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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69화 (69/200)

69화

0.01초 소드마스터 69화

“언령······인가?”

멀리서 은밀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루미네르는 몸을 잘게 떨었다.

언령.

오직 말의 힘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권능.

라할의 보좌관이라 불리는 천상의 존재들만이 그 힘을 가지고 들었다.

하지만 루미네르도 그것을 그저 기록으로만 접했을 뿐, 실제로 목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대체 어떻게 저자가 저런 힘을······!”

꿇으라는 말 한마디에 저 거대한 몸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 뒤에 있던 래피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마터면 나도 당할 뻔했군.”

이렇게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길 잘했다.

만일 조금만 더 가까이 접근을 했다면 자신도 저 언령에 휩쓸려 버렸을지 모른다.

“아니. 내가 뭔가를 착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고작 인간이 그런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리 없다.

언령은 신의 권능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그렇기에 분명 단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콰직-!!

“크오오오-!!”

바닥에 처박힌 자이언트 래피가 괴성을 질러대며 밖으로 검은 기운이 퍼져 나갔다.

마치 생기가 다 했다는 듯, 그 마지막 포효에 다른 래피들도 함께 괴성을 질러댔다.

그와 동시에 검게 물들었던 그들의 털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노, 놈이 다시 일어난다!”

자이언트 래피가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자 기사들이 경계하며 칼끝을 세웠다.

“모두 물러나라.”

“예? 하지만······.”

“물러나라.”

아슬란이 기사들을 뒤로 물렸다.

자신의 손으로 끝을 내려는 것인가?

“미물이여.”

그러나 루미네르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아슬란은 검을 뽑지 않고 마치 저 거대 몬스터와 대화하듯, 아니. 명령하듯 말했다.

“네 터전으로 돌아가라.”

그러자,

“크오-”

기우뚱 거리며 자이언트 래피가 그에게서 몸을 돌렸다.

다른 래피들도 그 명령에 따르는 것처럼 자이언트 래피의 뒤를 따랐다.

“······!”

루미네르는 그 광경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슬란, 저자는 정말로 언령을 부릴 줄 아는 것이다.

그는 잠시 제자리에 가만 있다 이내 말머리를 돌리며 말했다.

“모두 돌아간다.”

“예!”

루미네르는 제 검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칼을 뽑아 이곳에 꽂는다면 빛의 부름이 발동되어 멀리 떨어져 있는 부하들이 순식간에 이곳으로 텔레포트 된다.

하지만 그는 곧 생각을 접었다.

“이곳은 싸울 만한 지형이 되지 못한다.”

거기다 아슬란이 언령의 힘을 발휘한다면 전면전은 결코 좋지 못한 선택이었다.

방금 전 저 몬스터들이 그러했듯, 성기사들이 아슬란의 말 한마디에 꼼짝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것은 역시.

“하리엘.”

아슬란 뒤를 따르고 있는 하리엘이었다.

“음-”

루미네르는 살짝 뽑아 들었던 칼을 다시 집어넣으며 숲을 나가고 있는 아슬란과 그의 기사단을 다시 은밀히 따라가 보았다.

* * *

“이 숲을 더럽힌 놈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이다. 일단 성으로 돌아가 놈들의 뒤를 쫓겠다.”

“예!”

아슬란의 명령에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대체 어떤 놈들이 이런 짓을 벌인 것인지.

하마터면 밀려드는 몬스터 웨이브에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근데 방금 그건 대체 뭐였을까?’

온몸을 압도하며,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무시무시한 힘.

그런 엄청난 힘은 하리엘도 처음 경험해 보는 것이었다.

몇 번을 고민해 봐도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었으나, 아슬란의 힘이라고 한다면 그냥 이해가 됐다.

애초에 상식을 벗어난 힘을 가진 남자니까.

“하리엘.”

“······네? 아, 네.”

“정보를 모으면서 성안에 있는 백성들을 도울 것이다. 너도 돕거라.”

오늘도 성안을 순찰하며 백성들을 도우려는 거구나.

저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냥 밑의 사람들을 시킬 만도 한데, 아슬란은 한번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었다.

