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0.01초 소드마스터 62화
“······.”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가 않는다.
마기도, 놈이 발버둥치던 것도, 그 사악한 목소리도.
처음부터 그런 건 없었다는 듯, 모든 게 고요해졌다.
그저 허세의 파도가 잔잔하게 내 안에서 넘실거릴 뿐이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드디어 끝났구나.’
······라는 말을 하면 안 됐었다.
“!?”
고요하게 넘실 거리기만 하던 파도가 다시 거칠게 요동쳤다.
내 속에서 완전히 수장되었다고 생각한 악마의 기운이 용솟음치며 그 위를 뚫고 올라왔다.
설마 놈이 죽지 않았던 건가?
[새로운 패시브 능력을 획득하셨습니다.]
“······?”
뭐야. 이건.
[마기 포식자]
-마기의 핵을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마기에 완전한 저항력을 얻습니다.
-이제 모든 공격을 어둠 속성으로 변환이 가능합니다.
-성속성을 가진 상대에게 200%의 추가 데미지를 가합니다.
마기 포식자?!
포식자라는 능력은 알고 있다.
말 그대로 상대를 먹어 치워 가진 능력을 빼앗는 것인데, 마기 포식자는 처음 들어봤다.
‘키야르트를 흡수하면 얻을 수 있는 히든 능력이었나?’
이 게임에는 히든 스킬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하도 게임이 고여서 이제 모든 히든 스킬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못 찾은 것들이 있었구나.’
마기 포식자가 바로 그중 하나인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찾는 방법이 키야르트를 몸에 흡수하는 거잖아.’
키야르트를 공략하는 방법은 마법 봉인구를 활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없다면 영혼을 쪼개는 마법으로 그를 죽이거나, 아니면 그를 영원히 봉인시킬 수 있는 육체에 넣어 두는 것이다.
문제는 그의 영혼을 받아들인 육체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되고 종국에는 사망에 이른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신성력을 바탕으로 정화 작업을 꾸준히 해주지 않으면 사실상 육신에 영원히 봉인해 두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내가 그걸 해냈단 말이지.’
사람의 정신을 미치게 하고 그 몸을 통제하는 지독한 악마라도 아슬란의 허세를 이길 순 없었다.
‘미친.’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대체 이 몸은 얼마나 허세에 절여 있는 거냐.
저 키야르트까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수장될 정도라니.
“아, 아슬란님.”
“대기사단장님!”
“괘, 괜찮으신 겁니까?”
기사단과 주민들이 내 곁으로 모여 들었다.
“헉!”
“대, 대기사단장님! 모, 몸이!”
그때 갑자기 내 몸에서 검은 불길 같은 것이 일어났다.
이건 누가 봐도 마기였다.
“마, 마기다!”
“안에 들어간 악마 때문인가!?”
그러자 잠잠하던 허세의 물결이 다시 거친 파도가 되어 몰아쳤다.
“호들갑 떨지 마라.”
“······.”
나는 검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는 손을 바라보며 속성을 어둠에서 빛으로 변경시켰다.
“오오-.”
“이, 이건······!”
기사들은 놀라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루너들은 나를 두려움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아, 아슬란님.”
키야르트의 속박에서 벗어난 에이든은 부하들의 부축을 받으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키, 키야르트는······.”
“놈은 이미 소멸되었다.”
“······그렇군요.”
의외로 그는 쉽게 납득해버렸다.
“역시 그 무시무시한 악마라도 아슬란님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겁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멀쩡한 곳이 없어 보이긴 했지만, 다행히 목숨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몸부터 얼른 치료를 받도록.”
“예. 저희가 당신에게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겠나이다.”
꼭 그래야 한다.
여기서 너희의 도움이 많이 필요하거든.
“감사합니다, 대기사단장님.”
“당신이 우리를 구했습니다.”
내게 몰려드는 칼루탄 마을의 주민들.
그들이 건네는 감사 인사에,
“너희는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 없다.”
강렬한 허세가 더욱 뜨겁게 치밀어 올랐다.
“너희가 악마의 피를 받았다고 해서 악마가 되는 것이 아니다. 너희가 다르다는 것을, 악마의 힘이 너희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온 대륙에게 보이거라.”
“그, 그게 가능할까.”
“신전에서 우리를 탄압하면······.”
