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0.01초 소드마스터 66화
넬라 기사단장은 오늘 새로 들여온 장비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샤를렌 가문의 가주인 비올레타 덕분에 새로운 교역길을 연 일라이 왕국은 다양한 장비들을 들여오는 중이었다.
이건 모두 아슬란의 명령 때문이었는데, 무기 품질과 실용성을 꼼꼼하게 따지는 건 넬라의 몫이다.
“그러니까 이게 내구성이 무척 뛰어난 방패라고?”
“예, 단장님. 무려 레튬이란 물질로 만들어진 방패로, 강철보다 단단하며 그 미스릴에 버금가는 내구성을 지녔습니다.”
넬라는 상인이 가져온 방패들을 통통 두드리며 확인해 보았다.
그마저도 부족했는지 아예 칼을 뽑아 들고는 방패를 힘껏 내리쳤다.
터엉-!!
진하게 울리는 파공음에 방패를 팔고 있던 상인이 우쭐거리며 말했다.
“어떻습니까? 대륙 최고의 대장장이 민족이라 불리는 드워프들의 최신 제련 기술로 만들어진 방패입니다. 그 어떤 마법도, 그 어떤 검도 이 방패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라 할 수 있지요.”
“흠. 방패 말고 다른 건 또 있는가?”
“예, 이것보다 더 크게 만들어서 성벽을 방어하는 데에도 탁월한 효과를 지녔습니다. 이 장비들을 갖추기만 한다면 일라이 왕국 기사단을 무찌를 수 있는 군대는 이 세상에 없을 겁니다.”
바로 그때였다.
쿠우웅-!!
“으헉!”
“엇!”
기이한 굉음이 뒤에 있던 아슬란의 집무실에서 들려왔다.
“이게 대체 무슨······.”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가 싶어 집무실로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콰직-!!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면서 사방으로 균열이 일어났다.
“으, 으아아!”
“지, 지진인가!”
“대기사단장님! 으악!”
기사들은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 아슬란을 꺼내오려 했지만, 알 수 없는 힘이 갑자기 사방으로 퍼지면서 그들을 저 먼발치까지 밀어냈다.
그리고,
콰콰콰콱-!!
한번 더 심하게 땅이 흔들리면서 두 쪽 날 것처럼 갈라졌다.
그리고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이게 어떻게 된······!”
지반이 갈라진 집무실 건물이 허공 위로 붕 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주변에 있던 것들도 함께 떠오르더니, 넬라가 방금 전에 보고 있던 수십 개의 방패도 두둥실 떠올랐다.
콰콱-!!
“저, 저런!”
그 단단하다는 방패들이 종잇장처럼 찌그러지고 있었다.
겁에 질린 상인은 어린아이처럼 비명을 질러댔고, 넬라 역시 이 경이롭고 놀라운 광경에 넋을 잃었다.
이 기괴한 현상이 얼마나 지속되었을까.
쿠웅-!!
한순간에 모든 힘이 풀리면서 붕 떠 있던 집무실과 그 외 것들이 한꺼번에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대, 대기사단장님!”
“아슬란님!”
차마 접근할 수가 없어 그냥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기사들은 그제야 집무실로 뛰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끼익-
아슬란이 먼저 밖으로 나왔다.
“대기사단장님······.”
“괘, 괜찮으십니까?”
“방금 그건 대체-!”
기사들의 외침에 아슬란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호들갑 떨지 마라.”
“······.”
그는 주변을 살피다 넬라와 상인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갔다.
동그랗게 찌그러진 방패들을 아슬란은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아. 이, 이번에 새로 만들어졌다는 방패들입니다.”
넬라의 말에 그는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고작 이 정도 힘도 버티지 못해서야 쓰겠느냐?”
그러자 상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소, 송구합니다.”
상인은 억울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게 미스릴에 버금가는 내구성을 자랑한다고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방패들이 지금 저 꼴이 되어 있으니,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더 단단하고 좋은 방패를 가져오너라. 그럼 전부 사 주겠다.”
“예! 그, 그리하겠습니다.”
아슬란이 망토를 화려하게 펄럭이며 떠나자 상인은 조아렸던 고개를 간신히 들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덕분에 숨이 막혀 죽는 줄 알았다.
“대체 아슬란님께서는 무슨 힘을 발휘하셨기에 이 단단한 방패들을 이 지경으로······.”
넬라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분의 힘을 감히 가늠하려 들지 마시게. 우리조차도 그 힘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니.”
“······.”
“뭐 하고 있는가. 어서 가서 새로운 방패를 가져오지 않고? 이번에도 대기사단장님을 실망시킨다면 자네나 나나 경을 칠 걸세.”
“아, 예!”
밖으로 헐레벌떡 뛰어가는 상인을 바라보며 넬라는 방금 전 자신이 방패를 향해 내려쳤던 검을 살펴보았다.
있는 힘껏 쳤는데도 방패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는데, 검은 작게 균열이 일었다.
“······.”