항상 백성들을 돕고자 자신이 제일 먼저 앞으로 나섰고, 사소한 일이라도 허투루 대하지 않았다.

이 왕국에서 왕 다음으로 제일 높은 사람이 저렇게 모범을 보이고 있으니, 당연히 그 부하들은 더욱 열심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건 하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이 성안 백성들의 어려움을 보살피고자 열심히 뛰어다녔다.

저들의 즐거운 웃음 소리와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자신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것 같았다.

“꽤나 열심이로군, 하리엘.”

그런데 그때.

“······루미네르 님?”

“그래. 나다.”

변복을 하고 있는 루미네르의 모습에 하리엘은 당황했다.

“여기는 어떻게-”

“너야 말로 여기에 언제까지 있을 생각이지? 이제 그만 교단으로 돌아와라.”

“하지만······. 전 아직 여기서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아슬란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며 잡일을 하는 것인가?”

“잡일이라니요. 이건 왕국 백성을 위한 일이에요. 루미네르 님도 보셨을 거 아니에요? 대륙 그 어떤 권세가도 아슬란 님처럼 백성을 챙기지 않아요.”

“······.”

그건 루미네르도 할 말이 없었다.

아슬란. 보면 볼수록 감탄만 나오는 인물이었다.

하리엘의 말대로 그 어떤 권세가도 이 정도로 백성들을 위하진 않는다.

“그래서 끝까지 여기 남아 있을 생각인가?”

“교단에서 아슬란 님에 대한 오해를 전부 풀 때까지요. 저분은 악마의 이름을 빌려 누군가를 현혹할 분이 아니세요. 언제부터 여기 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전에도 마기에 중독된 몬스터들이······.”

“되었다. 너의 뜻은 잘 알겠다.”

아무래도 하리엘은 교단으로 돌아올 생각이 당분간 없는 듯했다.

하지만 자꾸 미련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왜냐하면 오늘 성기사단이 아슬란을 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피바람에 하리엘이 휘말려 들 건 자명한 일.

“마지막으로 묻겠다, 하리엘. 넌 정말로 여기에 남아 있을 생각이더냐?”

“네.”

“그게 네 목숨을 위협한다고 해도?”

“옳다고 믿는 일에 목숨을 걸 줄 알아야 한다고 루미네르 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저도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하겠습니다.”

“그런가······. 그렇군.”

그녀의 선택이 그러하다면야 루미네르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곧 성기사단이 아슬란을 죽일 것이니, 너도 같이 죽기 전에 얼른 빠져나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여기서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하리엘이 이 일을 아슬란에게 고할 수도 있다.

그럼 기회를 놓칠 수도 있기에 루미네르는 가까스로 치미는 감정을 다스렸다.

그리고 때마침.

“검은 낙뢰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저 멀리서 기사 하나가 성안으로 들어와 소리쳤다.

“아-!”

하리엘이 눈짓을 보내자 루미네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거라.”

“네. 그럼······.”

그는 하리엘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잠시 그는 하리엘의 뒷모습을 아련하게 쳐다보다 눈을 감았다.

그런 뒤 다시 떴을 땐.

“······.”

어느새 그는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서 있었다.

“검은 낙뢰라.”

루미네르는 눈을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과연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검은 낙뢰가 떨어지고 있었다.

“저곳인가.”

그는 또 한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러자 그의 앞에는,

“오오. 강력한 마기가 느껴진다.”

“이것으로 위대한 악마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리라.”

금지된 의식을 진행 중인 이교도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군.’

테키나 족속이 쓴다는 문자가 사방에 적혀 있고, 더러운 악의 힘이 강렬하게 느껴진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이교도 무리를 붙잡아 왔으나, 이 정도로 높은 수준의 의식을 펼치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이곳도 그렇고 아까 래피들의 서식지에서 일어난 일도 그렇고.

대체 이 대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스르릉-!

“음?”

“너, 넌 누구냐!”

길게 생각할 건 없었다.

교단의 대성기사단장답게, 라할의 명령만을 따르는 기사답게, 눈앞에 있는 이교도 무리를 없애고 철저히 명령에 복종하기만 하면 된다.

“모두 빛에 정화되어라.”

