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01초 소드마스터-54화 (54/200)

54화

0.01초 소드마스터 54화

“뭐? 키엔과 라이에르가?”

“예! 두분이 함께 기사단 2천을 이끌고 출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기사의 보고를 받은 크라엘은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왜 그 두 사람이?

거기다 자기와는 일절 상의도 없이 기사단을 움직여?

“도대체 왜 그 두 사람이 그런 짓을?”

“호드가 국경을 무단으로 침범하고, 그 과정에서 기사단이 공격을 받은 것 때문에 크게 분노하신 듯합니다.”

“그 말은 지금 그 두 사람이 자스트라 경계선을 넘고 있다는 것이냐?!”

“예. 아마 지금쯤 국경에 다다르셨을 겁니다.”

그 두 놈이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나.

호드가 국경을 넘는 일은 가끔 있었다.

그렇다고 놈들이 악의적으로 국경을 넘는 것은 아니었다.

도망치는 몬스터를 추적하고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눈 감고 넘어간 것이었다.

괜히 국경 근처에서 분란을 일으켰다가는 일라이 왕국과도 다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빨리 알아서 천만 다행인 건가.”

키엔과 라이에르가 전쟁과 혈투를 갈구하고 있다는 것을 크라엘은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사고를 치면 얼른 알 수 있게 주변에 사람들을 깔아 두었다.

그 덕분에 그 둘이 출정을 하자마자 보고가 들어온 것이었다.

“키엔님과 라이에르님이 올바른 선택을 한 게 아니겠습니까?”

그때 같이 보고를 듣고 있던 부장들이 하나 둘 동조하듯 의견을 내놓았다.

“호드가 건방지게 우리 왕국의 국경을 계속 넘고 있습니다. 당연히 처단해야 합니다!”

“이참에 놈들을 쓸어 버리시지요!”

하지만 크라엘은 고개를 저었다.

“나라고 호드들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고 싶지 않아서 이러고 있겠느냐?”

“······?”

“우리가 갑자기 군을 일으켜 국경 근처에 다다르게 되면 일라이 왕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놈들도 함께 쓸어 버리면 되지 않습니까!?”

“일라이 왕국은 대륙에서도 최약체로 뽑힙니다!”

부장들의 한심한 소리에 크라엘은 헛웃음을 지었다.

“언제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냐. 일라이 왕국의 전력은 과거와 다르다. 특히 아슬란의 존재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겠지.”

“우리 왕국에는 소드마스터가 세 분이나 계시지 않습니까?”

“아슬란은 세분의 검을 막아내지 못할 겁니다!”

이어지는 부장들의 말에 크라엘은 일갈했다.

“멍청한 소리 그만 하거라. 너희는 검의 원탁 때 아슬란을 못 보지 않았더냐?”

“······?”

크라엘은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가락 하나만으로 미뉴엘을 날려 버리는 것에 모자라 200년 넘게 부서지지 않았던 원탁을 쪼개 버렸다.

그뿐인가?

대륙 최강자라고 불리는 카르만조차도 아슬란의 거침 없는 행보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때 크라엘은 느꼈다.

어쩌면 아슬란이야 말로 진정한 이 대륙의 최강자라고 말이다.

“아슬란의 힘은 예측불허다. 그 유한이 일격에 죽은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될 정도였지. 너희 말대로 우리가 힘을 합치면 ‘만’ 왕국이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 출혈이 엄청날 것은 자명한 일.”

그래서 크라엘은 괜히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그는 아슬란이 두려웠다.

만 왕국의 기사들이 힘을 합치면 당연히 일라이 왕국을 못 이길 것도 없겠으나, 엄청난 피해를 각오하고 전쟁을 벌여야 할 터.

국운을 걸면서까지 싸우고 싶지 않았다.

“기사단을 준비시켜라. 더 늦기 전에 그 둘을 이곳으로 데려와야겠다.”

제발 자신이 그곳에 갈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 * *

콰쾅-! 콰콰쾅-!!

“!?”

무너져 내리는 절벽을 키엔과 라이에르는 경악 어린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그건 아마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럴 것이다.

저 거대한 절벽이 저리도 쉽게 무너질 줄이야.

‘말이 안 되는 경지다.’

보통 큰 기술을 날리려면 준비 동작이 길어진다.

정제된 기운을 모아 그것을 쏘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력의 우위를 결정 짓는 건 얼마나 짧은 준비 동작을 갖느냐였다.

하지만 방금 그것은,

‘고작 검을 가볍게 휘둘렀을 뿐이거늘.’

그 한번에 저 높디높은 절벽을 무너뜨렸다.

가벼운 준비 동작조차 없었다.

