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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64화 (64/200)
  • 64화

    0.01초 소드마스터 64화

    과연 예상대로 내가 점찍은 구역이 마기에 오염되었다는 정찰병의 보고가 올라왔다.

    그 보고를 받자마자 나는 내가 가진 최정예 멤버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만약 위험한 곳이었다면 보고를 들어도 절대 가지 않았겠지만-.

    ‘거긴 네임드급이 나오는 곳이 아니니까.’

    게임을 플레이 했을 때, 그곳을 지나다니는 게 귀찮았을 뿐이지 위협적인 보스급 몬스터가 나타나거나 하진 않았다.

    물론, 아예 몬스터가 없지는 않다.

    자잘한 악마들이 분명 그곳에 있을 것이며, 내가 가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마기 포식자를 쓰려면 그만한 곳이 없지.’

    내게는 알렉산더, 아론, 그리고 라파엘이 있다.

    거기다 기사단도 데리고 가는 중이니, 그곳에 있는 악마들쯤은 금방 쓸어 버릴 수 있을 것이다.

    ‘진짜 별 거 아닌 놈들이라서 마기 포식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오는 거 아니야?’

    그런 불안감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게 기사단을 이끌고 성문 밖을 나왔을 때였다.

    “아슬란님!”

    어디선가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저 멀리서 내가 아는 얼굴이 뛰어오고 있었다.

    “하리엘?”

    이 여자는 또 왜 여기에 나타났어?

    “다행히 따라잡았네요. 조금만 늦었으면 못 뵐 뻔했습니다.”

    “여기까진 무슨 일이더냐?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닐 테고.”

    “저는 뵙고 싶었는데, 아슬란님은 그렇지 않았나 봐요?”

    그녀의 말에 나는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슬쩍 곁눈질로 바라보니, 라파엘이 하리엘을 위 아래로 살피며 잔뜩 경계하고 있었다.

    “가야 할 곳이 있으니, 동행이 괜찮다면 가면서 말하지.”

    “아, 예.”

    하리엘까지 우리 파티에 참여하다니.

    이것보다 든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디를 가시는 겁니까?”

    “우리 국경 근처에 마기로 오염된 구역이 있다기에 그곳으로 가고 있다.”

    “마기라면······ 악마인 겁니까?”

    “그렇겠지. 헌데, 너는 무슨 일로 왔느냐?”

    하리엘이 왔다는 건 필시 교단에 관련된 일일 게 뻔했다.

    “교단에서 저를 보냈어요. 자스트라 숲에서, 그리고 칼루탄에서 악마들이 나타났다는 정보도 받았죠. 심지어 수백 년 전 악명을 떨쳤던 키야르트가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놈이었지.”

    “정말입니까? 정말 키야르트였습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냐.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놈은 이미 내 손에 죽었으니.”

    “그럼······ 칼루탄에 있는 루너들과 손을 잡으셨다는 건-.”

    난 하리엘을 힐긋 바라보며 말했다.

    “그들은 악마가 아니다, 하리엘. 그저 척박한 땅에서 조금이라도 더 살고자 발버둥을 치는 불쌍한 자들이지.”

    “······그렇군요.”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거다.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악마들이 빠르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교단에서 그들을 정화할 것입니다.”

    “그 잘난 교단이 한번이라도 제대로 나섰던 적이 있더냐? 지금까지 여러 악마들이 나타났었지만, 교단은 한번도 나선 적이 없다. 그저 방관만 하고 있지.”

    내 말대로 교단은 지금까지 그 이름값을 하지 못 하고 있다.

    하긴. 그놈들이 제 할 일을 똑바로만 했다면 이 게임에 주인공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난 네가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왔는지 알고 있다, 하리엘. 교단에서 나를 여러 번 나를 소환하려 했지만, 내가 전부 거절했었지. 그 때문에 온 것이 아니더냐?”

    저번에 교단이 성기사들을 잔뜩 보냈다가 도망친 이후부터 별다른 소식이 없다, 자스트라 숲을 다녀온 이후부터 계속 신전으로 오라는 서신을 보냈었다.

    하지만 나는 이놈들과 엮이기 싫어 그냥 무시를 했었다.

    “아슬란님께서는 그들을 악마로 보고 계시지 않아도 교단에서는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 들이고 있어요. 그들의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어 주신다면 교단은 아슬란님의 큰 힘이 될 거예요.”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나는 교단이 왜 나를 신전으로 불러 들이는지 알고 있다.

    솔직히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그냥 사람을 보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초지종을 들으면 될 것을, 굳이 나를 신전으로 불러들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전에 뿌락지들이 있다는 거지.’

