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0.01초 소드마스터 56화
“저, 저런!”
아슬란이 마기 가루에 불을 던지자 기사들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저 가루는 악마의 가루다.
숨을 쉴 수도, 눈을 뜰 수도 없게 만들며, 이성적인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무시무시한 가루였다.
그런데 아슬란은,
“라파엘.”
“에··· 예?”
“내 주변으로 방어막을 쳐라. 이 연기가 하나도 나가지 않게 말이다.”
“그, 그러다 큰일나요! 아무리 가루가 몸에 크게 해를 입히지는 못해도 저 정도 대용량이면 다르다고요! 거기다 정신적으로는 엄청난······!”
라파엘의 말을 잘라 버렸다.
“명령이다.”
아슬란의 위엄 넘치는 눈동자에 라파엘은 입술을 깨물었다.
“나, 난 몰라요. 분명 경고 했어요!”
“그래. 내가 따로 명령할 때까지 방어막을 풀지 마라.”
그녀는 정령을 소환해 아슬란의 사방에 단단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그러자 그 안이 마기 가루로 인한 연기로 자욱해져 밖에서는 안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대, 대기사단장님께서 지금 무, 무슨 짓을······.”
기사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고작 한 줌의 가루만으로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는데, 아슬란은 저 큰 상자 안에 있는 가루 전체를 불에 태워 버렸다.
거기다 방어막까지 쳐 버렸으니-.
“저, 저러다 죽습니다!!”
“이, 이걸 어떡하면 좋단 말입니까!”
“진짜 저러다 잘못되기라도 하신다면-!”
아론은 방어막 쪽으로 달려가 라파엘에게 소리쳤다.
“라파엘 공! 얼른 이 방어막을 거두시오!”
“네? 안 돼요. 대기사단장님이 명령할 때까진 거두지 말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이러다 아슬란님께 큰일이 생기면 어떡하려고! 정 거두지 못하겠다면······!”
그는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내 직접 힘으로 부수겠소!”
그런 뒤 강하게 방어막을 내려쳤지만, 마치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만 들릴 뿐.
방어막에는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제 마법 방어막이 그 정도로 깨질 것 같으세요?”
“라파엘 공!”
“전 명령을 따를 뿐이에요!”
라파엘은 방어막을 거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론도 방법이 없었다.
그저 힘으로 이것을 부수는 수밖에.
“흐아압-!”
콰앙-! 콰아앙-!!
하지만 몇 번을 휘둘러 봐도 방어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론 단장님! 저도 돕겠습니다!”
그러자 알렉산더가 아론을 돕기 위해 나섰다.
두 사람이 동시에 내려치기 시작하자 방어막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진짜 왜들 그래요! 아직도 대기사단장님을 못 믿는 거예요?!”
“라파엘 공은 저 악마의 가루를 경험해 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그렇소! 저 가루가 얼마나 끔찍한 무기인데!”
라파엘은 마력을 전부 쏟아부어 두 사람이 절대 방어막을 부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자 균열이 일어난 곳은 금방 복구가 되었고 방어막의 두께가 더욱 두꺼워졌다.
“라파엘 공. 이런다고 우리가 포기할 거라 생각하지 마시오.”
“반드시 부셔 버리겠습니다.”
둘은 눈을 번뜩이며 저 방어막을 단번에 부수고자 검에 불어 넣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엇-.”
알렉산더는 보았다.
방어막 안쪽에서 검 하나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반듯하게 선을 그리고 있는 것을.
저 검은 분명······!
쩌적-! 콰콰콱-!!
아론과 알렉산더가 힘을 합쳐 공격해도 전혀 깨지지 않았던 방어막이 거짓말처럼 산산조각 나기 시작했다.
“뭐, 뭐야. 내 방어막이 어떻게!”
라파엘도 크게 당황한 것인지 수백 수천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는 방어막을 망연자실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뚜벅- 뚜벅-.
뿌연 연기 사이로 아슬란이 천천히 격조 있는 발걸음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대, 대기사단장님!!”
그의 눈은 붉게 충혈되었고, 피부는 눈동자처럼 붉게 올라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눈을 계속 껌뻑이거나, 다른 기사들처럼 몸부림을 치지 않았다.
놀라우리만치 꼿꼿한 자세로 걸어 나와 기사들 앞에 섰다.
“잠깐. 여, 연기가!”
“이쪽으로 온다!”
방어막이 깨지면서 마기 가루의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려 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려는데,
“모두 가만히 있거라.”
아슬란의 위압적인 목소리에 그들은 뒷걸음치던 것을 멈췄다.
그는 높이 검을 든 뒤, 위에서 아래로 세게 휘둘렀다.
후우웅-!!
그러자 그로 인해 일어나는 강한 풍압이 순식간에 연기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워낙 바람이 거세서 몇몇 기사들은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까지 했다.
