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0.01초 소드마스터 58화
[찬란한 붉은 망토]
“······?”
이, 이게 뭔 경우여.
알렉산더의 단단한 갑옷에 맞아 그대로 파괴된 줄 알았던 보석이, 천재일우의 행운으로 내게 흡수가 된 모양이다.
웃긴 건, 보통 보석이 흡수가 되면 검이나 팬던트, 혹은 반지 같은 곳에 들어가는데, 이건 다른 것도 아니고 내 망토에 빨려 들어갔다.
“대기사단장님!”
“괜찮으십니까?!”
“방금 대기사단장님 앞에서 큰 폭발이······!”
어수선하게 떠들어 대는 기사들을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바라보았다.
“고작 이런 일로 호들갑 떨지 마라.”
너희 때문에 집중이 안 되잖아. 집중이.
“대기사단장님. 이놈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는 바닥에 처박혀 쓰러져 있는 놈을 내려다보았다.
[로벤]
무력: 83
지력: 80
어. 잠깐만.
이거 내가 많이 본 이름인데.
로벤이라면 분명······.
“놈을 일으켜라.”
“예!”
······죽었나?
곤죽이 돼서 기사들 손에 축 늘어져 있는 로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놈을 포박해라. 추후 깨어나면 그때 심문할 것이다.”
로벤을 기사단에게 맡긴 뒤 우리는 절벽 사잇길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천천히 행군하면서 나는 망토부터 살펴보았다.
[찬란한 붉은 망토]
-착용자와 의식을 공유합니다.
-착용자와 속성을 공유합니다.
-망토의 펄럭임이 더욱 화려하게 변합니다.
-랜덤으로 능력 하나를 부여합니다.
“······?”
이건 또 뭔 괴랄한 아이템이야.
착용자와 의식을 공유한다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검과 비슷한 효과였다.
그렇다는 건 설마······!
‘검에 이어 이제는 망토까지 허세를 부린다는 건가?’
손발이 부르르 떨려왔다.
대체 어디까지 이놈의 허세가 전염되는 것인가.
‘그래도 여기서 좋은 옵션만 떠준다면.’
허세든 뭐든 다 받아 줄 자신 있었다.
[옵션을 부여하시겠습니까? 한번 옵션을 부여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망토에 새로운 옵션을 부여했다.
잠잠했던 망토에 밝은 빛이 깃들기 시작했다.
* * *
“저런 멍청한 놈-!”
기사들 손에 끌려가고 있는 로벤을 보며 자칼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러게 내가 가지 말라니깐!”
자칼의 조언을 무시하고 로벤은 끝끝내 저 절벽 사잇길로 들어가 거대한 비석에 박혀 있는 신비한 보석을 강탈했다.
하지만 거의 다 성공한 일이었는데, 별안간 나타난 저 사파이어 자쿰에 의해 그는 기사단의 손에 붙잡혔다.
“그래도 이번이 아니면 기회가 영영 없었을 겁니다, 대장.”
“예. 로벤 부대장이 무리를 하긴 했지만,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자칼도 알고 있다.
이번이 어쩌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사실 그들이 그 보석을 갖고자 시도한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절벽에 가득 모여 있는 몬스터들 때문에 쉽사리 길을 뚫지 못했으며, 몰래 보석만 가지고 가려고 해도 몬스터들의 예민한 감각을 피할 순 없었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때에 저 일라이 왕국의 기사단이 나타난 것이었다.
저들이 압도적인 군사 숫자로 절벽을 뚫어 주면서 그 안에 있던 몬스터들이 거의 다 정리가 됐다.
문제는 이들이 원하는 걸 저들도 원했다는 것이다.
그걸 깨닫고는 로벤이 무리하게 달려가 보석만 쏙 빼내 오려 했지만······.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저리 놔뒀다가 심문을 당한다면 우리 마을의 위치가 알려질 수도 있습니다.”
100년을 넘게 이곳에 터를 잡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살아온 자들이다.
만약 마을의 위치를 들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구해야겠지. 하지만 상대는······.”
아무리 숨어 살고 있다고는 해도 상대가 누군지는 자칼도 알고 있었다.
그 위명이 대륙 전체에 퍼져 나가고 있는 일라이 왕국의 대기사단장, 아슬란.
여러 소드마스터를 죽이고 거짓말 같은 업적만 쌓아 가고 있는 기사였다.
다른 때라면 길게 고민할 것도 없이 부하들을 이끌고 가서 로벤을 구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 상대가 아슬란이라니.
“구출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면 원칙대로 하겠다.”
“예? 그, 그 말씀은······.”
“로벤을 죽이는 수밖에. 놈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그러게 내 말을 들었어야지, 이런 멍청한 자식.”
“······.”
가족과 친구들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일단 놈들의 뒤를 밟는다.”
자칼을 선두로 그들은 일라이 왕국 기사단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 중간에-.
“음?”