저 정도로 단단한 방패이거늘.
대체 저것들을 어떻게······.
등허리를 타고 흐르는 전율에 넬라는 한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 * *
“신성한 라할의 빛이 원로회에 함께하기를.”
레이어스 교단에서 최고의 기사라 칭송하는 대성기사단장 루미네르.
그가 원로회에 모인 장로들을 향해 정중한 인사를 올렸다.
“루미네르. 그 간악한 이교도 무리를 처단하는 일은 잘 해결이 되었는가?”
“예. 모두 라할의 이름으로 심판하여 빛을 바로 세웠습니다.”
“고생했다. 그대의 활약으로 이 대륙은 위협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었구나.”
조금?
루미네르는 고개를 들어 장로들을 바라보았다.
“그대가 이교도 무리를 색출해 처단하는 동안, 바깥에서는 더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아슬란이라는 자가 있지.”
“보고는 어느 정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자가 악마의 처단자로 불리며 여러 악마를 죽였다고 말입니다.”
“그래. 아슬란 그놈은 이 대륙에 혼란을 가져오고자 악마가 나타났다는 거짓 선동으로 수많은 라할의 백성들을 꾀하고 있다.”
레이어스 교단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성기사들을 지휘하며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루미네르도 아슬란의 이름을 질리도록 들었다.
“그 말씀은 아슬란이 의도적으로 거짓을 만들어 퍼뜨렸다는 것입니까?”
“그래.”
“그렇다면 악마가 나타났다는 것도······.”
“전부 거짓이다! 물론, 대륙에 테키나 족속의 잔당이 아주 조금 남아 있다는 건 너도 잘 알 터. 하지만 그 세력이 미미하여 신경조차 쓸 필요가 없었지. 아슬란 그것들을 이용해 불안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장로들이 목청을 높여 소리치자 루미네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하리엘에게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직접 악마를 목격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리엘은 이미 아슬란의 꾀임에 넘어간 상태다. 듣자하니, 아슬란이 한때 그녀를 사모해 청혼까지 했었다는군. 어찌 된 이유인지 하리엘은 아슬란의 곁에 남아 교단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게 무엇을 뜻하겠느냐?”
그 말에 루미네르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무엇을 하면 될지 말씀해 주십시오.”
“라할께서 새로운 신탁을 내리셨다.”
“!?”
신탁.
레이어스 교단이 지금껏 존속하며 명분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건 바로 신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권능의 신전이라 불리는 곳에서 신탁이 내려오는데, 그곳에 있는 선택 받은 제사장들만이 신탁을 해석하고 이들에게 알릴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라할께서는 악마의 이름을 빌어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는 아슬란을 처단하길 원하신다. 그 적임자는 루미네르, 바로 너다.”
신탁이 적힌 양피지를 루미네르는 조심히 받아들였다.
그것을 펼치니, 그 안에 적힌 빛의 글씨가 그를 환하게 비추었다.
“가서 빛의 뜻을 행하거라, 루미네르.”
“라할께서 그대를 항상 지켜줄 것이다.”
“예!”
오직 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있는 성기사.
그는 라할의 명령이 적힌 양피지를 들고 신전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루미네르도 알고 있었다.
지금 그는 이성적이고 냉정하지 않다는 것을.
성기사라면 오직 신의 뜻에 따라 개인적인 감정은 버리고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하리엘.”
이번만큼은 그럴 수가 없었다.
* * *
[권능의 염력]
-15초 동안 권능의 염력을 발휘합니다.
-반경 300m까지 영향을 끼칩니다.
권능의 염력.
찰나의 괴력과 염력을 합친 결과물이었다.
그냥 한번 슬쩍 써본 것뿐인데, 집무실은 물론 그 주변까지 개박살이 났다.
그 덕분에 나는 그곳 보수 공사가 끝나기 전에 집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업무를 봐야만 했다.
‘쓰읍. 다음부터는 집무실에서 그러면 안 되겠다.’
새로운 능력이 생기면 무조건 지정된 훈련 장소에서만 써야지, 호기심에 잘못 썼다가는 아주 난리가 날 것 같았다.
‘권능의 염력을 조절하는 법도 익히긴 해야 하는데.’
이걸 한번 잘못 쓰게 되면 건물 전체가 날아가 버릴 정도로 위력이 어마어마하니, 어디 겁나서 마음먹고 연습하기도 애매했다.
‘거기다 쿨타임도 길어.’
찰나의 괴력과 같이 써야 한다는 단점이 있어서 만약 찰나의 괴력이 쿨타임이라면 권능의 염력도 쓰지 못한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일반 염력은 계속 쓸 수 있다는 거야.’
나는 틈만 나면 염력 연습에 매진했다.
아무래도 이게 영화에서나 보던, 생각만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힘이다 보니 매번 쓸 때마다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지금은 칼 한 자루를 뽑아 들어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왔다.
물론, 그 이상의 것을 하고자 한다면 찰나의 괴력을 써야 해서 딱 검을 다루는 것까지가 한계점 같았다.