“······!”
“우, 우와.”
그 광경을 보고 기사들은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대기사단장님!”
“존안이-!”
아슬란은 자신에게 헐레벌떡 달려와 소리치는 아론과 알렉산더를 못 마땅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호들갑 떨지 마라.”
“아······ 예.”
그는 짧고 굵게 일갈한 뒤 명령했다.
“통에 물을 가져와라.”
“예!”
기사 하나가 후다닥 달려가 통에 가득 물을 담아 돌아왔다.
아슬란은 그것을 받아 들고 머리 위로 전부 뿌렸다.
촤아아-!
은빛의 긴 머리카락이 물에 젖고 갑옷 전체에 물이 흘러 내렸으나, 흘러넘치는 귀족의 품격은 결코 떨어지지 않았다.
“음-.”
신기한 점은 그의 망토가 물에 젖어도 화려하게 펄럭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았느냐?”
“······예?”
멍하니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기사들이 몸을 움찔 거렸다.
붉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가 마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슬란이 정말 화가 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너희가 정신을 잘 붙잡기만 한다면 가루를 아무리 태워도 끝까지 태연하게 버틸 수 있다. 마기 역시 마찬가지다. 정신만 차린다면 마기로 너희를 통제하려는 악마를 능히 베어 버릴 수 있다.”
“······.”
“너희는 자랑스러운 나의 기사들이다. 그러니 두 번 다시 이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알겠느냐?”
“예!!”
아슬란은 그들에게서 몸을 돌렸다.
“돌아가겠다.”
그리고 태연하게, 여전한 발걸음으로 훈련소를 떠났다.
“대, 대단하시다.”
“어떻게 저 많은 가루를 태워도 멀쩡하실 수가 있는 거지?”
“그거야 우리 대기사단장님이시니 그렇지!”
잠시 말 없이 기사들이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던 아론은 뭔가를 결심한 듯 라파엘에게 다가갔다.
“라파엘 공.”
“······.”
“라파엘 공?”
“예?! 아, 네.”
넋을 놓은 채 아슬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라파엘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가루가 더 있소?”
“가루요? 네. 아주 많이 있어요.”
“그럼 새로 가져다주시오.”
그리 부탁한 뒤 아론은 기사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말했다.
“훈련을 계속하겠다.”
그러자 기사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 지옥 같은 훈련을 또 한다는 것인가.
“대기사단장님의 말씀대로, 그분이 몸소 보여주신 대로, 우리도 끝까지 버텨낼 것이다. 그러니 그분의 기사단이라는 명예에 걸맞게 모두 꼭 해내거라.”
하지만 아슬란이 남기고 간 그 강렬한 모습이 잊혀지지 않았다.
아론이 말한 대로, 위대한 아슬란의 기사단이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버텨내야만 했다.
“예!!”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기사들의 얼굴에 강한 의지가 새겨져 있었다.
자신들이 따르는 아슬란처럼 뛰어난 기사가 되고자 하는 그런 의지 말이다.
* * *
“대, 대기사단장님!”
“누, 눈과 얼굴이 시뻘겋게······!”
저택에 들어서자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집사와 시종들은 기겁하며 난리를 쳤다.
“안 되겠습니다. 제, 제가 당장을 의원을 부르겠습니다!”
“난 괜찮으니, 호들갑 떨지 마라. 그리고 내가 따로 부를 때까지 누구도 들여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아······ 예.”
나는 집사에게 그리 명한 뒤 침실 문을 닫았다.
그리고-.
“우으읍-!”
머리끝까지 충만해 있던 병적인 허세가 꺼져 들어가면서 엄청난 고통이 휘몰아쳤다.
“으아아아악!”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나는 물이 있는 화장실까지 갔다.
“따, 따가워! 따갑다고 씨발!”
얼굴, 몸, 팔, 다리.
어디 하나 안 따가운 곳이 없었다.
“진짜 이 병신 같은 허세!!”
마기에 가까이 다가갈 생각도 없었고, 마기 가루는 더더욱 쓸 생각이 없었다.
몸이라도 단단하면 내가 말을 안 하지.
지나가는 몬스터가 툭 쳐도 뒤지는 새끼가 이상한 허세뽕이 들어 가지고!
“우으으으-.”
수전증이 온 것처럼 손이 떨리고 발이 떨린다.
물을 퍼부어도 이 따가움이 가시질 않았다.
화생방 훈련 때도 이랬던 거 같다.
수통에 있는 물을 얼굴에 부어도, 바람에 얼굴을 맡겨도, 정말 무슨 개지랄을 해도 그 따가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수십 배, 아니. 몇 백배는 더 고통스러웠다.
“크흐흑-. 내가 시발 왜 이런 새끼를 골라 가지고.”
