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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초 소드마스터-55화 (55/200)

55화

0.01초 소드마스터 55화

‘내가 대체 뭘 보고 있는 거지?’

크라엘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 키엔을 바라보았다.

갑옷까지 뚫릴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었다.

그로 인해 키엔 몸 전체에 검의 조각들이 박혀 버렸다.

‘어떻게 키엔의 검을 고작 손가락만으로!’

도저히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키엔은 저 대검을 보면 알 수 있듯, 기술보다는 힘을 중시하는 검사였다.

그렇기에 그가 힘을 잔뜩 실어 대검을 내리치면 크라엘조차도 정면으로 받아칠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저 아슬란은-.

‘마치 어린 아이 장난처럼 키엔의 검을 쳐냈다.’

키엔의 힘을 알고 있는 자라면, 키엔을 곁에서 지켜봤던 자라면, 방금 전 상황이 얼마나 경악스러운 일인지 알 수 있으리라.

“······.”

그건 이미 기사단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라이에르를 비롯해 그의 기사들 모두가 제자리에 얼어 붙어 버렸다.

피를 흘리며 괴로워 하고 있는 저 키엔을 얼른 달려가서 구해야 하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저 전율이 일어나는 몸을 떨며 천천히 앞으로 다가오는 아슬란을 바라볼 뿐.

“닿으면 부러질 것처럼 한없이-.”

그의 중후한 음성이 바닥을 가르는 것만 같았다.

“나약하구나.”

건방지고 오만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감히 그 누구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만’ 왕국의 대기사단장이자 소드마스터인 키엔에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이 대륙에 몇이나 될까.

아마 아슬란이 유일할 것이다.

“이런 비겁하고 나약한 놈이 대기사단장으로 있는 왕국이라면······ 그 수준이 어떤지 안 봐도 뻔하겠군.”

아슬란은 키엔뿐만이 아니라 ‘만’ 왕국 전체를 모욕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역시,

“크윽-.”

“······.”

모두 작게 신음만 흘릴 뿐,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못했다.

여기서 자칫 발을 내디디는 순간, 아슬란의 검에 목이 날아갈 것만 같은 살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런 왕국의 기사단 따위가 감히 내게 도전하다니. 이 자리에서 전부 죽고 싶은 것이냐?”

그 존재만으로도,

그가 말 위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기사단 전체를 짓누를만큼 압도적이었다.

‘이런. 하필이면 걸려도 저런 괴물한테 걸리다니.’

크라엘은 속으로 탄식을 터트렸다.

기사단은 이미 모두 겁을 먹은 상태.

거기다 그들을 이끌어야 할 라이에르와 크라엘도 이미 아슬란의 기세에 짓눌려 있었다. 여기서 저들과 싸운다면 틀림없이 전멸이다.

“허나-.”

아슬란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너희처럼 기사의 명예도 모르는 비겁한 놈의 피를 묻히는 건 나에 대한, 그리고 우리 기사단에 대한 모욕이다.”

그는 한심하게 키엔을 바라보다 말머리를 돌렸다.

그러자 붉은 망토가 화려하게 펄럭였다.

“그러니 꺼지거라. 그리고 평생 그 상처를 되새기며 네가 얼마나 비겁한 사내인지를 깨닫거라.”

그 말을 끝으로 아슬란은 돌아가 버렸다.

기사단은 그의 뒤를 따랐고, 호드들도 콧김을 강하게 내뿜으며 함께 떠났다.

‘지, 진짜 이대로 보내주는 건가?’

분명 싸웠다면 ‘만’ 왕국의 확실한 패배였다.

크라엘도, 라이에르도 이곳에서 목숨을 걸었어야 했을 터.

하지만 아슬란은 무려 소드마스터 3명을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버렸다.

그렇다는 건,

“언제 싸워도 우리 따위는 금방 죽일 수 있다는 것이냐?”

그것 말고는 해석이 되지 않는다.

“검을 뽑지도 않고 고작 손가락으로 키엔을 쓰러뜨린 자다. 그런 자에게 우리가 눈에 차겠는가? 준비 운동조차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

라이에르의 말에 크라엘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그런 것인가.

아슬란. 너한테는 우리가 그저 그런 상대였는가.

“제길.”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무력감이었다.

지금이라도 저자의 뒤를 쫓아 왕국의 명예를 드높이는 것이 맞으나,

“크, 크라엘! 라이에르!! 크아악!”

온몸에 파편이 박힌 채 몸부림을 치다 기절해 버린 키엔을 보고는 그러한 생각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돌아가자. 키엔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으니.”

“그래.”

크라엘도, 라이에르도 이를 악 물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 치욕을 갚으리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둘 다 같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만나면 그땐 이길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떨려오는 두 손이 말해 주고 있었다.

* * *

‘돼······ 됐나?’

살 떨려서 미치는 줄 알았네.

말의 배를 세게 차서라도 얼른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푸르르~.

이놈의 말 새끼가 기분 좋게 울음을 터트릴 정도로 아주 느릿하게, 평온하고 품위 있게 천천히 말을 몰고 있었다.

