간들은 모조리 그 몸을 찌르고 가르며 살육을 즐겼다.

“테, 테르카나! 당신이 우릴 속인 건가?”

숭배자들의 원로가 떨리는 눈동자로 말했다.

테르카나는 비열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인간이 악마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것이지. 정말로 당신들이 악마를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냐?”

“이, 이 찢어 죽일 놈!”

“오만하구나, 인간들이여. 권력에 취해 악마를 이용하려 들다니. 하지만 너희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다.”

“네 이놈!!”

원로가 테르카나에게 달려들었지만, 결코 그의 몸에 닿지 못했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또 다른 악마에 의해 그 몸이 꿰뚫렸기 때문이다.

“테르카나. 이 냄새 나는 인간은 뭐냐?”

“커헉!”

테르카나는 라이텐과 마찬가지로 게이트 밖으로 나오고 있는 악마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보좌관님들도 오셨군요.”

“그래, 주인님께서 오랜만에 날뛰시니 구경해야지.”

보좌관들은 라이텐이 끝없는 학살을 저지르는 것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감히 눈으로 쫓을 수 없는 그의 움직임에 숭배자들은 벌레처럼 꿈틀거리다 죽어갔고, 그 피를 온몸으로 뒤집어쓰며 라이텐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라이텐과 다르게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던 테르카나는.

“음······?”

저 멀리 한 남자가 이곳을 빤히 쳐다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 뒤에 펄럭이는 붉은 망토가 유독 눈에 띄었다.

* * *

‘아무리 찾아도 없다.’

기사단을 풀고 놈들이 의식을 펼칠 만한 장소를 예상해 뒤져봤지만, 그 어디에도 숭배자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심지어 렉카디의 모습도 전혀 찾아내지 못했다.

“혹시 이곳이 아니라 벌써 다른 영토로 도망친 것은 아닐지.”

엘버스테인의 말에 나는 주변 지형을 살펴보았다.

렉카디가 목격된 곳들을 쭉 정리해 보면 이쪽 부근이어야 할 텐데.

그러다 내 눈에 높은 산맥이 띄었다.

혹시······.

“잠시 확인하고 올 것이 있다.”

“예?”

“대기하고 있도록.”

나는 찬란한 망토에 있는 비행술을 이용해 번쩍 높이 날아올랐다.

“헉!”

엘버스테인과 그의 기사단은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을 쳤고, 나는 저 높은 봉우리까지 빠른 속도로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래. 진작 이걸 쓸 걸 그랬네.”

역시 높은 곳에서 봐야 탁 트인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다,

“응?”

저 둥그런 산맥 가운데에 어떤 무리가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저기인가?”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그 근처로 빠르게 비행해 날아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착지했다.

“찾았다.”

내가 그토록 찾고 있던 숭배자들이 저기에 몰려 있었다.

그런데 숫자가 생각보다 많다.

거기다 눈에 보이는 렉카디의 숫자도 보고된 것보다 많아 보였다.

뭐, 아무리 숫자가 좀 된다고 해도 내가 기사단을 이곳에다 부르면 저 정도쯤은······.

“어?”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일이 벌어졌다.

콰콰콱-!!

“으, 으아악!”

“살려줘!”

이미 의식은 끝이 났다.

놈들이 성공적으로 악마를 소환해낸 것이었다.

문제는 그 악마가,

“뭐, 뭐야. 여기서 왜······.”

바로 대악마 라이텐이라는 것이다.

“이런 미친 새끼들. 소환할 게 없어서 대악마를 소환해?”

대악마.

지금까지 만났던 악마들과는 차원이 다른 등급이다.

이건 내 기사단을 다 끌고 와도 과연 상대할 수 없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특히 라이텐은 지금 보는 바와 같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적을 학살한다.

초신속이라는 능력인데, 저것과 함께 낫을 휘두르면 순식간에 부대 하나가 도륙당하는 것이었다.

“이걸 어떡하지.”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대악마다.

심지어 상대는 학살마 라이텐.

더욱 가관인 건,

“아-”

저 멀리 있던 악마들과 내가 눈을 마주쳤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그렇게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곳까지 거리가 조금 되니까.

그러니 놈이 나를 발견하기 전에 얼른 도망부터 쳐야······.

“여기 벌레 한 마리가 숨어 있었군.”

바로 그때였다.

내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그림자와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오던 것이.

“동료들이 죽어가는 걸 재밌게 감상이라도 하고 계셨나?”

얼른 비행술을 써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아직 비행술은 쿨타임이었다.

“뭐, 상관없지. 너도 여기서 죽을 테니.”

그럼 놈이 내게 공격을 날리기 전에 얼른 수호신의 방패부터······!

콰콰콱-!!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놈의 두 낫이 내 몸을 무자비하게 베어 버렸다.

“······아.”

대체 나를 얼마나 조각낼 심산인 건지, 한번도 아니고 수십 번이나 낫이 내 몸을 강타했다.

그것도 불과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말이다.

그 칼날이 내 몸을 인정 사정 없이 찢어 놓는 게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죽는 건가.

이리도 허무하게?

“음?”

그런데,

화아아악-!!

내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빛이 라이텐을 뒷걸음질 치게 했다.

[신성한 보호가 10초 동안 이어집니다.]

내 눈앞에 나타나는 정보창.

나는 내 몸부터 확인해 보았다.

털끝 하나 다친 것 없이 멀쩡했다.

즉사급 데미지를 신성한 보호가 전부 흡수해 준 것이었다.

“뭐야? 왜 안 죽는 거지? 분명 난도질을 해놨을 텐데?”

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낫을 높이 들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짜증 나는 빛과 함께 조각을 내주마.”

나는 놈이 낫을 휘두르기 전에 재빨리 능력을 발현시켰다.

그러자,

쿠웅-!!

“!?”

두 낫을 높이 들며 비열한 웃음소리를 내고 있던 라이텐이 짧은 비명과 함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크읍-! 이, 이건 또 뭔······!”

군림의 피어가 발동되면서 놈은 그대로 몸이 굳어 버렸다.

바로 그 순간.

“비키거라.”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듯,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병적인 허세가 뜨겁게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네가 내 앞을 가리고 있지 않느냐.”

나는 천천히 칼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라이텐의 두 눈동자는 그 칼이 자신의 몸을 향해 가볍게 휘둘러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스걱-!

그 짧은 절삭음과 함께,

푸확-!!

검은 피가 높이 솟아올랐다.

“크아아아악!!”

앞으로 뻗어 나가는 빛의 검강이 놈의 몸을 정확하게 반으로 갈라 버렸다.

하지만 이 질긴 놈은 그대로 죽지 않았다.

“크아아아악-! 이, 인간 따위가 감히! 감히!!”

반쪽이 된 두 몸으로 힘껏 비명을 터트렸고, 그 안에서 휘몰아치는 마기가 절단된 몸을 다시 이으려 하고 있었다.

이것이 대악마의 무서운 점이다.

놈들은 몸을 갈아 버려도 죽지 않는다.

이 마기를 정화하지 않는 한 끝까지 살아난다.

그래서 결국 놈들을 죽이지 못하고 봉인을 해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시끄럽구나.”

이들의 마기를 한꺼번에 집어삼킬 수 있는 마기 포식자가 있었다.

“더러운 미물 따위가.”

“!?”

나는 칼끝을 놈의 마기에 집어넣었다.

그러자 그 속에서 휘몰아치던 마기가 순식간에 내 몸으로 빨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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