스걱-!

“크악!”

“서, 성기사다! 으악!”

루미네르는 100명이 넘어가는 이교도 무리를 혼자서 순식간에 베어 버렸다.

마법진이 그려진 중앙에는 심장처럼 펄떡대는 검은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이것이 검은 낙뢰를 일으키며 의식을 빠르게 활성화시키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악마를 소환하는 마법진이었다.

“이런 건 보고를 받지 못했는데.”

래피들도 이것 때문에 그렇게 폭주를 했던 것일까.

왜 교단에서는 이런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던 거지?

심지어 악마 소환이라니.

설마 엘버스테인의 말대로 교단에서 정보를 조작하는 건······.

“으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루미네르는 그 검은 심장에 칼을 꽂아 넣으려다 높이 솟은 양쪽 절벽을 보고 칼을 멈췄다.

“······.”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절벽 위로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곳에서 매복한다면 꼼짝 없이 당해야겠구나.”

검은 낙뢰가 치는 것을 보고 지금 아슬란의 기사단이 이쪽으로 오고 있다.

이곳에 성기사단을 매복시켜 공격을 퍼붓는다면.

“틀림없이 전멸이다.”

그럼 그곳에 있는 하리엘도 휩쓸리게 될 것이다.

루미네르는 주먹을 꾹 쥐었다.

언령으로 몬스터들을 제압하는 그 무지막지한 힘과 백성들을 따뜻하게 대하는 아슬란의 모습이 자꾸만 머릿속에 멤돈다.

그를 죽이는 것이 정녕 옳은 일인가.

하지만 이미 라할의 신탁까지 받은 상태.

거기다 마치 운명처럼 상대를 단숨에 괴멸시킬 수 있는 지형에서 아슬란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신의 뜻이 정녕 그러하시다면-”

의심할 필요도 없이 이것은 라할의 뜻이었다.

루미네르는 칼을 바닥에 꽂으며 말했다.

“따르겠습니다.”

그러자 성스러운 빛이 칼을 타고 넓게 퍼지면서 저 어딘가에 대기 중이던 기사들과 사제들이 한꺼번에 절벽 위로 소환되었다.

* * *

‘역시 악마가 아니면 마기 포식이 안 되는 거였구나.’

자이언트 래피를 염력으로 제압하고 나서 놈에게 박혀 있는 구슬을 꺼내 마기 포식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예상대로 놈의 몸에 박혀 있는 구슬로는 마기 포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정도로 잘 끝내서 다행인 건가.’

검은 구슬이 파괴되면서 자연스레 래피들의 광폭화가 풀렸고, 자이언트 래피 역시 공격성 없는 순수한 초식 몬스터로 돌아왔다.

기사들이 눈치 없이 다시 공격을 하려고 해서 식겁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이번에는 뭔가 있긴 하겠지.’

지금 검은 낙뢰가 발견된 곳은 몬스터 서식지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의식을 진행하고 있는 숭배자들이 무언가를 소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막아야 한다.

마기 포식이든 뭐든 우리 왕국 영토에서 악마가 소환된다면, 그것도 만약 네임드급 보스가 소환된다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기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난 뒤에 있어서 지켜만 봐야겠다.’

아까처럼 그런 위기 상황은 이제 제발 사절이었다.

우리 네임드 캐릭터들이 알아서 잘 일을 해결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저곳입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을 해가는데, 아직도 검은 낙뢰가 간간이 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아직도 의식이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뭐가 소환되기 전에 쓸어 버려서 의식에 사용되는 재료들만 싹 챙겨오면 되겠다.’

그렇게 부푼 꿈을 꾸며 절벽 사이를 지나 가던 중.

“이교도들이여. 어딜 그리 가는 것이냐?”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나는 달리던 말을 멈추고 위를 바라보았다.

‘저, 저게 뭐여.’

절벽 위에 가득 모여 있는 성기사들과 사제들.

대체 저놈들이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지?

“빛의 심판이 너희에게 가까워졌다.”

[루미네르]

무력: 95

지력: 80

그리고 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대성기사단장 루미네르였다.

‘빛의 부름이구나.’

