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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71화 (71/200)

71화

0.01초 소드마스터 71화

“오직 이 대륙의 운명을 이해하고 거짓된 신에 놀아나는 백성들을 구해낼 사람들은 바로 우리밖에 없소.”

숭배자들은 빛이 오히려 세상을 타락시키고, 어둠만이 대륙의 구원이 된다고 믿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빛으로 오염된 이곳을 어둠으로 정화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빛이 대륙을 지배해 왔으나, 이제는 다르다. 곧 어둠이 대륙을 집어삼키게 될 것이다.”

지난 300년간 대륙은 빛의 지배 아래 살아왔다.

숭배자들은 빛을 피해 지하에 숨어 때를 기다려 왔고, 마침내 그때가 도래했다.

어둠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테키나 족속이 하나둘 봉인을 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큰 걸림돌이 되는 곳이 있소이다.”

원탁회의에 모인 숭배자들은 그게 누군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슬란. 그자가 우리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고 있소!”

“그놈이 나타난 이후로 간신히 부활시켜 놓은 어둠이 전부 사라지고 있는 중이오!”

“어떻게든 손을 쓰지 않으면 또 다시 어둠은 빛에 의해 사라질 것이오.”

숭배자들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획대로 테키나 족속에게 걸려 있는 봉인을 조금씩 풀어 이 대륙에 어둠을 다시 풀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아슬란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모든 계획이 어그러져 버렸다.

그 어떤 강력한 악마를 소환해 놓아도 아슬란의 손에 족족 죽어 버리니, 이들 입장으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노트라드의 예언서에 나온 대로 아슬란 그자가 예언된 존재일 가능성이 높소.”

“흥. 빛의 기사에 대한 예언 말인가? 그 노망난 늙은이의 예언 따위, 난 믿지 않소.”

“마냥 무시할 것은 못 되오. 노트라드는 당대 최고의 예언자였소. 그렇기에 그가 남긴 예언서가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겠지.”

노트라드의 예언서.

앞으로 이 대륙에 닥칠 재앙이 무엇인지, 대륙이 어떤 위기에 빠지는지 기록되어 있는 예언서였다.

사람들이 이 예언서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단순히 파멸적인 재앙이 예정되어 있어서가 아니다.

바로 이 대륙을 구원할 빛의 기사에 대한 내용 때문이었다.

항상 사람은 영웅에 열광한다고 했던가.

그래서 백성들이 이 무시무시한 예언서에 열광하는 것이었다.

“아슬란을 빛의 기사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소. 비록 신전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우리는 알고 있지 않소? 그가 가진 힘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그러던 중 이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숭배자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는 수밖에.”

“특단의 조치라면······.”

“대악마를 소환합시다.”

“!?”

화들짝 놀란 이들의 눈빛에는 지금 진심이냐는 물음이 담겨 있었다.

“대악마라니······. 그건 기존의 계획보다 너무 이르지 않소?”

“우리가 테키나 족속의 봉인을 한꺼번에 풀지 않는 건 어디까지나 통제 가능한 범위여야 하기 때문이오. 무분별하게 소환했다가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을 것이오.”

이들은 마냥 흑마법에 미쳐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이들이 어둠으로 빛을 몰아내고자 함은 사실 간단했다.

권력욕.

이 대륙을 자신들 발아래 두고 싶다는 욕망.

그 수단으로 테키나 족속의 봉인을 풀려는 것이지, 절대 테키나에게 이 대륙을 넘겨주려고 이런 짓을 꾸미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대악마 소환은 엄청난 리스크를 가지고 있다.

“그건 아직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일이지 않소? 그동안 여러 차례 경험을 쌓으면서 우린 마침내 다양한 악마들을 소환해 낼 수가 있게 되었소. 그리고 조금씩 그들을 우리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까지 성공했지. 대악마 소환도 그와 같은 이치요.”

“아무리 그래도 대악마는······.”

대악마.

이들 중 그 누구도 대악마를 마주한 적은 없다.

하지만 300년 전 대악마들은 이 대륙을 지옥도로 만들어 놓았으며, 그들의 강함과 잔인함에 대한 정보는 다 기록될 수 없을 만큼 방대했다.

대악마 하나만 나타나도 성 하나가 쑥대밭이 된다는 말이 있다.

대악마 중에서도 급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왕국 전체가 쓸려나갈 정도로 그들의 힘은 예상할 수 없는 무언가였다.

“그럼 이대로 손 놓고 보자는 것이오? 이러다가는 영원히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없소! 대악마의 힘이 두렵기는 해도 시도해 보지 않고서는 모를 일. 더군다나 이대로 있다가는 어차피 이도 저도 되지가 않소.”