    오메르 왕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신전 역시 악마에 의해 타락했음을 뜻한다.

    이 게임을 플레이 해본 사람이라면 신전은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믿어서는 안 된다는 걸 다 알고 있다.

    놈들은 날 신전으로 유인해 죽이려는 속셈이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그놈들과는 최대한 엮이지 않는 게 상책이었다.

    “계속 신전과 갈등을 빗으시는 건 위험해요. 장로회에서는 루미네르 대성기사단장을 출격시켜야 한다는 과격한 목소리도 나오고 있어요.”

    그건······ 좀 무섭다.

    루미네르가 누구인가.

    레이어스 교단이 가진 최강의 기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루미네르는 교단이 가진 최후의 보루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정말 큰일이 난 게 아닌 이상, 그 카드는 마지막까지 꺼내지 않는다.

    문제는,

    “루미네르라-.”

    그 이름을 듣고 이놈의 허세가 끓어 오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내가 그를 두려워할 것 같으냐? 만약 그가 나를 적으로 삼는다면, 그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마지막 선택이 될 것이다.”

    “······!”

    라고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제발 루미네르만은 오지 않게 해주세요.’

    간절히 빌었다.

    “대기사단장님.”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오염된 구역.

    수풀과 나무가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고, 저 통로 안은 시커먼 어둠만이 가득했다.

    “여긴 제가 도움을 드릴게요.”

    하리엘은 칼을 꺼내 뒤에 있던 타샤와 에길론과 함께 주문을 외웠다.

    “라할이시여. 저희에게 빛을 내려 주소서.”

    그러자 그녀의 검을 타고 흐르는 신성한 빛이 번쩍이더니, 동그란 구체가 빠르게 솟아 올라 검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조명탄처럼 구체는 그 안을 환하게 비춰 주었다.

    “오오······.”

    “이것이 성기사의 힘인가······.”

    기사들은 그 광경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다.

    나도 하리엘이 보여 준 신성 마법에 놀랐으나, 겉으로는 그저 덤덤한 표정을 지었다.

    “들어가겠다.”

    “예!”

    과연 어떤 악마가 있으려나.

    가급적이면 여기 근원을 빠르게 찾아 없애고 싶은데.

    “여기 숲을 오염시킨 자를 찾아 죽인다면 금방 정화가 될 거예요.”

    과연 신전의 사람답게 하리엘도 이곳을 정상화 시키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정 구역을 마기로 오염시키는 특정 악마나, 생물을 근원이라 칭한다.

    그것을 없애 버리면 이곳은 차츰 정상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너무 조용하네요.”

    어두운 통로를 하리엘이 만들어낸 빛을 따라 걷고 있었으나,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발견이 없었다. 거기다 하리엘의 말대로 너무나 조용했다.

    쥐새끼 한 마리 없는 것처럼 말이다.

    ‘보통 이러면 갑자기 뭐가 튀어 나오던데.’

    다년간 단련된 게임 짬밥의 직감대로,

    “키에에엑!!”

    몬스터들이 땅을 뚫고 나와 우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이다!”

    “막아라!”

    몬스터들의 숫자는 만만치 않았지만, 그건 우리 전력도 마찬가지였다.

    네임드급 캐릭터들이 여럿 있으니, 저런 몬스터 떼가 다가와도 두렵지가 않았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아론에게 말했다.

    “아론.”

    “예!”

    “빠르게 처리해라. 내가 칼이 뽑는 일 없도록 말이다.”

    “예, 대기사단장님!”

    내 명령에 따라 아론은 기사단과 함께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소탕해 나갔다.

    하리엘도 놀고 있지 않고 그를 도왔다.

    ‘생각보다 숫자가 좀 많은데.’

    뭔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여긴 이 정도로 많은 몬스터들이 나올 만한 곳이 아닌데.

    혹시 난이도 때문인가?

    그렇다면 이해는 간다만-.

    “정리가 다 된 것 같습니다.”

    무적 함대나 다름 없는 이들에게는 숫자가 무의미해 보였다.

    역시 든든하구나.

    하리엘까지 끼어 있으니, 거의 두 배는 세진 것 같았다.

    그런데,

    츠츠츠-.

    우리 주변으로 땅밑에서부터 줄기가 나오더니, 마치 짐승의 입을 닮은 식물들이 지천에 깔렸다.

    “이건 뭐지?”

    “이렇게 생긴 꽃은 처음 보는데.”

    난 저것들이 뭔지 금방 알아차렸다.

    “마기초로군.”