그저 허리춤에 칼을 뽑아 휘두르는 것이 전부.

그런데 결과가 저것이었다.

라이에르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방해꾼은 모두 사라졌군.”

아슬란의 둔중한 음성이 사위를 갈랐다.

그는 모두를 아래로 내려보는 듯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

“명예로운 기사의 싸움을 원한다면 얼마든지 상대해 주겠다. 그래도 명색이 소드마스터이니, 지루하진 않겠지.”

저런 도발에 가만있을 키엔이 아니었지만,

“크윽-.”

그조차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방금 전 아슬란이 보여주었던 그 경이로운 광경이 머리에서 잊히지 않는 것이리라.

가벼운 동작만으로도 저 정도의 힘을 보일진데, 작정하고 힘을 발휘한다면 이 숲 전체를 날려 버릴 수 있을 터.

‘엘티히와 비겼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헛소문으로 치부했던 것이 오늘에서야 사실로 드러났다.

“왜 아무런 반응이 없지?”

키엔과 라이에르가 경직된 채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자 아슬란의 거만한 목소리가 더욱 깊게 울려 퍼졌다.

“내가 두려운 것이냐?”

“······.”

“한심하구나. 대륙의 소드마스터라는 것들이 이리도 나약해서야.”

아슬란의 모욕적인 언사에 키엔의 두 주먹이 떨려왔다.

하지만 아직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에게 조금 자비를 베풀도록 하지.”

급기야 그는 선을 넘는 도발을 걸었다.

“너희 둘 다 덤비거라. 그래야 조금이라도 실력 차이를 좁힐 수 있지 않겠느냐?”

“!?”

순간 라이에르는 제 귀를 의심했다.

제정신인가.

무려 소드마스터 두 명을 혼자 상대하겠다고?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그때 옆에서 분노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기랄.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짓씹은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던 키엔이었다.

그만큼 분노로 절여진 눈동자가 점점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보였다.

“넌 나서지 마라, 라이에르.”

그리고 그가 대검을 꺼내 앞으로 나아가려는 순간.

“키엔. 자중해라.”

“뭐?”

“너도 알고 있지 않느냐. 네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키엔이 불이라면 라이에르는 물이었다.

그는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갈수록 냉정해졌다.

하지만 키엔은 불처럼 타오를 뿐이다.

“저런 말을 듣고도 가만 있으라고?!”

“그래서 고작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목숨을 버리고 싶은 것이냐?”

“라이에르!”

두 사람이 의견 충돌을 일으키면서 서로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아슬란은 천천히 말을 앞으로 몰았다.

“이 정도도 너희에게는 부족했던 모양이군.”

그의 목소리에 키엔과 라이에르는 하던 말을 멈췄다.

“부담 갖지 마라. 그저 조금이라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이러는 것이니.”

아슬란은 두 사람 뒤에 있는 기사단을 가리켰다.

“그 뒤에 있는 기사단까지 모두 내가 상대해 주겠다.”

“!?”

“이 아슬란 앞에서는 머릿수가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줄 것인즉.”

그의 눈빛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너라.”

* * *

“······.”

저질러 버렸다.

‘내, 내가 지금 무슨 미친 짓을.’

처음에는 절벽을 부수는 것으로 기선 제압을 했으니, 적당히 허세를 부려주면 알아서 꼬리를 내릴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허장성세를 펼치며 저 둘을 도발했던 것이다.

‘방금 전까지는 참 좋았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한번 폭발하기 시작한 병적인 허세가 순간 통제를 벗어나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고 말았다.

이미 찰나의 괴력을 한 차례 써 버린 탓에, 쿨타임 초기화를 해도 딱 한번 밖에 쓰지 못 한다.

즉, 나 혼자서는 저 많은 기사단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저것들이 기사라면 진짜 한꺼번에 나한테 달려들진 않겠지.’

저놈들도 자존심이라는 게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아슬란. 후회할 짓을 하는구나. 네가 아무리 강자라고 해도 우리 모두를 상대할 순 없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라이에르는 칼을 뽑아 들며 말했다.

“네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뭐 인마?

“이건 네가 자초한 일이다, 아슬란. 난 너처럼 기사의 명예를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이 비록 더러운 짓이라 해도 나는 망설이지 않고 행할 것이다.”

잠깐. 이 미친놈이 진짜 기사단이랑 같이 나와 싸우겠다는 건가?

야. 대기사단장이라는 놈이 그러면 안 되지.

지금 정정당당하게 일대일을 해도 모자를 판에!

“라이에르. 우리 만 왕국의 명예를 그만 더럽히고 뒤로 빠져라.”