그들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들이 표출하는 두려움은 곧 허세의 연료가 되었다.
“너희를 배척하는 것은 곧 나 아슬란을 배척하는 일이다. 너희의 적은 나의 적이며, 너희의 아군은 곧 나의 아군이다.”
나는 사방에 모여든 주민들을 빙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마라.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면 나를 의지하거라. 내가 너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니, 너희도 너희 스스로를 포기하지 마라.”
나를 위해, 나의 막대한 부를 위해, 나의 안전을 위해-
“끝까지 싸워라. 끈질기게 버텨내라. 그럼 이 마을에 무궁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며, 너희 선조들도 누려 보지 못한 무한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 허세에 자극을 받은 것일까.
주민들 모두가 손을 높이 들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 * *
“우와아아-!!”
“오오오-!!”
이 척박한 황무지에 어마어마한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기사단도 그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는 중이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피가 절로 들끓게 하고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
라파엘은 저 가운데에 우뚝 서서 붉은 망토를 휘날리고 있는 아슬란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역시 저분은······. 다르구나.’
악마의 피가 섞인 자들이다.
저주받은 족속이라 불리며 모든 종족이 배척하는 악마의 후손들이다.
그리고 라파엘 본인 역시 그 역겨운 피를 이어받았다.
하지만 아슬란은 저들을 보통 사람과 똑같이 대해 주고 있었다.
저들이 언제 폭주하여 악마로 변할지 모르는데도 그의 목소리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정말 저들이 변화될 수 있다고 믿으시는 거야.’
이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들은 가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슬란은 저들을 받아들였다.
하나의 인격체로, 하나의 종족으로 인정해 주면서 말이다.
‘정말 다행이야.’
라파엘은 저들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저들이 잘 되기를 바랐다.
만약 아슬란이 아니라 다른 왕국이 먼저 저들을 발견했다면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지······.
‘역시 저분 밑으로 들어가기 잘했어.’
이번 생에서 가장 잘한 일을 뽑으라면 아슬란의 마법사가 된 것이었다.
저 잘생기고 화려한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는 것 역시 매번 직업 만족도를 높여 주었다.
“라파엘.”
“······에? 아, 네!”
잠시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을 때였다.
어느새 아슬란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항상 그랬듯, 상대를 압도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무슨 흉계라도 꾸미고 있었느냐?”
“휴, 휴, 흉계라니요! 무, 무슨 소리를······!”
라파엘은 어느새 자신의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는 걸 깨달았다.
아슬란은 그런 그녀를 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런가.”
그러고는 그녀를 지나치며 말했다.
“방금 전 저들에게 했던 말은, 너에게도 하는 말이었다.”
“······네?”
“난 너를 믿고 있다, 라파엘.”
“!?”
그 말을 남긴 뒤, 아슬란은 화려하게 망토를 펄럭이며 멀어졌다.
라파엘은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로 그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왜인지 저 망토가 바람도 없이 펄럭일 때마다 성스러운 빛이 번쩍이는 것처럼 보였다.
* * *
“요즘 불쾌한 소문들이 들리고 있습니다.”
“불쾌한 소문?”
“예. 아슬란에 대한 소문 말입니다.”
또 아슬란인가.
잊을 만하면 나오는 게 아니라, 잊을 새도 없이 계속 그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칼루탄에 있는 루너들을 우리가 그냥 방치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루너들.
어떤 이유에서인지 엘티히가 크게 진노하여 그들을 한 차례 쓸어 버린 적이 있었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는 더더욱 세력이 약해져 현재는 마을 하나를 이루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신전도 구태여 그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딱히 지금 그들을 척살할 만한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헌데 아슬란이 그들과 결탁했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그 악마의 피를 이어받은 부정한 놈들과 손을 잡다니!”
“아슬란 그자는 이단이 확실하오!”
요즘 교단 분위기는 계속 이랬다.
아슬란을 계속해서 이단으로 몰아가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달까.
참다못한 하리엘이 입을 열었다.
“아슬란은 지금까지 여러 악마를 처치하지 않았습니까? 이번에 자스트라 숲에서도 그렇고, 칼루탄에서도 키야르트를 무찔렀다는 정보도 분명 함께 전달해 드렸을 텐데요?”