    “네? 마기초요?”

    “마기를 뿜어내는 놈들이다. 모두 물러나라.”

    하지만 기사들의 발밑에서 빠른 속도로 자라난 마기초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 안에서 시커먼 마기들이 뿜어져 나와 우리 모두를 덮쳤다.

    “헉!”

    “크악!”

    “푸히힝!”

    마기에 닿은 기사들이 신음을 터트렸다.

    말들도 화들짝 놀라며 몸부림을 쳐대서 기사들이 낙마하고 있었다.

    하리엘 역시 처음 경험해 보는 마기에 검은 핏줄이 온몸에 솟아 오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에 반해 나는,

    ‘진짜 아무렇지가 않잖아?’

    마기 포식자 능력을 얻게 되면서 나는 마기에 대한 저항력을 갖게 되었다.

    저번에는 가까스로 허세를 통해 버텼지만, 지금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냥 편하게 숨을 쉴 수 있었다.

    웃긴 건,

    푸르르~.

    내 말도 아주 멀쩡하다는 것이다.

    이놈은 대체 왜?

    “라파엘.”

    “아, 네!”

    악마의 피가 섞인 라파엘 역시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이것들을 치우거라.”

    그녀는 정령 마법을 펼친 뒤 강한 바람을 일으켜 마기들을 물러나게 만들었다.

    “윽-.”

    그렇게 간신히 마기에서 벗어난 하리엘은 숨을 헐떡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슬란님은 마기가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마기 저항력이 있어 나는 이제 마기에 완전한 면역을 가지고 있었다.

    “교단의 검이라는 자가 나약하구나.”

    “······.”

    하지만 이놈의 허세는 그걸 그냥 넘어가지 못 하고 허장성세를 부렸다.

    “단단한 정신이 있다면 이 정도 마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버틸 수 있다. 정신 수련을 게을리 하지 말거라, 하리엘.”

    하리엘은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뭐, 틀린 말을 한 건 아니긴 했다.

    당장 나도 그 지독했던 마기를 이 정신 나간 허세로 버티지 않았던가.

    “저의 정원에 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바로 그때.

    “모두 편안하게 즐겨주시길.”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합친 듯, 섬뜩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올려 보니,

    ‘뭐, 뭐야. 저건.’

    검은 날개에 검은 뿔을 가진 인간 형상의 악마가 하늘을 비행하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벨로스 아니야?’

    염동의 악마, 벨로스.

    키야르트와 마찬가지로 마기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악랄한 놈이다.

    더군다나 상대법도 까다로워 가급적 부딪히고 싶지 않은 놈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 별명대로 놈은 매우 강력한 염동력을 다루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올 놈이 아닌데?’

    대체 어디서 나온 거지.

    이놈도 키야르트와 마찬가지로 어디선가 깨져 버린 봉인을 뚫고 나온 건가?

    ‘아무리 그래도 왜 하필 여기야?’

    여긴 잡몹에 가까운 하급 악마들만 있는 곳이라고 알고 있다.

    그런데 벨로스는 하급이 아니라 무려 보스급 악마였다.

    ‘침착하자. 그래도 나한테는 네임드급 캐릭터들이 다수 있잖아.’

    그러니 놈의 염동력만 조심을 한다면······.

    “저의 정원에는 그런 상스러운 무기들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촤르르륵-!!

    벨로스의 손짓 한번에 기사들이 들고 있던 모든 무기가 하늘 높이 날아 올랐다.

    “아니!?”

    “거, 검이!”

    기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아론, 알렉산더, 하리엘, 거기다 하리엘까지.

    여기 있는 모두가 고작 손짓 한번에 무장 해제 되어 버린 것이었다.

    ‘그래. 저놈은 저게 짜증났었지.’

    벨로스는 항상 저런 식의 공격을 펼쳤다.

    염동력으로 플레이어와 그를 조력하는 동료들의 무기를 빼앗아 하늘 높이 올린 뒤, 그것을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쏟아 버리는 것이 놈의 공격 패턴이었다.

    그래서 검을 빼앗기지 않게 미리 조치를 취하고 가는 것이 정석이다.

    ‘근데 여기서 저게 나올 줄 누가 알았겠냐고.’

    이건 불공평하다.

    이런 곳에서 갑자기 저런 게 나타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지금쯤 내 검도 저기 어딘가에서 나를 조준하고······.

    잠깐. 내 검?

    나는 왼쪽 허리춤을 내려다 보았다.

    ‘아직 여기 있잖아?’