오랫동안 음지에 숨어 어둠의 세상이 오기를 기다렸던 자들이다.

그러므로 다시 그 지독한 지하 세계로 돌아갈 순 없었다.

“까짓것 해봅시다!”

“물량으로 밀어붙인다면 제아무리 대악마라고 해도 어쩔 수 없지.”

“300년 전 전쟁으로 그 힘이 예전 같지 않을 테니, 우리가 충분히 제어할 수 있을 것이오!”

흩어졌던 의견이 모였다.

세상을 움켜쥐겠다는 욕망이 모인 결과.

그것은 바로 이 땅의 가장 큰 재앙이라 불려도 모자람이 없는 대악마의 부활이었다.

* * *

“숲도 정화하고 숭배자들도 처단하고, 교단의 매복 공격도 막아내고. 그런데 정작 나는······.”

얻은 것이 없구나.

마기 포식이라도 하나 했다면 모를까.

“진짜 가성비 지리네.”

무엇 하나 얻은 것 없이 열심히 봉사만 한 기분이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이 있다면,

“이 염력 스킬 하나는 건졌다는 거?”

나는 염력으로 천천히 검을 띄웠다.

다른 스킬들과 마찬가지로 내 힘에 비례하는 능력이지만, 계속 꾸준히 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염력은 하면 할수록 조금씩 그 힘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마치 근육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검 하나뿐만이 아니라 두 개까지도 내 염력으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물론 찰나의 괴력을 쓴다면 검 두 개가 아니라 수천 자루도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나마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 다행이겠지.

언젠가 나도 찰나의 괴력에 의지하지 않고 이 염력 하나만으로 적들을 쓸어 버릴 날이 올까.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다 보면 결국에는 키우던 캐릭터의 힘이 너무나도 강해져 나중에는 혼자 무쌍을 찍게 되는데, 이 아슬란으로도 그것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찰나의 괴력을 무한으로 쓸 수 있게 되면 가능할지도?”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이곳저곳에서 능력과 아이템을 수집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아이템 하나만 줘라, 좀.”

그렇게 개발자들을 원망하며 빌고 있을 때였다.

“대기사단장님. 아론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 목소리에 굽어 있던 고개가 펴지고 허리가 꼿꼿하게 세워졌다.

나는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들어와라.”

“예.”

집무실 안으로 아론, 호레스, 알렉산더, 라파엘, 그리고 하리엘이 들어왔다.

“대기사단장님을 뵙습······ 헉!”

그들은 들어오는 길에 내 주변을 비행하고 있는 두 자루의 검을 발견하고는 멈칫거렸다.

“앉지.”

“아, 예.”

나는 두 검을 원래 자리로 천천히 돌려놓았다.

빠르게 내려놓고 싶어도 아직 염력이 익숙하지가 않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과연······. 대단한 경지이십니다. 검들이 오직 대기사단장님의 명령만을 따르다니.”

“저것이 신검합일에 이르면 닿을 수 있다는 어검술입니까?”

아론에 이어 알렉산더까지 눈빛을 반짝였다.

신검합일이니 어검술이니 전혀 나와는 관계없는 능력이었다.

그냥 염력으로 보일 수 있는 잡기술 정도랄까.

너희가 가진 특성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지.

하지만.

“끝없이 정진하도록.”

이놈의 허세가 이걸 그냥 지나칠 리 없지.

“너희도 끝까지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이 경지에 닿을 수 있을 것이다.”

“······예!”

아론과 알렉산더는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의지를 다졌다.

만약 저 두 사람이 내게 신검합일도, 어검술 같은 것도 없는 깡통이라는 걸 알게 되면 어떻게 돌변할지······.

흠.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성기사들에 이어 사제들도 모두 대기사단장님을 따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 호레스의 말에 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교단에 대한 충성심이 강할 줄 알았는데.”

“루미네르가 겁을 먹고 자기 혼자 도망치는 것을 보고 교단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버린 것 같더군요.”

“성기사들이 전투 경험도 많아서 앞으로 기사단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뭐 썩어도 준치라고.

무려 루미네르를 따르던 성기사에 사제들이니, 평타 이상은 할 것이다.

“저희 마법 병단에 새로운 인재들이 들어와서 너무 좋아요.”

라파엘도 만족해하는 거 같고.

그럼 그냥 쓸 수밖에 없나.

혹시라도 그놈들이 나중에 다시 교단의 꾐에 넘어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으니, 그에 대한 방비도 미리 해 두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하리엘.”

“······.”

“하리엘?”

“아, 네.”

하리엘은 내가 루미네르와 충돌한 이후부터 쭉 저 상태였다.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흔들리지 않게 네가 잘 붙잡아주도록 하거라.”