그러자 교단의 장로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걸 하리엘, 자네 눈으로 직접 봤나?”
“그건······.”
“난 솔직히 우리 교단의 정보력을 의심하는 중이네. 뜬금없이 테키나 족속이 다시 나타나지를 않나, 오랜 역사 속에 파묻힌 전설적인 악마가 튀어나오지를 않나. 이건 마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군.”
이들은 작금의 사태를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키야르트 같은 악명 높은 악마가 봉인을 깨고 나타났다가 아슬란의 손에 의해 죽었다는 것 역시 믿지 못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키야르트는 죽이는 것이 불가능한 존재로 알려져 있다. 죽어도 끝없이 육체를 옮겨 다니며 부활을 하기 때문이지. 그런 그를 아슬란이 죽였다?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거기다 그놈은 우리 교단의 요청을 매번 거절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히 교단의 뜻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다니.”
“반드시 놈을 신의 이름으로 벌해야 합니다. 라할이 선택한 빛의 기사라니! 신앙심도 없는 자에게 이게 가당키나 한 호칭입니까?”
아니. 과연 믿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을 하는 것일까.
요즘 들어 하리엘은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로님들은 어쩌기를 원하시는 겁니까?”
“어쩌기는. 당연히 신의 이름으로 심판을 해야지!”
“그 오만방자한 놈은 라할과 교단을 모독하고 있다. 마땅히 이에 대한 처결을 내려야겠지.”
이들은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아슬란을 탄압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왜 그를 못 죽여서 안달인 것일까.
질투심? 아니면······.
“대체 누가 그를 벌한단 말이오? 이미 한 차례 로엔과 성기사들을 그곳에 보내봤지만, 그들은 오히려 못 볼 것을 봤다는 듯 혼비백산하여 교단으로 도망치듯 돌아왔소이다.”
제사장 이스마엘의 말에 장로들은 헛기침을 터트렸다.
사실 그 일은 이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로엔을 교단의 대표로 일라이 왕국에 보낸 건, 싸움을 좋아하고 어떤 강자라도 그 괴팍한 성격을 숨기지 않는 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슬란을 마주하고 나서 겁에 질린 얼굴로 교단에 돌아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성기사단 역시 아슬란의 이름만 들어도 발작을 할 정도였다.
“그날 이후로 우리 교단에서는 아슬란을 직접 상대하려는 자가 없소. 성기사단 역시 모두 겁을 먹어 아슬란과의 싸움을 두려워하고 있소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를 처단하겠다는 것이오?”
“······.”
“그뿐만이 아니라 지금 그는 엘프와도 교역을 열기 시작했고, 호드와 루너들. 거기다 타 왕국과도 점점 관계를 넓혀가고 있소. 특히 엘버스테인이 통치하고 있는 오메르 왕국은 거의 그를 숭배하고 있지. 아슬란과 전쟁을 하겠다는 건, 그들 모두를 상대하겠다는 뜻이오.”
더 이상 일라이 왕국은 최약체가 아니었다.
아슬란의 활약으로 단기간에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아슬란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명분도 필요하거니와, 그와 힘을 합치고 있는 종족과 왕국들도 상대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 우리 교단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마지막으로 사람을 보내 봅시다. 만약 그가 우리의 소환에 응하고 협력을 해준다면 우리도 그를 배척할 생각이 없습니다.”
어느 장로의 말에 이스마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럼 그 의견에 따라 이번에 마지막으로 사람을 보내 보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은······.”
이스마엘의 시선에 닿는 곳에 하리엘이 있었다.
“그대가 다녀오도록 하게. 아슬란과는 친분이 좀 있지 않은가?”
장로들도 딱히 반대하지 않았고, 하리엘 역시 군말 없이 그 뜻을 받아들였다.
“예. 제가 직접 가서 그를 만나고 오겠습니다.”
그리 대답한 뒤 신전을 나서는 하리엘은,
“흐음.”
평소보다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분명 무겁고 진중한 일로 가는 것인데도 그녀의 얼굴에는 왜인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그를 만나러 간다.
그러다 그녀는 제자리에 멈춰 서서는 얼굴을 매만졌다.
왜인지 전보다 피부가 푸석푸석한 느낌이다.
“조, 조금 꾸미고 가야 하나······.”
살면서 처음으로 외모 고민을 하게 된 하리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