자칼은 화려하게 펄럭이고 있는 아슬란의 망토에서 흩뿌려지고 있는 빛을 보고는 멈칫거렸다.
“너희도 방금 그걸 봤느냐?”
“예. 실로 아름다운 망토입니다.”
“순간 빛이 번쩍인 거 같았는데······.”
묘하게 눈을 사로잡는 망토였다.
“잠깐. 그런데 지금 놈들이 어디로 가는 거지?”
“저 방향은 설마······.”
아슬란과 그의 기사단은 칼루탄을 벗어나지 않고 오히려 깊숙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이곳에서 오래 정착하고 있던 이들도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금지된 땅이었다.
“저놈들이 죽으려고 들어가는 건가?”
이걸 어떡해야 할지 고민이 됐지만, 차마 로벤을 버리고 갈 수가 없어 그들은 은밀히 그 뒤를 따라나섰다.
* * *
나는 멍한 눈으로 찬란한 붉은 망토의 옵션창을 바라보았다.
“······.”
꿈인가?
이게 정말로 여기서 나온다고?
[찬란한 붉은 망토]
-착용자와 의식을 공유합니다.
-착용자와 속성을 공유합니다.
-망토의 펄럭임이 더욱 화려하게 변합니다.
-비행술을 1분 동안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5분)
랜덤으로 부여한 옵션에 어마어마한 것이 걸렸다.
지금까지 내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고작 몇 번밖에 써보지 못했던 바로 그 옵션이다.
비행술!
비행술이라니!!
‘비행술은 마법사들도 무척 쓰기 어려운데’
마력으로 비행이 가능하긴 하지만, 마력 소모가 무지막지하고 가성비가 좋지 않아 거의 쓰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마법 빗자루나 양탄자를 타고 다니는 것이다.
당연히 소드마스터나, 마검사 중에서도 비행술을 쓸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만큼 유니크하고 굉장히 갖기 어려운 능력이라는 것이다.
‘역시 평소에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인내하니, 이렇게 복이 오는구나.’
게이머로서 가장 기분이 좋을 때가 언제인지 아는가.
생각지도 못한 확률을 뚫어 엄청나게 좋은 옵션을 갖게 되었을 때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
무척이나 행복하다.
그래. 망토야.
네가 허세에 절인다고 해도 난 너를 사랑할 자신이 있단다.
‘푸흐흐-.’
마음 같아서는 깔깔 웃으며 이 기쁨을 만끽하고 싶으나, 지금은 대기사단장으로서 체통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기사단과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하아- 얼른 써보고 싶다.’
새로운 아이템을 얻으면, 그것도 엄청난 옵션의 아이템을 얻으면 빨리 써보고 싶어 안달이 나고,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도 그 아이템이 생각나 실없이 웃게 된다.
그냥 모든 것이 좋아 보이고 행복한, 아주 충만한 기분을 한동안 느낄 수 있다.
지금 내 심정이 그렇다.
마냥 웃음만 나오고 얼른 이 옵션을 써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는 상태였다.
“대기사단장님. 길이 막혀 있습니다.”
“음?”
속으로 실실 쪼개면서 나아가고 있던 중.
아론의 말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앞을 보니, 정말로 저 멀리서부터 길이 막혀 있었다.
‘이상하다? 왜 길이 막혀 있지?’
보석을 얻었음에도 내가 아직 이 황무지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더 찾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칼루석.
오직 이곳 칼루탄에만 나오는 희귀한 돌로, 불을 붙이면 불이 붙고 돌을 갈아 가루로 만들면 화약처럼 쓸 수 있는 아주 뛰어난 자원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칼루석을 모를 때이니까.’
스토리 중반부터 칼루석의 능력이 알려지면서 그때부터 각 왕국에서 관심을 보이는데, 이로 인해 그냥 버려져 있던 칼루탄을 갖고자 왕국끼리 서로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그래서 일이 시끄러워지기 전에 내가 먼저 이곳을 점거해 칼루석을 독점으로 채광하려는 것이었다.
문제는,
‘원래 여기 길이 나야 하는데.’
내가 지금 뭘 착각하고 있나.
이 뻥 뚫린 길을 따라 걸으면 칼루석이 밭처럼 널려 있는 땅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 길 앞에 성벽이라도 생긴 것마냥 넓은 돌 같은 게 길을 막고 있었다.
“어찌할까요? 우회를 해야 할지, 아니면 이 앞을 그냥 넘어갈지······.”
양옆도 돌산이라 우회를 하려면 이 절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아니면 뒤로 쭉 돌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럼 시간이 배로 더 걸릴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길을 막고 있는 돌판을 성벽처럼 기어올라 넘어가면 된다.
‘내가 정말 뭔가를 착각하고 있나?’
이상하네.
내가 이걸 착각할 리 없을 텐데.
분명 이 길이 맞다.
대륙에서 굉장히 중요한 자원으로 뽑히는 칼루석이 있는 곳인데, 내가 그 지형을 어떻게 착각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혹시 모르니-
‘올라가서 확인을 해봐?’