“······네.”

힘없이 대답하는 하리엘을 지그시 바라보며 물었다.

“아니면 혹시 넌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는 것이냐?”

“······?”

“이해한다. 나와 교단이 싸움을 벌이고 있으니, 너도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겠지.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도 좋다.”

“지, 진심이세요?”

“그래. 네가 교단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알고 있다. 비록 그들이 루미네르를 움직여 나와 너를 동시에 죽이려 했지만, 그럼에도 네가 교단을 버릴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않느냐? 난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리엘.”

제발 교단으로 돌아가지 말아 주세요.

제발.

하리엘은 잠시 나를 멍하니 쳐다보다 말했다.

“제 선택에 달린 일이라는 것이군요.”

“그래. 오롯이 네 선택이다. 항상 교단에 의해, 교단을 위해 선택했겠지만, 누구도 너의 선택을 강요해서도 억압해서도 안 된다. 그러니 너를 위한 선택을 하거라.”

“제가 교단으로 돌아가는 선택을 한다고 해도 정말 막지 않으실 건가요?”

당연히 막고 싶지!

할 수 있다면 온몸을 던져서라도 막고 싶다.

그녀는 내가 가진 아주 소중한 네임드 캐릭터니까.

하지만 나는 하리엘의 특성을 알고 있다.

[자유의지]

선택을 강요받는 것을 싫어하고 자유의지를 통해 자신이 직접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특성이다.

지금까지의 하리엘은 교단에 의해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볼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교단이 선택을 강요한 것처럼 보였을 뿐이지, 모두 하리엘 본인의 선택이었다.

‘지금 상황만 봐도 알 수 있지.’

그녀는 내 곁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부하들을 먼저 교단으로 보내 놓고 혼자 이곳에 남아 있다 루미네르 손에 죽을 뻔했다.

정작 하리엘은 자신이 교단에 의해 지금껏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러므로 내가 선택을 강요한다면 오히려 반발심을 일으킬 수도 있기에 일부러 선택권을 그녀에게 넘긴 것이었다.

“그래. 난 널 막을 생각이 없다. 그럴 만한 자격도 없고.”

“······.”

“앞으로도 난 너의 선택을 존중할 것이다, 하리엘. 그것이 설사 내 목숨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해도 말이다.”

하리엘은 조금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대기사단장님! 급히 아뢸 것이 있어 왔습니다!”

집무실 밖에서 들리는 다급한 기사의 목소리에 나는 그를 안으로 들였다.

“무슨 일이냐?”

“아뢰옵니다. 오메르 왕국의 국왕, 엘버스테인이 현재 국경을 넘어 이곳 왕궁으로 오고 있다는 급보입니다!”

엘버스테인이?

부하를 보낸 것도 아니고, 별다른 통보도 없이 직접 국경을 넘어?

엘버스테인의 [의리] 특성으로 인해 내 뒤통수를 치려고 오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통보를 할 새도 없이 뭔가 급한 일이 생겼다는 뜻.

“모두 가자. 엘버스테인이 무슨 연유로 말도 없이 여기까지 오는지 알아야겠다.”

“예!”

나는 엘버스테인을 만나고자 부하들을 데리고 집무실을 나섰다.

하지만 그 뒤를 선뜻 나서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건 아직도 고민에 빠져 있는 듯 보이는 하리엘이었다.

* * *

“······.”

화려하게 망토를 펄럭이며 집무실을 나간 아슬란의 뒷모습을 하리엘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리엘.’

지금까지 한번도 누군가에게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전장에서는 한없이 차갑고 무시무시한 눈빛을 보이던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 때는 한없이 부드러워진다.

“난 어떻게 하면 좋지?”

교단에 평생을 바쳐온 몸이다.

자신의 목숨을 라할께 바치기로 맹세한 몸이다.

절대 부숴지지도, 깨지지도 않을 것만 같았던 맹세가 지금 여기서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슬란이 말했던 것처럼, 선택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었다.

지금까지는 교단을 위해, 교단에 의해 결정을 내렸지만, 이제는 단 한번만이라도 스스로를 위해 선택을 하고 싶었다.

뚝-!

그녀는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를 풀었다.

성스러운 빛의 마법이 깃들어 있는 목걸이이자, 그녀가 교단의 소속이며, 교단을 지키는 검이라는 신성한 표증이었다.

“이제 이건 나한테 필요 없어.”

오랫동안 자신을 구속해 왔던 것을 떼어 내고 나니, 뭔가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리엘은 그 목걸이를 아슬란의 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그가 앉아 있던 자리를 한번 부드럽게 쓸어내린 뒤 웃으며 집무실을 나갔다.

그녀가 남긴 목걸이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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