뒤에서는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고, 언제 비수가 날아와 꽂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심장이 쿵쾅 거렸으나, 천만다행으로 호드의 마을로 돌아올 때까지 어떠한 공격도 없었다.

‘돼, 됐다.’

키엔의 공격을 막은 건 정말 천운이었다.

이 병신 같은 반사 신경으로 잘도 키엔의 대검을 막았다.

만약 그놈이 큰 검을 휘두르지 않고 다른 이들처럼 일반 검을 휘둘렀다면 어찌 되었을지······.

‘거기다 크라엘이랑 라이에르가 눈 돌아가서 덤볐으면-.’

찰나의 괴력도 쿨타임이라 내게는 반격할 수단도, 방어할 수단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둘은 그렇게 내가 도발을 했는데도 끝끝내 칼을 뽑지 않았다.

‘설마 이러다 뒤늦게 빡쳐서 쫓아오는 거 아니야?’

정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왕국 놈들은 검에 미친 또라이들이다.

언제 나를 쫓아와 죽이기 전에 얼른 여길 나가야겠다.

그런데,

‘왜 아직도 퀘스트가 클리어 안 되는 거지?’

이놈의 퀘스트는 대체 나한테 뭘 바라는 건지 모르겠네.

“아슬란 대기사단장님.”

그때 호드의 대족장, 막투르가 내게 다가왔다.

왜인지 그의 눈동자에서 두려움이 보였다.

막투르는 내게 정중한 자세로 인사하며 말했다.

“우리 호드를 위해 이토록 힘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종족이 악마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드디어!

그래. 이 퀘스트는 호드를 돕는 거였지.

대족장이 끝났다고 인정을 하면 퀘스트도 끝이 나는 것이었다.

‘이 지랄 맞은 숲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구나!’

마음 같아서는 당장 이럇! 소리치며 이 숲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게는 별일 아니었다. 조금의 지루함도 달랠 수 없을 만큼 시시했지.”

주둥이가 여태껏 살아 있는 이놈의 허세는 꺼져들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이런 개소리를 듣고도 막투르는,

“역시······ 아슬란님 같은 강자에게는 이 정도의 일은 그저 아무것도 아니로군요.”

뭔가 깊이 감명한 듯보였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당신은 호드 부족을 구해 주신 것에 모자라 우리의 썩은 정신을 바로 세워 주셨습니다. 그 큰 은혜를 빚졌으니, 오늘 저 막투르는 여기서 맹세합니다.”

막투르는 도끼로 땅을 찍으며 모든 호드가 들을 수 있게 소리쳤다.

“오늘부로 우리 호드는 맹세한다! 아슬란님을 적으로 두는 자, 우리의 적이 될 것이며, 그분을 친구로 두는 자, 우리의 친구가 될 것이다!!”

“우우-!!”

호드들은 그에 화답하듯 각자의 무기로 땅을 내리찍었다.

그에 따라 기사단도 함께 환호성을 질렀다.

전혀 이어질 것 같지 않은 두 종족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건······.’

열광의 도가니 속.

나는 이 장면을 알고 있었다.

‘내가 주인공으로 게임을 플레이 하면 보게 되는 컷씬.’

난 옆에 있던 알렉산더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는 잔뜩 흥분한 얼굴로 기사들과 함께 가슴팍을 치고 있었다.

알렉산더가 옆에 있어서 이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루트로 클리어를 해서 볼 수 있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나 아슬란은 이곳에서 선언한다.”

이 낯 뜨거운 상황을 두고 이놈의 허세가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나 아슬란은 지금부터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나는 가슴 속에서부터 충만해지는 허세를 느끼며 이들에게 말했다.

“너희가 보였던 그 용맹함을, 그 전사의 영혼을 나는 기억할 것이다.”

“······.”

방금 전까지 함성을 지르고 있던 호드들이 일제히 침묵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관심과 시선에 심취하며 소리쳤다.

“일라이 왕국과 호드는 영원한 우호 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그대들이 위험에 빠지면 언제든 나 아슬란을 찾거라. 내가 너희를 위해 달려갈 것이다.”

아니. 제발 찾지 말아 주라.

“일라이 왕국이 그대들을 필요로 한다면 그대들도 우리를 위해 달려오너라.”

그리고 와서 나를 지켜라.

“이것이 서로가 서로를 돕는 진정한 형제의 관계이므로, 나는 그대들을 다른 종족이 아닌, 나의 형제로 기억하겠다!”

그러니 앞으로 평생 나를 위해 싸워라.

“우우-!!”

“우오오오-!!”

호드들의 뜨거운 함성 소리는 자스트라 숲이 떠나갈 정도로 한동안 길게 이어졌다.

* * *

“그러니까 이걸······ 훈련에 쓰라는 거죠?”

“그래.”

“저, 정말로 이걸 훈련에 쓰라고요? 정말?”

라파엘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같은 말 하게 하지 마라.”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서요.”