길을 정말 착각한 거라면 내가 저 높은 절벽으로 올라가 확인을 하면 될 일이다.
마침 잘 됐다.
이 망토에 새로 부여된 비행술을 언제 써보나 했더니, 이렇게 기회가 생기는구나!
“대기사단장님?”
내가 말 위에서 내리자 기사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올라가서 확인해 보겠다.”
“예? 아, 아닙니다. 그런 건 저희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거라.”
나는 비행술을 발동시켰다.
그러자 마치 엔진이 가열하듯,
츠츠츠-.
내 발밑으로 바람과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거세게 회전하더니,
투웅-!!
나는 쏜살같이 위로 튀어 올랐다.
“아, 아니!?”
“우와아아!”
기사단은 그 광경을 보며 기함을 터트렸다.
나는 위로 쭉 날아올라 순식간에 절벽 끝에 다다랐다.
“······미쳤다.”
이것이 비행술이구나.
저 밑바닥에서 여기까지 이렇게나 간단하고 빠르게 올라올 수 있다니.
사람이 하늘을 날면 이런 기분이구나.
그래. 이 맛이다.
이게 게임이지!
펄럭~!
바람도 불지 않는데 망토가 과하게 펄럭이고 있었다.
나 잘했지? 라고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가 내 검보다 낫다. 어휴. 이쁜 새끼.”
비행시간 1분.
쿨타임 5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무슨 위기 상황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그곳에서 벗어나야 할 때 이 비행술은 내게 엄청난 힘이 될 것이다.
처음으로 이 망토가 좋아졌다.
“어디 보자.”
나는 절벽 끝에 서서 주변을 확인해 보았다.
혹시라도 떨어질까 무서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여기서 떨어져도 비행술로 언제든 다시 올라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음? 여기가 맞잖아?”
내 착각이 아니었다.
저 막힌 길을 따라가면 칼루석을 채광할 수 있는 장소가 나온다.
그렇다면 대체 길을 막고 있는 저건······.
“그르르르르르-.”
땅울림 같은 울음 소리가 길게, 천지를 진동하며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직감했다.
우리의 길을 막고 있는 것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그오오오오-!!”
바로 몬스터라는 것을.
“모, 몬스터다!!”
“앞에 괴물이 있다!!”
길을 막고 있던 것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당황한 기사단은 모두 칼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그들은 곧 눈 앞에 펼쳐지는 그 압도적인 크기에 할 말을 잃었다.
“뭐, 뭐야. 네가 왜 여기서 나와.”
몸 전체가 돌로 이뤄진 트롤.
이곳 주변에 트롤이 서식하고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트롤들은 온순하고 공격성이 낮아 크게 걱정할 건 없었다.
“거기다 메가 트롤이라니!”
심지어 이놈은 우리가 시비를 걸지도 않았는데, 매우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르르르르-”
분노 섞인 깊은 울림으로 놈은 기사단이 아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대체 왜 나를?
저기 사람도 많잖아, 인마.
“그오오오오-!!”
그러고는 강하게 콧김을 내뿜으며 포효했다.
그 소리만으로도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아이고. 이놈의 망토 때문에 내가!”
위기일수록 절로 튀어나오는 남 탓!
왜 갑자기 비행술 같은 옵션을 부여해서!
“일단 얼른 여기를 벗어나야······.”
나는 비행술을 써서 빠르게 여길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콰아아앙-!!
성난 메가 트롤이 냅다 주먹을 절벽 아래로 날려 버렸다.
그러자 내가 디디고 있던 절벽 끝부터 균열이 일어나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씹!”
콰콰쾅-!
“대기사단장님!!”
“아, 아슬란님!!”
다급한 기사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균형을 잃고 눈을 질끈 감아 버린 나는-.
“음?”
아주 멀쩡했다.
나는 허공에 두둥실 떠 있는 채로 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무너진 절벽이 처박혀 뿌연 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펄럭~.
이 망토 덕에 살았구나.
“그오?”
메가 트롤은 내가 둥둥 떠 있는 것을 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저럴 수가!”
“대체 어떻게?!”
아래에 있던 기사단도 경악 어린 기함을 터트리고 있었다.
나는 1분밖에 되지 않는 비행술이 꺼지기 전에 얼른 이곳에서 탈출하려고 했다.
하지만-.
“건방지구나.”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허세에 나는 뒤가 아닌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이 허공에 마치 바닥이 깔린 것처럼, 격조 있게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갔다.
“감히 누구의 길을 막는 것이냐? 미물이여.”
“그르르르르르-”
트롤의 성난 울음에 땅이 진동하고 내 몸도 함께 떨려왔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내게 쏠린 기사단의 시선과 트롤의 성난 눈동자에 심취하며 허리춤에서 칼을 서서히 빼 들었다.
“그오오오오오-!!”
그리고 놈이 크게 괴성을 지르는 순간.
“시끄럽다.”
가볍게 칼을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