“보수 공사는 내일이면 마무리가 될 듯합니다.”
넬라의 보고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이면 돌아갈 수 있겠구나.
나는 집무실 바로 옆에 있는 훈련장을 살펴보았다.
이곳도 그날 크게 영향을 받아 멀쩡한 곳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훈련을 쉴 순 없기에 구역별로 나누어 훈련을 이어 나갔다.
“검에 집중하거라!”
“자세를 흐트러트려서는 안 된다!”
“예!!”
교관의 외침에 기사들은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채애앵-!!
서로 진검 승부를 벌이고 있는 아론과 알렉산더였다.
“흐아압!!”
[알렉산더]
무력: 84
지력: 85
무시무시한 성장세로 커가는 알렉산더다.
처음에는 아론의 상대가 되지 못했던 그였지만, 지금은 호각을 이루며 싸우고 있었다. 원래 제일 재밌는 것이 싸움 구경이라고 했던가.
비록 대련이기는 하지만, 둘 다 실전처럼 검을 겨루고 있었다.
난 좀 더 가까이 다가가 둘의 대결을 지켜보았다.
채앵-!!
“오오. 역시 아론 단장님!”
“알렉산더도 검술 실력이 엄청 나다니깐? 저 단장님이랑 붙어도 밀리지가 않잖아!”
기사들은 뒤에 내가 온 지도 모른 채 둘의 대결에 빠져들었다.
나도 구태여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둘 중 누가 이길지 흥미롭게 구경했다.
촤아아-!!
두 사람은 서로의 힘에 밀려 각자 뒤로 물러났다.
그러다 다시 앞으로 달려가려는 아론은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칼을 빠르게 거두었다.
“대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내 존재를 뒤늦게 알아차린 기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대기사단장님을 뵙습니다!!”
아. 한창 재밌었는데.
그냥 계속하지.
“훈련은 잘되고 있느냐?”
“예.”
“알렉산더의 실력이 많이 는 거 같군.”
“감사합니다, 대기사단장님. 하지만 요 근래 벽에 부딪힌 것 같아 계속 수련 중에 있습니다.”
벽?
뭐, 다른 사람에 비하면 그건 벽도 아니지.
원래 성장세에는 벽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을 넘어서야 만이 더 크게 성장을 이룰 수 있는 법.
하지만 알렉산더는 다른 사람에 비해 그 벽의 높이가 무척 낮다고 할 수 있었다.
그건 알렉산더의 특성이 말도 안 되게 사기적인 게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너 같은 축복 받은 캐릭터가 그딴 소리를 지껄이면 안 된다고 한 대 쥐어 박고 싶었으나,
“정진하거라. 화살이나 창을 던질 때 태양을 향해 쏜다면 더 멀리, 더 높이 가는 법이다.”
우리 소중한 주인공한테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예전에 자기계발서에서 읽은 걸 내 거 마냥 지껄였다.
“그 말씀은 목표를 크게 잡으라는 것이군요.”
“그렇지.”
알렉산더는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렴.
그래야 내가 이 미친 게임에서 벗어나지.
마저 할 거를 하라고 이제 그만 돌아가려는데,
“그렇다면 대기사단장님!”
알렉산더가 나를 붙잡았다.
그는 아주 정중한 자세로 내게 청했다.
“대기사단장님께서 저의 태양이 되어 주십시오!”
“······?”
“저와 대련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 뭐라고?
아니. 이게 사람 죽일 일 있나.
“대기사단장님께서 제게 주신 가르침대로 태양을 바라보며 수련하고 싶습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알렉산더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놈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러자 아론이 알렉산더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렇게 몸을 떨어서야 대기사단장님과 칼을 섞을 수나 있겠나?”
그래. 잘한다.
머리 한 대 쥐어 박고 돌려보내라, 아론아.
그런데-.
“대기사단장님께서 조금이나마 덜 지루하실 수 있도록 저도 함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믿었던 아론까지 내 뒤통수를 쳐버렸다.
이것들이 줄곧 가만있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당연히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며 거절을 해야겠지만.
“건방지구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허세가 내 몸에 잠식했다.
“그런 알량한 실력으로 가르침을 받겠다라.”
나는 손가락을 살짝 까닥였다.
그러자 허리춤에 있던 검이 스르릉 빠져나와 허공 위를 두둥실 날아다녔다.
그것을 보고 기사들이 놀란 기함을 터트렸다.
“저, 저건!?”
신검합일에 이르면 손을 쓰지 않아도 오직 의지만으로 검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어검술.
물론, 이건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염력이었지만······.
“어검술이다!”
“이, 이럴 수가!”
아무래도 기사들은 이것이 극강의 경지인 어검술이라 생각하는 듯싶었다.
나는 그 칼끝을 아론과 알렉산더에게 날카롭게 세우며 말했다.
“오너라. 태양이 아니라 저 우주 끝으로 가도 닿을 수 없는 경지를 보여 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