왕국에 돌아온 뒤 나는 라파엘과 마법사들을 시켜 무언가를 만들어 오게 했다.

그것은 바로 이끼 나무라 불리는 것을 갈은 뒤에 이것 저것 재료를 섞어 만든 가루였다.

“지금이야 별 냄새가 안 나지만, 이걸 불에 태우면 엄청 독한 냄새가 나요.”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이걸······.”

“마기에 대한 저항을 높이려는 것이지.”

“!?”

이것이 바로 마기 가루.

스토리가 중후반에 이르면 테키나 족속이 활개를 치게 되는데, 기사단을 가장 골머리 앓게 만드는 것이 바로 마기였다.

마기에 중독되면 정신이 통제가 되지 않고 몸도 고통 속에 빠지게 되는데, 그것에 적응하고자 훈련 목적으로 이 마기 가루를 쓰게 된다.

이걸 불에 태우면 연기가 나오는데, 신체에 해를 끼치는 건 없지만 마기와 비슷한 효과를 내서 만들어진 것이다.

게임을 플레이 하게 되면 나중에 필수적으로 기사단에게 시켜야 되는 훈련이기도 했다.

‘좀 빠른 감이 있지만.’

지금 스토리가 흘러가는 꼬라지를 보니, 언제 대악마들이 나타나 대륙을 파괴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기사단을 마기에 적응시켜야만 한다.

뭐, 따지자면 화생방 훈련 같은 거라고 해야 할까?

“이 가루를 기사단에게 나눠 주거라. 훈련 방법은 내가 일러 준 대로 알려주고.”

“아, 네.”

나는 라파엘에게 맡긴 뒤에 정무를 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기사들이 훈련을 한번씩 끝마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잘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훈련소로 가보았다.

“우웨엑!”

“으아아아!”

“누, 눈이 매워!”

“수, 숨을 쉴 수가 없다!”

훈련소는,

“······.”

아주 난장판이었다.

내가 예전 훈련소를 다닐 때 보던 그 광경이다.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는 그때의 훈련, 화생방.

추억이다······ 아주 좆 같은 추억.

나는 괴로움에 비명을 지르고 있는 기사들에게 다가갔다.

“대, 대기사단장님?”

얼굴이 시뻘겋게 변한 채 눈물 콧물 다 쏟아내고 있는 그들을 나는,

“나의 기사라는 것들이 고작-.”

치밀어 오르는 허세를 참지 못 하고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것 하나 버티지 못하다니.”

“하, 하지만 너무 괴롭습니다.”

“이걸 대체 어떻게 버틸 수가 있는지······.”

말단 기사부터 시작해 단장이라는 놈까지 난색을 표했다.

“라파엘에게 이 훈련의 목적을 들었을 터. 이 가루를 태워 너희를 버티게 하는 이유는 마기로부터 저항력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나는 더욱 그들을 꾸짖었다.

“한 줌 밖에 되지 않는 아주 약한 강도다. 너희를 배려해 처음부터 강도를 높이지 않았던 것이지. 원래는 이 상자에 있는 가루를 절반은 태워야 비슷해지는 수준이지. 그런데 고작 이 정도로 낙담을 한단 말이냐. 한심하구나.”

“······.”

그곳에는 아론과 알렉산더도 있었다.

“너희 둘은 어땠지?”

아론은 붉어진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이, 이 정도는 참을만 했습······ 푸헷치! 소, 송구······ 우읍-!”

아론이 저 정도인데 다른 이들은 볼 필요도 없었다.

그나마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건 알렉산더 정도?

역시 주인공이다.

“이런 거 하나 버티지 못해서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나 역시 알고 있다.

이 훈련이 이들에게 힘들다는 것을.

하지만 반드시 참고 견뎌야 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마기 저항력을 높이려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마기는 이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언젠가 이들이 마기를 직접 경험해 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어떻게 나의 기사라고 할 수 있겠느냐?”

물론 나는 이 훈련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마기가 있는 곳에는 절대 들어가지도, 다가가지도 않을 생각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 가루에서 나오는 연기가 조금이라도 나한테 닿는다면 울고 불고 펄쩍 뛸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정말 마기가 이 정도란 말입니까?”

“아니. 이것보다 몇 배는 강하다. 훈련 강도를 차츰 늘려간다면 어느 정도 저항력을 가질 수 있을 터. 이 정도도 버티지 못한다면 악마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그, 그렇다면 대기사단장님께서는 그 사악한 마기를 버티실 수 있으십니까?”

하필이면 아론의 저 말이 내 허세에 불을 질러 버렸다.

“내가 마기 따위에 굴복할 것 같으냐?”

방금 전 이 가루로 마기의 일부분을 경험했던 기사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하물며 이 가루에 내가 무너질 것 같으냐?”

그것이 나의 허세를 더욱 자극하더니, 기어코 나는-.

“그렇다면 보여 주겠다. 이 아슬란이 마기를 어떻게 버텨내는지.”

마기 가루가 한 가득 있는 상자에 불을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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