“키엔. 냉정하게 생각해라. 지금이 우리가 아슬란을 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그따위로 이긴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옳지. 잘 한다.

둘이 더 싸워라.

“상관없다. 이렇게라도 이길 수 있다면 망설이지 않겠다.”

그런데 이미 마음을 정한 라이에르는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기사단! 모두 칼을 뽑아라!”

놈은 기어코 기사단을 끼고 나와 싸우려는 것이었다.

이런 비겁한 놈!

‘이러면 늦기 전에 나도 기사단을 불러서······!’

이놈의 허세 때문에 가만히 앉아서 죽어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살기 위해서라도 뒤에 있는 기사단과 호드들을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게 상황이 일촉즉발로 흘러 가려는 때에-.

“키엔! 라이에르!!”

저 앞에서 어떤 이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키엔과 라이에르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크라엘]

무력: 94

지력: 87

만 왕국의 또 다른 소드마스터이자, 셋 중에서 실질적인 리더 역할을 하는 크라엘이 있었다.

‘이런 미친.’

저 둘도 버거운데, 이젠 세 명이냐.

거기다 크라엘은 별도의 기사단까지 끌고 왔다.

더 이상 수적으로 우리가 유리한 상황도 아니었다.

“예상보다 빨리 왔군, 크라엘.”

“무슨 짓이냐, 라이에르. 허락도 없이 군을 움직이다니. 이 일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다.”

크라엘이 험악하게 눈을 뜨고 있자 키엔과 라이에르는 조금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아슬란 공.”

그는 내 쪽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도 흠칫 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서로 오해가 있었던 것 같소. 우리 ‘만’ 왕국은 일라이 왕국과 다툼을 원하지 않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린 이제 그만 돌아갈 테니, 평화롭게 보내주시오.”

뭐야. 그럼 싸울 필요가 없는 거잖아?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크라엘까지 나타났길래 이젠 진짜 끝이구나 싶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우리와 싸우는 걸 꺼려했다.

착-!

나는 일단 칼부터 집어넣었다.

크라엘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얼른 돌아가기 위해서였다.

“그런가.”

하지만 이놈의 허세는,

“아쉽게 되었군. 저 둘이 어떤 재롱을 피우나 보려고 했더니.”

마지막 순간에도 꺼지질 않았다.

“다음에는 겁쟁이가 아닌, 기사다운 모습을 기대하겠다. 키엔, 라이에르.”

“······!”

그 말을 듣고 두 사람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특히 키엔의 눈동자는 당장이라도 날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말머리를 돌리려 했다.

“돌아가겠다.”

그러나 이놈의 허세 때문에 말머리를 돌리는 것조차 느릿하게 품위를 지켜야 했다.

그에 더하여,

펄럭~.

망토를 펄럭이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하여튼 이놈의 정신병.’

이 병신 같은 허세 때문에 저 두 소드마스터 손에 사지가 잘려나갈 뻔했다.

그래도 적절한 타이밍에 크라엘이 끼어든 덕분에 위기를 벗어날 수가 있었다.

‘이렇게 끝나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다 죽을 뻔했네.

나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을 몰았다.

그런데,

쿠웅-!!

뒤에서 무언가가 폭발하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에 이어,

“아슬란!!”

키엔의 발악 섞인 목소리가 위에서 함께 들려왔다.

잠깐. 위라고?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죽어라!!”

키엔의 붉은 대검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도발에 결국 키엔이 그 화를 참지 못했던 것이다.

‘조, 좆 됐······!’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그러자,

콰아아앙-!!

키엔의 대검이 내 손끝과 맞부딪혔다.

“!?”

그 광경에 곧 경악 어린 탄성이 사방에서 터져 나왔다.

“이, 이럴 수가!”

“저 키엔의 일격을 고작 손가락만으로!”

나의 손끝에서 발현된 수호신의 방패.

그것이 키엔의 대검을 막아 주고 있었다.

“크읍-!!”

키엔은 눈을 부라리며 더욱 대검에 힘을 불어 넣었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쩌적-!!

내 방어막이 아닌, 키엔의 대검에 균열이 일어날 뿐이었다.

이윽고,

“뭐, 뭣?!”

콰직-! 콰콱-!!

힘을 버티지 못한 대검이 폭발하면서 그 파편들이 키엔에게 쏟아졌다.

“크아아악!”

얼굴과 몸에 파편이 박힌 키엔이 바닥을 구르며 비명을 질러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지만,

“건방지구나.”

단전에서부터 끓어 오르는 허세에 나는 아주 처연하게, 품위 있게 손을 거두며 말했다.

“그런 나약한 검으로 등을 노리면 날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고통과 두려움으로 얼룩진 키엔의 눈동자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0