오직 교단에서 루미네르만 쓸 수 있다는 텔레포트 능력.

교단이 그의 능력을 마법으로 증폭시켜 저 수많은 병력을 한꺼번에 이동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저 정도의 병력이 우리 정보망에 걸리지 않고 이곳 절벽을 가득 채울 정도라면, 빛의 부름밖에 방법이 없었다.

‘이래서 루미네르를 경계했던 건데.’

교단의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대성기사단장 루미네르가 움직이면 언제 어디서 그의 기사단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이거 완전히 독 안에 든 쥐새끼 신세잖아.’

이곳은 적은 숫자로도 대군을 이길 수 있다는 절벽 지형이다.

저런 곳에서 매복해 있다가 한꺼번에 공격을 퍼붓는다면 이 좁은 길에 갇혀 하루 종일 공격만 받다가 죽어야 한다.

더 심각한 건, 저들의 숫자가 우리보다 많다는 것이었다.

루미네르는 곧 칼을 뽑아 들고 우리를 향해 겨누며 소리쳤다.

“이교도들에게 라할의 심판을-!”

그러자 기사들과 사제들이 동시에 소리를 외치며,

“심판을-!!”

수천 발의 화살비와 마법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그것도 마치 노린 것처럼, 모든 공격이 일제히 내가 있는 곳으로 쏟아졌다.

“아-”

나는 실로 잔인하리만치 아름다운 그 광경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기사의 명예나 정정당당한 싸움은 루미네르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라할의 명령에 따라 이교도를 처단하는 데에 있어서 그런 건 일절 신경 쓸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다 상대는 언령을 쓰는 자다.

정면으로 부딪혔다가는 어떤 불상사가 벌어질지 모르기에, 이렇듯 폭풍우처럼 한번에 공격을 퍼부어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리라.

그래서 일부러 루미네르는 모든 공격을 아슬란이 있는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니,

“죽어라.”

죽어서 라할의 심판을 받거라, 아슬란.

그런데-

“······?”

빛의 마법이 깃든 화살과 강력한 마법탄을 한꺼번에 쏟아붓던 기사들과 사제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분명 지금쯤이면 저 아래는 지옥이 되어 비명 소리로 가득해야 하거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놀랍게도,

“뭐, 뭣!?”

“저게 무슨 해괴한-!”

그 수많은 화살과 마법탄이 허공에 얼어붙은 듯 머물러 있었다.

기사들은 놀란 기함을 터트렸고, 사제들 역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스르르르-

허공에 가만히 떠 있던 화살들이 일제히 방향을 바꿔 그 촉이 아래가 아닌 위를 향했다.

“서, 설마-.”

하는 생각도 잠시.

쏴아아아-!!

아래로 내려갔던 화살들이 다시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이 쏟아 보냈던 마법탄들도 전부 튀어 올랐다.

“피, 피해라!!”

이미 그런 말을 하기에도 늦은 것 같았다.

콰콰콰쾅-!!

“으, 으아아악!!”

“크아악!”

절벽 아래에서 펼쳐져야 할 지옥이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위로 솟아오른 화살비에 이어 함께 튀어 올라 절벽을 깨부수는 마법탄에 절벽 위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루미네르는 일이 터지기 직전,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피해 화를 면했다.

하지만 기사들과 사제들은 그렇지 못했다.

“이, 이럴 수가.”

그 짧은 순간에 얼마나 피해를 입은 거지?

절반? 아니. 절반 이상.

어쩌면 대다수의 병력이 당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방비 상태에서 그런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공격을 당했으니 말이다.

“이게 대체 무슨······.”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인지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죽어야 하는 건 아슬란과 그의 기사단일 텐데, 대체 왜 교단의 성기사단이······!

“인간은 항상 착각을 하곤 하지.”

"!?"

그때 위엄 넘치는 음성이 절벽을 갈랐다.

"더 많은 숫자가 있으면, 확실한 지형의 우위를 잡으면, 반드시 상대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흠칫 놀란 루미네르는 쓰러진 자리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런 것들은 전부 내게 무용할 뿐이다."

절벽 위에 가득한 뿌연 연기 속에서 아슬란이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걸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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