오늘도 눈물 한 접시를 흘리며 이 고통이 사라질 때까지 물에 몸을 담갔다.
* * *
콰직-!!
큰 도끼와 철심이 박힌 몽둥이로 아직까지 자스트라 숲을 돌아다니고 있는 크록들을 사냥하는 호드족.
아슬란 덕분에 크록은 대다수 잡힌 상태라, 이제 놈들은 위협 거리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언제 또 그 숫자가 늘어날지 모르기에, 대족장 막투르는 호드족에 있는 모든 전사를 끌고 나와 숲을 청소하고 있었다.
“캬오오-!”
“죽어라!”
뻐억-!
“자스트라 숲은 우리가 지킨다!”
“우우-!!”
아슬란이 다녀간 이후부터 더욱 결속력이 좋아지고 전사들의 정신 또한 탄탄해졌다.
“대족장 막투르님을 위하여!”
“아슬란님을 위하여!”
“우우-!”
그의 가르침을 잊지 않은 대족장 막투르와 그의 전사들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대족장. 이 정도면 이 구역은 전부 청소된 듯합니다.”
“흠-.”
막투르는 콧김을 강하게 내뿜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돌아 간다.”
“예!”
정화 작업을 마무리한 호드들은 다시 마을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은밀히 지켜보는 것이 하나 있었으니-.
“음?”
덩치가 좋은 호드 하나가 동료들을 따라 돌아가려는데, 뒤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기운에 고개를 돌렸다.
“이리로 오너라.”
저 어두운 수풀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스멀스멀 흘러 나오는 검은 기운이 몸에 닿자,
“억!”
순간 몸에 마비가 오고 불룩 튀어 나온 핏줄들이 전부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우어어!”
이 흉측한 것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을 쳐봤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호드 전사는 풀썩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음-.”
얼마 안 있어 호드는 흐느적 거리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덩치가 좋아 보여 들어왔더니만-. 그릇이 형편없구나.”
익숙하지 않은 손과 발을 꼼지락 거리고 있을 때.
“거기서 뭐하고 있나? 대족장이 모두 철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뒤에서 다른 호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그 호드를 위아래로 살펴본 뒤,
“저놈은 조금 나으려나?”
“뭐?”
순식간에 몸에서 뻗어 나가는 검은 연기가 상대방을 덮쳐 버렸다.
“크헉-!”
“반항하지 말고 이 키야르트의 새로운 몸이 되거라.”
“우욱-!”
그렇게 새로운 그릇을 얻게 된 검은 안개의 악마, 키야르트.
그는 이번에도 인상을 찌푸렸다.
“역시 호드인가-. 그릇으로는 쓸모가 없군.”
마력이 없는 놈들이라 그릇으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갑자기 제단 의식이 끊기지만 않았더라도······!”
봉인이 풀리고 게이트가 열리면서 크록들이 다수 밖으로 빠져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일이 순조로웠다.
키야르트 역시 술사가 진행하는 의식에 따라 바깥 세상으로 나가려 했던 것인데, 갑자기 제단 의식이 끊기고 게이트가 닫히면서 자신의 의식과 액체처럼 흐물거리는 몸만 간신히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적당한 그릇만 찾는다면-!”
이 대륙을 검은 안개로 뒤덮어 악마의 땅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 그릇으로는 안 된다.
뛰어나고 잠재력이 무한한 그런 육신이 필요하다.
“대족장 막투르라-.”
키야르트는 자신이 삼킨 호드의 기억을 살펴보았다.
그때 보이는 건 대족장 막투르.
“대족장 정도라면······.”
이 몸보다는 쓸만 할 터.
문제는 호드는 마력이 있지 않아 마법을 다루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슬란?”
그런데 호드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아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있었다.
쏟아져 나오는 악마 몬스터들을 쓸어 버리고 대륙의 소드마스터라는 자들을 홀로 상대해 침묵 시킨 무시무시한 강자.
이 호드는 아슬란을 거의 신처럼 숭배하고 있었다.
아니. 여기 자스트라 숲에 있는 호드족 전체가 비슷한 마음이었다.
“호오-. 이놈이 내 의식을 방해했던 것인가?”
그제서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아슬란. 이놈이 이 모든 일의 원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흐흐. 멍청한 호드의 대족장보다는 대륙 최강자라 불리는 놈이 훨씬 낫겠지.”
호드의 기억을 되새겨 봤을 때, 아슬란의 능력과 그 잠재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이 사내를 그릇으로 삼을 수만 있다면 어떤 것이든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았다.
“아슬란.”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빠르게 그릇을 바꿔가며 힘을 키운다면 언젠가 놈을 자신의 육신으로 삼을 수 있으리라.
“기다리거라, 대륙 최강자여.”
키야르트는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