    다른 이들의 무기는 전부 허공에 두둥실 떠다니며 우리를 조준하고 있었는데, 내 검은 여전히 내 허리춤에 있는 검집에 들어 있었다.

    “이런. 제가 빼먹은 것이 하나 있군요. 순순히 내놓으십시오.”

    저 재수 없는 말투로 비아냥 거리는 벨로스가 내게 손을 뻗었다.

    아무래도 내 검을 가져가려는 것 같았는데-.

    “······?”

    저놈이 조준을 못 하는 건가?

    이상하게 내 검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괜한 고집을 부리시는군요.”

    벨로스가 인상을 살짝 찡그리자 놈의 강한 염동을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런데도,

    “······.”

    내 검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그리고 마치 그것을 기다렸다는 듯,

    “이 검을 가져가고 싶은 것이더냐?”

    차갑게 식어 있던 허세가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올랐다.

    스르릉-!

    나는 허리춤에서 칼을 뽑은 뒤 놈을 향해 겨누었다.

    “어디 한번 가져가 보거라.”

    벨로스는 오만하게 웃으며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놈은 내 검을 가져가지 못했다.

    이에 화가 났는지, 놈은 아예 두 팔을 뻗어 더욱 강력한 염동을 퍼부었다.

    콰직-! 콰콰콱-!!

    땅이 갈라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힘이다.

    저 악마 놈과 이 허세에 절여진 검 사이에 끼어 있어 새우등이 터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강한 힘을 발휘했는데도 놈은 끝끝내 검을 띄우지 못했다.

    그런 벨로스를 보며 나는 성난 파도처럼 몰아치는 허세를 느꼈다.

    “형편없구나. 고작 검 하나를 움직이지 못해서야. 역시 저급한 악마라서 그런 건가?”

    놈은 나를 당장이라도 잡아 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나의 허세는 더 큰 화마가 되어 타올랐다.

    “정 원한다면-.”

    그 강렬하고 충동적인 허세에 나는,

    “너에게 주도록 하지.”

    들고 있던 검을 마치 선심 쓰듯 던져 버렸다.

    ‘이런 미친-!’

    던지고 나서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은 듯싶었다.

    놈이 벌써 날아오는 내 검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 * *

    턱-!

    벨로스는 아슬란이 던진 검을 얼떨결에 붙잡았다.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기에-.”

    그토록 강한 염동을 발휘했는데도 이 검은 꼼짝 하지 않았다.

    어떤 마법이라도 걸려 있는 것인가?

    뭐, 이제 상관없다.

    저 어리석은 인간이 자기 알아서 검을 던져줬으니, 이제 이 검으로 놈의 목숨을 끊어 버리면 될······.

    [감히-.]

    바로 그때였다.

    [더러운 미물 따위가 이 몸을 만지다니.]

    “······?”

    [죽고 싶은 것이냐?]

    머릿속을 울리는 둔중한 음성.

    벨로스는 당황하며 주위를 바라보았지만, 저 인간들 말고는 보이는 자가 없었다.

    “누, 누구냐?”

    그 위압적인 음성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용서할 수가 없도다.]

    그는 곧 이 목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깨달았다.

    “설마 이 검에서?”

    그걸 깨닫자마자,

    쿠웅-!

    “크헉!”

    온 세상이 뒤틀려 버린 듯 시야가 흔들리고 머릿속은 누군가가 망치로 계속 내려치는 것처럼 묵직한 고통이 일었다.

    그리고,

    [그 더러운 피로 이 몸을 건든 죄를 물어 이 자리에서 네놈을 죽여 주마.]

    숨이 막히고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음성에 겁을 먹은 벨로스는 황급히 쥐고 있던 검을 놓았다.

    채앵-!

    떨어진 칼은 곧 바닥에 박혀 버렸다.

    “어, 어디서 저런 미친 검이······!”

    악마가 깃든 에고 소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저 정도일 줄이야.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 짧은 순간 동안 모든 것이 짓눌리고 혼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은 검이 존재할 수가 있다니.

    “무례하구나.”

    그런데 이번에는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검이 아닌, 인간의 목소리였다.

    “저 검이 누구의 것인지 알면서도 감히 그따위로 다루다니.”

    “!?”

    놀랍게도 저 밑에 있던 붉은 망토의 인간이 어느새 자신의 코앞에 서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처럼 날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 인간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윽-!”

    벨로스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저 인간은 손가락을 펼쳐 벨로스를 겨누었다.

    “넌 내 검으로 죽일 가치조차 없다.”

    그리고 그 손을 가볍게 긋는 순간.

    푸확-!!

    번쩍이는 검강이 지나간 자리에, 검은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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